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현장에서 여성이 아닌 고유명사로 남기 위하여
2015-05-21
진행 : 장영엽 (편집장)
정리 : 윤혜지
사진 : 최성열
4인의 젊은 여성감독이 말하다-강진아•김태희•이유빈•정주리 감독 대담
김태희, 정주리, 이유빈, 강진아 감독(왼쪽부터).

김태희 감독

1983년생. 200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 장편영화 <동거, 동락>(2007), 드라마 <슴슴한 그대>(2014), 웹드라마 <모모살롱>(2014), <미생 프리퀄>(2013) 연출.

정주리 감독

1980년생. 2005년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졸업. 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전문사과정 졸업. 장편영화 <도희야>(2014), 단편영화 <11>(2008), <영향 아래 있는 남자>(2007) 등 연출.

이유빈 감독

1982년생. 2005년 중앙대 영화학과 졸업. 2010년 동대학원 졸업. 장편영화 <셔틀콕>(2014) 연출, <회사원>(2012) 스크립터, 다큐멘터리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2009) 편집과 촬영.

강진아 감독

1981년생. 창작 에이전시 크라켄 대표. 2005년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201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전문사 과정 졸업. 장편영화 <환상 속의 그대>(2013)와 단편 <네쌍둥이 자살>(2008), <백년해로외전>(2009), <그게 아니고>(2015) 등 연출.

한국 영화계의 현재를 조망하기 위한 <씨네21>과 감독들의 만남은 계속된다. 강형철•류승완•윤종빈•박정범(<씨네21> 1000호 기획 참조), 이병헌•우문기•홍석재•김태용(<씨네21> 1002호 기획 참조) 감독에 이어 세 번째로 마련된 만남의 주체는 네명의 여성 연출자, 강진아•김태희•이유빈•정주리 감독이다. 최근 몇 년간 자신의 개성과 색깔이 묻어난 저예산의 장편 데뷔작을 만든 그녀들은, 현재 차기작을 준비하며 상업영화와 다양성영화를 통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역할과 변화하는 관객층에 대한 고민을 가장 치열하게 하고 있는 젊은 연출자들이다. 더불어 이들로부터 여전히 한국 영화계에서 소수자의 위치에 놓인 여성 연출자들의 입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지난해에 등장한 가장 강렬한 데뷔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도희야>의 정주리 감독, 환상과 현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는 <환상 속의 그대>의 강진아 감독, 웹드라마 <미생 프리퀄>과 <모모살롱>을 연출하며 새로운 플랫폼을 누구보다 빨리 경험해본 김태희 감독, 주인공의 내면의 여정을 사려 깊게 탐구하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던 <셔틀콕>의 이유빈 감독을 만났다. 그들의 고민과 질문이 한국 영화계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하나의 제언이 되길 바라며 네 감독들과의 대화를 여기에 옮긴다.

<씨네21>_연출자를 성별로 구분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영화산업 안에서 여러모로 여성 연출자들은 여전히 소수자이며, 그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자리를 주선했고 여러분의 말씀을 들어보고 싶었다. 오늘의 자리에 각자 기대하는 바가 있을 것 같다.

강진아_평소 내가 여자라는 생각을 특별히 안 하고 산다. 그러다가 영화를 찍을 때에야 비로소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종종 자각하곤 한다. 당혹스럽다. 남성감독이 영화를 찍을 땐 이런 게 있고 여성감독이 영화를 찍을 땐 이런 게 있구나, 나로서는 특별히 그런 차이를 느낄 만한 것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장편영화를 만들면서 ‘여성감독으로서’ 영화를 한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게 됐다. 지금까지는 “남자감독이 돼서 영화를 찍지 않아봐서 모르겠다”는 식으로 답을 피해왔는데,(웃음) 여전히 그 답은 모르겠다.

이유빈_나도 그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전작이 남자주인공이 나오는 영화(<셔틀콕>)였다. GV로 관객을 만날 일도 많았는데 왜 ‘남자영화’를 찍었냐고 물어보기도 하더라. 처음 들을 땐 우스꽝스러운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돌이켜보는 과정에서 여성감독으로서 영화를 한다는 것, 영화에서 내가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다. 더불어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가 적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니 영화 하는 여자가 많지 않은 것과도 상통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여자들은 보통 생각을 먼저 하고 난 뒤 행동하는 경향이 있잖나. 대중적으로 매력적인 이야기는 어리석은 선택을 밀어붙이는, ‘바보짓’을 하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물의 서사인 경우가 많다. 그런 선택을 하기에 여자들은 지나치게 현명하고. (웃음) 그러다보니 여성 캐릭터로 끝까지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경우 성적인 주제나 모성애로 향하는 경향이 있더라. 남성감독들이 자주 여성 캐릭터를 그런 방식으로 다루기도 한다. 정주리 감독의 영화 <도희야>의 경우 그런 맥락에서 남성이 바라보는 시각, 여성이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왜 남자 캐릭터를 중심에 놓은 이야기를 자꾸 쓰는 걸까 생각해봤다. 남자감독이 만든 남자영화엔 내면의 여행을 하지 않는 캐릭터들이 많잖나. 내가 보고 싶은 남자 캐릭터는 내면의 여행을 하는 인물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남성, 여성의 문제가 아닌,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여성성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정주리_연락받을 때부터 다른 어떤 인터뷰보다 이 자리가 어려울 것 같더라. 내가 뭘 대표하는 입장도 아닌데. (웃음)

강진아_여자로 태어나 여자로서 노력한 게 아무것도 없어서 고민이었다. (웃음)

정주리_이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깊은 고민을 했던 것도 아니고, 다른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나왔다. 한 가지 생각나는 일화는, 영상원을 졸업하고 난 뒤 내가 장편영화 현장에서 스탭으로 일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그때가 스물… 이 아니구나 서른…. (일동 웃음) 서른둘 즈음에 장편영화 현장의 스크립터나 연출부로 지원을 많이 했는데 면접 때마다 들었던 얘기가 나이가 너무 많고, 여자이고, 운전도 못하는, 한마디로 연출부를 시키기에 내가 쓸모가 없다는 거였다. 내가 연출부가 되지 못한 그 수많은 이유 가운데서도 여자라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게 아닐까 하고 당시에는 심정적으로 느꼈다.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다른 것을 상쇄할 만한 뭔가가 아니었던 거다. 암담했고, 그땐 죽으나 사나 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직접 시나리오를 써서 데뷔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쓴다 한들 그게 잘 풀릴 거라는 보장도 없었으니….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사라져갔구나, 나의 선배들, 나의 친구들이 다들 이렇게 포기해갔던 거구나.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강진아_장편영화를 준비할 때 선생님과 선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 너는 여자니까 더더욱 잘해야 한다고. 동기들과 똑같이 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 얘길 들었을 때에는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실제로 여자가 현장에서 고유명사로 남기란 너무 힘든 일이더라. 워낙 소수니까. 가령 이런 거다. 강진아의 현장이 이상하면 그건 강진아 잘못이 아니라 여성감독 잘못이 되는 거다. 여성감독이라 예민하고 이상하다고.

김태희_‘미친년’이 되는 거지. (일동 웃음)

강진아_그 얘기를 해준 분이 남자라서, 남자들 시선이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설마 내 스탭이 내 현장에서 나를 그렇게 분류할까 싶었는데 배우들과 얘기해보니 그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더라. 여성감독의 작품이라 출연을 고민하는 배우들도 꽤 많았다.

김태희_역으로 여성감독이라 섬세하다는 칭찬을 들을 때도 있다. 보통 여성감독에게 흔히 상투적으로 하는 칭찬 아닌가. 나는 내가 섬세한지 전혀 모르겠는데, 여성감독이기에 자동적으로 ‘섬세함’을 얻게 되는? (웃음)

강진아_그런 건 좋은 부분이다. (웃음)

김태희 감독

막상 해보니 별것 없더라

<씨네21>_네분 모두 장편상업영화의 연출부를 거치지 않고 데뷔했다. 이유빈 감독은 <회사원>(2012)의 스크립터였고, 강진아 감독은 <화산고>(2001)의 현장편집과 <해안선>(2002)의 미술팀을 경험하긴 했지만. 상업영화의 연출부를 경험하지 않은 건 의도적인 선택이었나.

강진아_<화산고>라니… 호호할머니가 된 것 같다. (웃음)

김태희_아, 나는 졸업하자마자 <그해 여름>(2006) 연출부로 짧게 일했다.

강진아_어? 나는 <그해 여름> 예고편 만들었는데!

김태희_프리 프로덕션까지만 참여했다. 연출부 막내로 들어갔는데, 헌팅까지 다 해놓고 아파서 촬영 직전에 나왔다. 쉬고 있는데 쇼박스에서 ‘감독의 꿈’ 시나리오 공모가 떠서 아무 생각 없이 시나리오를 냈다가 <동거, 동락>으로 데뷔하게 됐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연출부를 끝까지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해 여름> 감독님에게는 자기 영화 찍으려고 도망친 애로 찍혀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웃음)

강진아_나는 <그해 여름>을 나름 블록버스터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같은 시기에 개봉했던 <미녀는 괴로워>(2006)가 너무 빵 터져서 슬픈 과거가 됐다. (웃음)

이유빈_김태희 감독이 연출을 맡기 전 쇼박스에서 <동거, 동락>의 연출자를 모집할 때 나는 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진 적이 있다.

김태희_그럼 그때 최종 네명 중 하나?

이유빈_‘얼마나 잘되나 보자’ 했는데. (웃음)

김태희_그럼 그때 그 악플들을 쓴 게…. (일동 웃음)

이유빈_아니다. (웃음) 철이 없을 때였다. 스물다섯인가 그랬으니까. 그때 면접에 임했던 나를 지금의 내가 봤다면 나라도 안 뽑았을 거다. 자신감은 없는데 의욕만 앞서서 잘해보겠다고…. 심사위원 눈에 그게 안 보였을 리 없잖나. 학교에 다닐 땐 남자 동기들이 군대 다녀올 동안 여자들은 2, 3학년 되면 수습 거치듯 스크립터 한번씩은 해보는 게 일반적인 풍토였다. 당시에 <황산벌>(2003) 스크립터 면접도 봤다. 현장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역사 공부까지 해서 갔었다. (웃음) 이런저런 문제로 영화가 2년 홀드되면서 결국 못하게 됐지만. 그러다 10년 가까이 지나서 <회사원> 스크립터로 스탭을 시작했다. 그사이 단편 한두편을 찍고 했던 게 지금 생각하니 경험상 좋았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를 때 현장 물을 잘못 먹었다면, 백지 상태에서 나쁜 영향을 많이 받았을 수도 있는데 다양한 일을 해보고 내가 현장에서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인지한 뒤 들어가니까 훨씬 나았다. 상업영화 현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돈이 몇십억원씩 오가고, 스탭도 70, 80명씩 되는 현장에서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가서 일해보니 별것 없더라. (웃음) 오히려 밖에 있을 때에는 현장의 여성감독들에게는 ‘곤조’, ‘골질’ 이런 것들이 있다는 얘길 많이 들었는데 막상 그 안에 들어가보면 대단한 것도 없었다. 똑같이 흘러가더라.

김태희_최근에 이주승 배우와 드라마 <슴슴한 그대>를 찍을 때 느낀 건데 방송 곤조는 있었다. 사운드팀이 선을 뽑고 나가기도 하고. 영화 찍는 속도에 비하면 굉장히 빠른 편이었는데 드라마는 두 시간 반짜리 분량을 14회차에 찍더라. 드라마 제작 베테랑들이 보기엔 감독이라고 어린애가 와서 일하고 있으니까…. 영화는 감독이 자기 작품이라 생각하니까 공을 들이는데 방송은 일종의 하청 시스템이라 엄청나게 빨리 돌아간다. 속도전이다.

강진아_나도 경험해보고 싶다, 그런 속도전.

김태희_정말 아무나 못하겠더라. 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영화하다 중간에 드라마로 갔다가 관둔 분들 많잖나. 그 속도전을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

‘첫 작품인데 이렇게 찍었단 말이야? 짜증나’

<씨네21>_또 나름의 공통점을 찾자면 네분 모두 감정이나 소재에 있어서 상당히 수위가 ‘센’ 영화들을 만들었다. 서로의 영화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강진아_감독들끼리는 서로의 영화에 대해 잘 얘기하지 않는다. 무엇이 상처인 줄 너무 잘 아니까.

김태희_맞다. 지난 <씨네21> 대담에서 봤는데 남자감독님들도 그런 말은 문자로 보내겠다고 하시더라. (웃음)

강진아_깊은 신뢰가 있을 때 한마디씩만 가능한 거다. 다만 <셔틀콕>을 보며 그건 궁금했다. 이주승 배우가 벽에 래커를 뿌리고 다니는 장면이 있는데, 래커칠은 실제로 한 건가?

이유빈_물론 CG다. 극중에서 주인공이 빨간 래커로 담벼락에 낙서를 하는 장면이 <셔틀콕>에선 감정적으로 중요한 신이었는데 관객이 그래커칠 때문에 외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게 내겐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독립영화니까, 저 사람들 그냥 질러놓고 치우지도 않았겠구나’ 생각을 하더라. 인물의 감정이 아니라 현장의 환경을 생각하게 되는 거다. 독립영화를 자주 보는 관객은 현장이 얼마나 열악한지 다 알거든. (웃음) 막상 나는 CG 작업을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게 내가 좋아할 일이 아닌 거다. 그걸 지적한 관객은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다 그게 신경쓰여서 감정을 놓친 거니까.

김태희_나는 빈말이 아니라, 지금 준비하는 차기작의 PD님과 함께 VIP 시사회에서 <도희야>를 봤는데 같이 ‘멍’해져서 돌아왔다. 그해 내가 본 영화 중 베스트3 안에 드는 영화였다.

정주리_그 영화가 5월 중순에 개봉했는데 그때 벌써 베스트를 정하다니…. (웃음)

김태희_페이스북에 글도 썼다. ‘첫 작품인데 이렇게 찍었단 말이야? 짜증나.’ (웃음) PD님은 옆에서 신인감독이라면 저렇게 자기 색깔을 보여줘야 한다고 잔소리하고. (웃음) <셔틀콕>도 이주승씨와 함께 <슴슴한 그대>를 촬영하던 도중에 봤다. <셔틀콕>을 보고 나서 주승이에게 “너 약간 천재삘 있구나?” 할 정도였다. (웃음) 내가 졸업작품으로 로드무비를 찍을 정도로 이 장르에 관심이 많은데, <셔틀콕>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 부럽더라.

이유빈_저예산영화를 만들면 돈을 많이 쓸 수 없으니까 기댈 데가 감정과 배우밖에 없다. 나는 <도희야>의 경찰서 대질심문 장면 속 배두나씨의 얼굴로부터 이전에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 배우에게 저런 면이 있었다니, 반하게 되더라. 전율을 느끼게 되는 신이었다.

김태희_강진아 감독님의 <환상 속의 그대>에 출연한 (이)희준씨는 내 졸업작품에 나왔다. 강진아 감독님이 이미연씨랑 이번에 찍은 단편 <그게 아니고>에 나온 바로도 <미생 프리퀄>에서 함께 작업한 적이 있다. <환상 속의 그대>의 희준씨 연기가 좋았다. 엔딩도 울면서 봤다.

정주리_저는 이영진씨. 깜짝 놀랐다.

이유빈_그 배우에게 그런 면이 있을 줄이야. 그전까진 모델로서 그분을 인지하고 있었는데 배우로서의 모습을 <환상 속의 그대>에서 봤다.

김태희_<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 때의 연기도 좋았는데 그 뒤로는 영진씨가 지닌 잠재력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정주리_처음 영화가 시작했을 때에는 예상되는 어떤 인물상이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그 예상에서 벗어나는 인물이었다. 이런 연기를 하는 배우가 또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 감독이 그리고자 한 어떤 전형성이 없는 인물을 배우가 완벽하게 이해하고 연기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진아_너무 오랜만이라 남의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기분이다.

정주리_다음은 <동거, 동락>….

김태희_그 얘긴 하지 말자. (일동 웃음) 철없던 스물셋에 찍은 영화다.

정주리_스물셋?

김태희_스물셋에 공모전에 당선돼서 스물넷에 찍고 스물다섯에 영화를 개봉시켰다. 아무것도 모를 때였다. (웃음)

강진아 감독

제작비는 결국 작품의 퀄리티와 직결된다

<씨네21>_네분 모두 첫 장편영화를 마무리하고 차기작을 준비하는 중이다. 첫 장편을 만들며 겪었던 제작상의 고충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

강진아_이전까지 나는 영화를 업으로 삼을 생각을 한번도 안 했었다. 2000년대 초•중반은 한국영화 호황기였기에 영화를 조금 더 빨리 찍을 수 있을 때였는데, 당시에 누가 영화를 찍어보겠냐고 제안하면 내 돈으로 만들겠다고, ‘왜 내가 당신의 돈으로 영화를 찍어야 합니까’라고 할 정도였다. 내 할 일은 단편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장편영화 <환상 속의 그대>를 찍고 나서 알았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규모를 더 확장시키지 않으면 그저 ‘양아치’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걸. 줄일 수 있는 건 인건비밖에 없다는 걸 안 뒤에 원하는 걸 다 하면서 이 길을 간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유빈_당시에 텀블벅 모금도 진행하지 않았나.

강진아_맞다. 나는 영화를 끝내고 나면 나눌 파이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남지 않더라.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다. 영화제를 다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감독으로서는 이 일을 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우리 조명팀 막내에게 이 영화는 그저 노동력 착취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상업영화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그제야 작법책을 사다가 필사를 하면서 상업영화란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에 들어섰다. (웃음) <환상 속의 그대>가 개봉하고 난 뒤 어느 날 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감독으로서의 욕망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내가 몸담고 있는 시스템을 바꿔야겠구나 생각한 거다. 스무살에 영화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유빈_나는 애초에 나눠먹을 파이가 없다는 걸 알고 <셔틀콕>을 시작한 편이었다. 하지만 돈이 주는 동기가 무시할 수 없는 거더라. 허구연 해설위원도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짓는 건 돈”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돈 얘기 하면 예술이 어쩌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내 영화’가 아닌 ‘우리 영화’인 사람들한테는 더더욱 아닌 거다. 서른한살이 돼서 스크립터로 처음 연봉협상을 해봤는데, 당시 내가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돈을 받아서 그런지 책임감이란 게 생기더라. <셔틀콕> 스탭을 꾸릴 때 자꾸만 그때의 생각이 났고, 스탭을 확 줄이는 대신 납득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모두에게 주기로 했다. 그랬더니 마법이 펼쳐지더라. 그렇게 안긴 책임감이란 건 무서웠다. <셔틀콕>의 경우 워낙 최소로 꾸린 스탭이라 한명만 ‘빵꾸’ 나도 휘청거릴 수준이었는데, 이 현장이 큰 사고 없이 돌아간 건 그러한 선택이 유효했던 것 같다.

김태희_제작비는 결국 작품의 퀄리티와 직결된다. 의상, 미술도 때깔이 다르고, 촬영도 표현의 한계가 생긴다. 내가 만든 작품 중 시간 대비 예산이 가장 많았던 작품이 <미생 프리퀄>이었는데, 현장이 다르긴 하더라. 스탭들의 퀄리티며 준비하는 시간과 여유, 원하는 그림을 뽑아내는 것들은 결국 돈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정주리_<도희야>를 제작하기로 하고 처음에 생각했던 규모는 10억원이었는데….

강진아_10억원? 아름답다. (일동 웃음)

정주리_이미 제작이 결정됐을 때 배두나씨가 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배우에게는 개런티가 없다는 걸 먼저 말한 상황이었는데, 배우 개런티도 포함되지 않는 선에서 8억원에서 10억원 정도가 이 영화에 맞는 규모라고 판단했었다. 대표님이 투자사들을 돌아다니며 투자를 받는데 나는 구체적인 얘긴 못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부분이 수정됐음 좋겠다거나 방향에 대한 요구가 많았던 모양인데 제작사가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다. 그러다가 5억원, 3억원, 제작비가 계속 내려가는데도 투자가 안 됐다. 그런데 하루는 대표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 원래 한 20억원쯤 되면 투자받기가 쉬운데 사이즈가 줄어들수록 오히려 투자받기가 어렵다고. 어쩌면 1억원으로 해야 할지 모른다고. 또 어쩌면 3천만원으로 해야 할 수도 있다고. 그런 선택지도 생각하고 있으라고 하셨다. 그러던 중 인천영상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고, 무비꼴라쥬에서 배급이 결정되며 순 제작비가 3억원이 됐다. 그 안에서 어떻게든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후반작업에 쓸 돈이 없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탭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영화를 만들었는데 진짜 기가막힌 건 그다음이었다. 제작비보다 마케팅비가 더 많이 들어간다는 거다.

김태희_배보다 배꼽이 더 컸구나.

정주리_내가 포스터용으로 골라둔 좋은 스틸컷이 있는데 굳이 포스터를 왜 따로 찍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그게 배급사로선 개봉을 위한 최소비용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개봉했는데 지금도 적자라고 한다. 우린 다 인센티브 계약을 해서 혹시라도 잘되면 다만 얼마라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희망이 있었는데 너무 적자이고, 할 말이 없다. 지금 쓰는 영화도 이 정도 규모인데 <도희야>처럼은 절대 찍고 싶지 않다. ‘내 돈이 최소 10억원은 있어야 하는 거구나’라고 느꼈다. 그게 줄면 어디가 ‘빵꾸’가 나고 무슨 고초를 겪어야 하는지 첫 장편을 찍으며 알게 됐다. 그 돈은 고스란히 인건비에서 빠진다. 이건 진짜 안 되겠다는 고민을 했다.

김태희_시나리오를 쓰면서 PD 마인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신은 보조출연 못 부르니까, 이 신은 세트를 못 쓰니까 안 되겠구나, 스스로 자기를 검열하게 되고.

이유빈_<씨네21>이 진행한 감독들과의 이전 대담에서 독립영화감독들을 키워놓으면 상업영화 제작사에서 데려간다는 점에 대한 우려의 말을 보았는데, 나도 상업영화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련의 영화들이 뉴스로는 독립영화 기록을 세웠다고 하지만 결국 ‘돈 놓고 돈 먹기’인 거다. 마케팅 팀장님이 농담으로 ‘만원당 (관객) 한명’이라는 말씀을 하더라. 점점 마케팅 영역이 커지게 되며 개봉 한두달 전부터 노출이 안 되면 ‘잘 안 나온 영화인가’ 하는 구설도 생기고. 이렇게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이 잘못된 건 확실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걸 다 하기 위해선 좀더 산업적 측면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겠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다.

이유빈 감독

성형미녀가 돼가는 느낌

<씨네21>_차기작을 준비하는 지금은 첫 장편을 만들 때와 어떤 점들이 달라졌다고 느끼나.

강진아_나는 아무도 <환상 속의 그대> 제작을 안 해줘서 내가 제작사(창작에이전시 크라켄)를 직접 차렸다. (웃음) A부터 Z까지 다 혼자서 해야 했다. 단편 찍는 것과 똑같이 시나리오 쓰고 제작사 문 두드리고 배우를 선택하고, 후반작업도 했다. 그랬기에 학교(영상원)에서 선생님들께 조언을 받을 때도 ‘내 거라서 그렇게 하기는 싫은데요’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거다. 놀라운 건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과 개봉 후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 사이의 온도 차이였다. 욕을 하더라. (웃음) 극장 관객은 ‘내 돈’과 ‘내 시간’에 대한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뿐만 아니라 관객을 만났을 때의 내 입장도 달라졌다. 가령 대구에 있는 박은영씨를 위한 영화를 찍은 것도 아닌데 박은영씨가 한 말로 상처를 받게 되더라. (웃음) 내가 너무 무지했던 거다. 영화를 잘 만들고 싶다는 마음 뒤에 뭉뚱그려 있던 것들이 송곳처럼 파고드니까. 그게 바로 상업영화의 영역이구나 싶었다. 다음 작품에는 이런 ‘외피’적 고민이 들어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다른 제작사와 함께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작업은 처음이다. 대표님이 많이 힘드셨을 거다. 처음에는 에너지가 너무 넘쳐서, 관계자들도 엄청 괴롭혔다. ‘그 사람이 우리 영화의 키를 가지고 있다면, 내가 직접 가겠어!’라며. (웃음) 그런데 이쪽 세계만의 예의와 ABC가 있는 거더라. 지금 그걸 배우고 있는 중이다.

김태희_나는 2008년 <동거, 동락>이 개봉한 뒤 악플에 시달리면서 우울증이 왔다. 당시에는 영화를 아예 접으려고 했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온전히 만들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 가장 기억나는 평 중 하나는, ‘내 주변에 이런 사람 아무도 없다. 감독 집안이 콩가루인가보다’라는 말이었다. 내가 속한 세상과 일반 대중이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게 된 계기였다. 그렇게 혼자 힘들게 지내다가….

이유빈_울지 마시고. (웃음)

김태희_(웃음) <미생 프리퀄>로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웹드라마는 따뜻하고 대중적인 이야기를 찍었을 때 관객의 반응이 달라지더라는 걸 알았다. <미생 프리퀄>과 <모모살롱> 등 프로젝트형 포맷의 작업을 마치고 내 영화를 하려다보니 고민하게 된다. 상업적 틀 안의 제약이 있긴 하다. 여자만 주인공인 작품은 힘들고, 기획적 측면의 접근은 PD님이 도와주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내 색깔이 아닌 영화를 찍을 수는 없는 거니까. 조금씩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이유빈_나는 지난해 4월 <셔틀콕>이 개봉한 다음, 9월부터 지금의 회사와 계약을 맺고 시나리오의 윤곽을 잡아가는 상황이다. 4월부터는 심리상담도 받으러 다닌다. 시나리오만 10개월 정도 들여다보고 있으니 한계가 오는 거다. 초반에는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왜 컨펌이 안 날까 힘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상황을 복기하다보니 이건 ‘프로’로 진입하는 성장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셔틀콕> 때도 이렇게까지 작품을 들여다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땐 나름 치열하게 각색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독립영화가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가 나오지 않는 건 스스로 홀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를테면 다이어트 서바이벌 같은 거다. 150kg에서 70kg으로 빼야 하는 상황이다. 100명 중 1명 정도는 자기 힘으로 살을 뺄 수 있을 거다. <한공주> 같은 애? (웃음) 독하고 굳세서 혼자서도 잘하는 애다. 나는 30kg 빼고 ‘이 정도면 됐어. 도저히 못하겠어’ 하고 주저앉는 애인 거다. (일동 웃음) 제작사에 들어가니 PD님이 트레이너이고 대표님이 주치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힘들어하면 트레이너가 ‘할 수 있습니다!’ 응원해주고. 한달 정도 지나면 주치의한테 가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진단받고. 트레이너는 또 ‘회원님 조금만 더 빼면 아름답게 되실 수 있어요’ 말해주고. (일동 웃음)

김태희_성형미녀가 돼가는 느낌이겠다. (일동 웃음)

이유빈_상업영화는 ‘만들어놓은 몸’이다. 날씬하고, 허리는 한 27인치 되고, 종아리도 가늘고. 톱배우처럼 누가 봐도 저건 혼자 만들 수 없는 몸인 거지. 시나리오도 다르지 않다. 인공미가 있고, 첫 작품처럼 날것의 매력은 없게 되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거니까 돌아보지 않고 믿고 가려 한다. 이제는 대표님을 만나서 영화 얘기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엔 ‘딜’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소 정치적으로 대표님을 대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서 이제 솔직해질 수 있게 됐다.

정주리_나는 그동안 별 생각 없이 있었던 것 같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에서 처음으로 차기작의 트리트먼트를 공개했다. 그때는 투자자, 제작사 등을 만나면서 계획이 어떻게 되냐고 물으면 시나리오를 쓰고 있고, 겨울 안에 끝내고 봄에 준비해서 여름에 찍겠다고 줄줄 말했다. (웃음)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계속 안 풀린다. 그냥 안 풀리는 게 아니라 마음이 아직 그 이야기로만 확 집중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며칠 전에 이제 마음 졸이는 걸 그만두고 좀 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오늘 다른 감독님들 말씀을 듣고 있으니 내가 너무 안이하게…. (웃음)

이유빈_가장 최근에 개봉을 경험하셨으니 괜찮다.

김태희_난 전작이 2008년작이다. (웃음)

정주리 감독

데이트 인구가 줄지 않는 한 영화는 계속될 것

<씨네21>_관객이 극장에서만 영화를 보는 시대는 지났다. IPTV, 모바일, 웹드라마 등 극장 이외에도 관객이 영화를 소비할 수 있는 다양한 창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태희 감독의 경우 <모모살롱> <미생 프리퀄> 같은 웹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다양한 플랫폼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태희_나는 너무 일찍 장편영화를 찍고 오래 쉬었다. 다만 그건 있다. 내가 아직 장편영화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영화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다. 경험해보니 매체마다 특성도 재미도 달랐다. 일단 모바일영화를 찍을 땐 화면 사이즈가 타이트해야 하고, 정보를 준다고 해도 관객이 읽지 못할 확률이 높다. 렌즈를 최단거리로 당겨도 잘 안 보이니까 편집 때 더 당겨야 하고, 무료이며 언제든 관객이 전원 버튼을 누를 수 있기에, 10분 정도 되는 상영시간이 조금이라도 지루해선 안 된다. 그래서 음악이나 시각적인 요소 외에 다른 효과들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대사는 심플해야 한다. 사운드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부소음 때문에 잘 안 들리니까. 또 TV는 표준모니터가 있는데 모바일은 그 기준이 없다. 디스플레이 환경이 다 다르고 폰마다 패널이 다르다.

이유빈_완전 전문가다. (웃음)

김태희_색보정도 적정선에 맞춰야 하고 가능한 한 밝게 찍어야 한다. 관객이 밝은 곳에서 영화를 보니 어둡게 찍으면 안 보인다. 임산부도 클릭해서 볼 수 있고 어린이들도 볼 수 있으니까 무난하고 대중적인 감성으로 가야 하는 것도 있고. 마음의 고향은 장편영화이지만 이런 ‘스낵콘텐츠’도 재미있는 기획이라는 거다. 무엇보다 쉬지 않고 찍어서 영화에 대한 감을 잃지 않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의 문제도 있고. <동거, 동락>은 아무도 모르지만 <모모살롱> <미생 프리퀄>은 조회수만 기본 50만건 이상이니까. 내가 누군지는 몰라도 내 작품을 보는 사람은 훨씬 많은 거다. 연출자로서 즐거운 작업이었다.

이유빈_앞으로는 태어나서부터 디지털에 익숙한 친구들이 메인 관객이 될 텐데 세대 차이가 장난이 아니다. 영화는 한 시간 반이나 하니 지루하고 휴대폰도 꺼놔야 하니까 극장에 안 간다고 하더라.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이라더라. 앞으로 고민을 더 해봐야 하는 지점이다. 더이상 관객이 이야기가 셋업되는 과정을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좀더 빨리 사건이 일어나야 하고 이런 것부터 해서….

정주리_다른 플랫폼은 모르겠지만, 3D영화는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엄청난 규모의 3D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3D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영화적으로 한번 시도해봄직하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됐다. 이런 생각이 무르익었을 때 3D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김태희_<동거, 동락>도 HD로 찍은 영화다. 당시엔 HD로 영화 찍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내가 거의 16mm 편집 마지막 기수다. 내 아래로는 거의 디지털 작업 세대이고. 이렇게 빨리 필름이 없어질 줄은 몰랐다.

강진아_옛날부터 나는 커머셜 광고나 예고편 작업, 바이럴 영상을 밥벌이로 손대고 있어서 영화는 특별한 것이었다. 이 매체에 대한 사랑이 끝나기까진 다른 매체로 옮겨가기 힘들 것 같다. 실제로 나는 영화를 많이 못 봤다. 누가 옆에서 에릭 로메르 얘기를 하면 아는 듯이 고개만 끄덕이고. (웃음) 보는 건 힘든데 만드는 건 좋다.

정주리_이런 생각은 한다. 지금도 극장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여전히 가장 크지만 플랫폼이 달라질 수 있지는 않을까, 영화를 극장에서만 보는 게 아니라 다른 플랫폼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휴대폰이나 태블릿 기기로 보는 영화가 과연 내 속에서 같은 영화라는 바운더리 안에 들어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고화질 ‘파일’로 영화가 유통되면서 거대한 용량의 외장하드에 몇 천개의 영화를 넣을 수 있게 되고 내 방에서 혼자서 TV에 원하는 영화를 틀어놓고 보는 이 집중력도 무시할 수 없다는 거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플레이 버튼을 눌러서 영화를 보는 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어느 날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데 순간 손을 (마우스 잡듯) 허공에 대고 커서를 찾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뭐하는 거지 싶어 깜짝 놀랐다. 관람하는 행태가 나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바뀌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이유빈_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진하게 믿고 싶은 건 ‘극장 체험’이다. 얼마 전 열일곱살짜리 남자애가 성인용 호러 게임 동영상을 세 시간씩 보다가 거기 도취돼서 마루에 자고 있는 누나를 칼로 찌르고 자수해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는 뉴스를 봤다. 그 게임을 찾아봤는데 정신병원에 갇힌 정신이상자가 일인칭 시점으로 탈출하는 게임이었다. 그런 식으로 체험적 쇼크를 주는 매체가 급격하게 발달하는 와중에도 극장만큼은 동시에 여러 명이 집단체험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순진한 믿음이 있다.

김태희_상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데이트 인구가 줄지 않는 한 팝콘과 함께 영화의 시대는 계속되지 않을까. (웃음)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