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독특한 화법을 통해 묵직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다 <하루>
2015-08-05
글 : 김보연 (객원기자)

택시 기사 유네스(파르비즈 파라스투이)는 어느 날 자신의 인생을 바꿀 손님을 만난다. 몸이 심하게 아픈 임신부 세디예(소헤일라 골라스타니)를 태운 것이다. 평소대로라면 목적지인 병원에 내려준 것만으로 유네스의 일은 끝나겠지만 그녀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사정을 안 뒤 유네스가 엉겁결에 그녀의 보호자 역을 맡고 만다. 그런데 세디예의 몸상태는 갈수록 나빠지고 뱃속의 아기마저 위기에 처하자 유네스의 입장 또한 난처해진다.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1999년에 첫 장편영화를 연출한 뒤 이란뿐 아니라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레자 미르카리미 감독의 최신작 <하루>는 독특한 화법을 통해 묵직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다. 감독은 처음 만난 여인을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는 주인공 유네스의 사연과 속마음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유네스는 생업까지 미뤄가며 병원 의자에서 쪽잠을 자고, 심지어 ‘아내를 구타한 몹쓸 남편’이라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이를 해명하지 않는다. 어떨 때는 그의 그런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영화는 유네스의 무표정과 느릿한 행동을 차분히 보여주기만 한다. 그리고 시간이 좀더 흐르고 나서야 관객은 유네스의 행동이 얼마나 옳은 일이며 감동적인 선택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영화의 이야기와 유네스의 선택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감독이 취한 연출 방식은 자신이 의도한 주제를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에서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상영 시간 내내 유네스를 곤란한 상황 속으로 밀어넣으며 그가 내리는 선택이 얼마나 희생적인 것인지 꾹꾹 눌러쓰듯 강조한다. 동시에 유네스의 주위 사람들은 지나치게 불친절하고 무신경한 사람으로 그려지고, 같은 맥락에서 세디예는 한없이 불쌍한 여자로 묘사된다. 중요한 장면마다 구슬픈 음악을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하루>는 타인을 향한 주인공의 강한 책임감이 깊은 인상을 남기지만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힘을 줘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영화이다. 관객이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겨놓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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