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영상계의 마광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2015-11-26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에로영화 한길 <친구 엄마> 공자관 감독
공자관 감독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특명을 받았다. “공자관 감독을 만나고 오라.” 중국계 감독이 내한한 줄 알고 부랴부랴 검색부터 했다.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더라. 공자관은 아들 자(子), 벼슬 관(官)이라는 본명으로 한국 에로영화계에서 이름깨나 날리고 있는 감독이었다. 상업영화계에서 수위 좀 높다 하는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제대로’ 벗는 에로물을 15년 가까이 만들어온 공력 센 연출자이기도 하다. 그의 신작 <친구 엄마>가 11월12일 개봉하면서 인터뷰가 성사됐던 것이다. 1990년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부흥기를 맞았던 비디오 영화시장이 와해된 후 에로영화계도 사양길에 접어든 지 오래이고 에로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IPTV로 직행하는 게 관례처럼 돼버린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공자관은 이 업계에서 굳건히 살아남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에로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현실과 애환을 담은 자전적 이야기 <색화동>으로 2006년에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됐고 이후 밀크 픽처스라는 제작사를 차려 <젊은 엄마> <허풍> <뽕 2014> 등 공자관표 에로영화를 꾸준히 제작하고 있다. 에로영화를 전혀 안 본 건 아닌데 그렇다고 에로영화를 안다고 말할 수준은 전혀 못 되는 에로영화 무지렁이인 기자는 에로 무림의 고수를 만나기 전 감독의 전작부터 하나씩 섭렵해갔다. 그럼에도 한계를 인정하며, ‘그저 묻지요’의 심정으로 공자관을 찾아갔다. 그가 말로써 전하는 ‘에로틱’에 대해 짧게나마 그려본다.

“형님, 할 수 없죠. 혹시라도 시간 되시면 극장으로 오세요. 자리는 충분히 있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자관 감독이 전화를 받는다. 다음날 있을 <친구 엄마>(2015) 시사회에 초대한 지인이 사정이 생겨 못 오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지인들한테 전화를 좀더 열심히 돌려볼걸 그랬나. 나는 괜찮은데 배우들이 민망할까봐….” 시사회장이 썰렁할까봐 내심 걱정인가보다. “<색화동>(2006) 이후 극장 개봉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때도 7개관 개봉이었는데 이번엔 그보다도 적다. 개봉은 요식 행위고 곧장 IPTV로 가니까. 섭섭하냐고? 전혀. 2001년부터 에로영화계에서 일을 해오면서 나는 내가 TV용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확실히 가졌다. 내 영화적 토양의 상당 부분도 어린 시절 이불 깔고 누워서 가족들과 봤던 <주말의 명화> <토요 명화> 속 영화들이다. 꼭 극장 상영용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아쉬운 건 다른 데 있었다. “배우가 먼저 ‘배급을 누가 하냐, 몇개관에서 개봉하냐’고 물을 때가 있다. 왜 그런 걸 묻나.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비중이 어떤지, 캐릭터가 어떤지는 안 물으면서. 본질은 잊고 가오만 생각하는 게 정말 싫다.” 그럴 때 공자관 감독이 하는 말이 있다. “서류상으로는 20개관에서 상영하고 바로 IPTV로 간다. 배우로서는 더 좋은 거 아닌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니까 돈도 더 많이 받고.”

<젊은 엄마>

극장 개봉이 대수냐. 공자관은 그보다는 타율을 생각한다. “크게 놓고 크게 먹을 거냐, 작게 투자해 야금야금 계속 해먹을 거냐. 난 후자다.” ‘주로 5억원 미만의 저예산영화 제작에 특화돼 있다’는 밀크 픽처스의 회사 소개서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주 타깃은 저예산 에로영화다. “대체로 에로영화는 프리 프로덕션이 두달, 프로덕션은 10회차 안팎으로 2주 안에 다 찍는다. 한편 완성하는 데 넉넉잡아 넉달이면 끝이다. 그렇게 해서 잘되면 몇억원을 손에 쥔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형 음식을 쉼 없이 찍어내듯 영화를 만들어내는 걸 두고 누군가는 “영화에 낭만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는 낭만 따윈 버린 지 오래라고 딱 잘라 말한다. “저예산영화 한번 찍어보라. 낭만이니 가오니 그런 거 찾다보면 절대로 찍을 수 없다. 첫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 되고 싶은가. 저예산영화를 오래 찍는 게 내 목표다.”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다작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에로영화 시장의 메커니즘이라고 해도 그에게도 연출의 원칙은 있다. “재밌는 시나리오”만이 공자관을 움직인다. “<젊은 엄마>(2013)가 성공하고 나름 시나리오가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왔다. 근데 하나같이 비슷비슷. 형부랑 처제랑 떡을 치거나 옆집 누나가 자고 있는데 남자가 들어가서 어쩌고 하는 식이다. 설정 하나만 딱 있고 나머지 서사가 없다. 그걸 주면서 나보고 90분을 채우라는 건데 그걸 어떻게 찍나. 그래서 내가 대본 다 다시 쓰겠다고 하면 또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제작자가 수두룩이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내가 직접 쓴다.”

<친구 엄마>

“중•고교 시절 성적 판타지를 죄다 끌어와” 쓴 시나리오들

단국대 연극영화과(95학번)에서 연출을 전공하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클릭’ 영화사에 들어가 에로영화 조연출 생활을 시작하며 겪은 우여곡절을 영화화한 게 <색화동>이다. 에로영화 시장 밖 독립영화계에도 그의 이름을 알린 작품이다. 이후 “중•고교 시절의 내 성적 판타지를 죄다 끌어와” 시나리오를 써내려갔고 그중 대박을 친 게 <젊은 엄마>다.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된 남자가 아내와 불화를 겪다 젊은 장모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당시 모든 기운이 좋았다. 시나리오에 대한 자신감도 넘쳤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배우들 연기도 좋았고. 스스로가 재밌어서 낄낄낄 웃으면서 편집했던 기억이다. 근데 그게 총 6회차로 찍은 거다. 심지어 5회차인 <허풍>(2013)을 동시에 찍었다. 해보니까 되더라. 리허설도 하고 조명 칠 시간도 충분히 잡았어야 했는데 무조건 가자, 고 했더니 스탭들이 다들 당황하더라. 며칠을 밤낮없이 몰아치니까 나중엔 나도 머리가 안 돌아갈 지경이었고 스탭들은 졸고 있고.” 큰 문제가 없으면 그냥 빨리 찍자는 쪽이지만 그가 꼭 짚고 넘어가는 건 단연 배우들의 연기다. “프리 프로덕션 때 대본 리딩을 많이 하고 중요 노출 신에서의 감정 표출을 얼마나 할 것인가 정도만 서로 조율한다. 그래도 연기가 안 되면 대사 한마디씩을 다 따로 딴다. ‘자, 여기서 묻는 문장이지? 끝을 올려줘. 비슷하게만 해’라며 내가 직접 시범을 보인다.”

연기 얘기가 나온 김에 물어봤다. 노출이 필수불가결해 보이는 에로영화에서 배우들 캐스팅과 수위 높은 연기 연출의 속사정이 궁금했다. “여배우들의 99.9%가 벗는다고만 해도 세상이 끝나는 줄 안다. 남자배우들도 몸을 사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럴 땐 나도 상처를 받는다. 그저 재밌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건데 내 진정성을 말할 기회조차 안 주니. 배우들이 만나주기는커녕 전화 통화에서부터 ‘안 하겠다’고 한다. 캐스팅 때마다 읍소를 하고 있다.” 난관을 거듭 겪으며 그가 터득한 캐스팅의 노하우는 단 하나, “모든 게 정공법”이라는 것이다. “솔직하게 전부 다 말한다. ‘내 영화에는 베드신이 몇번 나오고 노출에 있어서 타협은 절대 안 할 거다.’ 그런데 어떤 감독들은 비겁하게 배우들을 기망한다. ‘약하게 할 거다, 베드신 얼마 없다’며 일단 현장에 나오게 해놓고 그때 가서야 ‘더 벗어야 한다, 베드신이 몇컷 추가됐다’고 말하는 식이다. 그럼 배우들이 거기서 기가 팍 죽는다. 스탭들 다 쳐다보고 있지, 조명 다 켜졌지 그런데서 자기 주장을 끝까지 펼칠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되겠나. 배우가 옴짝달싹하지 못할 상황을 만들어놓고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사기가 아니고 뭔가. 그렇게는 절대로 안 한다. 난 아예 처음부터 엄청 겁을 준다. ‘각오가 서셨습니까.’”

<색화동>

“에로영화계에서 무라도 잘라야겠다는 심정”

‘에로틱’에 대한 생각도 확실했다. “옷을 훌러덩 훌러덩 벗는다고, 헉헉거리는 호흡을 해 보인다고 야한 게 절대 아니다. 섹스에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공감대를 이끌 수 있는가, 그 감정을 만들어내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것만 되면 베드신이야 30초만 나와도 아니, 키스만 해도 야하다. 또 베드신 때 행위만 하는 게 아니라 남녀가 서로의 감정에 대해 대화하는 것도 포인트다. 베드신 1분 넘게는 안 가고 싶다. 진짜 하는 것도 아닌데 계속 보면 지겹지 않나.” 그의 이 말이 에로영화에서 ‘진짜처럼’ 보이는 게 중요하다는 말처럼 들려 ‘리얼리티’에 대한 생각을 물으며 에로영화와 포르노물의 경계를 어떻게 보냐고도 질문했다. 그는 명쾌했다. “2015년 한국의 상황에서는 포르노가 되지 못한 성인 콘텐츠가 에로영화다. 포르노를 못 찍으니까 에로물을 만드는 거지. 진짜 섹스를 했느냐 안 했느냐의 차이인 건데, 궁극적으로 나는 포르노를 찍고 싶다. 진짜로 하게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눈빛도 호흡도 진짜가 나올 텐데. 아직까지 그렇게 찍어본 적은 없지만 나와 오랫동안 작업하며 신뢰를 쌓은 배우들이라면 같이 작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라스 폰 트리에, 레오스 카락스 감독들도 실제 정사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물론 나는 작가적 색채가 강한 영화보다는 지극히 상업적인 영화를 원한다. 다만 진짜 눈빛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 그럼 소비자들도 후끈 달아오르겠지.”

논쟁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 그는 “영상계의 마광수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전했다. “마광수 선생은 성 앞에서 고상한 척하고 가식 떠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에 반감을 가졌다. 상당히 동감한다. 떡 안 치는 사람이 있나? 왜 다들 그렇게 '나는 모르네' 하는 척을 하는지. 영상으로 이 사회의 금기를 계속 건드리고 싶다.” 사회를 향한 공자관식 외침이 때론 그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영상물등급위원회와 주야장천 싸웠던 기억도 그중 하나다. 음부와 음모가 나오면 안 된다는 등급 심사 규정에는 벗어나지 않되 “에코 에로를 만들어보자”며 중요 부위에 자몽, 멜론, 개구리참외를 가져다두고 애무하는 신을 넣었다. “‘달콤하고 맛있다’는 배우들의 애드리브가 절로 나오는 신이었고 정말 자연친화적이었다. 그런데 제한상영가를 주는 거다. 기껏 머리 쓰고 돈 들여서 만들어갔는데 그렇게 해버리니까 열이 받아서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공문까지 썼다.” 클릭 영화사에 있을 당시 필리핀으로 달력 화보를 찍으러 갔을 땐 야외에서 누드 사진을 찍다가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고.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여중생 사건에 울분을 느낀 청년이 SOFA 개정을 외치며 주한미군 사령관과 부시 대통령의 아내를 성노예로 만든다는 내용의 <깃발을 꽂으며>(2002)로는 주한미군공보부의 유감 표명에 이어 강남경찰서 외사과의 조사까지 받았다. 심지어 결혼 준비를 할 때도 여자친구가 부모님께 자신을 “일반 사람들이 쉽게 보기 힘든 영화를 만드는 사람” 정도로 소개하기도 했다.

난관은 있어도 그에게 에로영화는 “애정과 오기”의 대상이자 생계수단이며 해방구다. “에로영화계에서 무라도 잘라야겠다는 심정이다. 지금 구상 중인 시나리오도 꽤 많다.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TV 시사 프로그램, 신문의 뉴스난, 판례들을 살펴보면 영화 소재가 엄청나다. 세상이 막장이라 영화 속 막장 같은 관계들이 전혀 없는 얘기가 아닌 거다. 덕분에 세상에 대한 기대는 줄었고 그래서인지 때론 기대하지 않은 반응에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웃음)”

<언페이스풀>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어떤 상황에서도 베드신은 가능하다

공자관이 꼽은 에로틱한 순간들

시나리오는 직접 써야 제맛이라고 생각하지만 공자관 감독이 언제가는 제대로 한번 ‘우라카이’해보고 싶은 에로 본능 자극 영화들이 있다. “법정물의 틀 안에서 남녀간 엄청난 베드신이 가능해 보이는” 마스무라 야스조의 <아내는 고백한다>(1961), “제시카 랭이 짐승처럼 잭 니콜슨을 유혹해 자신을 덮치도록 만드는” 밥 라펠슨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1981), “다이앤 레인의 격정적인 욕망이 돋보이는” 에이드리언 라인의 <언페이스풀>(2002)이 우선순위 안에 들어왔다. “‘왜 베드신이 안 나오지?’ 하며 자연스레 관객의 욕망을 자극하는 서사가 있는 영화들이다. 에로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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