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요리 열풍이 불기 훨씬 전인 1990년대에 이미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공부하던 친구가 있었다. 남자였고 학생이었고 자취를 했다. 다시 말해 힘과 시간은 남아도는데 돈은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처지가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강제로 주머니 털어 나온 돈으로 장을 봐서 돈 주고는 못 먹을 음식을 먹는 거.
요리의 나라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아이는 산동네 자취방에 월계수 잎과 가쓰오부시,곰국 끓이는 들통을 두고 있었다. 다진 고기와 야채와 토마토를 볶다가 월계수 잎을 곱게 띄워 약한 불에 끓여 미트소스를 만드는 그 애를 보며 아, 조기교육의 힘이란 굉장하… 긴, 여기 앉아 있는 우리가 몽땅 조기교육의 폐해를 보여주는 산증인이다! 프랑스 살았다고 다 요리 잘하면 나는 고향(무려 전주다)에서 한정식 배워 상경했겠다. 우리 엄마는 집에 가면 즉석국 사줘, 그게 더 맛있대, 너도 아까운 고기 버리지 말고 그냥 인스턴트 소스 써.
그의 도전이 낳은 ‘생감자가 씹히는 감자전’을 안주로 술을 마시고 나서 고구마는 날로 먹어도 되지만 감자도 날로 먹어도 되는 건가, 화장실은 한개뿐인데 일단 들어가서 자리 먼저 차지할까, 고뇌에 빠진 우리에게 그 애가 해장하라면서 김치 양념이 간밤의 감자처럼 버젓하게 살아 있는(그래서 먹으면 속 쓰린) 김칫국을 내밀던 날, 나는 결심했다. 아듀, 조리사 자격증 따면 그때 보자. 그렇게 우린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조기교육도 제대로만 받으면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 있다. 영화 <로맨틱 레시피>(2014)의 원작인 소설 <백 걸음의 여행>의 인도 소년 하산은 생선 카레의 냄새를 맡으면서 식당 주인 손자로 태어나 온갖 향료를 섭렵하며 할아버지보다도 밥을 잘하는 기이한 능력을 발휘하다가 하필이면 요리 천국 프랑스로 이민을 가는데 우연찮게도 백 걸음 떨어진 앞집에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가 살고 있더란, 마음먹고 대치동 학원가로 위장 전입을 해도 이렇게는 못할 거 같은 조기 교육의 세례에 흠뻑 젖어 자란다.
그것은 때로 인간의 의지도 뛰어넘으니, 스위스 로잔의 유명한 요리사 프레디 지라르데는 요리사 아버지와 식당 웨이트리스 어머니가 너는 힘든 일 하지 말라면서 요리를 못하게 했지만 요리의 피는 물보다 진해, 돌고 돌아 결국엔 요리사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리가 힘들다고 시킨 일이 철판 인쇄공, 철판은 프라이팬보다 가볍지 않으니, 좀더 편한 일을 시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혈통이 전부도 아니다. 내 친구는 한•중•일식, 삼국의 조리사 자격증을 보유한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았다는데, 와우, 산낙지가 느끼해. 움직이는 건 안 먹겠다고, 움직임을 멈추면 먹겠다고 발악을 해도 입 안에 처넣더니, 기대 이상이야. 문제는 피만 이어받을 것이 아니라 재능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거다, 아니면 신의 축복이라도.
먹은 거라곤 잔반뿐인, 애니메이션 <라따뚜이>(2007)의 생쥐 레니는 요리 명인의 자손이라지만 요리 백치인 링귀니(근데 생긴 건 스파게티니)를 마리오네트처럼 가지고 놀면서 음식을 만들게 한다. 그러고 보니 이거 괜찮은데, 밥도 안 하고 설거지도 안 하고. 링귀니는 아버지가 명인이면 뭘 하나, 물려준 거라곤 염색체 스물세개하고… 아, 식당, 재능보다 소중한 부동산을 물려줬구나.
아버지가 뭐 하시는지는 몰라도 영화 <맛을 보여드립니다>(2000)의 이사벨라(페넬로페 크루즈)는 바다 여신의 축복을 받으사 멀미의 저주와 더불어 요리의 재능도 함께 타고난다. 그녀 요리의 핵심은 달콤한 코코넛과 브라질 청양고추 말라게타, 한마디로 자극적인 건 몽땅 쏟아부은 브라질판 집밥 벨선생. 그래, 맵고 달면 맛있지.
신의 축복은 몰라도 무려 프랑스 조기교육에 요리사의 혈통까지 갖춘 데다 과학자의 영혼으로 무장했으며 (그의 모계가 요리사라면 그의 부계는 과학자, 그리고 요리는 물리와 화학의 산물) 달고 매운 걸 좋아해 케첩 바른 핫도그를 설탕 찍어 먹고 짜장면에 고춧가루 뿌려 먹는 걸 처음 가르쳐준 내 친구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인내다. 아무리 다큐멘터리 만드는 과정을 담았다고 해도 그렇지, 영화도 다큐처럼 찍은 데다 다큐도 엄청 재미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하는 동시에 다큐 보는 수준 이상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된장>(2010)은 어찌 보면 완벽한 된장을 만들기 위한 인내의 여정이 얼마나 지루할 수 있는지를 관객의 물리적인 경험으로까지 승화한 진정 새로운 차원의 예술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중요한 건 기다리는 거라고 말한다.
소금에서 간수가 빠지는 몇년을 기다리고, 깨끗한 샘물을 찾아 팔도를 헤매다가 등산까지 하고(이게 제일 싫음), 돼지가 밭고랑을 뒤집으면서 하늘과 땅의 영양을 흠뻑 받은 콩이 여물고, 그걸 익히고 섞어 제대로 다독인 된장이 숙성하기까지, 시간은 길고 기다림은 지루하다. 그러니까 내가 그랬잖아 조XX야, 그냥 과자 사먹자고, 최소한 익기는 했잖아.
영화 <식객>(2007)은 말한다, 모든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고(그 숫자에서 -1, 우리 엄마). 그런데 내가 동네에서 손맛으로 유명한 할머니 취재하러 갔더니, 할머니, 조미료 대용량으로 사놓고 쓰시던걸. TV시리즈 <키친 컨피덴셜>의 원작자로 유명한 스타 셰프 앤서니 보뎅은 고백했다, 자기가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 중 하나인 CIA에서 가장 깊은 맛이 나는 육수를 내던 비결은 이런 거였다고. “내 조리복 속에는 닭고기와 가재 맛을 내는 두개의 수프 믹스가 들어 있었지만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우리 엄마는 드라마에 나오는 찬합과 밀폐용기에 담긴 반찬 대신 포장을 뜯어 알맹이만 비닐봉지에 담은 즉석국과 맹물에 이것만 타면 언제든 국을 먹을 수 있다는 조미료 통을 놓고 갔지만, 그게 내 집밥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24시간 솥 옆에 붙어 앉아 국자를 휘젓고 있지 않아도 된다. 엄마는 원래 그렇다고 하지만, 나에게 엄마는 그냥 밥 챙겨주는 사람이다, 잠도 못 자면서 곰국 기름 걷어내고 콩 삶는 사람이 아니다.
주방에선 제발 요리만 하자
천상의 음식을 만들기까지 요리사가 이겨내야 하는 두세 가지 유혹
자살의 유혹
영화 <바텔>(2000)의 주인공으로 루이 14세 시대 최고의 요리사였던 프랑수아 바텔(제라르 드파르디외)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왜 그랬을까, 생선이 안 와서.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냥 가게 문을 닫았을 텐데, 잘나가는 식당은 원래 그러고 그래야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니까. 콩데 왕자를 모시던 바텔은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를 맞이해 며칠간의 완벽한 만찬을 준비했지만 주문 착오로 생선 요리를 만들 수 없게 되자 죽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 주문 착오 또한 착오로서, 그날 생선은 무사히 도착했다고 한다.
인정의 유혹
영화 <식객>의 주인공 성찬(김강우)은 생을 바쳤던 식당에서 누명을 쓰고 쫓겨난 다음, 함께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해 퇴직금으로 소를 산다. 그리고 요리 대회 부상인, 고릿적 대한제국 시절 쓰던 이 빠진 부엌칼을 얻겠다며 최고의 쇠고기를 찾아… 그 소를 잡는다. 뭐야, 동생이라더니 뼈를 바르고 있어, 조금 전까지 눈을 끔뻑끔뻑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요리영화를 가장한, 야망에 눈이 멀어 자행된 근친살해 스토리에 차마 귀를 열고 듣지 못할 부끄러운 대사를 남발함으로써 영혼의 후안무치를 단련하는 하드코어영화가 아닌가.
키친의 유혹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키친>이 원작이라고 착각해서 맛있는 계란죽하고 오이샐러드하고 돈가스덮밥이 나올 줄 알고 보다가 키친의 또 다른 용도만을 발견한, 어찌보면 허무하고 어찌보면 유익한 영화가 <키친>이다. 이걸 보니 예전에 애청하던 외국의 심야 요리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알몸에 앞치마만 걸친 남자가 여자 진행자와 함께 초콜릿 무스를 만들면서 서로 손가락으로 먹여주는. 왜 이 키친에선 빨아먹을 수 있는 음식만 쿠킹하는 것일까. 이 유혹을 견뎌내야 씹어 먹는 음식도 쿠킹할 수 있으리니, 아 근데 씹어 먹는 음식도 *&^%$ 할 수 있구나. 여러분, 에브리바디 키친에서 러브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