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크레이븐의 이름은 영화역사의 지층에 새겨진 선홍빛의 단층이다. 슬래셔 무비를 창시한 건 아니지만(그보다 먼저 마리오 바바의 <죽은 신경의 경련>(1971)이 있었다) 1970년대 호러영화의 수작으로 꼽히는 <왼편 마지막 집>으로 데뷔한 이래 그는 줄곧 이 장르에 천착해왔다. 출세작 <나이트메어>는 그의 이름을 장르의 전설로 끌어올렸으며, <스크림>(1996)은 침체에 접어들던 장르의 인기를 성공적으로 부흥시킨 기념비적 역작이었다. 이 두편에 각기 등장한 ‘프레디 크루거’와 ‘고스트 페이스’ 캐릭터는 슬래셔 무비의 상징적인 아이콘이자 현대 문화의 일부로 관객의 뇌리에 선명히 각인되었다.
그러나 <나이트메어>와 <스크림>만으로는 웨스 크레이븐의 영화세계가 지닌 의의를 다 풀어낼 수 없다. 유작이 된 <스크림 4G>에 이르기까지 40년에 달하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항상 장르의 명맥을 따라 발전과 쇠퇴를 같이해왔으며, 토브 후퍼처럼 그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감독들 상당수가 이후 경력이 단절된 걸 염두에 두자면 크레이븐의 존재는 단연 독보적이다. 웨스 크레이븐의 작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계보학적 탐구의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위튼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존스 홉킨스에서 철학 학위를 딴 지식인이었던 그는 슬래셔 무비의 관습을 정립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당대 미국의 사회•정치적 이슈와 접목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나갔기 때문이다. B급 장르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편견과 달리 그의 영화에는 지성인 관객의 진지한 관찰을 요구하는 인문학적 요소들이 숱하게 깔려 있다.
인종간의 갈등, 성차별 등의 소수자 문제, 가족 이데올로기의 허구성, 청년문화의 실상, 영상매체가 현실에 끼치는 영향, 심지어 테러리즘에 이르기까지 크레이븐의 영화들이 다루는 사회적 이슈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현대 미국의 사회상에 대한 일대 프레스코화를 완성할 수 있다. 그의 영화 속 괴물들은 단순한 사이코가 아니라, 미국 사회의 정상성이 은폐하는 불편한 이면의 진실들을 들추어내기 위한 폭로의 장치였다. 웨스 크레이븐의 영화는 현대 공포영화가 걷게 될 방향을 노정한 이정표이자 미국이라는 다면체에 새겨진 각기 다른 면들이었다.
<왼편 마지막 집> The Last House on the Left, 1972
B급 호러의 장인으로 알려진 웨스 크레이븐이지만, 정작 본인은 여러 인터뷰에서 누벨바그나 네오리얼리즘영화에 심취했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데뷔작 <왼편 마지막 집>은 잉마르 베리만의 걸작 <처녀의 샘>을 익스플로이테이션 버전으로 비튼 리메이크작이다. 17살 생일을 맞은 중산층 가정의 소녀 마리가 친구와 함께 록밴드 공연에 가던 중 교도소를 탈옥한 범죄자 일당에 붙잡혀 폭행, 강간을 당하고 살해되자 아이들의 부모들이 복수에 나서게 된다. 무미건조한 다큐멘터리처럼 폭력과 강간을 묘사한 수법은 당대에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져, 엄청난 항의와 상영 중단 시도를 일으킬 만큼 논란이 되었다(이 영화 작업에 돌입하기 전 웨스 크레이븐은 영화적 동료 숀 S. 커닝엄의 다큐멘터리 포르노 <투게더>(1971)의 편집을 맡은 바 있다). <왼편 마지막 집>의 소재와 이야기, 테크닉은 뒤에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와 같은 아류작으로 이어지며 유사 장르의 일대 유행을 낳는다. 8만7천달러를 들여 310만달러의 흥행수익을 거두며 큰 성공을 거둔 이 처녀작에서 크레이븐은 계급과 성차의 대립, 프로이트주의에 영향받은 성적 모티브의 시각화, 히피의 전성기에 개방적인 성문화에 눈떠가던 소녀들과 부모 세대의 인식차 등을 그려내며 일찌감치 진지한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공포의 휴가길> The Hills Have Eyes, 1977
로스앤젤레스로 휴가를 떠나던 카터 가족은 여행 도중 유산으로 받은 광산을 찾기 위해 사막을 가로지르기로 한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발이 묶인 이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돌연변이 괴물의 습격을 받게 되는데, 사실 사막은 군의 원자폭탄 실험이 있었던 곳이며 방사능에 의해 기형이 되어 식인풍속으로 연명하는 주피터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15~16세기 스코틀랜드의 식인종족 소니 빈의 전설에서 모티브를 따와 로드무비와 서부극을 호러와 뒤섞은 이 혼성장르 무비를 통해서 웨스 크레이븐은 카터 일가를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으로, 주피터 일가를 주류 백인 사회에서 배제된 소수자로 표상하면서 미국의 인종-계급주의가 품고 있는 살벌한 민낯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이트메어> A Nightmare on Elm Street, 1984
여고생 낸시 톰슨은 친구 티나가 꿈속의 살인마 프레디에게 살해당했음을 알고 진실을 이야기하지만 어른들은 황당무계한 말로 넘기며 믿어주지 않는다. 결국 낸시는 스스로 프레디에 관한 진실을 파헤치며 정면으로 악몽 속의 살인마와 맞서게 된다. 상업적으로 승승장구하던 크레이븐의 경력은 <악령의 리사>(1981)의 부진과 <늪지의 괴물>(1982)의 실패로 인해 위기에 봉착했다. 이때 그는 1981년 무렵부터 구상하던 ‘꿈에서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의 아이디어와 유년 시절 화장실에서 목격했던 ‘얼굴에 화상을 입은 노숙자’의 기억을 결합해 ‘프레디 크루거’라는 호러영화 사상 최고의 캐릭터를 창조해낸다. 여러 영화사를 전전하다 당시엔 중소 영화사에 지나지 않았던 뉴라인 시네마에 안착해 만들게 된 <나이트메어>는 제작비 180만달러로 미국 내에서만 2600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침몰해가던 크레이븐의 영화 생명을 건져냈다.
원리주의 침례교(Fundamentalist) 집안에서 태어나 강압적인 부모 밑에서 성장하며 반발심을 키워온, 심지어 영화계에 뛰어들자 부모와 의절까지 하게 된 웨스 크레이븐은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 기독교적 윤리와 미국식 가족주의에 대한 회의감을 <나이트메어>에서 명료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는 한편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공포영화의 컨셉은 직접적으로는 <영혼의 목걸이>(1989), 멀게는 <스크림> 시리즈로 이어지며 웨스 크레이븐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참고로 낸시 역의 헤더 랜겐캠프는 <나이트메어3: 꿈의 전사들>(1987)에서 같은 배역으로 다시 출연하게 되며, 이 작품 이전에 선한 역할 전문배우였던 로버트 잉글런드는 빈센트 프라이스 이래 최고의 호러 배우 반열로 부상해 <뉴 나이트메어>(1994)까지 프레디 크루거를 연기하게 된다.
<칠러> Chiller, 1985
대기업 집안의 자제 마일즈 크레이튼이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자 그의 어머니 마리온은 치료법이 개발될 날을 고대하며 아들을 극저온 냉동시킨다. 10년의 세월이 지나 제어컴퓨터의 이상으로 깨어난 마일즈는 건강을 회복하고 경영일선에 복귀하나 과거의 선량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여직원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의붓누이 스테이시를 겁탈하려고 시도한다. 마리온은 아들이 육체는 살아났지만 정작 영혼은 돌아오지 않은 악마가 되어버렸음을 알게 된다.
TV영화로 기획되어 1985년 5월22일 방영된 <칠러>(KBS2 토요명화 방영 제목은 <냉동인간>)는 <환상특급>(1985~88) 시리즈에도 참여하면서 다방면으로 호러적 상상력의 외연을 개척하던 웨스 크레이븐의 숨겨진 수작이다. 기계에 의존해 수명을 연장하려는 자본가 가족의 등장은 자본주의의 악마성에 대한 노골적인 은유이자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가져올 비인간화에 대한 우려이기도 하다. 기술 문명 속 인간의 황폐화라는 테마는 다음 작품인 <컴퓨터 인간>(1986)으로 고스란히 연결된다.
<컴퓨터 인간> Deadly Friend, 1986
죽은 사람을 되살려냈지만 영혼마저 회복시키지는 못했다는 <칠러>의 테마는 <컴퓨터 인간>에서도 계속된다. <칠러>의 경우가 기계 안에 인간의 육체를 집어넣는다면, 역으로 <컴퓨터 인간>은 인간의 머리에 기계를 이식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결론은 같다. 인간성의 파멸. <컴퓨터 인간>에서 웨스 크레이븐은 제임스 웨일의 <프랑켄슈타인>(1931) 같은 유니버설제 B급 고전 호러로부터 인공생명을, 프레드 M. 윌콕스의 <금지된 세계>(1956)의 만능 로봇 로비로부터 비비의 아이디어를 가져와 자신의 장기대로 변형시킨다. 로봇 비비는 노파의 총에 맞아 부서지고, 폴의 여자친구 사만다는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가 계단에서 밀어버리는 바람에 뇌출혈로 목숨을 잃는다. 폴은 비비의 인공두뇌를 사만다의 뇌에 이식하는 것으로 죽어버린 둘을 함께 살려내려 하지만 결론은 호러영화에 걸맞은 괴물의 탄생이다. 혼성모방인 영화의 장르적 정체성만큼이나 ‘반은 인간, 반은 기계’(half man half machine)인 이 혼성괴물은 기성세대의 타락과 죄악, 오판이 빚어낸 귀결인 셈이다. 미국 사회를 겨냥한 웨스 크레이븐식의 비극적 SF 묵시록.
<영혼의 목걸이> Shocker, 1989
악마와 계약한 살인범 핑기는 전기의자로 사형되는 순간, 전파를 타고 돌아다니는 유령이 된다. 안테나, 전력 케이블, TV방송 등을 가리지 않고 출몰하는 핑기의 악령은 사람의 몸에 빙의하며 살인행각을 일삼고, 핑기의 손에 여자친구를 잃은 대학생 조나단은 그를 막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영혼의 목걸이>는 비록 감독이 본래 의도한 대로 시리즈물이 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오컬트물에 미디어 철학적인 해석을 접목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발상을 선보인 영화이다. TV 수신기와 뉴스 영상을 틈틈이 보여주며 악령의 존재를 의식하게 한 크레이븐의 연출은 핑기가 주인공 조나단의 친부임을 밝히면서 보다 전복적인 함의에 도달한다. 젊은 세대 스스로가 미디어 권력에 의한 주류 이데올로기(=아버지의 이름)를 거부하고 자기 삶과 미래의 주체로 거듭나길 바라는 사려 깊음이, 불과 10일 만에 졸속으로 촬영을 마쳐야 했던 B급 호러의 심장에 자리하고 있다. 악역 핑기를 연기한 미치 필레기는 공교롭게도 나중에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드라마 <X파일>에서 스키너 부국장을 연기하게 된다.
<공포의 계단> The People Under the Stairs, 1991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흑인 소년은 도둑질이라도 하고자 건물주의 집으로 들어간다. 부동산 투기꾼인 건물주 부부는 (당연히) 백인인데 독실한 신앙인이면서도 방문객은 모조리 죽여버리고 돈을 모으는 데 환장해 있는 모순투성이 인물이다. 부유한 WASP(백인, 앵글로색슨계, 프로테스탄트)와 가난한 흑인이라는 인종의 차이,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세련된 집안과 지저분하고 어두컴컴한 지하실의 공간 대비, 백인이지만 부모의 죄를 속죄하고자 흑인 소년과 손잡는 소녀는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이분법적 대립구도, 갖은 악행으로 모은 부부의 재산은 금고가 폭발하면서 빈민들에게 공평히 분배된다. 가장 웨스 크레이븐다운 요소들만 모인 총집대성 격의 영화.
<나이트메어7: 뉴 나이트메어> New Nightmare, 1994 <스크림> Scream, 1996
<할로윈>(1978)을 필두로 <나이트메어> <13일의 금요일>이 촉발시킨 슬래셔영화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창의성 없는 속편과 아류작들이 양산되고,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비디오테이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호러의 인기는 하향일로를 걷고 있었다. 장르의 수명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웨스 크레이븐은 <나이트메어7: 뉴 나이트메어>와 캠퍼스 슬래셔 <스크림>을 내놓았다. 전자는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1973)처럼, 영화 만드는 현장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메타 시네마(Meta Cinema)로서 <나이트메어> 시리즈를 종결짓는 찬란한 고별사였고(프레디 역의 배우 로버트 잉글런드와 감독 웨스 크레이븐이 본인 역으로 출연한다), 후자는 슬래셔영화의 플롯을 따라 모방 범죄를 일으키는 틴에이저 청소년을 내세움으로써 영화와 현실의 경계선을 허물고, (서부극에선 존 포드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구축한 슬래셔 무비의 전통과 관습을 스스로 해체하는 작업이었다.
<나이트 플라이트> Night Flight, 2005
21세기 들어서 클래식 슬래셔 무비와 아시아 호러물의 리메이크가 성행하자 웨스 크레이븐의 시선은 다른 영화적 가능성을 곁눈질하게 되었다. 드라마 <뮤직 오브 하트>(1999)와 더불어 호러 이외의 장르로 외도를 시도한 <나이트 플라이트>는 그가 스릴러영화를 만들면서도 장르적 쾌감과 작가의식을 관철할 수 있음을 입증한 수작이다. 일상적 삶의 평범성이 붕괴하는 자리에서 공포는 찾아온다는 웨스 크레이븐의 믿음은 이 영화에서도 변함없이 유효하다. 로맨스물처럼 서두를 연 영화는 여객기 안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선택의 여지없는 극한 상황으로 인물을 몰아넣음으로써 스릴러적 긴장감을 자아내다가 비행기가 착륙하고 미국식 2층 주택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슬래셔 무비의 익숙한 영토로 복귀한다. 사이코 살인마는 테러리스트로 바뀌고, 그의 사냥감이 된 여주인공 리사(레이첼 맥애덤스)는 안간힘을 다해 위험을 극복해내야 한다. 종국에는 테러리스트를 물리치고 정부요인의 목숨을 구하며 자신의 트라우마까지 치유하게 되는 리사의 모습은 감독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에게 전하고자 한 바를 그대로 대변한다. 9•11 사태 이후의 집단적 정신외상을 딛고 일어서려면, 현실로부터 눈 돌리지 말고 테러리즘의 공포를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는 노(老)대가의 현명한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