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주머니에 두손을 푹 찔러 넣고, 둥그스름하게 앞으로 만 어깨를 설렁설렁 흔들며 설경구가 스튜디오로 걸어들어온다. 통이 넉넉한 바지에 슬리퍼 차림까지, 아주 익숙한 폼이다. 바로 엊저녁 동네 슈퍼에서 만났을 법한 장삼이사의 모습. <서부전선>의 장남복이 장씨의 몇째 아들인지는 모르겠으나 “남한 소시민을 대표”하는 캐릭터인 것은 분명하다. 소속사의 시나리오 검토 부서에서 장남복 캐릭터를 두고 “설경구와 싱크로율이 매우 높음”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니 사람들 보는 눈은 비슷한가보다. “사실 뭐, 다른 책(시나리오)을 봐도 희한하게 그 안에 내가 다 들어 있다. 내가 올곧게만 사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런데 내가 (장남복처럼) 그렇게 어리바리한가? 내가 그런가? (웃음)”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53년 7월, 나이 마흔줄에 서부전선으로 끌려간 남복은 “힘도 없고, 백도 없고, 국가도 모르고, 민족도 모르고, 그저 빨리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게 목표”인 사내다. 북한의 탱크부대 영광(여진구) 역시 민족 해방이라는 대의보다 고향에 두고 온 노모와 여자친구 걱정이 앞서는 소년병일 뿐. <서부전선>은 비밀문서를 지키려는 남복과 탱크를 사수하려는 영광이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며 티격태격하는 과정을 통해 전쟁을 풍자하는 휴먼 코미디다. 설경구는 “전쟁은 배경일 뿐인 전쟁영화”라는 점에서 <서부전선>이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6년 전인가 처음 <서부전선> 시나리오를 읽었다. 당시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해서 TV에선 <로드 넘버 원> <전우>가 만들어졌고 영화로는 <포화속으로>(2010), <고지전>(2011)이 제작되고 있었다. 그땐 그렇게 우르르 전쟁영화가 만들어지는 게 싫어 거절했었다. 몇년 지나 우연히 하리마오픽쳐스 관계자를 만났는데 <서부전선>은 어떻게 되었느냐 물었더니 냉동보관돼 있는 상태라더라. (웃음) 다른 영화를 찍으면서도 계속 <서부전선>이 생각나고 궁금하긴 했다. 일단 시나리오가 재밌었고, 비장하지 않아서 좋았으니까.” 군복을 대충 걸치고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쫄병’ 설경구의 모습 역시 비장하지 않아서 좋다. 코믹 연기를 선보인 <광복절특사>(2002), <싸움>(2007), <해운대>(2009), <스파이>(2013), <나의 독재자>(2014) 등과 비교해봐도 <서부전선>의 남복은 촌스럽기가, 어리숙하기가, 둥글둥글하기가 최상이다. 피로감과 독한 기운을 몰아낸 순한 눈빛, “저 븅신 새끼” 같은 욕지거리에 담긴 따스한 기운이 전에 없이 강하게 퍼져나온다. 남복과 설경구의 놀라운 싱크로율은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거창한 신념이 아니라 당장의 삶이고 내 주변의 사람이라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남복은 말한다. “욕심 땜에 전쟁 나는 거여.” “살아야 살 거 아녀.” 알고보면 남복은 삶에서 체득한 지혜로 무장한 현명한 사내다. 설경구 역시 삶에서 체득한 지혜들을 안고 매 순간 현장에 임한다. 자연스런 흐름을 중시하고, 좋은 사람들과의 작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런 점에서 <서부전선>은 그에게 좋은 사람들을 얻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현장 분위기는 왜 그렇게 좋던지. 크랭크업 날엔 다들 무지하게 사진을 찍어댔다. 졸업식도 그런 졸업식이 없었다. (웃음)” 설경구는 제작보고회 자리에서 천성일 감독과는 “촬영이 끝나는 날 겨우 호흡이 맞더라”라고 답해 천성일 감독을 당황케 만들기도 했는데, “코미디 같았던 (실수 연발의) 현장”을 회상하던 그의 얼굴엔 즐거웠던 옛 추억을 떠올릴 때의 표정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절실하게, <박하사탕> <오아시스> 같은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는 설경구의 차기작은 신인 김준석 감독의 <루시드 드림>과 원신연 감독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다. <루시드 드림>의 촬영이 올여름 끝났고, 곧 <살인자의 기억법> 촬영에 돌입한다. 치열함도 무심하게 포장해 말하는 설경구가 “(<살인자의 기억법>도) 한번 독하게 해보려 한다”고 말하니, 그의 다음을 기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