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에단 헌트, 스파이 존재증명을 완성하다
2015-08-13
글 : 장영엽 (편집장)
시리즈 다섯 번째 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크리스토퍼 매쿼리 감독 인터뷰

올여름 극장가의 가장 강력한 외화 경쟁작이 베일을 벗었다. 7월30일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얘기다. 브라이언 싱어의 오랜 조력자이자 <유주얼 서스펙트> <작전명 발키리>의 각본가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매쿼리가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프랜차이즈와 인물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질문을 장전하고 있는 작품이다. 마침 영화가 개봉하는 30일, 톰 크루즈와 크리스토퍼 매쿼리가 내한했다. 다섯 번째 <미션 임파서블>의 면모와 더불어 인터뷰로 만난 톰 크루즈, 크리스토퍼 매쿼리의 이야기를 함께 전한다.

“생각해봐, 에단. 그건 불가피한 선택이었어. 냉전도 없고, 지켜야 할 비밀도 없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대통령이 네 허락 없이 나라를 움직이고 있는 거야. 개자식,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리고 넌 깨닫는 거지. 모든 게 끝났다는 걸. 네가 한물간 하드웨어라는 걸 말야.” 브라이언 드 팔마가 연출한 <미션 임파서블>(1996)에서, 왜 동료들을 배신했느냐는 에단 헌트(톰 크루즈)의 질문에 짐 펠프스(존 보이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는 후배 첩보원 에단 헌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1편의 악당 짐 펠프스의 퇴장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그가 바로 영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전신인 TV시리즈 <제5전선>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의 히어로였던 선배 스파이의 죽음으로부터 탄생한 영화 <미션 임파서블>은 최첨단 기술과 화려한 개인기로 무장한 신세대 스파이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1편으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네편의 영화를 거치며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간과했던 질문이 하나 있다. 세계 평화를 위해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IMF, 그들은 과연 어떤 조직이냐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탄생한 제이슨 본과 살인면허를 받기 이전, 결함 많은 견습 스파이의 모습으로부터(<007카지노 로얄>) 다시 시작한 21세기 제임스 본드와 달리,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에단 헌트는 1편부터 이미 완성된 스파이였다. 그에겐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질 새가 없었다. 생화학무기나 핵미사일로 세계를 정복하려는 광기의 악당들을 처단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미션들을 완수해내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새 시대의 스파이는 어떤 존재들이며,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7월30일 개봉한 다섯 번째 <미션 임파서블>에서, 우리는 드디어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이 질문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질문으로 관객을 인도하는 이는 에단 헌트와 가장 닮은 적이다.

시리즈에 없던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은 IMF 조직의 위기에 주목한다. 시리즈의 4편인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에서 에단 헌트와 IMF 요원들은 핵미사일로 지구를 날려버리려던 테러범을 제압했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미국 정부의 시선은 곱지 못하다. 크렘린궁을 폭파한 테러 사건에 연루되고, 테러리스트에게 핵미사일 발사코드를 제공한 IMF 요원들은 정부의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임무를 세련되지 못한 방식으로 처리한 위험한 집단일 뿐이다. CIA의 국장 헌리(알렉 볼드윈)는 IMF가 더 큰 사고를 치기 전에 CIA에 조직을 흡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잠적한 에단 헌트의 행방을 IMF 요원들에게 캐묻는다.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IMF를 다시금 기능하게 하는 건 오히려 악당들이다.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의 흥미로운 대목은 IMF 요원들에게 임무를 부여하는 이가 미국 정부가 아닌 국제 테러조직 ‘신디케이트’라는 점에 있다. CIA의 감시망에조차 들어온 적이 없는 비밀스러운 테러조직 신디케이트는 IMF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적인 악당들의 연합체다. 오직 에단 헌트만이 이들의 존재를 감지하고 신디케이트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이들 조직은 늘 IMF보다 한발 앞서 있으며 때로는 IMF를 이용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벤지를 연기한 사이먼 페그는 “신디케이트가 IMF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대로 이 영화에서 IMF와 신디케이트는 배트맨과 조커가 그렇듯 서로를 완성시키는 불가분의 관계다. 악당이 있기에 미션도 존재한다는 얘기다.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두 조직의 대결에 초점을 맞춘 만큼,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은 은막의 뒤에서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임무를 수행하는 진짜 스파이들의 세계를 정교하게 그려내는 데 공을 들인다. 빈국립오페라극장에서 에단 헌트와 벤지가 신디케이트의 뒤를 쫓는 대목은 이들이 어떤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암시하는, 5편의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오페라 <투란도트>의 막이 오르고 극장을 찾은 관객은 아름답고도 장엄한 아리아에 빠져들지만 무대 뒤편에서는 턱시도를 근사하게 차려입은 암살자가 오스트리아 총리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있다. 오페라의 클라이맥스에 예정된 암살을 막기 위해, 무대 뒤에서 암살자들과 에단 헌트가 맞붙는 격투 장면은 매너와 품위로 무장한 외교가의 뒤편에서 실제로는 어떤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크리스토퍼 매쿼리의 우아하고도 긴장감 넘치는 은유라고 할 법하다.

스웨덴 배우 레베카 퍼거슨이 연기하는 일사 파우스트는 이 영화에서 가장 반짝이는 존재다. IMF와 신디케이트의 연결고리인 그녀는 “여성 버전의 에단 헌트”이자 결정적인 순간 IMF의 허를 찌르는, 속을 가늠할 수 없는 인물이다. <카사블랑카>와 <오명>의 잉그리드 버그먼(‘일사’라는 이름은 명백히 <카사블랑카>의 일사 런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는 이 여성 캐릭터는 바이러스를 자기 몸에 주입했던 <미션 임파서블2>(2000)의 니아(탠디 뉴턴)처럼 희생적이지도 않고, 에단 헌트의 아내 줄리아(미셸 모나한)처럼 보호받아야 할 존재도 아니며 제인 카터(폴라 패튼)나 젠(매기 큐) 요원처럼 눈요깃거리로 소비되지도 않는다. 적의 어깨에 올라타 순식간에 허벅지로 목을 조르는 멋진 시그니처 액션 기술을 장전한 일사는 퇴장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여성이며, 이는 다섯 번째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룬 중요한 성취라고 할 만하다. 크리스토퍼 매쿼리는 “이제까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본 적이 없었던, 에단 헌트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을 이 영화가 보여주었으면 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런 그의 바람으로부터 탄생한 인물이 바로 일사 파우스트다.

육체로 만든 스턴트의 미덕

치밀한 이야기와 매혹적인 캐릭터로 승부하는 시나리오를 써왔던 각본가 출신답게, 크리스토퍼 매쿼리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주인공인 에단 헌트에게도 자신의 인장을 남겼다. CIA 국장 헌리의 말이 그 힌트다. “에단은 방화범인 동시에 소방관이야.” 돌이켜 생각해보면 <유주얼 서스펙트>(1995)의 카이저 소제부터 <작전명 발키리>(2008)의 클라우스 폰 슈타펜버그 대령, <잭 리처>(2012)의 잭 리처까지, 매쿼리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대개 어떤 구획에도 명확하게 들어맞지 않는 경계에 위치한 자들이었다. 목격자와 범죄자, 테러리스트와 선구자, 살인자와 해결사. 매쿼리 월드에서는 누구나 한끗 차이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며 그건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의 에단 헌트도 예외가 아니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서라면 동료들의 신상 정보가 담긴 디스크를, 핵미사일 발사코드를 달콤한 미끼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믿는 그는 늘 악을 끌어당기는 존재이자 악을 처단하는 심판자였다. 이러한 에단 헌트의 이중적인 모습을 크리스토퍼 매쿼리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에단 헌트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비슷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신디케이트의 수장 솔로몬 레인(숀 해리스)과의 대결을 통해 보다 구체화한다.

매쿼리의 개성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액션 시퀀스에서도 두드러진다. 007 시리즈와 비견할 만큼의 최첨단 첩보 도구들이 곳곳에 등장했던 브래드 버드의 4편과 달리, 크리스토퍼 매쿼리는 아날로그 스타일의 액션들로 스크린을 채운다. “요즘 액션 시퀀스는 카메라를 지나치게 흔드는 것 같다. 그건 정말로 위험한 일들이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한다. 우리는 한발 물러나 어떤 액션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지켜보길 원했다.” 개봉 전부터 화제였던 비행기 액션 시퀀스부터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전매특허인 낙하 장면, 모로코 마라케시의 고속도로에서 거의 땅바닥에 닿을 듯 몸을 기울여 돌진하는 바이크 추격 신까지 영화는 빠른 편집을 지양하고 오직 숙련된 육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스턴트의 미덕을 긴 호흡으로 들여다본다.

좀더 빠르게, 좀더 현란하게, 좀더 자극적으로 불가능한 미션을 완수하는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보다 중요한 건 제이슨 본과 제임스 본드가 거쳐갔지만 아직 에단 헌트가 하지 못했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크리스토퍼 매쿼리는 놓치지 않았다. 냉전은 끝났지만 세계는 여전히 수많은 음모와 위험으로 가득하다. 이 세계에서 스파이들은, 혹은 에단 헌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과 악의 경계가 흐릿한 잿빛 세계를 배회하는 이들을 조명한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은 브라이언 드 팔마의 <미션 임파서블> 이후 다소 주춤했던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서늘한 기운을 다시금 시리즈에 불어넣은 작품이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된 에단 헌트의 미래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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