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즐거움 한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2015-12-17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최연소 참가자 라오스 소녀 티파포네 찬나봉이 들려주는 촬영현장 이야기
미얀마에서 온 아웅 탯.

‘2주 동안 단편영화 한편씩을 완성하라.’ FLY 2015 참가 학생들 앞에 주어진 미션이다. 10명씩 두팀으로 나뉘어 각각 영화 한편씩 만들어내야 한다. 시놉시스는 동일하다. ‘어느 날 10대 남매가 일출을 보기 위해 부모 몰래 가출을 단행한다. 맨날 서로 싸우기 바쁜 부모는 뒤늦게 아이들의 부재를 알고 패닉 상태에 빠진다. 과연 아이들은 무사히 일출 보기에 성공할까.’ 이 내용은 FLY 2014에 지도교사로 참여했던 말레이시아 출신의 탄추무이 감독이 직접 작성해 보내온 것이다. 이야기의 뿌리는 같지만 팀별 과제인 만큼 각 팀의 색깔과 개성에 따라 극의 서사는 얼마든지 변주 가능하다. 참가 학생들의 언어, 문화, 종교, 사상은 다 다를지라도 오직 영화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만큼 그들의 패기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기대되는 프로젝트다. 기자가 현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3일간의 촬영은 끝난 상태였다. 후반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아이들과 지도교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촬영현장을 재구성해봤다.

애칭은 팅. 올해 18살. 참가 학생들 가운데 제가 막내입니다. 처음 여기 도착해 자기소개를 할 때 나이를 말했더니 다들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죠. 제가 좀 성숙해 보이죠? (웃음) 그룹 B의 촬영팀에 속해 있습니다. 촬영장 분위기를 듣고 싶으시다고요. 음,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왕좌왕, 허둥지둥, 그 자체였죠. 하나의 신을 리허설하는 데만 3시간 가까이 걸렸으니까요. 촬영을 겨우 시작했지만 문제는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어요. 촬영팀원 모두 카메라 작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어요. 촬영을 맡은 틴 윈 흘라잉(미얀마, 25)조차 촬영 경험이 많지 않았거든요. 배우의 동선을 미리 파악하고 있다가 배우가 멈추면 카메라도 당연히 정지해야 하잖아요. 근데 흘라잉이 계속해서 조금씩 손을 떨며 카메라를 움직이는 거예요. 배우의 동선을 미처 외우지 못했던 거죠. 소품 세팅이라는 것도 처음이다보니 실수가 이어졌어요. 남매의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식탁을 세팅할 때였죠. 어찌하다보니 배우들이 모두 카메라를 등지고 앉아 있는 구도가 나온 거예요. 지도교사인 임필성 감독님께서 오시더니 어리둥절해하셨죠. 공간이 비좁으면 식탁의 위치를 바꿔보는 식의 차안을 생각해야 했는데요, 아주 기초적인 생각도 미처 하지 못했던 거예요.

라오스의 티파포네 찬나봉과 말레이시아의 쿠 준 쟁(왼쪽부터).

고생스러웠지만 짜릿했던 경험들

저도 영화 연출이나 촬영 경험이 전무해요. 고등학생 때 스승의 날을 맞아 짧은 동영상으로 선생님을 찍고 교내에서 상영한 경험이 전부죠. 근데 그 영상이 반응이 꽤 좋았거든요.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재밌게 봤다며 칭찬해주는데 어찌나 짜릿하던지. 그 경험이 상당히 크게 남아 있어요. 그때 ‘아, 계속해서 영상물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죠. FLY 2015에 와서 제대로 자극받고 있는 중이에요. 제가 영화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보니 정말 기초적인 질문을 할 때도 많아요. <인류멸망보고서>(2011) 등을 촬영한 촬영 멘토인 하성민 촬영감독님께 “감독님, 지금 어떤 렌즈를 쓰시는 거예요?”라고 물었거든요. 하 촬영감독님께서 “그것도 몰랐단 말이냐”며 황당해하셨어요. 근데 또 하나씩 다 설명해주시고. 풀숏, 바스트숏도 직접 찍어서 보여주며 설명해주셨죠. 그때 또 알았어요. 촬영자는 편집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을요.

이 정도는 약과죠. 진정 고난의 길이 시작된 건 로케이션 촬영 때였어요. 극중 남매가 바닷가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을 찍어야 했죠. 실제 기차에 올라 촬영을 해야 했어요. 저희는 새벽부터 기차역으로 달려갔어요. 도착했을 땐 새벽 6시30분. 그런데 우리가 촬영해야 하는 기차는 7시30분에 역에 들어온다는 거예요. 1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끝내야 했죠. 그때 하성민 촬영감독님이 물으셨어요. “얘들아, 카메라는 어떻게 세팅해야 할까?” 순간, 다들 얼음이 됐죠. 그때 저희의 대답은 “기차 외부에 카메라를 붙이고 촬영하면 어떨까요?”였어요. 어떻게 됐냐고요? 하성민 촬영감독님께서 불같이 화를 내셨죠. “그러다가 카메라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거냐, 장비 손실도 손실이고 사람이라도 다치면 어쩔 거냐, 그런 생각은 다시는 하지도 마라.” 불호령을 듣고야 정신을 차리고 카메라를 직접 들고 찍기 시작했어요. 마침내 기차가 왔고 저희는 기차 한량에 전부 올라탔죠. 달리는 기차 안에서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는데요, 말레이시아는 철도 시설이 아직 좋지 않아요. 기차가 어찌나 덜컹거리던지. 어휴, 저희 무슨 액션영화 찍는 줄 알았잖아요. 창가에 앉은 두 남매가 곧 있으면 도착할 해변을 기대하며 흐뭇하게 웃는 장면을 찍을 때였죠. 저희가 숏 구성을 충분히 생각지 못했어요. 그저 인물의 정면숏만 내리 찍는데 임필성 감독님께서 “창 너머를 보는 아이의 얼굴은 안 찍을 거니? 만약 그걸 찍으면 주인공의 얼굴뿐 아니라 창밖 풍경도 찍어둬야 하는 거 아니니?”라며 한마디 하셨죠. 그제야 눈치챘죠. 기차 신에 등장하는 많은 엑스트라들은 어떻게 섭외했냐고요? 실제로 그 기차를 탄 승객인데요. 기차표를 사드릴 테니 앉아만 있어달라고 해서 섭외했어요. 기차가 출발하고 세 번째 역을 지나기 전까지 촬영을 끝내야 했어요. 그 시간이 1시간 안팎이었거든요. 정말 숨이 막혔어요. 그래도 돌이켜보면 그 장면 찍을 때가 많이 생각나요. 짜릿짜릿했거든요.

무엇보다 중요한 팀워크

영화를 만드는 일은 기본적으로 공동 작업이잖아요. 게다가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모이다보니 FLY 2015에서는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걸 절감했죠. 저희도 서로 적응해가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어요. 하나의 예로 응우엔 루옹 디우 항(베트남, 24)이 연출을 맡았을 때의 일이 생각나요. 다른 파트 친구들과 갈등이 좀 있었죠. 항이 자기 머릿속에만 있는 촬영의 방향을 동료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계속해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게 돼 오해가 커졌죠. 배우들의 동선, 카메라앵글 등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거예요. 또 감독이라면 배우, 스탭들과 계속해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야 했는데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있었죠. 촬영 때 모니터 앞에만 앉아 있는 항에게 임필성 감독님께서 따끔하게 한마디 하셨어요. “모니터 앞에 예쁘게 앉아 있는 게 감독의 역할이 아니다. 배우들에게 가서 네가 원하는 바를 설명하고 조율해나가야 한다.” 그 후 연출직을 다른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해보며 갈등을 조율해나가는 시간을 가졌어요. 항이요? 걱정 마세요. 아주 씩씩해요. 조금 삐거덕거렸을 뿐이죠. 영화가 제작되고 보니 다 함께했기에 완성이 가능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에도 해결하기 어려웠던 게 있었냐고요? 음, 아무래도 변덕스러운 날씨가 아니었을까요. 말레이시아는 11월부터가 우기예요. 해가 쨍쨍하다가도 곧바로 비가 쏟아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그래서 저희는 날씨 변화에 대비한 여러 개의 플랜B를 짜뒀죠. 우산도 많이 준비해 현장에 나갔지만 결국 비 앞에서는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더라고요. 바닷가에서 사나운 모기떼와의 사투도 고통스러운 기억이에요. (웃음)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많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 특히 그룹 B를 이끈 임필성 감독님과 하성민 촬영감독님은 완전 스파르타, 밀리터리 스타일로 저희를 쉼없이 몰아붙이셨거든요. 저도 그렇고 팀원 모두 돌아가면서 눈물을 쏙 뺐어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하하. 그런데 지금까지 다들 이렇게 제대로 된 영화 제작 수업을 받아본 경험이 없었어요. ‘이렇게 만들면 영화가 된다’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됐죠. 처음에는 하나하나가 다 힘들었지만 어렵게 배워뒀으니 다음 작업할 땐 조금 더 수월하겠죠. 오늘의 기억을 살려 더 나아질 수 있을 테니까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거예요. 말레이시아에 오기 전 2주 정도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가졌어요. 학생들끼리 인터넷 채팅방에 모여서 시놉시스를 발전시켰죠. 그런데 아무래도 인터넷 연결 상황이 국가마다 다르다보니 원활한 의견 교환이 어려웠어요.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더 길어진다면 좀더 치밀하게 사전 준비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런 아쉬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크기의 즐거움을 한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걸 꼭 말하고 싶어요. 고향 라오스에 돌아가면 대학교 입학 준비를 할 거예요. 싱가포르에 있는 대학의 매스커뮤니케이션학과에 장학생으로 지원할 생각입니다. 영화를 향한 저의 꿈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저 역시 제 영화가 기대됩니다. (웃음)

임필성 감독(가운데).

“내가 너희들한테 졌다”

그룹 B 지도교사 <마담 뺑덕>(2014) 임필성 감독

“그룹 B에서의 교수법은 ‘영화 촬영현장인 여기는 전쟁터다’라는 걸 알려주는 데 있어요. 추상적인 개념들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게 영화 작업이잖아요. 또 학생들도 영화산업 내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게 얼마나 치열한 일인지를 똑바로 직시하는 게 필요해요. FLY 2015에서 자기 한계를 느끼고 깨져보면서 깨달았으면 했고요. 그래서 제가 좀 화를 냈네요. 아이들을 울리려고 한 건 아닌데…. (웃음)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전혀 기죽지 않아요. 혼날 때야 심각해지지만 다음날엔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웃고 즐거워해요. 그걸 보면서 처음에는 제가 황당했어요. 가만 생각해보면 그만큼 이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매 순간이 평가고 경쟁이고 순위 매기기인 한국 사회와 달리 현재를 즐기고 자기가 하는 일을 즐겁게 해나가려는 아이들의 태도가 오히려 제게 신선한 자극이 됐어요. 결국 마지막에는 제가 아이들에게 선언해버렸습니다. ‘내가 너희들한테 졌다. (웃음)’ 또 참가 학생들마다 영화를 접해본 경험치가 다 달라요. 영화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전무한 상태부터 파리에서 유학 중인 학생까지 다양하죠. 제 나름대로 생각한 건 학생들이 앞으로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발전 가능성이 있는가를 눈여겨봤어요. 그리고 자국으로 돌아갔을 때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는 학생보다는 상황이 여의치 않은 친구들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죠. FLY가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길 바랍니다.”

셍 탓 리우 감독(왼쪽).

“자기만의 시각을 키우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표”

그룹 A 지도교사 <세상을 구한 남자>(2014) 셍 탓 리우 감독

“영화 제작 현장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길 바랐어요. 그룹 A랑 완전히 다르다고요? 하하. 영화를 배우는 방법은 수만 가지가 있어요. 다만 저는 놀이를 통해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충분히 배우고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이들에게 꼭 명심하라고 말하는 몇 가지는 있죠. 그중 하나가 ‘결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에요. 영화를 만드는 일은 끝없이 결정을 해나가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어떤 장면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부터 소품 하나를 고를 때조차도 결정을 미룰 수는 없죠. 잘못된 결정에 따른 오류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덧붙여요. 설령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그 잘못됨에서 또 배우는 게 있으니까요. 또 결정을 한다는 건 영화인으로서 자기 안목과 시각을 갖춰간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죠. 뭘 먹을까, 했을 때 ‘아무거나 괜찮아, 네가 좋은 걸로 해’라고 종종 말하잖아요. 그러지 마세요. 보다 좋은 걸 찾으려고 애써야 해요. 또 아이들에게 편집할 때 계속 물어봐요. ‘왜 이 신을 넣고 싶어?’ 그럼 대체로 학생들은 ‘그냥’이라고 답해요. 저는 그때마다 ‘이 신이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꼭 말해요. FLY는 영화의 기술적 접근을 가르치고 배우는 자리가 아니에요. 그런 지식이야 인터넷 검색으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죠. 영화인으로 성장할 때 필요한 자기만의 시각을 키우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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