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결국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2015-08-05
글 : 배순탁 (음악평론가)
비치 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의 음악인생 담은 <러브 앤 머시>

※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기에 어쩔 수 없이 스포일러가 난무하는 글입니다. 그러나 비치 보이스와 브라이언 윌슨을 잘 모른다면, 이 글을 읽는 게 영화 보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조심스레 입장을 밝혀봅니다.

<러브 앤 머시>는 1960년대 미국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밴드 비치 보이스와 팀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를 본 배순탁 음악평론가가 흥미로운 글을 보내왔다. 영화를 통해 그는 비치 보이스가 활동했던 당대 음악사의 한 경향, 영국 출신 밴드들의 활약에 미국 밴드 뮤지션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들만의 독보적인 음악을 만들고 보존하려 애썼는지를 짚어냈다. 이어서 비치 보이스의 명반 《Pet Sounds》의 탄생과 비치 보이스의 음악에 얽힌 후일담까지 덧붙였다. 영화로 보고 듣는 음악의 기록, <러브 앤 머시>다.

때는 1960년대 중반. 흥겨운 파티가 한창인데, 파티는 뒷전인 한 남자가 밴드의 멤버를 향해 살짝 너드 같은 표정을 지으며 얘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마치 영화처럼 어디를 가도 음악이 들려.” 밴드가 인기 절정을 향해 가고 있는 만큼 빽빽하기 이를 데 없는 투어 스케줄. 그러나 밴드는 파격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남자는 그 음악을 구현하기 위해 홀로 스튜디오로 향하고, 나머지 멤버는 라이브 투어를 돌기 위해 떠난다.

이는 오래된 명제를 상기시킨다. 태초에 모든 음악은 ‘라이브’였다. 단독 공연이든, 장기 투어든, 음악은 ‘라이브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매체가 바로 ‘레코드’다. 우리가 통상 ‘앨범’, ‘음반’이라고 부르는 그것 말이다. ‘기록하다’는 뜻에서 알 수 있듯, 레코드가 발명되면서 음악에서 거세된 성질이 하나 있다. 바로 휘발성이다. 음악이 당대와 후대를 위해 보존되기 시작한 것이다. 휘발성 외에도 자취를 감춘 것이 하나 더 있다. 다름 아닌 우연성이다. 나는 이 ‘휘발성’과 ‘우연성’을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 <러브 앤 머시>를 이해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라이브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우연성을 제거해 반영구적으로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브라이언 윌슨을 포함한 1960년대 뮤지션들의 지상 과제였던 까닭이다.

대중음악사에서 1960년대는 보통 ‘최고의 황금기’로 표현된다. 음악적인 실험이 폭발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명반과 걸작들이 쏟아져나왔다. 영화 초반에 이 명반 진영을 대표하는 레코드가 저 유명한 비틀스의 《Rubber Soul》이다. 영화 속 브라이언 윌슨이 격찬하듯, 1965년 공개된 이 앨범은 “포크적이면서도 하나의 컨셉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만점에 가까운 평론이 줄을 이었고, 전세계(특히 미국) 대중이 열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비틀스를 필두로 롤링 스톤스, 킹크스, 더 후 등 영국 출신 밴드들이 대서양 건너 미국 시장을 휩쓸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언론은 이 현상을 브리티시 인베이전, 즉 ‘영국의 침공’이라고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초라해진 미국쪽은 몽키스 같은 급조된 밴드를 내세웠지만, 찻잔 속 태풍 신세를 면치 못했다. 뭔가 필사의 반격이 절실한 시점, 분연히 일어선 용자 한명이 스튜디오로 향했으니, 그가 바로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이었다.

브라이언 윌슨의 음악적 이데아 《Pet Sounds》

나는 지금까지 스튜디오라는 단어를 이 문장을 포함해서 세번 썼다. 스튜디오란 무엇인가. 바로 앨범이 탄생하는 공간이다. 1960년대 이 스튜디오라는 공간의 중요성은 대중음악계에서 가히 절대적이다. 브라이언 윌슨 같은 뮤지션들이 스튜디오에 처박혀서 당대의 최신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걸작들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기실 우리의 인생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기술의 발전’이다. 1960년대가 꼭 그랬다. 스튜디오의 녹음 테크놀로지가 놀라울 정도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이전에는 표현되지 못했던 뮤지션들의 아이디어가 실제로 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SF가 현실계로 안착한 셈이랄까. 첨언하자면, 모든 작가들에게는 대개 근원적인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을 마치 내 몸처럼 장악하고 부릴 수 있을 때, 그 누군가는 작가가 된다. 브라이언 윌슨과 당대의 뮤지션들에게 그 공간은 음악이 빚어지는 곳, 즉 스튜디오였던 셈이다.

영화가 보여주듯이 비치 보이스가 처음에 주목받고 정상의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팔할이 서프 뮤직(Surf Music)의 힘이었다. 서프 뮤직은 미국 서부, 구체적으로는 캘리포니아쪽에서 사랑받았던 록음악의 한 형식. 당시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흐르던 낙천•낙관주의를 음악으로 옮겨놓은 듯한 만듦새로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그래서 영화는 <Surfin’ USA> <I Get Around> 등 비치 보이스표 서프 뮤직을 초반에 들려주면서 스타트를 끊는다.

브라이언 윌슨은 그러나 밴드의 현재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서프 뮤직만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스튜디오로 향한 그의 목표는 단순하고 명료했다. 비틀스의 《Rubber Soul》을 능가하는 ‘완벽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완벽한 작품이란 그런데 무엇일까. 적어도 1960년대의 완벽한 작품이란 우연성의 부재와 거의 동일한 의미였다. 브라이언 윌슨은 한치의 부족함 없는 음악적인 이데아를 꿈꿨다. 우연성이라는 바이러스를 작품(作品)이라는 깃발 아래에서 하나둘 지워나갔다. 그래서 1966년 창조된 앨범이 통상 비치 보이스의 마스터 피스라고 평가받는 《Pet Sounds》다.

<러브 앤 머시>에서는 그가 이 음반을 현실화하기 위해 벌이는 분투를 제법 긴 시간을 들여 묘사해놓았다. 이렇듯 음악적인 측면을 영상을 통해 ‘섬세하고 정밀하게 재현’한 것만으로도 <러브 앤 머시>는 탁월한 음악영화라는 찬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나도 영화를 통해 “아, 《Pet Sounds》를 만들 때, 저런 식으로 작업한 거구나”, 무릎을 탁 치면서 많은 점들을 배울 수 있었다. 즉,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장점을 최대한 살려 관객에게 음악을 ‘보여주는 것’. 이 영화가 일궈낸 가장 큰 성취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38년 만에 일궈낸 성취, 《Smile》 프로젝트

영화에서 또 주목해야 할 것은 멤버들과의 갈등이다. 가뜩이나 신경쇠약을 앓고 있던 브라이언 윌슨은 멤버들과의 불화로 더욱 심각한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투어에서 돌아온 멤버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까지 서프 뮤직으로 잘나갔는데, 이런 생고생을 왜 하냐”는 것이었다. 여기에 피니시 블로를 날리는 인물이 브라이언 윌슨의 아버지다. 그는 실제로도 브라이언 윌슨과 사이가 좋지 않은 걸로 알려졌는데, 갑자기 스튜디오로 찾아와서는 “새 밴드를 찾아냈다”며 자랑질을 시작한다. 그런데 들어보니 헐, 이건 완전 비치 보이스 짝퉁이네. 선레이스(The Sunrays)라는 이름의 이 밴드는 짝퉁답게 별 활약도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영화에는 밴드 이름이 안 나오니까 알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브라이언 윌슨의 야심대로 《Pet Sounds》는 가히 완벽한 앨범이었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실패하고, 영화에서는 “평론가들과 뮤지션들만 좋아하는 음반”이라는 식으로 설명된다. 실제로도 그랬다. 심지어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는 수록곡인 <God Only Knows>를 듣고, “내 인생 최고의 노래” 라는 독후감을 남겼지만, 그게 전부였다. 물론 이후 《Pet Sounds》 앨범 전체와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엔딩을 장식하기도 한 <God Only Knows>는 그 진가를 인정받아 상업적으로 거대한 탑을 쌓는 데 성공한다. 세월의 검증을 끝마친 클래식이 된 것이다. 그러나 휘발성과 우연성이 거세된, 숨 막히는 완벽한 세계 속에서 브라이언 윌슨의 정신은 피폐해져만 갔다. 영화는 여기에서 브라이언 윌슨의 개인사를 음악사와 함께 절묘하게 교차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존 쿠색이 연기하는 브라이언 윌슨의 개인사쪽에서 중요한 인물은 총 두명, 주치의였던 유진 랜디 박사와 이후 그의 아내가 되는 멜린다 레드베터다. 영화 제목인 <러브 앤 머시>는 바로 이 둘과 브라이언 윌슨과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뜻한다. 어떤 관계였는지는 포털 사이트에 세명의 이름을 쳐서 조금은 꿰고 영화관으로 가기를 바란다. 파악하는 데 채 10분도 안 걸릴 테니 부담 가질 필요는 전혀 없다.

《Pet Sounds》 이후 브라이언 윌슨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활동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기에는 조금씩 다 부족했다. 재기를 위해 온갖 치료를 다 받았지만 별 무소용. 《Smile》 프로젝트를 포함한 앨범 계획도 하나둘 틀어지는 와중에 급기야 그를 뺀 나머지 멤버는 <Kokomo>를 발표하며 짧지만 황홀한 제2의 전성기를 누린다.

브라이언 윌슨은 결국 2004년이 돼서야 필생의 역작인 《Smile》 프로젝트를 완결해 세상에 내놓는다. 앨범 타이틀은 의미심장하게도 ‘Brian Wilson Presents Smile’. 1966년 말에 처음 기획한 것이었으니 무려 38년 만에 일궈낸 성취였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 난 뒤 <Brian Wilson Presents Smile>을 꼭 구해서 들어보기를 권한다. 완벽주의라는 강박을 벗어던진, 한 인간으로서의 브라이언 윌슨이 거기에 머물러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것이 비록 ‘우연히’ 찾아와 어쩌면 ‘휘발될 수 있는 것’일지라도, 그를 구원한 건 결국 음악이 아닌 사랑이었다.

부기: 영화에는 ‘밴’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정확한 이름은 반 다이크 파크스다. 브라이언 윌슨과 《Smile》 프로젝트를 함께한 작사가다. 1960년대 브라이언 윌슨 역을 맡은 폴 다노처럼 실제 인물과의 싱크로율이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다. 사진 꼭 찾아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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