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일은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며, 호불호가 분명하다. 스튜디오에 들어오자마자 전자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대는 그에게 담배 끊었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상황에 맞게 담배와 전자담배를 섞어서 피운다.” 건강을 챙길 나이가 되면서 담배를 끊은 줄 알았다. “담배 끊어서 건강해지면 다 끊지. 허허허.”
<탐정: 더 비기닝>에서 성동일이 연기한 형사 노태수 역시 빙 돌려서 말하지 않는 중년 남자다. 왕년의 그는 웬만한 조폭이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잘나가 광역수사대의 ‘식인 상어’라고 불렸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생기면서 좌천당해 지금은 후배인 팀장 밑에서 괄시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쪽 같은 성격을 가진 까닭에 후배들 앞에서는 언제나 당당하고 엄격하다. 하지만 천하의 노태수도 집에 들어오면 영 어깨를 못 편다. 고작 요구르트 두병 까먹은 걸 가지고 아내로부터 아이들 간식 뺏어먹었다고 한소리를 듣지 않나, 소변이 변기에 다 튀었다고 구박당하기 일쑤다. 직업은 강력계 형사지만 집에서는 영락없는 옆집 아저씨 같은 모습을 갖춘 그다. 성동일이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내 얘기 같다”고 느낀 것도 “대한민국 평균 중년 남자의 애환이 잘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노태수는 나와 다른 남자지만 그에게 일어난 일들은 충분히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였다. 상황이 너무 영화적이지 않아서 좋았고.” 노태수는 딱 성동일이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크기의 그릇이었다. 그 역시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중년 가장이 아닌가.
“그저 얻어먹었다.” 캐릭터가 직장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고 대사가 일상적이며, 몸이나 말이 아닌 상황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인 까닭에 노태수는 “배우가 애써 무언가를 만들 필요가 없는 캐릭터”였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변화는 그의 흰머리다. 드라마와 영화를 통틀어 그가 흰머리로 출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직은 젊어 보이는 걸 좋아하지, 나이 들어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내도 검은색으로 염색하라고 하고. 흰머리 아이디어는 제작사 대표님과 감독님의 의견이다. 낯설진 않았냐고? 오히려 우리 아버지 모습 같아서 좋았다.” 같은 강력계 형사였지만, 가죽점퍼 같은 거친 느낌의 의상을 주로 입었던 드라마 <갑동이>(2014) 때와 달리 노태수는 세련된 트렌치코트를 입는다는 점에서도 달랐다. “<갑동이> 때 입었던 옷은 전부 내 옷이었다. 의상 갈아입기 귀찮아서 집에서 그 옷 입고 현장 가서 찍고 들어왔다. (웃음) 이번에는 감독님께서 세련된 옷을 입히고 싶어 하셨다. 경찰대 출신으로 승승장구하다가 어떤 일을 겪으며 좌천됐다는 전사(全史)를 표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라는 게 성동일의 설명이다.
노 형사와 대만이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게 이야기의 한축이라면, 두 남자가 화학작용을 일으켜 웃음을 유발하는 버디 무비가 또 다른 축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배우가 대사나 몸짓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가 아닌 까닭에 성동일과 권상우, 둘의 호흡이 중요했다. “시나리오를 보면 웃기는 건 다 (권)상우가 한다. <톰과 제리>를 생각하면 된다. 고양이 톰(성동일)이 제리(권상우)한테 당하거나 도움을 받는 식이다. 상우한테 고마웠던 건 술도 못하는데 먼저 다가와서 술 마시자고 얘기해준 것이다.” 촬영을 시작했을 때부터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은 매일 술을 마시며 호흡을 맞췄다고 한다. “제작사 대표한테는 미안한 얘기인데 술 마시다보니 영화가 끝났더라. (웃음)”
성동일의 차기작은 영화 <감옥에서 온 편지>(감독 권종관)와 <사랑하기 때문에>(가제, 감독 주지홍)다. 또 얼마 전에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도 합류했다. 매 작품 각기 다른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음에도 성동일은 연기했던 캐릭터 모두 ‘성동일’이라고 말한다. “<미스터 고>(2011)의 성충수든, <탐정: 더 비기닝>의 노태수든 결국은 다 성동일이다. 성동일 안에서 때로는 성충수 같은 모습이, 또 때로는 노태수 같은 모습이 나올 뿐이다. 종이 한장 차이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다.” 그게 믿고 보는 배우 성동일의 또 다른 면모가 기다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