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말라야>(2015) <쎄시봉>(2015) <붉은 가족>(2012) <인류멸망보고서>(2011) <바람>(2009) <스페어>(2008)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 <숙명>(2008)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2006) <짝패>(2006) <사생결단>(2006) <그때 그사람들>(2004) <돌려차기>(2004) <그놈은 멋있었다>(2004) <불어라 봄바람>(2003) <바람난 가족>(2003)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 <품행제로>(2002) <라이터를 켜라>(2002) <7인의 새벽>(2001)
드라마 <응답하라 1994>(2013) <최고다 이순신>(2013) <민들레 가족>(2010) <녹색마차>(2009) <신데렐라 맨>(2009) <못된 사랑>(2007) <사랑한다면 이들처럼>(2007) <루루공주>(2005) <슬픈 연가>(2005)
“남자답잖나.” 요약하자면 그랬다. 정우가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로맨티스트로 단박에 떠오른 직후, <히말라야>로의 고생길을 선택한 이유 말이다.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무거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 누구나 아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만으로도 <히말라야>는 충분히 부담스러울 수 있는 작품이었다. ‘흥행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지는 산악영화인 데다 심지어 촬영 전 고된 훈련 과정을 필수로 거쳐야 했고, 현지 로케이션까지 배우가 직접 해내야 하는 상황은 스타가 된 입장에선 당연히 거절할 수도 있을 만한 프로젝트였다. 아니나 다를까, 훈련 중엔 실제 전문 산악인인 김미곤 산악대장의 지휘하에 “네발로 산을 기어내려왔을 만큼 극악한 연습”을 했고, 네팔과 프랑스 몽블랑에 로케이션 촬영을 가서는 높은 안압과 극심한 두통에 고생은 고생대로 다 겪어냈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엔 본인조차 “별 기대 없이 읽었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우는 결국 히말라야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른다는 어느 산악인의 말마따나 <히말라야>에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에 와닿는 작품, 인간적이고 연민이 드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캐릭터를 볼 때 저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포인트가 있으면 된다. 박무택이란 인물은 나에게 건강하고 유쾌한 인물로 받아들여졌다. 그분이 겪은 상황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그 감정은 공감이 됐다. 목표, 꿈,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산에 오른 그 의지까지도 얼마나 남자다운가.”
<히말라야>의 초반부는 사실상 정우의 독무대다. 박무택, 정우가 앞에서 영화를 잘 이끌어야만 엄홍길(황정민) 대장이 굳이 에베레스트까지 후배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는 이유, 영화가 휴먼 원정대의 슬픈 기억을 소재로 쓴 이유가 설명이 될 터였다. 박무택은 엄홍길 대장과의 관계를 쌓아가며 애교와 근성으로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데까지 성공한다. 실제로 고 박무택 대원은 엄홍길 대장과 네번의 등정을 함께했을 만큼 진득하고 온화한 성품의 산사나이였다고 한다. 정우는 특유의 활기와 넉살을 불어넣어 박무택이라는 인물에 입체감을 더했고, 과연 <히말라야>의 박무택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산에 잠든 그를 데리러 가고 싶어질 만큼 정겹고 사랑스러운 인물로 화했다. “그래서 초•중반까진 밝고 유쾌한 사람으로만 연기했다. 그라고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알았을까. 당연히 몰랐을 거다. 죽음을 준비하는 느낌이 없이 밝고 유쾌한 모습이어야 사실적으로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관객의 감정을 증폭시킬 수 있었던 거다.”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정우는 엄홍길 대장의 저서도 참고했고, 영화사에서 제공한 페이퍼와 다큐멘터리 자료도 꼼꼼히 챙겨보았지만 직접 유가족을 만나지는 않았다. 결국 <히말라야>는 영화다. 얼마나 고인을 잘 표현하느냐보다 고인의 성격적 특성을 빌려 박무택을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도록 연기하는 것이 자신의 본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한들 내가 그분이 될 순 없다. ‘내가 만약 그분이라면’ 하는 생각으로만 임했다. 팩트는 가져가되 표현 방식에 있어선 맡은 배우가 알아서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주승환 프로듀서는 “현장을 찾아 멀리서 정우의 연기를 보고 돌아간 고 박무택 대원의 유가족이 정우에게서 고인과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보았다 하더라”고만 전했다.
지금이야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 영화 <쎄시봉>의 오근태, <히말라야>의 박무택과 같이 고지식하게 보일 정도로 지순한 순정남을 연이어 연기하고 있지만, 돌아보면 정우만큼 극적인 이미지의 변화를 겪은 배우도 드물다. 초기엔 남자 냄새 물씬 풍기는 거친 배역을 주로 맡았다. <품행제로>에선 조직 단군파의 조직원으로 등장해 주저없이 준필(류승범)의 등에 칼을 박아넣었고,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선 잔뜩 분위기를 잡으며 어린 동생들을 위협하는 껄렁한 동네 형이었다(신인 시절의 공유와 함께 등장하는 그 유명한 당구장 장면은 정우의 ‘못난 모습’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첫 주연작인 <스페어>에서도 그가 연기한 길도는 위기에 놓인 친구를 팔아먹는 양아치였다. 한때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들에도 슬쩍 얼굴을 내밀었다. <짝패>에서는 짝패 5인방의 리더 왕재(안길강)의 고등학생 시절을 연기했다. 고등학생 왕재는 불과 몇분 뒤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해질지도 모르는 채 친구를 위해 패싸움판에 덥석 끼어드는 의리 있는 소년이다.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에선 난감한 일본어를 구사하는 헌병대장으로 출연해 짧고 굵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최근 유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한 탓인지 지금 관심을 두고 있는 시나리오들은 주로 남성적인 캐릭터가 주인공이라고 한다.
하지만 연기보다도 그의 일상을 먼저 보게 될 것 같다. 2016년 1월부터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 ICELAND>를 통해 조정석, 정상훈, 강하늘과 함께한 아이슬란드 여행기를 보여줄 예정이다. <응답하라 1994> 이우정 작가와의 친분으로 나영석 PD를 알게 됐고, 덕분에 <삼시세끼 어촌편>에도 잠깐 출연한 인연으로 아이슬란드까지 가게 됐다. “그 잠깐의 출연이 너무 짧았다. 목포까지 가서 배 타고 섬에 들어가는 데 12시간이 걸렸다. 아니 뭐 미국인가. (웃음) 그런데 정작 섬에 머문 것은 반나절도 안 됐으니까 같이 지내는 시간이 적어서 아쉬웠다. 원래는 여행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는데, <히말라야> 해외 촬영으로 그런 환경에도 적응이 된 시기에 마침 섭외 전화가 걸려왔다.” ‘진성 집돌이’인 그는 “어딜 가도 숙소에만 가만히 있는” 편이다. “재미없게 들리지만 연말, 신년에도 그냥 집에 있는 게 좋다. 남들처럼 텔레비전 보며 라면 먹고, 심심하면 책 보고, 치킨에 맥주도 먹고. 여행을 갔어도 적당히 바람 쐬면 그만이고, 시나리오든 책이든 읽으면서 숙소 안에 있는다. 새로운 동네 갔다고 명소 찾아다니고 사진 찍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번 아이슬란드에서는 정반대로 놀고 있더라. 예능이라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연기보다 예능으로 대중을 만나는 데에 부담은 없어 보인다. 정우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 조용히 작은 역할만 연기하던 때를 떠올리면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뭐든 심각하게 의미 부여하지 않고, 소신대로 호기로운 선택을 이어가는 대범한 그의 손가락이 어느 시나리오를 집어들게 될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너무 오래 쉴 생각은 없다. 얼른 작품을 골라 촬영 들어가야 내년 중에 또 관객을 만날 수 있을 텐데. 그래도 일단은 <꽃보다 청춘 ICELAND>가 있으니까? (웃음)” 넉살 좋은 또 다른 남자를 얼른 만나보고 싶다.
바람 불어 붙은 불씨
서른살 이후, 배우로서의 자신의 삶이 많이 달라졌다고 정우는 말했다. “내 연기에 대한 확신의 정도가 다른 것 같다. 배우로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이십대를 보냈다면, 삼십대가 돼선 어떤 불씨가 붙었다.” 작품으로 말하자면 <바람>이다. <바람>은 정우가 ‘김정국’이란 본명으로 자전적 얘기를 깊숙이 들이댄 영화다. <바람>의 후속 이야기까지도 시나리오는 써두었다고. “지금은 어디 창고에 있을 텐데. (웃음) 그냥 연기에 도움이 된다는 목적으로만 쓰고 있다. 단편도 몇 차례 찍어봤는데 그것 역시도 연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한 거지 연출에 욕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연출은 뭐 아무나 하나. 연기나 잘했으면 좋겠다. (웃음)” 바람 불어 붙은 그 ‘불씨’ 덕에 우리가 그간 좋은 남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