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류승범] 자극으로부터 멀리
2015-06-22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나의 절친 악당들> 류승범

스튜디오에 들어온 류승범은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표지 촬영 때 입을 옷도 큰 가방에 직접 챙겨왔고, “헤어, 메이크업을 다 하고 왔으니 인터뷰부터 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거”라며 진행도 신경 썼으며, 촬영할 때 들을 음악도 선곡해 틀었다. 전작 <베를린>(2012)을 끝낸 뒤 <씨네21>과 가진 인터뷰에서 “좀 쉬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지쳐 보였던 그를 떠올려보면 아주 가볍고, 자유로워 보였다. “그렇게 보이나? <베를린>을 끝낸 뒤 3년 가까이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면서 과거의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이 됐다. 세계관도, 삶을 대하는 태도와 철학도 달라졌다. 리셋, 다시 태어났다.” 데뷔한 뒤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 없는 그에게 3여년의 휴식은 삶의 방향을 바꿀 만큼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여행도 많이 했고, 기타도 그때 시작해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나의 절친 악당들>에서 류승범이 연기한 지누 역시 무척 자유로운 남자다.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돈과 권력을 갖춘 기업 회장을 감시하는, 정체불명의 조직에서 일하는 말단 직원이기도 하다. 의문의 조직이라면, 경찰? 아니다. 검찰도 아니고, 국정원은 더더욱 아니다.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단서만 가지고는 그의 직업을 명확하게 알 순 없다. 지누는 회장 저택에서 나온 차를 쫓다가 교통사고 현장에서 만난 나미와 함께 거액이 든 가방을 손에 넣는다. 그 과정에서 나미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 앞에서 그는 진짜 남자다. 나미가 하자는 건 다 들어주고, 자신보다 나미 걱정이 먼저다.

어쨌거나 돈가방을 쫓는 무리를 따돌리는 상황에서 언제나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유쾌함을 잃지 않는 지누는 시나리오를 처음 읽은 류승범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순전히 개인적인 관심 때문”이다. “세상을 여행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사람들은 갈수록 남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가치들을 등한시한다. 물질로부터 자유롭고, 유쾌한 반항심을 잃지 않는 지누를 통해 현재 세상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극적인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 지금, 그는 “<나의 절친 악당들>과 지누가 전혀 자극적이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고도 한다. “삶이 변하면서 음식도 짜고 매운 것들을 피하게 됐다. 처음에는 그런 식습관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습관이 되니 지금은 자극적인 맛에 손이 잘 안 가고, 살도 많이 빠졌다”는 게 류승범의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한창 하고 있을 때 그는 임상수 감독으로부터 시나리오를 받았다. “쉬면서 한번도 차기작을 생각해본 적 없다. 무언가가 들어오기에 시간이 아주 멀리 가버린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나의 절친 악당들> 출연 제의가 들어온 건 운명”이라는 게 류승범의 얘기다.

평소 팬으로서 좋아했던 임상수 감독과의 첫 만남은 “서로를 알아갈 수 있었던 작업”이었다. 지누를 “에고(Ego)가 거의 없는 친구”라고 판단했던 까닭에 류승범은 “촬영 전 캐릭터에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겨두고, 현장에서 임상수 감독과 함께 만들어나갔”다.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어떤 스타일로 완성되는지 알아갈 수 있었다. 생각도 참 많이 하면서 찍었고. 많은 공부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제 막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지금, 삶의 가치관이 많이 바뀐 류승범에게 <나의 절친 악당들>은 “젊은 날의 기록”이다. “육체가 더 늙기 전에 찍은 영화라는 뜻이 아니다. 젊은 시절 치열하게 했던 생각과 건강한 몸이 가장 비슷한 상태에서 만난 작품이다. 지금은 상업영화 배우이지만 차차 변해가려고 한다. 그런 경계를 없애려고.” 그러한 변화 때문에 ‘류승범의 연기 인생 2막’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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