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한 미술감독
<더 파이브>(2013) 미술 <봄, 눈>(2011) 미술 <여고괴담5: 동반자살>(2009) 미술 <식객>(2007) 미술 <눈에는 눈 이에는 이>(2007) 미술 <리턴>(2006) 미술 <쏜다>(2007) 미술 <잘 살아보세>(2006) 미술 <마이 캡틴 김대출> 세트 <태풍>(2005) 미술 <빈 집>(2004) 미술 <우리형>(2004) 미술 <안녕! 유에프오>(2004) 세트 <태극기 휘날리며>(2003) 세트 <영어완전정복>(2003) 세트 <튜브>(2003) 미술효과 <정글쥬스>(2002) 세트팀
정영민 조명감독
<극비수사>(2015) <화장>(2014) <더 파이브>(2013) <공범>(2013) <주리>(2012) <남영동1985>(2012) <부러진 화살>(2011) <비밀애>(2010) <행복>(2007) <해변의 여인>(2006) <괴물>(2006) <박수칠 때 떠나라>(2005) <역도산>(2004) <맹부삼천지교>(2004) <빙우>(2003) <피아노 치는 대통령>(2002)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 <화산고>(2001) <반칙왕>(2000) <박하사탕>(1999) <태양은 없다>(1998)
문병용 CG감독
<검은손>(2015) 시각효과 <소셜포비아>(2014) CG <허삼관>(2014) CG, 시각효과 <봄>(2014) CG <친구2>(2013) 시각효과 <소원>(2013) 시각효과 <남자사용설명서>(2012) 시각효과 <7번방의 선물>(2012) 시각효과 <통증>(2011) 시각효과 <타임리스>(2009) 시각효과 <비열한 거리>(2006) 시각효과 <짝패>(2006) 시각효과 <실미도>(2003) 시각효과 <내츄럴 시티>(2003) 시각효과 <넘버.3>(1997) 시각효과 <비트>(1997> 시각효과
정의석 스틸작가
<루시드드림> 촬영 중 <뷰티인사이드>(2015) <극비수사>(2015) <더 파이브>(2013) <홍길동의 후예>(2009) <눈에는 눈 이에는 이>(2007) <태풍>(2005)
“현장에서 300회를 조직했다 아이가.” 2주 전 인터뷰 때문에 만난 곽경택 감독은 <극비수사>가 1978년을 리얼하게 재현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300회’의 경험과 노하우를 꼽았다. 300회? 이 암호 같은 숫자의 정체는 곽경택(50) 감독과 배우 김윤석(48)을 포함한 정영민(52) 조명감독, 전인한(50) 미술감독, 문병용(50) CG감독, 정의석(50) 스틸작가 등 <극비수사>의 여섯 베테랑의 나이를 모두 합친 숫자다. 곽경택 감독은 “1970년대를 살아온 이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했다”고 말했다. 이중 정영민 조명감독, 전인한 미술감독, 문병용 CG감독, 정의석 스틸작가 등 백전노장 스탭 네명을 스튜디오로 모셨다. 평균 나이 50살이었지만 열정만큼은 아직 20대였다.
-네분을 모신 이유는 알고 있나.
=정영민_ 곽(경택) 감독과 통화하면서 대충 얘길 들었다.
문병용_‘300회’가 비밀 조직 같은 건데… 이런 것도 기사로 소개될 수 있는 건가 싶어 웃겼다. (웃음)
정영민_나를 제외한 이 셋은 1966년생 동갑이다. 곽경택 감독도 66년생이고. 김윤석 배우는 68년생이고.
전인한_나를 포함한 정의석 실장, 문병용 CG감독은 <태풍>을 함께 작업해 이미 알고 있는 사이다.
문병용_영민 형과는 <비트>를 함께한 적 있다.
정영민_곽경택 감독과의 작업은 사수인 고 이강산 조명감독 밑에서 참여한 <닥터K>(1999)가 마지막이었다. 그전에 <억수탕>(1997)을 했고. <친구>(2001) 때는 프리 프로덕션까지만 하고 사정이 있어 빠졌다. 대신 <화산고>를 했다.
정의석_<태풍> 할 때 모두 40대였는데 어느덧 50대가 됐다. 10년 만에 이렇게 다시 만났다.
정영민_300회는 술자리에서 우연히 생겼다. 지난해 6명의 나이를 따져보니 300이 조금 모자라더라. 올해는 딱 300살이 됐고. “우리가 모이니까 300이 된다”라는 얘기가 나왔고. 나이가 가장 많은 내가 위원장이 됐다. 장난처럼 만들어진 모임인데 기분이 좋았다. 정현수 동시녹음 기사와 기세훈 촬영감독은 40대라 준회원이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한달에 한번씩 모이고 있다.
시나리오에 충실한 것이 기본
-곽경택 감독이 촬영 전 네분을 모아 “이 영화가 잘되면 ‘역시 베테랑’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반면에 영화가 안 되면 모두 도매금으로 팔려가게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던데. 그 얘기가 부담스럽진 않았나.
=정영민_영화계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1970년대를 살아봤던 까닭에 우리가 아이디어를 많이 낼 수밖에 없었다. 촬영하다가도 아이디어가 툭툭 튀어나왔고. 그래서 영화가 흥행이 안 되면 우리가 타격을 받게 된다고까지는 생각지 않았다. (웃음) 촬영을 하다가 예상 스코어가 500만이라 얘기한 적이 있다. 그만큼 시나리오와 배우 그리고 감독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문병용_그런 얘기를 했다는 사실은 잘 모르겠고, 어쨌건 CG가 직업이라 이 영화가 망해도 일은 계속 있다. (웃음) 편집실에서 영화를 처음 봤는데 너무 좋아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박수쳐”라고 말했다.
정의석_영화를 좋아해서 영화 스틸 일을 하는데 오랜만에 곽 감독이 찾아줘서 기분이 좋았다. 평소 자주 만나기 힘든 동료들도 만나고.
정영민_넌 너무 진지해. 요즘은 스틸이 마케팅 파트에 있어 현장에서 외롭다. 하지만 <극비수사> 현장에서는 쭉 둘러보면 다 또래고, 촬영이 끝나면 함께 술도 마실 수 있었다. 우리가 혼자 쉬고 있는 노인네를 거둔 셈이다. (웃음)
문병용_윤석씨도 <극비수사> 전까지는 촬영 끝나면 숙소에서 혼자서 간단하게 술을 마셨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현장에 어린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어울리는 게 부담스러웠을 거다.
-잘 알려진 대로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1978년이다. 1970년대 풍경이 거의 사라진 데다가 로케이션 촬영 분량이 많고 카메라앵글이 커버해야 할 면적이 넓어 70년대를 재현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전인한_로케이션 헌팅을 굉장히 많이 다녔다. 인천을 제외한 광역시는 모두 돌아다녔을 정도로 전국을 뒤졌다. 중요한 건 장소를 펼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세트, 소품, 의상, 차량 등 시대 풍경을 채워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케이션 촬영 분량이 워낙 많다보니 어떤 공간에 풀 세팅을 해놓으면 그 시퀀스 촬영은 하루 만에 다 끝난다. 그러면 다음 장소로 이동해 또 풀 세팅을 해야 한다. 협조가 마음처럼 되지 않는 장소들도 많고. 우리 팀과 조명팀이 고생을 많이 했다.
정영민_시대극이다 보니 장소가 많았고, 미술팀이 정말 바빴지.
문병용_차라리 사극이면 궁에서 찍으면 되는데 이 영화는 지금은 거의 사라진 1970년대를 재현해야 했던 까닭에 만만치가 않았다. 미술팀이 공간을 채우면 CG팀이 부족한 부분을 더 채워 2015년 현재의 풍경을 지워야 했다. 여의도 KBS 시퀀스처럼 공간이 넓은 데다 회차와 예산의 제약 때문에 카메라앵글이 좁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전인한_보조출연자 500명을 동원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들의 의상, 소품, 헤어스타일까지 챙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롤러스케이트 같은 설정도 추가해야 했고.
정영민_워낙 넓은 공간이라 로케이션 헌팅할 때 비행기 활주로 같은 공간을 둘러보기도 했잖아. <극비수사>를 하면서 느낀 건 앞으로 1970년대가 배경인 영화를 만들면 쉽지 않겠다 싶었다. 대부분 공간들이 재건축되거나 재개발됐기 때문이다.
문병용_도로의 과속 방지턱도 과거에는 없어서 CG로 다 지워야 했다. 대신동 맘모스 레코드 앞 시퀀스에서 전봇대의 금속 간지도 다 없앴고.
전인한_다행스럽게도 그라나다, 포니 같은 시대 차량이 25대 정도 투입돼 시대 분위기를 실감나게 보여줄 수 있었다. 번호판도 많이 바꿨다. 같은 차종이어도 관객이 다 알아보기 때문에 각기 다른 번호판을 달았다.
정영민_한창 어릴 때는 시나리오를 받으면 멋 부리고 싶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시나리오에 가장 어울리는 조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극비수사>를 준비하면서 색감을 많이 고민했다. 과거에는 골목길에 있는 보안등 빛이 옐로 계열이었다. LED 조명인 요즘과 다른 색감이었다. 그래서 달빛이 기본 조명이라면 옐로 계통의 빛으로 포인트를 줘서 시대 분위기를 내려고 했다. 은주의 집 안 시퀀스는 같은 공간이라도 시간대별로 각기 다른 빛을 연출하는 게 중요했다. 오전 10시의 실내와 여름날 초저녁 7시의 실내는 색감도 밝기도 각기 다르니까. 1978년 길거리는 원색이 많았다. 형광등이 많은 지금과 달리 당시 가게 간판은 백열등이 많았고. 색보정(D.I.) 작업할 때 레드에 가까운 옐로를 뺐다. 영화 전체적으로 옐로 계통으로 시작해 은주가 유괴당한 시점부터 빛이 어두워졌다가 범인이 잡힌 뒤부터 밝아지는 느낌으로 가려고 했다.
전인한_1970, 80년대 하면 낡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색이 훨씬 더 과감하고 화려했다. 특히 부산 지역 주택가를 보면 지붕이 주황색, 파란색 등 원색 계통이 많았다. <극비수사>를 보면 색이 다양하고 많은 것도 그래서다. 미술팀에 색이 낡으면 안 되고, 깨끗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병용_CG팀은 낡은 색이 있으면 다시 입혔다. 서울 반포아파트가 옐로 계통의 색이 잘 나왔다. 아파트를 찍을 때 아파트 맞은편에 그린 매트를 세팅해 찍은 뒤 아파트 높이로 쭉쭉 자란 나무들을 합성했다. 당시에는 나무들의 키가 높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런 디테일을 두고 리얼하다고 느끼더라. 또 유해진씨가 반포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단지를 내려다보는 시퀀스에서 맞은편 아파트 베란다에 달려 있는 에어컨 실외기 수백대를 CG로 지워야 했다. (웃음)
정영민_곽 감독님이 “우리를 두고 모 아니면 도”라고 얘기한 것도 이해된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모였다. 그것도 내로라하는 베테랑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시대를 재현하지 못하면 문제가 있지. 그런 점에서 기술 파트에서 부담을 느낀 부분이 적지 않았다.
아파트 공사장에 얽힌 고생
-기억에 남는 촬영이 있나.
=정의석_공 형사(김윤석)와 김 도사(유해진)가 나란히 공 형사의 차를 탄 채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장면. 초반부에 진행된 촬영이라 김윤석, 유해진 두 배우와 다소 어색했을 때다. 그래서 좀더 잘 찍었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촬영이 진행되면서 사진 찍는 걸 어색해하던 두 배우가 스틸을 인정해주면서 잘 찍을 수 있도록 시간을 많이 내주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배려해준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전인한_영화의 후반부, 공 형사와 김 도사가 범인을 잡은 뒤 은주를 찾는 마포 시퀀스. 장소 협조도 잘 이뤄지지 않아 동네 주민들에게 겨우 사정하면서 손을 대야 했고, 그나마 미술 세팅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저녁 때뿐이었다. 힘들게 촬영을 끝냈는데 그 시퀀스를 재촬영하자고 하더라. 그 시퀀스 바로 전 장면이 공 형사가 범인을 추격하는 장면이다. 공 형사가 옷이 더러워진 채로 은주를 만나야 하는데, 옷이 깨끗한 거다. 장면 연결이 되지 않아 다시 촬영하겠다고 하니 멍했던 기억이 난다.
정영민_그 장면을 공 형사가 범인을 잡는 장면을 찍고 난 뒤 진행했어야 했는데 당시 날씨 상황이 안 좋았다. 비가 계속 내려 스케줄이 자꾸 미뤄지다가 은주를 찾는 장면부터 찍어야 했다.
문병용_CG팀으로선 번개 촬영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영화의 후반부에 공 형사와 김 도사가 자신의 아이들을 포니에 태워 부산 시내를 도는 장면이 있다. 스튜디오 안에서 차량 내부를 찍고, 차 밖 풍경 소스는 합천에서 촬영했다. 시간은 30분밖에 없고, 해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크로마키를 카메라앵글 방향에 따라 달리하면서 정신없이 찍었다. 합성할 때 소스가 화면에 제대로 붙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다. 나중에 문래동에서 소스 촬영을 한번 더 찍었다. 현재 간판이 화면에 담긴 탓에 그걸 CG로 없애야 했다. 소방서 안에 수사팀을 꾸리는 시퀀스도 기억에 남는다. 소방서 안이 환기가 잘되지 않아 찜통이었고, 모기가 많아 스탭들이 무척 힘들어했다.
정영민_<괴물>을 포함한 기술적으로 힘든 작품을 많이 했던 까닭에 특별히 어려웠던 장면은 없었다. 다만 고민을 많이 했던 장면은 있다. 김중산 도사가 차를 타고 아파트 공사장에 도착하는 시퀀스였다. 보통 페인트가 칠해져 있어 조명을 밝게 하면 화면에 담기는데 그곳은 시멘트가 발라져 있어 아무리 조명을 밝게 해도 노출이 올라오기가 쉽지 않았다. 시멘트의 회색이 조명 빛을 먹기 때문이다(회색이 빛을 받으면 은색이 된다.-편집자). 공사장쪽 협조가 어렵게 이루어진 데다가 주어진 회차가 3일뿐이라 빨리 찍고 빠져야 하는 상황에서 최대한 조명을 안 움직이면서 촬영을 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조명을 크레인에 단 채로 공중에 띄웠다. 카메라를 180도 뒤집었을 때 조명을 새로 세팅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었다. 덕분에 3일 내내 조명 세팅을 최소화하면서 카메라앵글을 다양하게 움직이며 찍을 수 있었다.
문병용_결국 크레인이 화면에 걸렸는데 CG로 지웠다.
정영민_아파트 공사장은 크레인을 쓰기가 좋았다. 건물이 커서 크레인이 가려지니까. 반면 공 형사와 범인이 추격전을 벌인 장면은 대저생태공원에서 찍었는데, 그곳은 크레인을 숨길 만한 공간이 없었다. 또 온통 풀밭이라 조명을 세팅하는 데 애를 먹었다. 녹색 역시 빛을 먹기 때문이다. 원래는 아파트 공사장과 대저생태공원 장면 모두 먼 거리에 가로등으로 포인트를 주려고 했다. 하지만 “답답했으면 좋겠다”는 곽경택 감독의 주문을 받아들여 설정 조명을 하나도 넣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선택이었다. 범인이 숨어 있는 공간에 불빛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잖나.
전인한_그 아파트 공사장 찾는 게 꽤 어려웠다. 옛날 느낌의 아파트가 지금은 없으니까. 로케이션 헌팅 다닐 때마다 다들 공사장을 입에 달았을 정도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감동받은 이유
-현장이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함께 작업했던 후배들이 부담스러워하진 않던가.
=전인한_나이 많은 우리가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그들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정영민_곽 감독의 콘티북을 보면 맨 앞장에 스탭 사진과 이름 그리고 연락처가 적혀 있다. 그걸 보고 후배들 이름부터 다 외웠다. <극비수사>뿐만 아니라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스탭들 이름을 다 외운다. 그건 <천국의 계단>(1992) 할 때 배창호 감독님, 안성기 선배에게 배운 거다. 촬영이 끝난 뒤 안성기 선배님을 잠깐 뵈었는데 내 이름을 불러주셔서 깜짝 놀랐다.
전인한_50살이 되니 영화가 어떤 매체인지 이해가 조금씩 되기 시작했는데….
정영민_이 사람들이 각기 다른 현장에 나가면 나이가 가장 많다. 그런데 <극비수사> 바로 전에 작업했던 임권택 감독님의 <화장> 현장에서는 막내였다. (웃음) 젊었을 때는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야심 같은 게 있었다.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작업하면 영화 전체를 보기 힘들다. 세월이 흐르고 나니 시야가 넓어지더라. 이제야 영화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졌는데 나이가 많아서 그만둬야 하는 분위기가 됐다.
문병용_현장에 50대 감독이 몇 없다. 우리나라가 유독 그렇다. 이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현장에 남고 싶다.
전인한_예산 때문에 원하는 장면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그럴 때 각 기술 파트의 베테랑들에게 물어보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정영민_현재 왕성하게 일하고 있는 40대 후배들은 내일모레 50이 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특히 신인감독이나 프로듀서들은 우리 같은 베테랑 스탭들과 작업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노하우와 경험을 그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을 안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 역시 권위주의를 조심해야 하고. 후배가 성에 안 찬다고 해서 잔소리부터 하면 얼마나 어렵게 생각하겠나.
-얼마나 오랫동안 현장에 남고 싶나. 얼마 전 할리우드에서는 70대인 조지 밀러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내놓지 않았나.
=문병용_우리 다 영화 보고 감동받았고, 용기를 얻었잖아. (일동 폭소)
정영민_300회를 하면서 500회까지 가보자고 얘길 했다. 힘 빠질 때까지 하자고.
정의석_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태풍> 이후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60살이 되어서도 함께 만날 수 있도록 열심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