배우 김혜수가 맞는 서른 번째 봄이다. 결코 다작이랄 수 없고 이따금 떨리는 걸음이었지만, 포개어 고운 주름을 잡기 넉넉한 시간이 흘렀고 성패를 넘어 김혜수는 한번도 트릿한 적 없는 배우였다. 곧이곧대로 열심이었고 그래서 매번 선연했다. 이제 수십을 헤아리는, 은막과 TV 스크린에서 살다간 김혜수의 그녀들은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든다. 밀회를 위해 교외로 명랑하게 차를 모는 <바람 피기 좋은 날>의 이슬은, 두근두근 밤길 자전거 페달을 밟던 <첫사랑>의 영신에게 응원을 보낸다. <얼굴 없는 미녀>와 <타짜>의 두 여자는 좁은 골목을 또각또각 지나다 어깨를 스치고 흘긋 돌아본다. “한국 아저씨들은 일정 나이 지나면 충고 자격증이라도 받나?”라고 버럭했던 <이층의 악당>의 우울한 연주는, “지금 나 가르쳐?”라고 사내를 일축하는 <차이나타운>의 마우희에게 화들짝 겁먹으면서도 슬며시 끄덕인다. 기억을 잃고 행방불명된 신도시 주부로 김혜수를 캐스팅한 김지운 감독의 <메모리즈>(2002)부터였던 것 같다. 긴 세월 김혜수를 규정했던 건강한 화사함은, 처연하고 초연한 기운에 서서히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성큼 짧아진 머리칼은 그녀를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표표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20년 가까이 김혜수의 동그란 눈과 입술에 시선을 빼앗겼던 우리는, 그녀의 도도한 턱과 외로운 목을 발견했다. 허무에 젖어 간절히 전기(轉機)를 기다리는 여자, 허무에 지지 않을 겸 강단 있게 일하는 여자들이 김혜수의 인물 갤러리에 입장했다.
그녀의 신작 <차이나타운>은 전형화된 모성과 섹시함을 경유하지 않은 여성 캐릭터들이 서사를 틀어쥐고 가는 희소한 한국 장르영화다. 김혜수가 분한 ‘엄마’ 마우희는 고아들을 거둬 장기매매와 고리대금 조직을 굴린다. 장르영화의 밀폐된 세계에 갇힌 남성 주역들이 그러하듯 마우희가 아는 삶의 방식은 딱 하나뿐이고, 그것이 최선인지 아닌지 돌아보지 않은 채 끝까지 폭력적으로 관철시킨다. 단, 자학도 하지 않는다. 설정은 <올리버 트위스트>의 소매치기 두목 페긴을 연상시키지만, 마우희는 훨씬 추상적 인물이다. 어쩌면 인간의 형상을 띤 개념이고 특정한 질서다. ‘엄마’는 국적도 나이도 과거사도 불명하다. 이야기 안에서 변모의 여정도 거치지 않고 바위처럼 버티고 있다. 심지어 그녀는 극중에서 눕지도 않는다. 이 육중한 진공을 김혜수의 맨 얼굴, 정확히 말하면 맨 얼굴로 보이도록 빚어진 영화적 마스크가 방어한다. ‘엄마’의 강인함은 김혜수에게 있어 결코 반전이 아니다. 그녀는 항상 강했다. 건강해서, 아름다워서, 원숙해서. 방식만 달랐다. 그러나 김혜수라는 배우는 모순형용이다. 작은 것에 열렬히 경탄하고 측은지심이 넘쳐나는 감수성을 끌어안은 채 스크린에만 들어가면 사방을 압도해왔다. 그녀가 원치 않을 때조차. ‘엄마’는 30대 이후 김혜수가 연기한 일련의 허랑한 인물 중에서 제일 건조하다. <차이나타운>이 특별하다면 이 배우가 끌어안고 온 ‘모순’을 북방한계선을 뚫고 극점까지 밀어붙여 버렸다는 점이다. 무기질의 캐릭터 마우희는 김혜수가 타고난 습기와 무심하고 난폭하게 충돌한다.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벌어졌다. 이 ‘대형 사고’ 복판의 김혜수는 도리어 자유롭고 평온해 보였다. 나는 조급해졌다. 이번 영화로 그녀를 만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거야.
-<차이나타운> 캐스팅 제안을 처음에는 사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준희 감독님이 손편지로 직접 만나서 한번 이야기할 기회를 청했다고요. 군대 가서도 안 써본 편지라고 하시던데요.
=또박또박 소년 같은 글씨체였어요. 영화적인, 좋은 시나리오였지만 정서가 좀 버거웠어요. 왜 사회적으로 충격적인 뉴스가 나오면 우리가 당연히 주시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힘들어서 차라리 이런 소식을 몰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잖아요?
-달리 말하면 <차이나타운>을 찍는 동안 정신적으로 본인이 매우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게 있었어요. 감당 못하는 정서와 몇달 동안 동거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영화로서 관심이 갔지만 난 빠지고, 완성되면 제일 먼저 보러가고 싶은 마음이었죠. (웃음) 감독님 편지는 길고 담백했어요. 나라는 배우를 향한 진심이 고맙고 이렇게 흔치 않은 이야기를 쓰는 감독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뵙게 됐죠. 역시 소년의 모습이었는데 도무지 제게 뭘 강조하거나 피력하려고 들지 않는 거예요. 그게 오히려 비범해 보였어요. 왜 굳이 이렇게 힘든 영화로 시작하려고 하냐고 묻기도 했는데, 무슨 말씀인지 알지만 이 영화를 끝으로 다시 영화를 찍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가 자신의 첫 영화여야 한다고 하셨어요. 사람이 살면서 미래의 삶까지 담보로 잡으면서 어떤 선택을 고집하는 강한 의지를 갖는 일이 극히 드물잖아요. 마음이 움직인 한편 내가 제대로 못해내면 작품 하나 망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분의 영화 인생을 그르칠 수 있겠구나 겁도 더불어 났어요. 다행이었던 점은, ‘엄마’의 외양을 만드는 작업을 같이 하면서 정서적 부담이 서서히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영화와 캐릭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어느 날 송종희 언니(분장팀장)와 통화하는데 “아, 내가 생각한 ‘엄마’가 틀리지 않구나. 이게 맞구나”라고 느꼈고 그때부터 용기가 났어요. 실제 김혜수가 버텨야 할 정서가 있고 캐릭터가 유지할 정서가 따로 있는데, 전 그것들이 겹친다고만 생각했던 거죠.
-최근 출연하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여전히 ‘건강미인’으로 소개되시더군요. 저는 <메모리즈> 이후로는 심지어 <도둑들>의 펩시나 <관상>의 연홍에 이르기까지 김혜수씨 연기에 담긴 정서에 허무나 체념이 강해지고 있다고 느껴왔어요. 그런데 <차이나타운>의 마우희는 그런 장기적 기조가 새로운 계기랑 부딪혀 확연히 달리 표현되는 인상이었어요. 이를테면, 전에 없이 ‘불건강하게’랄까요?
=하는 일이 연기고 직업이 배우지만, 나이 들면서 나를 구성하는 감정의 비중이 달라졌겠죠. 서른 이후부터 말씀하신 허전한 느낌이 꽤 크게 자리 잡은 것 같긴 해요. 시간을 겪으며 성숙한 걸까, 거꾸로 배우 일을 하면서 살았기에 이런 감정이 생긴 걸까 돌아보기도 해요. 마우희는, 인간적이지 않죠. 제일 많이 떠올린 그림이 프란시스 베이컨의 인물화였어요. 인간 이전의 더 원초적인 질서를 강요받은 인간, 그리고 그것을 체득하며 산 사람을 생각했어요. 시나리오 읽으며 제일 자주 떠올린 문장이 ‘이것이 인간인가?’였거든요? 그래서 영화 제목 의논할 때도 그걸 제안했어요. (웃음) 그리고 또 연상한 건, 뫼비우스의 띠.
-음, 인간과 비인간이 앞뒤 구분 없이 연결돼 있어서요?
=그보다 끊어낼 수 있음에도 끊어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 같아서…. 이를테면 저는 ‘엄마’와 일영(김고은)의 이야기를 권력승계라는 틀로 말할 수도 있지만, ‘엄마’가 일영을 대하는 방식이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과 똑같다고 생각하고 연기했거든요. 그녀가 몸으로 터득한 생존법과 일영을 지켜주려는 법이 동일한 거죠.
(이 단락에는 <차이나타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네가 왔구나. 너구나.”
-<차이나타운>은 인물도 많고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생략한 부분이 상당합니다. 영화에 드러나지 않는 백 스토리를 포함해 일영에 대한 ‘엄마’의 감정이 변화한 궤적을 그려볼 수 있을까요?
=처음 탁이가 어린 일영을 트렁크에 넣어 팔러왔을 때 ‘엄마’가 대뜸 “탁이 너 인생 꼬이겠다?”고 말하잖아요. 네가 얘를 데리고 왔지만 이제 네 운명은 이 아이가 쥐고 있는 것 같다는 의미겠죠. 최초의 직감이랄까. 그리고 한번 버려졌던 꼬마 일영이 다시 기어코 집을 찾아왔을 때 ‘엄마’는 어쩌면 돌아오겠지 짐작하고 있었고 정말 문간에 나타나자 이 아이는 나를 대신할 또 다른 나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요? 아, 네가 왔구나. 너구나. 그리고 양육의 방식이 나오죠. 요만한 아이를 “일해야지?” 하면서 데리고 나가다가 다친 강아지가 있으니 “왜 안 도와주고 보고만 있니?” 하며 이 세계의 자비란 무엇인지 본보기를 보이잖아요. 나중에 ‘엄마’가 일영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치도(고경표)가 이해가 안 간다고 이의를 제기할 때도, 그가 하려는 말은 “엄마, 똑같은 새끼인데 왜 얘는 실수해도 끝장을 안 내요?”인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에게 생존이 절대적이고, 그녀에게 차이나타운의 규칙보다도 앞서는 궁극적인 생존은 또 하나의 자신인 일영을 지켜서 본인의 방식을 그대로 물려주는 거죠.
-<차이나타운>의 세계를 만약 어떤 식으로든 자기 쓸모를 팔아서 사는 현실 사회의 극단적 축소판이라고 보면, 마우희 역시 그 질서를 바꾸지는 못하고 머물다 가는 인물인데요.
=예. 다만 완전히 자기만의 방식으로요. 왜 두 주인공을 여자로 설정했냐는 질문에 감독님은 여성이 남성보다 강하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지만 저는 감독님께 묻지도 않고 나름대로 태초의 모계 권력을 생각했어요. ‘엄마’가 왜 ‘엄마’로 불리겠어요? 보는 분들은 모성애로 해석하실 수 있지만 전 솔직히 모성애를 배제하고 연기했어요. 내가 일영의 생물학적 엄마가 아니어서가 아니에요. 마우희라는 ‘엄마’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 젖을 주고 따뜻하게 안아서 아기가 “아, 엄마는 날 가장 위하는, 내가 제일 안심할 수 있는 존재구나”라고 인식하기 이전 단계의 엄마라고 봤기 때문이에요. 즉, 아이의 생존을 틀어쥐고 있는 무시무시한 절대 권력인 엄마죠. 그래서 이 인물은 엄마여야 하고 여성이어야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마지막에 일영이 구태여 이 끔찍한 엄마에게 돌아오는 모습도 저는 납득해요.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육 남매’ 같은 기사에서 접하듯이 세상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의 부모도 간혹 있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현실적으로 더 조건 나은 환경이 있어도 끝까지 제 부모를 원해요. 그러니까 제일 아이들에게 필요한 해결책은, 가능한 수준이라면 부모들을 치료해서 돌려주는 일이거든요. 거꾸로 ‘엄마’도 차이나타운의 그 자리를 벗어나 혼자 사라져도 돼요. 하지만 저는 굳이 회귀하는 우리 영화의 설정이 장르적 억지는 아니라고 봤어요.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삶에서 한뼘만 벗어나면 뭐가 있으리란 걸 알지만 그동안 살던 방식을 그대로 선택하게 되거든요. 그런 함정과 한계의 비극으로 이해했어요.
-<차이나타운>의 이야기는 <달콤한 인생>의 거울상으로 보이기도 해요. 그런데 ‘엄마’는 끝까지 일영에게 본인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 해명하거나 변명하지 않죠.
=결정적 장면에서 ‘엄마’가 일영에게 하는 말이 “죽지 마. 죽을 때까지”예요. 말 안 되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누구한테도 죽임당하지 말고 살아남다가 너의 의지로 죽으라는 뜻인 거죠. 이제 엄마인 내가 그랬듯, 너의 생존뿐만 아니라 차이나타운 조직들의 생존까지 네가 다 결정하라는 거예요. 누아르적 멋을 위한 대사가 아니라 일영에게 ‘엄마’가 유일하게 말로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란 걸 깨달았어요. 제가 원래 누아르를 무척 좋아하는데 <차이나타운>은 적당히 멋들어진 폭력의 미학과 비극을 넘어서 완전 처참한 최악까지 가버려요. 그 점이 제 성정과 부대끼기도 했지만 아예 극도로 강렬했기에 오히려 저도 역할로서만 대하는 것이 가능하기도 했어요.
-‘엄마’는 <겨울나그네>의 기지촌 대모(김영애)나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을 잇는, 한국의 영화,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인상적인 여성 보스입니다. 그런데 <대부>의 돈 콜레오네도 마찬가지긴 합니다만 ‘엄마’도 직접 액션을 하는 장면은 거의 없죠. 반면 <대부>처럼 구역 내부자들의 보호자 노릇을 하는 장면도 딱히 없습니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얻는 근본적 신뢰나 범죄세계에서의 권력이 어떤 근거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표현했나요?
=일영에게 남매 같은 동기들이 있듯 엄마에게도 함께 거둬지고 자란 동기들이 있고 각자 다른 길을 걸으며 공조하고 있죠. 안 선생(이대연)이나 잠깐 찾아오는 경찰과 공무원이 그들이에요. ‘엄마’는 커온 과정에서 삶으로 권위를 증명한 사람이고 굳이 액션이나 고함으로 보여줄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만나는 사람이 누가 됐건 그들에게 ‘엄마’는 돕거나 호의를 줄 상대가 아니에요. 그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부딪치는 존재죠. 감정적으로는 항상 칼부림 이상이라고 봤어요.
-‘엄마’의 외양 중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부분은 남성복 바지와 아저씨 허리띠였어요. 시각적 레퍼런스를 워낙 많이 수집하고 제안하기로 유명하시잖아요? 이번에도 감독님이 스탭들에게 “김혜수 선배만큼도 못 찾아오면 어떻게 하냐?”고 타박하셨다고 들었어요. 의상팀과 상의한 과정에 본인이 보태거나 수정한 요소가 있나요?
=의상 컨셉 중 검은 정장과 코트도 있었는데 사실 권력자를 ‘새끼들’과 확 대비시키는 쉬운 접근이긴 하죠.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가 무척 영화적이면서도 어디선가 이렇게 살고 있는 현실의 인물이 있을 것 같았기에 번듯하게 그림이 되는 스타일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어요. 나이만 해도 중년은 넘어섰지만 40대부터 60대까지 몇살이건 될 수 있고, 과거 장면에서도 현재 장면에서도 똑같아 보이되 괴물 같은 기운만 점점 강해지는 모습을 생각했어요. 또 ‘엄마’는 잔혹하게 돈을 모으지만 그 삶의 방식이 중요하지 돈을 어디다 쓰는지는 전혀 관심사가 아닌 인물이니까 언제 빨았는지도 모를 십년 전 산 옷을 그대로 입을 것 같았어요. 불결하지는 않지만 세속적 욕망의 흔적이 그녀의 몸에 남지 않길 바랐어요. 살아남기 위해 ‘엄마’가 동원한 무기 중에 여성성은 없는데 배우인 나는 너무 여자니까 여성성을 제거했죠. 하지만 거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일부러 남성화된 인상도 없길 바라서 대놓고 남성스러워 보이는 요소도 빼나갔어요. 남자 옷도 입었지만 할머니 옷도 입고 슬리퍼와 등산화를 신었어요.
-얼마 전 <폭스캐처>를 보다가 시에나 밀러를 중간까지 못 알아봤습니다. 메이크업과 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조명의 영향이 크다는 걸 깨달았어요. 주류 상업영화에서 여배우들에게 쓰는 예뻐 보이는 조명에는 동시에 연기자로서 얼굴을 제한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차이나타운>은 절대 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조명을 쓰면 안 되었어요. 인터뷰에서 ‘엄마’의 외양을 두고 저더러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고 표현하시는데 말이 안 되는 게 애초에 이렇게 나올지 알고 한 게 아니니까요. 시나리오에 반백이니 주근깨니 묘사가 있는 게 아니고 저와 감독, 스탭이 생각하는 엄마를 표현하기 위해 최적을 찾아가다 보니 이 결과가 나온 거예요. 결과물이 효과적이라면 함께 분석하고 동의한 배우가 칭찬받아도 되겠지만, 이런 모습으로 나오다니 여배우가 가상한 연기를 했다는 말은 의미를 모르겠어요. 네가 언제부터 영화에서 외모를 생각 안 했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웃음)
“제가 거기 있었잖아요.”
-<타짜>의 정 마담 역으로 크게 칭찬받은 9년 전 저와 인터뷰하는 도중 “한번 배우가 가진 최고의 매력이 발현됐다고 해서 그것이 지속되거나 죽 상승하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하셨어요. 이후 선택들을 복기하면 어떻게 회고할 수 있을까요?
=<타짜>도 꽤 용기가 필요했어요. 잘하는 사람들 틈에서 배우면서 가자고 마음먹었지만 동시에 좋은 팀에 누가 될까봐 겁이 났어요. 그런 두려움은 지금도 있어요. <좋지 아니한가>는 <말아톤> 성공 이후 정윤철 감독이 그런 이야기를 선택한 점이 좋았고 영화 속 골 때리는 가족 틈에 꼭 좀 끼고 싶었어요. (웃음) 그래서 크게 저해가 안 되면 들어가고 싶다고 부탁드렸죠. <열한번째 엄마>는 저를 캐스팅할 일이 없는 시나리오였어요. 김혜수라는 배우 자체가 관객이 캐릭터로 진입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도 해보고 싶었죠. 당시 받은 냉정한 평들에 대부분 동의해요. 하지만 그 무렵 저는 배우로서 온전히 제대로 영화를 경험하고 싶었으니까요. 제가 배우로서 원하는 나와 그동안 해온 내 모습 사이의 괴리를 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일일이 “사실은 제가…”라고 설명하고 다닐 순 없으니 작업을 통해 증명해야 했어요. 그렇지만 증명하기엔 또 능력이 달리는 것도 알아요. 2006년 즈음부터 지금까지 그러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요?
=아직도 과정이죠.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은, 이제는 알겠어요. 이 영화가, 캐릭터가 무엇을 하려는지. 과거엔 아주 열심히 생각하고 애써 받아들여야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아는 거랑 제대로 표현하는 것의 간극은 여전히 무섭죠. 영화를 만드는 다른 구성원들과 조화에 따라 어떤 결과가 완성될지 내다보는 눈도 아직 없어요. 항상 열망과 두려움 사이에 있는 것 같아요.
-정지우 감독님의 <모던보이>는 지금 와서 어떻게 회고하는 작품인가요?
=<모던보이>를 할 무렵이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고민스러워서 일부러라도 바닥까지 내려가보려 했던 시기 같아요. 그래서 찍는 동안 행복하진 않았어요. 예를 들어 영화를 준비하면서 1930년대 독립운동과 거기 가담한 신여성에 대한 자료를 최대한 찾아봤어요. 그런 여성이 ‘친일파 뺀질이’를 이용하려고 접근했는데, 남자는 바로 매혹되고 동거가 시작되고 예기치 못한 사랑이 닥치는 이야기잖아요. 이 과정에서 제가 연기한 난실의 심리적 추이를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대목이 있었는데 초반 어느 장면에서 그 매듭을 끝까지 감독님과 명확히 풀지 못했거든요. 한동안 숙소에서 운 적도 있고 감독님과 이해명(박해일)이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슬퍼진 적도 있었죠. 배우는 10년을 했건 100년을 했건 현장에서는 감독을 오롯이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약간 고아가 된 기분이었거든요. (웃음) 한번은 박해일씨 건의로 술을 한잔하고 촬영하자고 감독님이 그러셨는데 저는 술을 전혀 못 마시기 때문에 취하고 난 제 상태를 모르고 제어도 안 돼요. 그럼에도 뭐든 시도하던 시기라 해봤는데 목구멍이 들러붙는 것 같았어요. 근데 박해일씨는 만취 상태에서도 연기를 너무너무 잘하더라고요! (웃음) 정말 연기를 논할 만한 배우는 무의식중에도 캐릭터를 하는구나, 나는 범접할 수 없구나 깨달았어요. 꼭 영화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에 비가 내렸던 시기예요. 정지우 감독님과의 작업을 워낙 기대했고 극중 시대적 배경과 당대를 산 예술적 인간들에 대한 개인적 매혹이 있어서 <모던보이>라는 작품이 제게 특별했던 것도 있었을 거예요.
-제가 ‘천생 홍일점’이라고 예전 기사에서 김혜수씨를 표현한 적이 있어요. 구경꾼 눈에 보이는 근년의 변화 하나는, 영화나 드라마나 동성 배우들과 작품을 끌어가는 예가 부쩍 늘었다는 점인데요.
=저의 의도는 아니고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엔 사실 여자가 여자와 파트너로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어요. 제가 아니라 어느 여배우가 나와도 대체로 홍일점이었고 쓸모없는 홍일점인 경우도 많았죠. 발전하거나 뭔가를 발현하기보다 액면가 그대로 딱 그만큼의 홍일점인 역할들. 아닌 예도 있겠지만 전 주로 그랬는데 여자끼리 뭔가 도모하는 이야기가 많아졌어요. 드라마도 늘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아니면 남녀 하나씩 조합이었는데 다양해졌어요. 과거의 각본은 주인공에게 과중한 역할과 설명을 주고 그를 통해 주제를 전달하려고 했는데 요즘엔 그것이 아니라는 걸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아는 것 같아요.
-<관상>의 연홍 역을 선택한 이유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다시 보다가 그녀가 내경(송강호) 일행과 잠든 수양대군(이정재) 얼굴에 점을 문신하고 나와 수풀에서 소변을 보는 장면에 눈이 갔어요. 치마를 들추고 주저앉아 있는데 표정은 쓸쓸해요. 그리고 헤어지면서 “잘되면 보고. 안 되면 난 모르는 일이오” 하는데 야멸찬 대사와 달리 연홍의 눈가가 촉촉하더라고요.
=바로 그 장면과 “그래 뭘 보았소?”라고 묻는 엔딩에 끌려서 했어요. 연홍은 대부분의 우리거든요. 실리적이고 말은 냉정히 해도 속으로는 내경에게 동의하는 인물이죠.
-<신라의 달밤>을 기점으로 연기가 점점 작고 간결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데 <차이나타운>에서도 느꼈지만 김혜수씨의 연기는 작으면 작은 대로 임팩트가 커요. 감독들이 자주 말하는 “가만히 있어도 카리스마가 있다”도 같은 맥락이겠죠. 드라마 <직장의 신>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스토리 속에 들어가 있어도 김혜수라는 배우에겐 ‘우리 중 한명’으로는 보이지 않는 특질이 있어요. 정지우 감독님은 “한국 관객은 프로타고니스트로서 김혜수의 캐릭터가 통과하는 경험에 감정이입하고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안타고니스트나 다른 요소로서 임팩트를 낼 때 더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표현하시던데요. 안쓰러워하기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서 감상하고 경탄하는 배우랄까요. 만약 동의하신다면 배우 본인으로서는 매우 외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지면 폭발력이 되는 장점이지만 역으로는 인물에 접근하는 길을 가로막는 단점이죠. 대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저의 가장 큰 장벽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부숴야 하는지 타고 넘어야 하는지 어떤 방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말 유능한 감독이 이런 배우를 적절하게 운용할 수 있으면 최선이고 저는 그것을 기다리며 다른 시도를 하고 변화를 겪겠죠. 외롭기도 하죠. 다른 배우들의 작은 것들은 보면서 왜 내 건 안 보일까? 그러면서도 왜 그런지도 잘 알겠으니 쓸쓸해요. 하지만 다른 배우에게는 그들만의 벽이 나름대로 있겠거니 생각을 마무리해요. 좀더 가보죠, 뭐. 가보면 알 수 있을까요? 더 괴롭진 않았으면 좋겠지만 더 괴로울 수도 있겠죠?
-기자나 감독의 눈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관찰하신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공연했던 송강호, 김윤석, 황정민 배우를 각각 묘사해주실 수 있을까요?
=강호 오빠는… 참 제가 오빠를 오빠라고 부르는 건 정민이(황정민) 때문이에요. <YMCA 야구단>을 하는데 정민이가 우리 동갑이니까 그냥 혜수야, 정민아 하자 그랬고 송강호 오빠는 오빠로 부르게 됐어요. 강호 오빠는 제게 각별해요. 친하기 어려운 큰 배우고… 소속사 같은 거요? 우리가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야 상관없죠. <관상> 전에 오빠에게서 좋은 배우, 위대한 배우를 넘어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을 경험한 예술가를 봤어요. 그런데 그 오빠가 저한테 보여주려고 뭘 했을 리 없잖아요. 수줍어서 촬영 안 할 때는 여배우랑 눈도 잘 안 마주치는 사람인데요. 연기하는 송강호도 연기하지 않는 송강호도 감동이에요. 김윤석 배우는, <타짜> 때의 모습이 아직도 제일 강렬히 남아 있고 그것이 앞으로도 더 보고 싶은 모습이에요. 황정민은 <열한번째 엄마> 때 공연한 것이 일로는 전부지만 일하면서 처음 동료이자 친구로 여기는 배우예요. 저도 배우지만 배우는 친구하기 어려워요. 또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경외감을 일으켜서…. 굉장한 실력파이고, 예전에 본인 스스로도 재능을 발현하고자 몸부림쳤던 기간이 있다면 지금은 정말 좋은 배우의 얼굴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모던보이>에서 직접 부른 <개여울>의 한국어, 일본어 버전이 모두 제 MP3에 담겨 있어요. 정지우 감독님은 “김혜수는 노래와 춤의 재능이 그냥 연기를 위해 흉내내는 수준을 넘어 클래스가 다르다”고 하셨어요. 캐서린 제타 존스의 예를 들며 한국영화에 김혜수씨의 재능을 펼칠 만한 장이 부족한 점이 아쉽다고. 아무래도 충무로에서 비중 있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나리오가 나오면 많이 읽게 되시겠죠. 최근에 눈에 띄는 경향이 있나요?
=기욤 뮈소의 소설처럼 시공이 혼재돼 있지만 감정은 매우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두편 정도 본 적이 있고 범죄에 연루된 여자 이야기도 자주 보여요. 여성이 뭔가를 할 때 모성을 강요하는, 모성애에 대한 강박이나 선입견이 있다고 느껴지는 시나리오가 꽤 많아요. 아이와 여자 사이에는 없던 모성도 있어야 정상인 것처럼 그려져요. 또, 전문직 여성이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직업이 캐릭터를 규정하는 느낌이 있어요. 이 여성이 이런 인물이라 그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직업이 그것이니 그녀가 어떠하다는 수순으로 운영되는 인상이죠. 과거에 비해 여성 캐릭터들이 능동적이긴 한데 “자, 능동적이다” 하면서 능동적인 기분이 여전히 있긴 해요.
-30년 가까이 연기하면서 내부에서 체감하고 관찰한 한국 영화 연기의 패턴 변화가 있을까요?
=예. 제가 거기 있었잖아요. (웃음)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지만. 나름 격변기였던 것 같아요.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사회 분위기상 영화의 표현 영역이 굉장히 제한적이었는데 90년대로 넘어가면서 문학적인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러다 해외 유학파 감독들이 나타나면서 젊고 세련된 가벼운 영화와 드라마가 트렌드가 됐어요. 연기 면에서도, 극적으로 유형화된 연기를 진짜 연기라고 봐주다가 자연스러움에서 오는 가치를 인정해주는 시기로 옮아갔죠. 전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어른들의 고전적인 연기를 따라했고 감정의 기조도 덩달아 그렇게 가져갔어요. 그러다가 기획 영화, 트렌디 드라마가 문화적 폭발력을 발휘한 시기에 드라마를 많이 하면서 약간 과장되고 전형적인 연기를 주로 했고요. 그러다 이어서 자연스러운 연기로 방향을 전환하려니 한동안 제 안에 부작용이 생기고 내상으로 남은 것 같아요. 이제는 뭘 극복하겠다고 마음의 흐름과 리듬을 역행하는 건 결과적으로 연기를 위해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차이나타운>은 제게 흔치 않은 경우예요. 기를 쓰지 않았는데 하다보니까 영화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당연하게 들리지만 그렇지 않아요. 이 영화가 최고라는 말이 아니라, 저한테 적당한 ‘진짜’가 나타나면 진짜 표현을 움직일 수 있는 흐름이 형성되나보다 정도로 현재로선 생각하고 있어요.
“안고 싶고, 안기고 싶어요.”
-<차이나타운> 보면서 다시 확인했는데 양손잡이인가요?
=예. 글씨는 오른손으로 젓가락질은 왼손으로 칼은 양손으로 다 써요. 가위는 왼손잡이용을 찾기 힘들어서 오른손으로 대신해요. 그래서 어릴 적엔 국수를 꺼렸어요. 어른들이 “아이고 우리 혜수는 아직도 그러니” 하고 한마디씩 하니까. 연기 초기엔 TV드라마에 밥 먹는 신이 많다보니 한동안 오른손으로 먹으려 애썼죠. 영화에서는 캐릭터상 왼손잡이가 어울릴 때도 있고 오른손잡이가 무난할 때도 있어요. 좋은 카메라 앵글에 따라 손을 바꾸기도 해요. <도둑들>에서 펩시가 금고 따는 장면은 왼손이 더 수월하지만 앵글에 맞춰 오른손을 썼죠. 어느 쪽 손이건 기본적으로 제가 손으로 하는 일에 서툴러서 그런 장면은 반복 연습해서 익혀야 해요.
-DVD 코멘터리에서 “아, 저 스탭 이번에 첫아이 낳았는데!”라고 불쑥 말씀하셔서 동료 배우와 감독이 슬쩍 놀라는 걸 들었어요. 스탭들에 대해 항상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데요.
=다는 못 그래요. 사람을 몹시 좋아하고 생김새는 사교적이지만. 뒤풀이 자리에 가도 상 앞에 앉고 나면 어쩔 줄 모르죠. 일상을 익히고 자연스럽게 성장할 시기에 일을 시작해서인지 관찰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당사자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상대의 장점을 멀찍이서 혼자 보고 좋아하면서 자극을 받을 때가 있어요. 특히 막내 스탭들에게 마음이 가요. 솔직히 저랑 비슷하거든요. 누가 봐도 저는 멀쩡해 보이고 선배지만 속으론 어쩔 줄 모르잖아요. 막내 스탭들은 나이 어리지, 경험은 없지, 현장은 살벌하지,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 친구들은 배우를 대단하게 여기고 가까이 오는 것도 어렵게 생각하는데 우연히 대화하거나 몸이 닿으면서 마음이 삭 녹을 때가 있거든요? 그러고 나면 괜히 그 친구랑 나랑만 통하는 것 같아 현장에서 눈 마주치면 웃고 그래요. 참, 오늘 시사회 객석 오른쪽 앞에 저랑 그렇게 서로 웃어줬던 어린 여자 스탭이 왔더라고요. 힘났어요.
-최근 세월호 합의안에 대한 영화인들의 비판 캠페인에 구체적 요구사항을 적은 종이를 든 사진을 찍어 참여하셨습니다. 김혜수씨는 오래전부터 사회적 이슈에 대해 당연히 의사 표명을 해오다보니 이제는 언론도 ‘소신 발언’을 운위하며 호들갑 떨지 않는 것 같아요.
=특별할 게 없죠.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극이라고 받아들이고 충격을 공감하는 사건이잖아요. 예전 미니 홈페이지 시절에는 직접 견해를 쓰는 대신 관심을 갖고 읽은 기사들을 올리곤 했어요. 제 소신이라기보다 일련의 현상을 받아들이고 제가 동의하는 관점을 밝히는 일에 가까웠죠. 그런데 소신이고 뭐고 그냥 내 마음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 순간은 살면서 많지 않거든요. 그때는 이유를 댈 필요 없이 제게는 표현하는 것이 맞는 길이에요.
-예술과 예술가에게 관심이 많고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운 대상들에 적극적으로 반한다고 알고 있어요. 언젠가 삶에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다고 요즘도 생각하시나요?
=항상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뭐가 그리 좋은 게 많은지! 영화, 그림, 책, 음악들에서 자극이건 울림이건 받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고 살아 있음을 실감해요. 예전에는 제목이나 작가 이름도 외우고 싶었죠. 연관된 다른 작품도 찾아보려고요. 하지만 지금은 “이름이 뭐가 중요해?” 해요. 혼자 있는 시간을 제일 좋아하는데 솔직히 종일 무지 바빠요. 집안일도 해야지, 좋아하는 뮤지션 곡을 듣기 시작하면 다 들어봐야지. 좋은 것들, 더 알고 싶은 것들 파야지, 사야지, 읽어야지, 저장해야지. 파자마 입고 앞머리 핀 꽂은 채 거북목 쭉 빼고 있는 저를 누가 보면 웃길 텐데 그게 제일 활기찬 상태예요. 예, 맞아요 제가 연기로 뭔가를 표현할 때보다 그럴 때가 더 신나고 밤을 꼴딱 새워도 아무렇지 않아요. 정말 “끼야호!”죠.
-거의 연애할 때만큼이나 충만하고 희열을 느끼는 상태인가요?
=연애랑 거의 비슷한 레벨인 것 같아요. 연애하는 사람이랑 같이 그럴 수 있으면 그게 최고겠죠.
-평소에 포옹을 즐겨 하시죠? 포옹이라는 행동이 자신이나 상대에게 주는 특별한 느낌이 뭔가요?
=전 누구를 안는 게 좋아요. 안아주고 싶고 안기고 싶어요. <이층의 악당>의 손재곤 감독님과 최근 연락하면서 “감독님 나중에 저 보시면 안아주세요” 했어요. 예전에 이창동 감독님을 덥석 안고서 너무 오래 있었던 적도 있고, 김지운 감독님은 안고서 시간이 흐르면 본인이 점점 불편하게 여기고 있는 게 느껴져요. (웃음) 한번은 박찬욱 감독님을 시사회에서 마주쳤는데 저야 좋아서 포옹했지만 나중에 보니 제가 목을 조르고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기자 폭소) 누굴 불편하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저는 반가워도 고마워도 눈물나도 끌어안아요. 아주 찰나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동상이몽의 순간일 수 있죠. 하지만 저한테는 포옹이 ‘반가워요’고 ‘고마워요’고, 그보다 좋은 언어가 없는 거예요. 예전엔 좀 조심했는데 이젠 솔직히 잘 안 돼요. ‘조심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 전에 이미 안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