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1970년대를 제대로 재현해낸 어느 형사영화의 매혹
2015-06-25
글 : 김성훈
곽경택 감독, 또 한편의 실화 소재 영화 <극비수사>로 돌아오다

곽경택 감독의 신작 <극비수사>(6월18일 개봉)는 1978년 부산에서 실제로 있었던 초등학생 유괴사건을 소재로 했다. 형사 공길용(김윤석)과 도사 김중산(유해진)이 힘을 합쳐 아이를 33일 만에 되찾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두 사람이 사건을 해결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고, 곽경택 감독이 두 사람의 숨겨진 사연을 듣고 영화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자극적이거나 잔인한 장면 하나 없이 긴장감을 부지런히 쌓아올리는 형사영화이면서도 범인을 잡는 데서 오는 장르적 쾌감이 없는 독특한 형사영화다. <친구2>(2013)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뒤, 형사영화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곽경택 감독과의 인터뷰도 덧붙였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낭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부산 사는 초등학생 2학년 성은주양이다. 불량식품 쫄쫄이를 좋아하는 예쁘장한 소녀다. 노래 대회에 참가해 부른 노래를 그녀의 부모가 녹음해 아침마다 아이를 깨우기 위해 트는 모양이다. 화면이 전환되면 형사 공길용이 “유신 반대”를 외치는 데모대를 진압하다가 소매치기를 발견해 그를 쫓는다. 화면이 다시 전환되고, 김중산은 자신의 세딸이 엄마한테 박상(쌀과자)을 사달라고 조르는 걸 보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본다. 그리고 은주의 부모(송영창, 이정은)가 생선을 팔아 번 현금 뭉치들을 세는 장면으로 재빠르게 넘어간다. <극비수사>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동요 <옹달샘>에 맞춰 짧은 몽타주로 차례로 등장하는 이 인물들은 1978년 부산에서 실제로 일어난 초등학생 유괴사건의 주인공들이다.

1970년대 시대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현

생활고 때문에 유난히 유괴사건이 많았던 1970년대. 앞에서 소개한 유괴사건은 아이가 두 차례 유괴되면서 전국적으로 떠들썩거렸다. 1978년에 벌어진 1차 유괴사건에서 아이는 유괴 33일 만에 부모 품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아이는 또 유괴당했고, 아이의 부모는 범인으로부터 아이 몸값으로 1억5천만원을 요구받아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두 사건 모두 경찰이 범인을 검거해 일단락됐다. 하지만 1차 유괴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공을 세웠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수사가 극비로 진행됐던 까닭에 언론에 보도되지도, 세상으로부터 공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 두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실존 인물과 캐릭터 이름이 같다). 이미 알려진 대로 곽경택 감독은 전작 <친구2>를 취재하면서 알게 된 공길용 형사로부터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은 이 사연을 듣고,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게 <극비수사>의 출발점이다.

사실 곽경택 감독이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동양 라이트급 챔피언 김득구를 스크린으로 불러들인 <챔피언>(2002)을 포함해 자전적인 이야기인 <친구>(2001), <미운 오리 새끼>(2012) 등 그의 몇몇 전작들은 실제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똥개>(2003), <사랑>(2007) 같은 작품 역시 그가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람을 극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인물(사건)인가, 아닌가의 차이일 뿐이다. <극비수사>는 19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사건을 소재로 하지만, 당시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건의 진짜 주인공들을 그린다는 점에서 다소 독특하다. <극비수사>가 실화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형사와 도사 조합이다. 형사와 형사 조합이나 형사와 피해자 조합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형사영화는 익히 봐왔지만, 형사와 도사가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는 선뜻 상상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것이 곽경택 감독이 이 사연에 매료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국제시장 암달러상 살해범 검거, ‘곰보’ 유괴범 검거. 공길용은 굵직굵직한 사건을 해결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은 부산 형사다. 하지만 다른 관할서 사건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시위를 진압하는 기동대에 전출된다. 그러다 윗선으로부터 한 유괴사건을 수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자신의 관할서 사건이 아닌 데다가 유괴된 아이의 부모가 꼭 곰보 유괴범을 검거한 형사가 수사를 해야 한다고 우긴 까닭에 탐탁지 않은 지시였지만, “우리 아이들이 유괴당했어도 그렇게 할 거가”라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수사를 맡게 된다. 몇날 며칠이 지나도 범인으로부터 연락이 없어 좌불안석인 아이의 엄마는 “유괴된 지 보름째되는 날 범인으로부터 연락이 올 거”라는 얘기를 한 도사로부터 들었다고 공길용에게 털어놓는다. 공길용의 사주만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얘기와 함께 말이다. 그 도사가 김중산이다. 충청도 출신인 김중산은 대학을 졸업한 뒤 스승 백 도사 밑에서 그를 뒷바라지하다가 달랑 전화번호 하나 물려받아 도 닦고, 점 보는 도사다. 그 얘기를 들은 공길용은 김중산을 찾아가 “점으로 현혹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유괴 15일째 되던 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은주 어머니세요? 왜 아직 신고 안 했어요?” 범인의 목소리다.

범인의 전화가 걸려오는 영화의 초반부부터 수사의 방향이 크게 전환되는 중반부까지 <극비수사>는 전형적인 형사영화의 서사 공식을 충실히 따라간다. 범인은 접선 장소와 시간을 수시로 바꿔가며 형사들을 뺑뺑이 돌리고, 그럴 때마다 아이 부모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이 과정이 반복되는 서사 구조인데 영화는 자극적인 장면 하나 없이 관객의 눈을 화면에서 한시도 떼지 못하게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시각적 장치와 청각적 장치를 활용한 다양한 볼거리가 이야기에 촘촘하게 배치됐다는 점이다. 은주 집 거실에서 범인의 전화를 받은 실내 장면에서는 은주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 범인의 나른한 서울 말투, 둘의 대화를 도청하는 공길용의 초조한 표정을 사건 정보를 알려주는 자막과 함께 교차로 꺼내놓으며 긴장감을 구축한다. 좁은 실내 공간이 익숙해져 지루해질 때쯤, 감독은 공길용과 은주 엄마를 범인이 알려준 접선 장소로 내보낸다. 구덕 아파트 복도, 대신동 맘모스 레코드 앞, 임랑 해수욕장, 만덕 터널 등 다양한 접선 공간은 1970년대 시대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현해냈다. 보조출연자의 의상, 헤어스타일, 신발 같은 패션과 포니, 그라나다, 옛날 버스 같은 차량 그리고 미술, 소품 등 당시를 드러내는 장치들이 화면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심심할 새가 없다. 여기에 은주 엄마와 고모(장영남)가 함께 김중산을 찾아가 들은 점 내용이 플래시백으로 끼어들어 범인의 말을 예고하면서 긴장감이 더욱 배가된다. 아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는 수사가 “극비로 가야 한다”는 공길용과 유괴를 목격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는 “공개로 가야 한다”는 부산 중부경찰서 형사들이 충돌하면서 수사가 순탄하게 흐르지만은 않을 거라는 불안한 암시까지 더해진다. 덕분에 이야기는 형사영화의 전형적인 서사라는 장애물을 가볍게 뛰어넘고, 자극적이거나 잔인한 장면 하나 없이 서스펜스를 차곡차곡 구축해 영화부의 중반부로 훌쩍 넘어간다(영화에서 그나마 자극적인 장면은 김중산이 부산 중부경찰서 형사들에게 구타당하는 정도인데 다른 스릴러에는 명함도 못 내미는 장면).

휴머니티라는 매력

하지만 <극비수사>는 범인을 잡는 데서 발생하는 장르 특유의 쾌감이 그리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완성도 있는 긴장감을 구축하고,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간 감독의 세공술도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이 아니다. 이 영화의 미덕은 영화의 후반부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가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정체를 드러낸다. 두 남자가 티격태격하는 보통 버디무비와 달리, 공길용 형사는 기도만 하는 김중산이 못마땅하고, 사람 좋은 김중산은 공길용의 수사 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한다.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던 중, 진짜 범인이 나타났을 때 김중산의 믿음이 공길용을 움직이게 한다. 점이라는 비이성의 영역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 한국 형사물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극비수사>는 빛난다. “우리 사회에 공따먹기를 열심히 하는 풍토가 과거나 지금이나 존재하고 있지 않나. 그걸 자신만의 이야기로 참고 살아왔던 공길용 형사, 김중산 도사를 그리고 싶었다”는 곽경택 감독의 말처럼 영화가 여러 이유 때문에 자신의 공을 조명받지 못하는 두 남자를 다시 껴안고, 아이를 안전하게 구해냈을 때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 휴머니티가 바로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이자 보통 형사영화와 다른 점이다. 그 점에서 <극비수사>는 장르적 완성도와 정치적으로 올바른 휴머니티,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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