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여진구] 영화를 삼킨 소년
2015-09-28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최성열
<서부전선> 여진구

“아들 같지는 않다.” 여진구와의 인터뷰 자리에 동행한 설경구가 말한다. 우연하게도 여진구는 설경구의 딸과 같은 나이에 생일도 비슷하다. 그런데도 설경구는 여진구가 절대 아들 같지는 않아 보인다고 힘주어 말하는 것이다. “진구는 ‘배우’다. 진짜 배우. 현장에서 진구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한번도 진구의 나이가 어리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일례로 <서부전선> 현장에서의 어떤 하루. 설경구는 “온 힘을 다해 뛰어야 하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촬영을 마친 다음이 여진구 차례였다. “순식간에 사라지더라니까. 얼마나 빨리 뛰는지 카메라가 미처 못 담을 정도였다. 진구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잘해내고자 하는 욕심이 대단한 친구라는 걸 느꼈다.” 기라성 같은 선배 배우를 긴장시키는 후배. <서부전선> 촬영현장에서의 여진구는 그런 존재였다고 설경구는 말한다.

열아홉살 배우 여진구가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독특하다. 그는 아직 풋풋한 소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성인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정의 파동을 표현하기에 손색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소년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경계에 위치한 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정서를 포착해내고자 하는 창작자들이 종종 여진구라는 이름 석자를 떠올렸던 것 같다. 스물다섯이지만 정신병원에 갇혀 살고 있기 때문에 아직 진짜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한 <내 심장을 쏴라>의 수명, 살인자 아버지들에게 길러졌으나 뒤늦게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의 화이가 바로 그런 인물들이다. <서부전선>의 천성일 감독이 여진구라는 프레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북한 소년병 영광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나름 진지하다고 생각한 장면이 있었다. 남복(설경구)이 영광을 붙들고 소리를 지르며 화내는 장면이었다. 나는 진구가 주눅들어 끌려가는 연기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 장난을 치며 웃더라. 그때 생각했다. ‘맞다, 열여덟살 소년병이라면 저럴 수 있겠구나’라고.” 그 시기를 이미 지나버린 이들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순간들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건 지금, 이 순간, 열아홉을 살아내고 있는 배우 여진구의 현재가 자연스럽게 그가 연기하는 인물 속에 스며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소년성은 당분간 한국영화계가 사려깊게 활용해야 할 무엇이다.

“사실 우리 영화는 진중한 전쟁영화라기보다는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졸병 대 졸병의 싸움이다.” 여진구가 한마디로 표현하는 <서부전선>이다. 그가 연기하는 영광 또한 남복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의 한복판에 놓이게 되었고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돌파해나가는 인물이다. 그런 영광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하던 여진구가 주목한 북한 소년병의 기질은 ‘서투름’이었다. “영광은 다른 전쟁영화 속 소년병들처럼 영웅적이거나 어른스러운 인물이 아니다. 여느 평범한 소년들처럼 감정 기복이 심하고 전쟁에 익숙지 않기에 당황하거나 겁에 질린 순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어설프고 서투른 모습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배우의 재량을 전적으로 믿고 캐릭터를 맡겨준 천성일 감독 덕분에 그는 이전의 영화 현장에서 느껴보지 못한 자유와 고민을 동시에 얻었다고 고백한다. 특히 배우로서의 자신감을 얻은 건 <서부전선> 현장에서의 가장 큰 수확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기에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내가 지금 맞게 연기하고 있는 건가 싶어 고민도 많이 했고. 하지만 감독님부터 설경구 선배님, 스탭들까지 모든 분들이 나를 믿어주셨다는 게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자신감이 없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는데, 이번 영화를 거치며 그동안 나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는 점을 알게 됐다.” 20대라는 ‘신세계’의 문을 열어젖히기 전, 비로소 자신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건 배우 여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여진구라는 성장영화는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다.

스타일리스트 공지연, 김은비, 문다영(EUPHORIA SEOUL)·헤어 윤성희(재클린)·메이크업 정소연(재클린)·의상협찬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KOHK by KUD, 캠퍼, 바톤 권오수, 로드앤테일러, 제이백 쿠튀르, 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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