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고도 코 베이는 세상이다. 2005년에서 2006년 사이 마을에 전봇대가 하나둘 세워질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질지는 몰랐다. 밀양 주민들이 일궈온 삶의 터전 뒤로 거대한 송전탑이 세워졌다. 송전탑 근처에서 사는 것은 전자레인지 속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누군가 말한다. 과장이 아니다. 지금 여기는 아수라장이다. 가장 좋은 것은 전자레인지를 깨부수는 것이고, 당장 급한 것은 전자레인지의 전압이 더는 올라가지 않도록 막는 일이다. 누군가는 그냥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안 될 말이다. 이곳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움직일 수 있는 길조차 막혀 있다. 조금만 움직일라치면 경찰이 막아선다. 왜 막느냐고 악을 쓰며 주저앉았더니 왜 길을 막느냐며 연행해간다. 거꾸로 된 세상이다. 사람 나고 전기 났는데 이젠 전기 나고 사람 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세상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나.
부조리한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2013년부터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밀양이야말로 부조리한 현재를 보여주는 최전방이다. <밀양 아리랑>은 밀양의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외로운 투쟁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대개의 농촌이 그러하듯, 마을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할매들의 얼굴을 뒤덮은 주름은 그들이 겪어온 보도연맹 사건, 한국전쟁, 베트남전 등 한국 근현대사의 모진 세월의 흔적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늙고 연약한 할매들의 피고름마저 빨아먹을 듯이 달려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매들은 노래한다. “하늘님도 무심하고 지하님도 무심하네” 때로는 원망하며, “내 나이가 어때서,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인데” 때로는 웃으며, “미련 같은 건 없다 후회 역시도 없다” 때로는 나직이. 그러니까 이 다큐멘터리는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웃으면서 싸워보려고 애를 쓰는 밀양 할매들의 외면하기 힘든 삶이 담겨 있다. <밀양전>에 이어 박배일 감독이 밀양에서 작업한 두 번째 작품이다. 2014 DMZ국제다큐영화제 한국경쟁부문 심사위원 특별상, 2015 서울환경영화제 한국환경영화상 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