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원하는 신체에 내 정신을 이식할 수 있다 <셀프/리스>
2015-09-09
글 : 김현수

내가 원하는 몸에 내 정신을 이식할 수 있다? 불멸의 삶을 꿈꾸는 인간의 과학적 상상력이 탄생시킨 기억이식수술 ‘바디쉐딩’은 SF스릴러 <셀프/리스>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설정이다. 이식 가능한 신체만 있다면 그의 몸과 정신 위에 나의 정신을 덧씌우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새 삶이 가능하다는 것. 그럼 70살 할아버지도 30살의 신체 건장한 남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된다. 물론 별반 새로울 것 없는 아이디어다. 수많은 SF영화에서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들이 인간의 신체를 강탈하던 방식이 바로 이와 같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셀프/리스>는 이 흔한 SF장르의 설정을 과감하게 끝까지 밀어붙인다.

뉴욕 최고의 부동산 재벌 데미안(벤 킹슬리)은 몸에 종양이 퍼질 대로 퍼져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딸 클레어(미셸 도커리)조차 그를 오랫동안 외면하고 살았을 정도로 독하게 일만 하며 살아온 그는 죽음 앞에서 의지가 흔들린다. 데미안은 반신반의하다가 ‘바디쉐딩’ 전문의 울브라이트 박사(매튜 굿)를 찾아간다. 별다른 부작용 없이 가능하다는 말만 믿고 덜컥 몸을 바꿔버린 데미안은 지난 수십년간 잊고 살아왔던 젊음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데미안은 점점 이상한 환영에 시달리고 울브 라이트 박사가 처방해준 약을 제때 복용하지 않을 때마다 그 환영은 마치 뚜렷한 기억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셀프/리스>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 <신들의 전쟁>(2011) 등을 연출했던 비주얼리스트 타셈 싱 감독의 신작이다. 그의 전작들은 대부분 화려한 색감과 세트 디자인 등의 역동적인 미장센을 추구한 작품이었고 그로 인해 많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런데 <셀프/리스>에서는 타셈 싱 특유의 화려한 영상미를 기대하기 어렵다. 심지어 기억이식수술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순간을 묘사할 때도 일반적으로 흔히 병원에서 볼 수 있는 CT 촬영기에 들어갔다 나오는 식의 묘사가 전부다. 설정의 아이디어와 스타 캐스팅만 빼면 영화의 확실한 비전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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