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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호러를 찍었는데 코미디였다
2015-10-08
글 : 송경원
사진 : 백종헌
<무서운 집> 구윤희 배우, 양병간 감독
구윤희, 양병간(왼쪽부터).

올해의 기묘한 영화를 한편 꼽으라면 두말할 것 없이 <무서운 집>이다. 양병간 감독의 <무서운 집>은 지난 7월30일 단관 개봉 이후 온라인을 시작으로 컬트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뉴타입 호러’를 표방한 이 영화를 두고 조롱과 찬사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반응들이 쏟아진다. <클레멘타인> 등 역대 망작과 비교하며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평점 9점을 주는 사람도 있고, 전복적인 상상력과 만듦새에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며 호응하는 이들도 있다.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이나 블로거들의 심도 깊은 해석도 간간이 들려온다. 이 무시할 수 없는 목소리들의 근원이 장르 전복이건 꼴찌에 대한 위안이건 일탈에 대한 동경이건 사실 상관없다. 분명한 것은 <무서운 집>이 만들어낸 모종의 영화적 에너지가 사람들에게 어떤 감흥을 준다는 사실이다. 다양성, 진정성, 전복적인 화법 등 그것을 뭐라 부르건 간에 <무서운 집>이 퍼트리는 오묘한 신선함은 근래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가치 중 하나다. 소규모 팬덤에 힘입어 8월8일 재개봉을 시작한 <무서운 집>은 이미 8주째 스크린을 지키고 있다. 실제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한 관객은 1천명 남짓하지만 8주간 상영은 분명 의미 있는 수치다. 상업영화의 잣대를 기준으로 한 만듦새와 무관하게 <무서운 집>은 이미 올해의 컬트영화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구윤희 배우가 첫 관객과의 대화(GV)를 가진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나마 <무서운 집>의 양병간 감독과 구윤희 배우에게 만남을 청했다. 한때의 재미있는 관심거리를 넘어 2015년 기억해야 할 영화 중 한편으로 자리매김한 <무서운 집>에 대한 두 사람의 솔직한 속내를 들어봤다. 이보다 더 진지할 수 없을 만큼 한마디 한마디 정성을 담은 말들. 영화에 담긴, 영화를 향한 진심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지난 9월17일 광화문 미로스페이스에서 GV를 진행했다. 구윤희 배우는 첫 GV였는데 뒤늦게 GV를 하게 된 이유가 있나.

=구윤희_처음엔 이 영화로 전면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딱 1년 전 기술시사를 했을 때 주변으로부터 가혹할 정도로 혹평과 상처를 받은지라 가슴이 아팠다. 도대체 왜 이런 영화를 찍었냐고 자기들이 다 창피하다는 말도 들었다. 영화는 내가 찍었는데 자기들이 왜 창피한지. (웃음) 감독이 제작비가 없어 엄마를 데리고 영화를 찍었다, 영화배우가 꿈인 와이프 소원 들어주려고 영화를 제작했다는 등 웃지 못할 댓글들도 숱하게 봤다. 불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뒤늦게 나온 건 이 영화를 좋아하고 호응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서다. 직접 만나서 인사를드리고 싶었다.

-어느덧 상영 8주차가 넘어간다. 재개봉도 이례적이지만 이렇게 오래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도 기념비적이다.

=양병간_아직도 배가 고프다. (웃음) 마음 같아서는 10주, 12주 계속 걸려 있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온 건 영화의 힘만으로는 될 수 없다. 도와주신 많은 분들, 인연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해주는 관객이 많았다는 게 가장 감사하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1993) 때는 이런 평가를 받을 기회가 없었다. 네티즌의 분석 중에는 깜짝 놀랄 만한 글들도 있었다. 그들의 글과 태도에서 앞으로도 영화가, 예술이 살아나갈 길이 있겠다는 희망을 봤다.

-GV도 여러 차례 가졌다. 관객과의 대화가 익숙한 문화는 아닐 텐데 직접 만나보니 무엇이 달랐나.

=양병간_직접 관객을 만나보면 영화에 대한 꿈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날 많은 감독 지망생들이 넘치는 재능에도 불구하고 배급사 위주의 시스템에서 선택을 받지 못해 영화판을 떠난다. 나도 그랬고. 요즘은 누구나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대다. <무서운 집>에 열광하는 관객을 보면서 적은 자본으로 진지하게 만든 영화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여건만 주어진다면 좋은 영화들이 쏟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흥분이 됐다.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부터 영화의 만듦새가 조악하다는 지적까지 혹평도 적지 않았다.

=구윤희_‘병맛이다’라는 둥 ‘병신 쩐다’는 둥 노골적인 반응들에 처음엔 충격을 받았다. 나는 웃기려고 찍은 적도 없고 가볍게 접근하지도 않았다. 매 화면 감독의 요구에 따라 진지하게 연기했고, 때로는 나 나름의 해석도 넣어가며 상황을 표현하려 했다. 찍을 땐 호러인 줄 알고 찍었는데 결과물을 보니 코미디더라. 찍을 때 의도를 알았으면 그렇게 연기하지 않았을 텐데. (웃음) 지금 와서 보니 그것까지가 감독님의 의도였던 것 같다. 진지함과 우스꽝스러움이 주는 괴리감 때문에 호의적인 반응이 이어지는 게 아닐까. 지금은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살바도르 달리나 반 고흐의 그림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진가가 드러날 것이라 믿는다.

-연극배우 출신이고 영화는 첫 출연이다. 혼자 영화를 이끌어가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구윤희_대본을 보고 혼자 하면 했지 다른 배우들이 있으면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자신 있었다. 스스로는 이미 대배우라고 생각한다. (웃음)

양병간_이런 당돌한 면이 마음에 들었다. (웃음) 예전에 출연했던 연극을 본 일이 생각나 꽤 오랫동안 설득했다. 몇 가지 원하는 조건이 있었다. 영화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이길 원했고, 기본기가 충실해야 했다. 혼자서 영화를 이끌고 갈 수 있는 뚝심, 한겨울에 3개월 동안 90회차 촬영했으니 인내심도 필요했다. 무엇보다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길 바랐다. 구윤희라는 배우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구윤희 세트’를 팔 정도로 먹방이 인상적인데.

=구윤희_진짜 배가 고파서 먹었다. (웃음) 한 장면을 수십번 찍는데 먹을 걸 제대로 주지 않는 거다. 그 와중에 먹는 장면이 있으니 얼마나 맛이 있었겠나. 구윤희 세트도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아직 못 먹어봤다.

-상영관을 보면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영화 관람 중에 환호성도 들리고 박수도 쏟아지고.

=양병간_이런 영화는 스필버그도 못 따라 올 거다. 박수와 폭소가 쏟아지는 걸 보고 짜릿했다. 함께 즐긴 관객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들이 내게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는 희망을 줬고, 이 영화가 그들에게 우리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구윤희_핵꿀잼부터 핵노잼까지 호불호가 뚜렷한 영화다. 극장을 찾아주신 분들은 재밌게 본 극소수의 관객이라 그런 반응이 가능한 것 같다. 당장 내 주변 사람들만 해도 이상한 감독에게 홀려서 이상한 걸 찍고 다닌다고 나를 나무랐다. (웃음) 동네에선 그냥 ‘107호’로 불리는데, GV 하기 며칠 전엔 동네 아줌마들이 여럿이 모여서 보면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며 500원을 들고 오라고 하더라. 그게 <무서운 집>이었다. 그때 ‘화제는 화제인가 보다’ 했다. 내가 출연한 건 아직 아무도 모른다. (웃음)

-연출, 각본, 촬영, 편집 등 1인8역을 맡았다. 완전한 1인 영화, 1인 작업을 추구했던 건가.

=양병간_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다면 음악까지 했을 거다. 영화를 구상했을 때 세운 원칙 두 가지가 한명의 배우, 한명의 감독이었다. 그런 시도를 해보고 싶었고,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만듦새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적어도 나는 한 장면도 허투루 찍은 게 없다. 다만 집이 주는 공포를 기본으로 하되 표현되는 방식은 재미있길 바랐다. 어쨌든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 이번 영화로 응원과 기대를 받아 기쁘기도 하지만 어깨가 무겁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2>를 포함해 차기작은 신중히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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