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은미] “결과에 흔들리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2015-12-23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차이나타운>으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제작자상 수상한 폴룩스픽쳐스 안은미 대표

“언제 오세요?” “내일 새벽에 내려갈게. 밤에는 운전하기 힘들어.” 전주에서 한창 촬영 중인 <7년의 밤> 스탭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모양이다. 12월7일엔 (사)여성영화인모임에서 수여하는 여성영화인상 시상식이 있었고, 8일엔 인터뷰가 있어 현장을 비웠으니 스탭들로선 프로듀서의 빈자리를 체감했을 터. “괜히 찾는 척하는 거예요. 그런데 또 안 찾으면 섭섭하다? 나 없는데 현장이 잘 돌아가고 그러면. (웃음)” <차이나타운>의 한준희 감독은 안은미 프로듀서가 “편안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제작자”라고 귀띔해주었는데, 역시나 얘기를 나눠보니 현장에서 막내 스탭들의 고민까지 다 들어줄 것 같은 제작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이하 <백야행>, 2009) 이후 오랜만에 제작한 영화 <차이나타운>으로 여성영화인 제작자상을 받은 안은미 폴룩스픽쳐스 대표를 만났다. 멋모르고 시작한 영화, 그 영화 때문에 하얀 어둠 속을 헤매야 했던 시절, 다시 영화와 사랑에 빠져 ‘좋은 영화’를 제작하고자 하는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차이나타운>으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제작자상을 받았다. 축하한다. 특히 올해는 극영화, 다큐멘터리 가리지 않고 여성 프로듀서, 여성 제작자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상이 아닌가 싶다.

=올해 성과를 크게 낸 제작자 선배님들도 많은데, 고생 많이 했다고, 앞으로 계속 영화 제작해도 될 것 같다고, 격려의 차원에서 상을 주신 것 같다.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님도 시상하시면서 괜히 본인이 눈물 흘리시고. (웃음) 기특했나보다. 이 상으로 정말 큰 위로를 받았다.

-<차이나타운>은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여성 누아르 영화다. 제작하기 결코 수월한 작품은 아니었을 것 같다.

=<차이나타운>에 투자했던 CGV아트하우스의 한 직원이 시사회 때 영화보고 나서 그러더라.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용기’를 냈냐고. (웃음) <차이나타운>의 시나리오를 봤을 때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지점이 뭘까, 여성 누아르 장르라 사람들이 생소해하면 어떡할까, 그런 생각은 단 1초도 하지 않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일영(김고은)이나 엄마(김혜수)의 삶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치열하고 힘들고 버겁지 않나. 그 당시 나도 사는 게 무척 고달팠는데 그래서인지 내 얘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한준희 감독이 처음부터 염두에 뒀던 배우들, 김고은과 김혜수 배우와 함께한다면 충분히 (제작) 가능하겠구나 싶었다. 두 배우의 캐스팅만으로도 많은 것이 이루어질 거라 믿었고 이 영화에선 캐스팅이 곧 기획이라 생각했다. 영화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엔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다.

-한준희 감독의 얘기를 들어보면 위기나 고비의 순간 없이 순탄하게 제작이 진행됐다고 하더라.

=이 작품이 유난히 그랬다. 일반적으로 캐스팅을 하고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여러 경우의 수가 생기게 마련인데 <차이나타운>을 하는 동안엔 변수가 거의 없었다. 한준희 감독을 만나고 1년이 안 돼 촬영에 들어갔고 개봉까지는 2년이 채 안 걸렸다. 같은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입봉하는 신인감독이 현장을 감당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 하중을 한준희 감독이 굉장히 잘 버텨내기도 했고. 그래서 위기랄 게 없었다.

-투자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없었나.

=한 소녀의 성장기에 가까운 초고가 있었고, 김고은 배우가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친 상황에서 시나리오를 CGV아트하우스의 이상윤 사업담당에게 보여줬다. 신기하게 우리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한번에 알아보곤 지지해주셨다. 그렇게 <차이나타운>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시작한 프로젝트였고, 너무 순조로워서 특이한 경우였다.

-감독에게 흥행에 대한 얘기를 꺼낸 적도 없었다고.

=흥행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제작자로서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는 조금 더 어렵거나 조금 더 흔하지 않은 것을 택하려고 한다. 그게 덜 망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차이나타운> 역시 그랬고, 시나리오를 직접 쓴 감독이 애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만들어낸다면 손해보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감독과 흥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이 영화로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개입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린다. 한준희 감독 역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감독은 물론 스탭들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제작자”라고 하더라.

=제작자나 프로듀서는 감독이 무엇을 가장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먼저 알아보고 최대한 연출을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인 것 같다. 감독이 확신이 있으면 그 생각이 내 생각과 이승과 저승만큼 크게 다른 게 아니라면 감독의 판단에 동의하는 게 훨씬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제작자로서의 취향도 분명 존재할 텐데. 그동안 기획•제작한 영화들,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2007), <백야행>, <차이나타운>을 보면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것 같다.

=당시엔 새로운 줄 몰랐다. (웃음) 그게 결국 취향인가보다.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은 슈퍼주니어 멤버가 모두 나오는 영화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 시작한 작품이었다. 그게 새로운 비즈니스의 형태라고 생각했다. 아이돌을 데리고 폼잡는 영화들은 망했으니 유쾌한 영화를 만들면 통하지 않을까 싶었다. 드라마 <연애시대>를 쓴 박연선 작가와 함께하기로 했고, 얼굴에 똥을 맞아야 꽃미남으로 인정받는다는 설정이 만들어졌다. SM에서도 의외로 그 이야기를 좋아해서 6개월 만에 영화를 완성시켰다. 그런데 시대를 너무 앞서간 거지. (웃음) 지금은 조현철, 정혁기 감독의 단편 <뎀프시롤: 참회록>(이하 <뎀프시롤>), 2014)을 장편으로 준비 중인데 이것 역시 병맛 코미디다.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 <백야행> <차이나타운> <뎀프시롤>까지 하게 되는 걸 보면 진지한 건 한없이 진지하고 가벼운 건 한없이 가벼운 영화들로 내 취향이 나뉘는 것 같다. <차이나타운> 이후엔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시나리오를 통해 받은 위로와 위안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이 일을 계속하려면 꼭 흥행을 목표로 하진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위안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쪽으로 내 시선이 바뀌어야 하지 않겠냐고. <뎀프시롤>을 하고 싶었던 이유도 조금 모자라고 손해 보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판소리 복싱’이라는 소재도 재밌지만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지난 일에 대해 참회하고 싶어 하는 주인공이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씨네2000 기획실에서 영화일을 시작했다. 어떻게 영화계에 발을 들이게 됐나.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였는데 사촌언니가 영화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라더라. 그땐 ‘영화사’가 회사 이름인 줄 알았다. (웃음) 선배들이 무슨 영화 좋아하냐고 묻는데 아는 감독 이름은 스티븐 스필버그 한명뿐이었고. 지금도 씨네2000에 있던 선배들 만나면 ‘정말 많이 컸다’고 놀린다. 처음엔 영화가 내 관심 영역 밖에 있었지만 하다보니 일이 너무 재밌었다. 영화가 좋아서 일을 시작한 게 아니라 일이 재밌어서 영화를 하게 된 경우랄까. 그러다 영화가 정말 좋아졌고, 영화가 좋아지니 가치 있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정직원이 됐으니 일을 꽤 잘했나보다.

=그때 <여고괴담>(1998)이 터졌다. 지금으로 치면 천만 관객이 든 건데, <여고괴담>의 흥행으로 씨네2000이 기사회생했고 내게도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미술관 옆 동물원>(1998),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 <마요네즈>(1999), <인터뷰>(2000)의 마케팅을 했고, <중독>(2002) 때 제작부장을 하고, <여고괴담3: 여우계단>(2003)으로 프로듀서 입봉했다. 운이 좋았다. 짧은 시간에 영화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접할 수 있었고 가진 것에 비해 빨리 프로듀서로 입봉했으니.

-그렇게 씨네2000에서 8년을 일하다 폴룩스픽쳐스를 차려 <백야행>을 제작했다.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에, 한석규, 손예진, 고수 캐스팅에, 제작비도 꽤 든 영화였다. 하지만 흥행은 부진했다. 낙심이 컸겠다.

=‘백야행’을 풀이하면 ‘하얀 어둠 속을 걷다’인데 정말 하얀 어둠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웃음) 다른 이야기지만 지금 프로듀서 맡고 있는 <7년의 밤>도 판권을 사고부터 7년째 되는 해에 개봉하게 될 것 같다. 진짜 영화는 제목대로 가는구나 생각하니 무섭다. 아무튼 <백야행>의 판권을 산 회사가 영화사업을 접었고, 원작만 손에 쥔 채 회사를 차렸는데 참혹한 사랑 이야기라 투자도 잘 안 됐다. 될 것 같은데 안 되고, 끝났다고 생각하면 다시 시작되는,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다. <백야행> 개봉 이후엔 수긍, 반성, 자학의 단계를 차례로 거쳤다. 그러다 <은교>(2012)의 프로듀서 제안을 받았는데 시나리오 보고 샘이 나기는 처음이었다.

-영화 제작이 재밌는 일이구나 하고 느꼈던 때, 혹은 느끼게 해준 작품은 무엇인가.

=정지우 감독님과 <은교>를 작업하면서 영화 만들기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 내가 하고 싶은 영화는 무엇인지 <은교>를 하면서 알게 됐다. 정지우 감독님은 내게 영화적 스승 같은 존재다.

-현재는 <7년의 밤>(제작 펀치볼•감독 추창민•출연 류승룡, 장동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다. <7년의 밤>엔 어떻게 합류했나.

=<은교> 촬영이 끝나갈 무렵에 프로듀서 제안을 받았다. 정유정 작가의 원작 소설을 읽고는 이 방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로 만들려고 하는지 너무 궁금해졌다. 원작은 워낙 묘사가 훌륭한 소설인데 영화는 묘사만으로 만들 순 없으니까. 영화적 서사를 어떻게 구축해나갈지 궁금해서 그 과정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7년의 밤>은 예상보다 진행이 좀 늦어진 감이 있는데.

=그게 다 제목 때문이라니까. (웃음) 시나리오 작업이 정말 오래 걸렸다. 일차적으로 소설을 영화적 서사로 압축하는 작업을 했고, 인물의 내면에 관한 묘사를 영화적 움직임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했고, 여러 버전, 여러 주제를 섞어도 보고, 그렇게 시나리오 작업에만 5년이 걸렸다. 그래서인지 크랭크인하던 날에 긴장이 좀 되더라. 예민한 상태여서 촬영 첫날의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후에 류승룡 선배님이 스탭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시는 거다. 파우치에 가그린, 칫솔, 치약, 물티슈, 포스트잇, 볼펜, 두통약 거기에 본인이 직접 쓴 엽서까지 넣어서 스탭들에게 돌렸다. ‘그래, 이 영화가 드디어 들어가는구나, 지금 이순간의 행복을 즐겨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나더라.

-어떤 제작자가 되고 싶나.

=영화가 결과주의라는 게 참 슬프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과정에 들어간 사람들의 노력이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큰돈을 벌거나 큰 명예를 누리진 못해도 결과에 흔들리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또 언제든 누구와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제작자가 되고 싶고, 좋은 시나리오작가들을 더 많이 발굴해 그들의 작업에 힘이 될 수 있는 제작자가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천만이 하고 싶어요, 이런 거 얘기해야 되는 거 아닌가? (웃음) 마지막으로 이 얘기를 꼭 실어줬음 좋겠는데…. 처음엔 ‘창피하게 무슨 인터뷰야’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이런 자리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쑥스러워서 못할 것 같더라. <차이나타운>을 하면서 김혜수 선배님에게 정말 고마웠다. 어쨌건 나도 두려웠을 거 아닌가. 굳건한 척, 객관적인 척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늘 요동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혜수 선배님이 버팀목이 돼줬다. 제작자로서 어떤 판단을 내렸을 때 선배님이 보여준 반응과 지지가 나를 안 흔들리게 해줬던 것 같다. 선배님은 본인 중심의 사고와 선택을 절대 하지 않는다. 척척박사다. (웃음) “어떻게 그렇게 다 알아요?” 물으면 “배우는 노는 시간이 많잖니. 책이나 보는 거지” 그러신다. <씨네21> 지면을 빌려서 감사하단 얘기를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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