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people] “상처를 보듬는 각자의 방식을 하나의 필름에 담았다”
2016-01-14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거미의 땅> 김동령, 박경태 감독
박경태, 김동령 감독(왼쪽부터).

<거미의 땅>(2012)은 폐허가 된 기지촌, 그 공간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성을 붙잡기 위해 세명의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이어간다. 그런데 각각의 여성이 관객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 첫 번째 여성은 카메라 앞에 앉아 자신의 과거사를 덤덤히 들려준다. 두 번째 여성은 카메라와의 직접적인 대화가 아니라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미국에 있는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세 번째 여성은 자신의 과거 속 기억을 끄집어내 본인이 직접 재연까지 해 보이며 환상적인 장면 연출의 주인공이 된다. 극화된 장치 없이 대상을 담는 다큐멘터리의 화법과 비교해보면, 대상에 접근해가는 <거미의 땅>의 방식은 생경하다.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될 것이다. 물론 이 영화를 눈에 띄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기지촌 여성들의 문제를 꾸준히 주목해온 김동령, 박경태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다큐멘터리에서의 형식적 실험이 어떤 의도에서 나왔는지, 그 시도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혹은 효과적으로 담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점점 사라져가는 기지촌들을 찾아 기록해두는 작업에서 <거미의 땅>이 시작된 걸로 안다.

=김동령_기지촌에 관한 작업을 해오며 인물을 쫓아가는 방식의 다큐멘터리 촬영에 지쳐 있었다. 그렇다면 기지촌이라는 공간에 대한 책을 만들자 싶어 공간만 계속 찍었다. 그러다 작업을 마치지 못한 채 경태씨와 결혼해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그런데 그사이 경태씨의 작품 <있다>(2005)의 주인공인 혼혈인 박명수씨가 돌아가셨다. 워낙 각별한 사이였던지라 충격이 컸다. 경태씨는 그와 함께 그의 고향인 파주 일대를 걸으며 “다음에는 기지촌을 산책하는 형식의 영화를 같이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나누곤 했다. 상황이 바뀌어 박명수라는 유령이 기지촌으로 가는 여정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거미의 땅>의 시작이었다.

박경태_영화에 두 번째로 등장하는 박인순씨와는 다큐멘터리 <나와 부엉이>(2003)를 함께 찍었다. 그 영화는 그녀가 그림을 그리며 치유를 받는 듯한 인상의 따뜻한 분위기로 끝난다. 그런데 외부의 시선으로 그녀를 볼 때 내가 불편해지지 않기 위해 그녀가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게 아닐까. 영화는 따뜻하게 끝났어도 인순씨의 힘든 상황은 변하지 않는데 말이다.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늘 인물을 대상화하지 말자고 경계해왔는데 다시 한번 그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작가로서의 나의 시선, 외부에서 대상을 보는 시선을 완전히 깨뜨려보자는 생각이 커졌다.

-세명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박인순씨는 전작에서 인연을 맺었고 박묘연, 안성자씨는 어떻게 섭외하게 되었나.

=김동령_공간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고 야심차게 시작은 했는데 막상 공간만 찍으니 재미가 없었다. 공간이 살아나려면 기억과 연결돼야 했다. 우리 둘 다 미군기지촌여성상담과 지원을 맡은 단체인 두레방에서 일했는데 그때 알게 된 ‘바비 엄마’(박묘연씨)와 박인순씨를 떠올리게 됐다.

박경태_2003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지촌 출신 혼혈인들에 대한 인권 실태 조사 사업을 했다. 그때 두레방에서 실태 조사를 하게 됐고 바비 엄마를 만났다. 기지촌 양색시들의 자생적인 권익보호단체인 ‘민들레회’의 회장님이셨다. 원래는 사진조차 잘 안 찍으시는 분인데 아들처럼 여기던 흑인 혼혈인이 깡패들에게 맞아 숨지는 사건을 겪은 뒤로 태도가 바뀌었다. 억울한 죽음이 기록조차 되지 않은 채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신 거다. 이번 촬영도 바비 엄마가 먼저 “나 죽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두자”며 촬영을 하라고 해주셨다. 안성자씨도 실태 조사를 하며 만났다.

-<거미의 땅>은 극영화적 요소가 다분히 들어가 있는 다큐멘터리다. 그것이 인물의 트라우마를 재연하는 방식으로 적극 차용됐다.

=김동령_세 사람이 사는 곳, 나이, 우리와 관계 맺는 방식, 각자가 카메라를 대하는 태도 모두 다 다른데 어떻게 하나의 영화로 묶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 세 사람 각자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게 된 거다. 바비 엄마는 카메라에 대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면 그게 세상으로 퍼져나간다는 생각이 강해 항상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읽고 쓸 줄 모르고 말도 짧게 짧게 하는 인순씨와는 긴 인터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걸 찍었다. 반면 안성자씨는 본인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이미 있었고 심지어 세팅까지 해뒀다.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본인이 겪은 경험을 과장해서 말하기도 했고. ‘그럼 당신이 보여주고 싶은, 하고 싶은 이야기 안으로 우리가 들어가보겠다’고 해서 극적인 연출을 하게 된 것이다.

박경태_세분 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각자의 트라우마가 있고 트라우마와 함께 사는 방식들이 저마다 다르다. 그 트라우마를 기존의 영화적 형식에 맞춰 넣으려고 하면 안 된다. 트라우마와 함께 사는 그들 각자의 방식과 우리가 긴밀하게 협업하는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성적 학대와 착취로 생긴 트라우마를 간직한 사람은 판타지로서의 자기환영을 자기 옆에 세워두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안성자씨는 동화 같은 자기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재구성한 거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사실과 비사실을 구분하고 ‘이건 이런 형식으로 만들어져야 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권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개성도 실체도 다른 세 사람이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매체가 다를 뿐이다. 이들을 이어주는 게 기지촌이라는 공간이더라. 애초에 공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자고 했던 의도로 자연스레 다시 돌아가게 됐다. 그러면서 되레 자유롭게 판타지적인 내러티브가 가능해졌다.

-안성자씨의 과거 기지촌에서의 기억을 재연하는 환상 신에서 내레이션의 쓰임이 특이하다. 연출자의 음성, 안성자씨의 음성과 그녀 내면의 목소리가 분화된다. 화자의 인칭도 계속해서 바뀐다.

=김동령_안성자씨가 울면서 자신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듣다보면 자기랑 엄마를 동일시하는 지점들이 있다. 그러면서 또 자기가 기지촌 클럽에서 성매매를 했을 때 불리던 별명과 그 일을 그만둔 지금의 자기 이름을 혼용해서 쓴다. 그런 혼란이 표현되려면 하나의 인칭으로 가면 안 되겠더라. 가편집본을 두고 안성자씨랑 같이 내레이션을 써내려가기도 했다.

-영화의 주인공 가운데 유일하게 바비 엄마와 안성자씨가 극 안에서 단 한번(영화는 이것을 두번에 걸쳐 나눠 보여준다) 만난다. 그 만남이 극화됐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박경태_안성자씨가 기억하는 엄마에 대한 이미지와 바비 엄마의 이미지 사이에 일종의 기억의 친화성이 있다. 안성자씨 어머니 나이대가 딱 바비 엄마의 나이대이기도 하고. 안성자씨가 바비 엄마가 운영하는 분식집에서 햄버거를 먹고 떠나는 장면은 그렇게 들어갔다.

-<거미의 땅>(Tour of Duty)이라는 한글, 영문 제목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김동령_한글 제목은 바비 엄마가 “개미처럼 일하고 거미처럼 사라져간다”고 한 말에서 가져왔다. 미군들이 파병갈 때 ‘의무의 여행을 간다’라고 말한다. 한국전쟁 때 파병됐던 미군들이 만든 사이트 tourofduty.org가 있기도 한데 한국의 기지촌에 대한 자료가 많다. 기지촌에서 만난 어머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파병 군인들이 간직한 추억 사이의 괴리가 상당하다. 이 영화 자체가 (그런 괴리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의무의 여행’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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