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화니 걸
2015-06-18
글 : 김혜리

※ <스파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쿵 퓨리>

앗, 이것은 스웨덴판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인가? 아니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미학의 영화적 번안인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돼 이번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상영된 단편 <쿵 퓨리>는 실없이 즐거운 30분을 보장한다. 1980년대 무술영화와 <리쎌 웨폰> 류의 경찰 액션물을 주물러 뭉친 이 코믹 활극의 영웅은, 코브라에 물려 쿵후의 최고수가 된 마이애미 경찰 쿵 퓨리. 그는 시간여행을 떠나 ‘쿵 퓌어러’(Kung Fuherer)를 자처하는 히틀러와 대결한다. <디스트릭트9> <위플래쉬>도 단편으로 투자자에게 가능성을 어필해 장편으로 완성됐음을 돌이켜보면 신인감독들의 새로운 데뷔 경로인가 싶다. 사진은 본인의 이두박근과 사랑에 빠진 북구의 신 토르. 바이킹 시대로 날아간 쿵 퓨리와 한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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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를 보며 올해 들어 극장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최고로 상쾌하게 웃었다. 누구의 약점도 착취하지 않는 유머, 악당과 어리석은 인물들에게도 귀여운 구석을 남겨두는 통 큰 작법 덕분이었다. 40대 미국 여성 평균에 가까운 체격과 외모를 지닌 <스파이>의 주인공 수잔 쿠퍼(멜리사 매카시)는 CIA 본부 지하에서 근무하는 ‘보이지 않는 요원’이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사무실에 갇힌 그녀야말로 현장을 누비는 제임스 본드형 스파이 브래들리 파인(주드 로)을 움직이는 눈과 귀이며 두뇌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수잔은 격투기를 포함한 훈련 과정을 수석으로 통과해놓고도, 선배 브래들리의 설득으로 지원 보직을 맡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빼어난 업무 성과를, 친절한 마음으로 동료들에게 구워주는 케이크를 고마워하지 않는다. 마침내 (악당들의 눈에 띄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 수잔의 현장 자원이 받아들여졌을 때 CIA 기술팀이 그녀에게 지급하는 장비는 무좀 스프레이, 치질용 물휴지 따위로 위장된 초라한 아이템뿐이다. 수잔에게 어울린다고 판단된 이 물건들은 곧 세상이 생각하는 수잔이라는 여성의 정체성, 나아가서는 할리우드가 상상해온 멜리사 매카시라는 중년 코미디 여배우의 가능성을 대변한다. 한데 실망스런 장비를 받아든 수잔의 반응이 재미있다. 그녀는 익숙한 듯 상처받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상대방에게 이 불공평한 처사가 부끄럽지 않은지 묻고 넘어간다. “내가 당신한테 뭐 잘못한 게 있나요?”라고. 일단 현장에 뛰어든 수잔은 타인이 투사한 이미지에 지지 않고 잠재력을 발휘해 진짜 자기가 누구인지 보여준다. “설치고 생각하지 마라”라는 상부 지시를 벗어나 주체적으로 전략을 짜고, 지급된 촌스러운 관광객 복장 대신 원하는 옷을 사비로 사 입고 근사하게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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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보기엔 장르 비틀기가 주된 목표인 패러디물 같지만, <스파이>의 실체는 자족적인 코믹첩보 액션영화다. 기존 영화를 비꼬는 코멘트보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에 충실한 1차적 텍스트에 가깝다. 예를 들어,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허당 첩보원이 얼결에 우연과 행운이 겹쳐 공을 세우는 <쟈니 잉글리쉬>와 <스파이>는 전혀 다른 종류의 코미디다. 유능한 요원 수잔은 임무를 망치거나 가는 데마다 난장판을 만들지 않는다. 액션에 관해서도 <스파이>는 꽤 진지하다. 주변 기물을 활용하는 성룡 스타일의 격투 신이 공들여 연출돼 있다. 덕분에 지금껏 스크린에서 ‘사이즈’로만 취급돼온 멜리사 매카시의 체격은 <스파이>에 이르러 힘을 의미하게 됐다. 한편 수잔의 편안하고 실용적인 움직임은, ‘마리 앙투아네트’ 헤어스타일과 하이힐 위의 자세를 유지하느라 권총 하나 재빨리 못 줍는 날씬한 악역 레이나(로즈 번)의 뻣뻣함과 대조를 이룬다. <스파이>의 ‘스트레이트’함은 멜리사 매카시를 활용하는 방식에서 돋보인다. 이 배우를 기용한 폴 페이그 감독의 전작을 포함해 대다수 출연작에서 멜리사 매카시는 뚱뚱한 괴짜로 그려졌다. 식탐과 분노를 자제하지 못해 주변의 ‘정상적’ 인물들에게 우스갯거리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공격적 인물, 다시 말해 ‘인간 돌개바람’ 같은 구경거리가 그녀의 캐릭터였다. 이는 비단 매카시뿐 아니라 신체적 코미디를 장기로 삼는 많은 배우들이 주류영화에서 쓰이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파이>의 접근법은 정반대다. 수잔은 정상이고 그녀를 둘러싼 나머지 인물들이 한 군데씩 이상한 습성을 가진 괴짜다. 수잔은 상식적으로 행동하는데 주변 인물의 반응이 엇나가서 웃음이 터진다. 멜리사 매카시의 캐릭터는 이 영화에서도 무시당하지만 <스파이>의 조크가 겨냥하는 타깃은 수잔이 아니라 그녀에게 비뚤어진 리액션을 보이는 성차별, 나이차별, 외모지상주의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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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는 첩보액션물인 동시에, 직장에서 더 적은 기회와 작은 보수를 받고 기여도가 과소평가되는 세상의 모든 여성을 쾌활하게 격려하는 이야기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퓨리오사의 워리그를 추격하는 세 무리의 남자들이 있다면, <스파이>의 수잔에게는 쫓아다니며 발목을 잡는 동료 남성 스파이 셋이 있다. 폴 페이그 감독은 세 남자와 수잔의 화학반응에서 빵빵 터지는 개그를 만들어내는 한편, 그 웃음을 통해 미시적 일상에서 일어나는 성차별의 각종 양상을 예리하게 풍자한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모든 이미지가 스토리를 전한다면 <스파이>의 모든 개그는 정확한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럼에도 메시지의 무게가 개그를 가라앉히지 않는 균형감이 대단하다.

수잔의 세 진상 동료를 살펴보자. 우선 바람기를 통제 못하는 이탈리아 마초를 캐리커처화한 알도(피터 세라피노위츠)가 있다. 손버릇 나쁜 이 첩보원은 호시탐탐 수잔의 몸을 더듬으려 든다(심지어 헬기에 매달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가슴에 손을 뻗는다). 여자애들의 치마를 들추고 고무줄을 끊는 여덟살 소년만큼 유아적 행태다. 그런데 여기 위협받기는커녕 귀찮아하며 깔아뭉개는 수잔의 대응이 성추행의 불쾌함을 해독해버린다. 그녀는 알도를 마치 얼굴을 핥으려 달려드는 대형견처럼 취급한다. 두번째는 수잔의 짝사랑 상대이기도 했던 브래들리다. 그는 수잔을 친절히 대하지만 결코 동등한 동료로 인식하지 않는다. 자기가 하는 일이 차별인지도 모른 채 여성은 최고의 조력자로 능력을 발휘하는 편이 적절하다고 믿는다. ‘마초 3번’은 실력도 없으면서 자기를 제임스 본드+제이슨 본+잭 바우어인 줄 아는 허풍선이 릭(제이슨 스타뎀)이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똘똘 뭉친 그는 ‘아줌마’가 신성한 스파이 일을 넘보는 현실에 분개한 나머지 무려 CIA에 사표를 던진다. 그리고 퇴직금(?)을 털어 세계 곳곳으로 수잔을 졸졸 따라다닌다. 이런 무리수의 목표가 단지 “넌 여자라 안 돼. 이 일은 사나이인 내 일이었어야 해”라고 설득하기 위해서라는 점이 짠하다. 이 쓸데없는 비장함과 대상 없는 위기의식은 현실의 남권 운동가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캐릭터의 한심함과 별개로 제이슨 스타뎀은 <스파이>의 굉장한 비밀 병기다. 근작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을 위시한 많은 액션물에서 구축한 자기의 페르소나를 엎어치기하는 이 배우의 정색한 연기는 너무나 웃겨 급기야 나를 울게 했으며, 연기자로서도 얼마나 괄목상대했는지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마음 좋은 폴 페이그 감독은 요즘 논의되는 맨스플레이션과는 또 다른 경지의 ‘맨뻥’을 통해 릭에게 귀여움을 부여한다. 싸우다 한쪽 팔이 떨어져서 나머지 반대편 손을 써서 접합한 무용담이라든가, 마이크로칩들을 삼켰다 도로 싸서 컴퓨터를 조립한 추억이라든가. 뭐, 일만 훼방놓지 않으면 귀엽지 않은가?

<해피피트>

좋아요

분노의 펭귄

조지 밀러 감독의 전작에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연결되는 코드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베이브>는 인간의 쓸모를 위해 사육되는 이족(異族)의 이야기고 <해피피트>는 환경 파괴로 위협받는 남극 동물들의 항의다. 춤과 노래에 가려진 <해피피트>의 몇 장면은 처절하다. “왜 우리가 먹을 물고기까지 다 잡아가나요?”라고 묻기 위해 인간에게 다가간 멈블(엘리야 우드)은 아쿠아리움에 잡혀가고, 사육당하는 동안 의지와 사고력을 잃고 먹이 배급에만 반응하는 제 모습에 고통스러워한다. 인간이 버린 캔 홀더에 목이 졸려 말하기 힘들어하는 우두머리 펭귄 러브레이스는 이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버벌 개그의 달인 로빈 윌리엄스여서 더욱 애잔하다. <해피피트>는 펭귄들이 인간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춤추고 노래한 뮤지컬이지만, 내겐 어느 펭귄의 항변이 더 오래 남는다. “배고픈 우리가 왜 춤까지 춰야 하지?” 유엔 환경기구는 조지 밀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담을 주선할 의향이 없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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