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고독과 외로움
김성수_오래전 <무뢰한>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너무 좋았다. 시나리오 초기부터 기획자 중 하나로 이름이 올라간 박찬욱 감독의 모호필름에서 만들어질 뻔했던 시절까지, 이 작품이 지나온 과정을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프로젝트다. (웃음)
오승욱_같은 작품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김성수 감독님에게는 박광수 감독님 연출부 출신이라는 진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좋아하는 영화 성향이 비슷하다. 싸이더스 전신 우노필름 시절에도 차승재 대표님이 “어쩌면 너희 둘은 좋아하는 영화도 똑같고, 생각하는 것도 똑같냐”, 이런 얘기까지 하셨을 정도니까. (웃음)
김성수_굳이 나누자면 나와 이현승, 여균동 감독이 박광수 감독님 연출부 1세대이고 오승욱 감독은 허진호, 박흥식, 이창동과 같은 2세대다. 이른바 ‘박광수 아카데미’ 출신들이 잘 뭉치다 보니 함께한 작품이 없어도 만날 일도 많고 친했다. 특히 오승욱과 내가 열광하는 영화들을 다른 친구들은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 (웃음)
오승욱_감사하게도 얼마 전 박광수 감독님이 축하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다 같이 모였을 때도 김성수 감독님과 줄스 다신의 <리피피>(1955)에 대해 한참 얘기를 나눴다. 거의 우리 둘만 얘기하고. (웃음)
김성수_그러게, 우리가 영화 보는 눈이 좀 높지. (웃음) 그래서 늘 좀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재능도 있고 무엇보다 글을 무척 잘 쓰는 친구인데 장편 데뷔작 <킬리만자로>(2000) 이후 너무 오래 쉬는 게 아닌가 싶어서. 내가 조금 선배라고 가끔 만나서 “야, 빨리 영화해야지” 하면 사실 본인이 얼마나 더 속상했을까. 그래서 칸영화제까지 간 지금, 마치 내 일처럼 기쁘다. (웃음) 그 오랜 속상함, 말 못할 개인적인 고독 같은 게 <무뢰한>에 녹아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오승욱_맞다, 그 고독이 알게 모르게 녹아든 지점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장 피에르 멜빌을 매우 좋아하는데, 마치 <사무라이>(1967)의 알랭 들롱처럼 한 남자가 걸어들어가고 마지막에 걸어나오는 영화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무뢰한>에서는 와일드하고 터프한 형사보다는 알랭 들롱처럼 절제되고 댄디한 형사를 보여주고 싶었다. <킬리만자로> 때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아서 뭔가 좀 분산되었다는 생각에 보다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김성수_<사무라이>가 시작하면 “사무라이보다 더 고독한 자는 없다. 정글의 호랑이만 예외일 것이다”라는 자막이 뜬다. <무뢰한>에는 그런 지독한 고독, 외로움이 많이 보였다. 심지어 <사무라이>를 보면 방구석에서 알랭 들롱이 침대에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다. 세상에 그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한다. (웃음)
오승욱_그러다가 새 소리가 들리면 그다음부터 알랭 들롱이 걷기 시작한다. 나 또한 딱히 할 일 없으면 누워 지내는 것의 달인이다. (웃음) 말씀하신 그런 외로움이 화면에 좀 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가령 혜경(전도연)과 준길(박성웅)이 정사를 나누는 소리를 들으며 재곤(김남길)이 밥을 먹는데, 외롭다기보다 좀 애매해 보여서 뺄까 했으나 김상범 편집감독님이 그 장면을 좋아하셨다. 재곤이 무심히 자기 자리로 돌아와 무전기로 엿듣는 그런 장면들. 그래야 둘의 관계가 완성된다고 했다. 저마다의 무심한 외로움이랄까.
진실을 말하지 않는 남자
김성수_<킬리만자로> <무뢰한> 두편을 보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건, ‘같이 밥먹는 누아르’라고 해야 하나. (웃음) 뭔가 당신의 영화에서는 같이 밥 먹는 장면이 중요한 키워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연대감의 확인이라는 측면에서 봉준호,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도 중요하게 등장하는 장면이다. 가령 <킬리만자로> 첫 장면도 하얀 쌀밥에 피가 스며드는 것이고, 나중에 해식(박신양)과 번개(안성기)가 바깥에서는 그들의 횟집이 박살나고 있는데도 꾸역꾸역 따끈한 밥을 먹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무뢰한>에서는 혜경이 잡채를 만들고 재곤과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 아주 강력하게 다가오더라.
오승욱_어떤 영화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려서 TV로 본 영화 중에 그런 장면이 있었다. 최후의 만찬 같은 느낌이랄까. 곧바로 닥쳐올 위기 직전에 거하게 식사를 하다가 그게 확 깨져버리는 이미지, 뭔지 모르겠는데 이후로도 그게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 있었던 것 같다. <킬리만자로>에서 해식과 번개가 식사하는 장면도, 밖에서 큰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마치 암호를 주고받는 것처럼 서로 진심을 돌려 말하는 느낌이다. <무뢰한>에서 재곤과 혜경이 같이 밥을 먹으며 “같이 살면 안 될까?” “진심이야?” 하는 대화를 나눌 때도 서로의 진심은 알 수 없는 것처럼 묘사된다. 뭔가 나중에도 알 수 없을 것 같고. 말씀을 듣고 보니 ‘내가 너무 같은 장면을 우려먹나?’ 하는 생각도 든다. (웃음) 어쨌건 영화에서 밥 먹는 장면을 특히 좋아하는 것 같긴 하다. 서부극이나 무협영화에서도 술잔을 나누는 장면이 왠지 좋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 그들이 그 이전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김성수_특히 재곤과 혜경의 밥 먹는 장면의 디테일이 좋다. 소주를 커피잔에 따르고. (웃음)
오승욱_어쨌건 재곤은 손님이니까 유리잔에 소주를 따라주고 자기는 급한 대로 커피잔에 따라 마신다. 박일현 미술감독과 고민해서 고른 커피잔이다. (웃음) 그렇게 방 세트를 만들고는 (전)도연씨가 딱 들어왔는데 “와 재밌다” 그러더라. 상에 놓인 음식이나 잔의 배치만으로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으니까.
김성수_<킬리만자로>와의 유사성을 찾는다면 해식과 재곤 모두 형사라는 점이다. 그런데 자신의 정체를 숨긴 형사다. <킬리만자로>에서 번개는 그런 해식을 오랫동안 건달 동생으로 알고 지낸 ‘해철’로 믿는다. 실제로 해식도 해철처럼 행동하려고 하고. <무뢰한>에서도 재곤은 형사가 아닌 마카오 단란주점 영업부장이라는 가짜 자신으로 혜경과 교감을 나누려고 한다. 그처럼 두개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거칠고 외로운 형사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하드보일드 누아르의 전형적인 공식이라면, 그 정체를 밝히려는 외부자가 반드시 있고 그를 통해 서스펜스를 만들어나간다. 그런데 <킬리만자로>와 <무뢰한>은 같은 전형을 따르면서도 언제나 주인공 스스로가 그 미스터리를 캐고 자신의 틀을 깨나가려고 한다. 정말 특이한 구조다.
오승욱_미처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내 영화를 너무 잘 봐주어서 감사하다. 딴 얘기이지만, 전에도 뭔가 이야기가 잘 안 풀리면 (허)진호가 “야, 성수 형한테 물어봐” 그랬다. 둘이 너무 닮았으니까 그랬을 거다. (웃음) 갑자기 드는 생각은, 내가 가롯 유다 캐릭터를 무지 좋아한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예수대로 본심을 속이고 유다는 그대로 예수를 배반한다. 어려서부터 그 이야기가 굉장히 재밌었다. 파워풀할 뿐만 아니라 그 종말마저도 장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킬리만자로>의 해식에게도 그런 측면이 있는데 <무뢰한>에서는 아예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셈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습작으로 썼던 시나리오 중 하나도 계속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가며 성공하려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사무라이>의 알랭 들롱도 그렇다. 자신은 킬러이지만 여자에게는 그걸 숨겨야 한다. 그렇게 언제나 자신의 정체를 숨긴 사람들의 이야기에 매혹됐던 것 같다.
김성수_또한 한편으로 필름누아르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은 늑대 같은 형사와 팜므파탈 같은 화류계의 여자가 얽혔을 때, 서로 진심을 캐내려고 온갖 거짓말과 배신이 난무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킬리만자로>, 특히 <무뢰한>은 더더욱 그런 데 관심이 없다. 서로 다른 두개의 감정을 붙여두려 하면서, 오히려 자기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미숙하고 수줍은 남자가 그 중심에 있다. 장르적으로 전혀 다른 영화라 할 수 있는, 재밌게도 오승욱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8월의 크리스마스>(1998)의 정원(한석규)도 그런 면이 있다. 다들 태어날 때부터 거짓말의 세계에서 자라서 그런지, 진실과 거짓말의 경계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처럼 당신 영화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오승욱_뭔가 허를 찔린 기분인데(웃음), 나 또한 잘 알고 있고 궁금한 부분이다. 왜 내 영화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그럴까.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8월의 크리스마스>도 사실 다림(심은하)은 정원이 왜 사진관에서 사라진 것인지 그 이유를 모른 채로 남아 있다. 어떻게 보면 여성 캐릭터 입장에서 굉장히 섬뜩하고 폭력적인 상황인데, 여성 관객이 <8월의 크리스마스>를 무척 좋게 잘 봤다고 얘기해주면 좀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웃음)
전도연이 완성한 김혜경이란 캐릭터
김성수_필름누아르는 이른바 ‘펄프 픽션’, 오락적으로 하위문화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오승욱 감독의 영화는 그 세계에 한발 걸치고 있으면서도 굉장히 문학적이고 고전적인 느낌을 지니고 있다. 그게 상당히 매력적이다. 보통 필름누아르 장르가 결정적인 사건을 끝까지 안고 가는 범죄세계의 판타지라면, <무뢰한>은 그 결정적인 순간은 일부러 비켜가는 느낌이다. 오승욱식 누아르에서는 그런 결정적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의 파장으로 생기는 인물들의 정서적인 흔들림에 주목한다.
오승욱_뭐랄까, 장르적인 사건이나 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대한 집착은 너무 많이 봐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사건’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게 별로 재미없다. 얘기한 것처럼 바로 그 앞과 뒤가 궁금하고 재미있다.
김성수_그래서 말인데, 시네필로서의 당신은 ‘저 인간 저래서 살 수 있겠나’ 싶을 정도로(웃음) 범죄영화나 무협영화의 장르적 재미에 열광하는 사람인데 정작 만드는 영화는 그렇지 않다. 그걸 피해가는 이유가 뭔가. 단지 장르의 관습을 비틀었다고 말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오승욱_나 또한 ‘관습을 비틀었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장르영화를 좋아하기는 하나 내 팔레트의 물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뭔가 장르적인 디테일보다는 인물들의 조바심이나 두려움, 혹은 사건 자체보다 그 뒤의 감정의 떨림, 그런 게 좋다. 가령 <무뢰한>도 후반부의 결정적인 사건을 다루는 장면은 애초 시나리오에서 반 페이지도 되지 않았다. 그게 혜경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장면인데, 카메라가 준길의 얼굴에서부터 시작해 혜경의 얼굴까지 오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재곤이나 다른 디테일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액션 신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화려할 필요가 없다. 그 안에 놓인 혜경의 감정이 중요하다. 촬영현장에서도 내내 ‘장황하면 안 된다’라고 계속 되뇌었다.
김성수_<무뢰한>에서 전도연은 정말 매력적이다. 전형적인 팜므파탈과는 다른 뭔가 내조를 잘할 것 같은 팜므파탈? (웃음)
오승욱_하하, 재미난 표현이다. 언제나 여성 캐릭터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취재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전형적인 캐릭터로부터 멀어지게 됐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는 <아일랜드의 연풍>(The Quiet Man, 1952)의 모린 오하라를 떠올렸다. 굉장히 독립적이고 자기 식대로 흉악한 두 남자와 당당히 대결하며 자기 것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인물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1968)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일구는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도 비슷하다. 한국영화 중에서는 이만희 감독의 <귀로>(1967)에서 본능과 헌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문정숙을 떠올렸다.
김성수_아, 문정숙. 느낌이 확 온다. 문정숙이라면 당연히 바바리코트를 입어야지. (웃음)
오승욱_맞다, 그래서 도연씨에게 문정숙 얘기를 하며 기찻길 장면에서 바바리코트를 입어줬으면 했고, 흔쾌히 준비해와서 촬영을 마쳤다. 그런 준비성도 그렇지만, 이번에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게 한두번이 아니다. 연출자로서 애초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생각에 배우가 대사를 바꾸거나 애드리브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도연씨는 대사에 대해 좋다 나쁘다 그런 얘기 없이 딱 그대로 해냈다. 가령 “상처 위에 상처…”, 그런 대사도 그냥 문학적일 수 있는데, 그야말로 놀라운 힘을 불어넣는다. 미세한 눈동자의 떨림과 말의 호흡을 통해 전도연만의 장면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를 이전에도 보아오지 않았었나. 그녀가 ‘대가’라는 얘기는 오히려 칸에서 인터뷰할 때 수도 없이 들었다.
김성수_혜경이 재곤과 서로 약점 얘기할 때도 그렇고, 문학적 대사라고 얘기한 그 부분도 그렇고 나 역시 참 좋았던 장면들이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감독 입장에서는 저 배우가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어나가고 동화되는지 지켜보는 쾌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전도연의 김혜경은 무척 행복한 경험이었을 것 같다.
오승욱_도연씨가 3회차 촬영까지는 대사 없이 하이힐을 신고 계속 걷기만 했다. 첫 촬영이 바로 형사들이 잠복하고 있는 가운데 도연씨가 걸어오는 장면이었다. 나는 이미 그때부터 ‘아, 김혜경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온몸을 감싸는 가운데 남자친구 때문에 다시 여기보다 더 안 좋은 곳으로 떠나가야 하는 여자. 사실 시나리오 쓰면서도 김혜경이라는 인물의 표정을 이미지화하지 못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바로 이 여자다’ 하고 느꼈다. 그때부터 ‘그래, 도연씨가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 하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웃음) 내가 그저 뼈대를 만들어놓은 사람이라면, 전도연이 김혜경 안으로 들어오면서 핏줄이 생기고 근육과 살이 붙고 지느러미와 비늘이 더해져 물고기가 되어 헤엄쳐 갔다. 감독으로서 그만한 행복이 없다.
김성수_맞다, <무뢰한> 추천 영상에서 봉준호 감독이 “전도연씨의 얼굴 자체가 놀라운 스펙터클이다”라고 한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김남길의 재발견
김성수_<무뢰한>의 액션 연출도 마음에 들었다. 재곤이 준길을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게 한 다음 이어지는 액션 신이 무척 근사했다. 준길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 거친 느낌이 뭔가 승패를 가리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위력을 과시하는 장면으로 다가왔다.
오승욱_재곤 입장에서는 준길이 “너 짭새냐?” “너 어디서 돈 받고 왔어?” 하는 얘기에 완전히 자존심이 상한 거다. 그게 사실과 별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김성수_이후 두 사람의 대결은 마치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이 싸우는 것처럼 맞부딪친다. 타격에 쓰러지기보다 더 얼굴을 들이민다. 그렇게 화면에 두 맹수가 꽉 차게 싸운다. 사실 액션 연출을 좋아하는 감독 입장에서 컷을 나누면 잔재미가 생길지 모르지만 긴장도가 떨어지는데, 그 장면은 최근 여러 영화에서 본 그 어떤 액션 신보다 밀도가 높고 박진감 넘쳤다.
오승욱_배우 입장에서는 촬영현장에서 거의 컷 없이 가겠다고 하니 죽을 맛이었을 거다. (웃음) 허명행 무술감독에게 요구했던 것은 두 남자가 관절이 부서지고 힘줄 끊어지는 소리까지 날 정도로 몸과 몸이 뒤엉켜 바닥에서 거의 뒹굴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런 가운데 둘이 헐떡거리고 고통스러워하는 걸 부각시키고 싶었다. 두 배우 모두 액션을 잘해서 큰 걱정은 없었다.
김성수_말하자면 ‘임마, 내가 너보다 더 세’ 하는 식의 액션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옛날 한국 액션영화에서 장동휘와 박노식이 싸우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하여간 올드스쿨 좋아하는 감독으로서 정말 즐기면서 봤다. 게다가 준길이 그런 와중에도 자기 여자 혜경의 나체를 노출시키기 싫어서 옷을 덮어주는 것도 꽤 멋지다.
오승욱_재곤은 바로 그 전날 밤과 같은 잠자리를 가져본 지 무척 오래된 남자일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땀에 푹 젖어 깊은 잠에 들 만큼 만족스러운 섹스를 해본 적 없는 남자랄까.
김성수_그 장면에서의 눈빛은 물론이고, <무뢰한>은 김남길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준 영화다. 그 세계 안에서 그렇게 깊이 있는 연기를 해낼지 몰랐다.
오승욱_어두운 범죄세계 속에서 일을 당하기 전의 인물들 얘기에 관심 있다. 내게는 그게 사건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재밌다. 어떻게 보면 <무뢰한>의 두 남녀는 장 피에르 멜빌의 <리스본 특급>(Un Flic, 1972)의 알랭 들롱과 카트린 드뇌브의 관계 같기도 하다. 혜경의 아파트 앞에서의 재곤의 모습은 알랭 들롱이 카트린 드뇌브의 집 앞을 지나갈 때의 표정 같은 거다.
김성수_듣고 보니 <리스본 특급>과 정말 비슷하다. 그렇게 재곤은 되게 양면적이다. 거친 늑대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순정이 있는 로맨티스트 같다. 이미 알랭 들롱 얘기를 많이 나눴지만 나는 오히려 멜빌 영화의 알랭 들롱보다 <태양은 가득히>(1960)나 ‘태양은 외로워’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일식>(1962) 같은 영화의 알랭 들롱이 떠올랐다. 누아르 장르의 주인공은 대개 욕망과 목표가 뚜렷하다. 그로 인해 생기는 고민이나 장애가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자아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재곤을 보면서 ‘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가 너무 궁금했다. 실제로 그렇게 연기했고 찍혔다.
오승욱_처음부터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길 바랐다.
김성수_<태양의 가득히>의 알랭 들롱도 그렇다. 표정이 묘하다. 친구의 연애를 좋게 보는 것도 아니고 부러워하는 것도 아닌데 사실 질투하는 마음도 있다. <무뢰한>의 재곤도 일하러 온 형사의 마음과 혜경을 좋아하는 마음이 이상하게 섞여 있다. 어쨌거나 혜경만큼 재곤을 아끼는 감독의 마음이 느껴졌다. 요즘 나도 <무뢰한>을 제작한 한재덕 대표의 사나이픽쳐스에서 다음 작품 <아수라>를 준비하고 있는데 정우성, 황정민 등과 함께 김남길을 캐스팅했기에 그를 더 눈여겨보기도 했다. <아수라> 얘기를 나누느라 그를 만났을 때 “평생 이렇게까지 감독이 주인공을 ‘카메라 샤워’해주는 감독을 만나기 힘들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아무튼 <무뢰한>을 보고 나니 <아수라> 촬영현장에서 빨리 그를 만나고 싶더라. (웃음)
오승욱_남길씨가 재밌었던 건, 보통 배우가 불안하면 ‘감독님, 이거 너무 어려워요’ 그러면서 기대기도 할 텐데 그런 게 별로 없었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얘기를 하루 종일 나누기도 했다. 우리집 아파트 앞 평상에 앉아 줄담배를 피우면서 그런 얘기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눴다. 물론 알랭 들롱 얘기도 많이 했다.
김성수_내가 오승욱 감독에 대해 잘 아는데, 너와 하루 종일 그런 얘기를 나눴다는 것 자체가 배우로서 어마어마한 인내심을 가진 거다. 정말 괜찮은 친구네. (웃음) 나 또한 추상적인 비평을 해보자면 <무뢰한>은 문학적이어서 우아한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자극적이다. 그런데 그게 전혀 위화감 없이 맞물려 돌아간다. 그게 <무뢰한>의 고유성이자 매력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보통 누아르 장르에서 사람들은 결국 죽음이나 비극에 이르지만 그래도 감정적으로는 친구로부터 우정을, 연인으로부터 사랑의 감정을 확인받아 정서적으로 얻는 보상이 있다. 그런데 오승욱 감독 영화에는 상처받고 외로운 인물들이 비슷한 처지의 인물을 만나 더 큰 실패담을 만들어낸다. 보상받으려고 하는 몸짓이 더 참담한 실패로 귀결된다고나 할까.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인물들을 그렇게 끝까지 몰아붙여서, 그래서 과연 행복한지?
오승욱_지금도 김성수 감독님한테 고마운 게, <킬리만자로> 개봉 때 해외에 있느라 영화를 못 봐서 입국하자마자 비디오숍에 들러 내 영화를 봐주신 일이다. 그런 다음 영화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셨던 게 지금도 똑똑히 기억난다. 첫 장면부터 피바다를 만들어놨는데, 나중에 왜 또 그렇게까지 피바다를 만들었냐고. 오승욱 너 진짜 잔인한 놈이다, 그러셨다. (웃음) 그런데 진짜 사람은 변하기 힘든 것 같고, 그게 감독으로서 나의 솔직한 모습이다. 어쨌거나 내 영화의 인물들이 조그만 행복이라도 꿈꾸며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영화에서 재곤이 과거에 목포에서 했던 일이 거론되는데, 목포 때와는 달리 재곤이 이번에는 혜경을 다시 찾아간다. 나로서는 그것이 조금 더 인간다워진, 행복을 찾아간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이나마 그렇게 인물들이 더 인간답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끔 만들고 싶다. 다음 영화에서는 내 영화의 주인공들이 그보다 더 인간에 가깝게, 보다 더 큰 행복을 얻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