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제들>(2015)에서 사제복은 단순한 의상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목적에 맞게 제작되어 의상이 캐릭터를 특별하게 만드는 무엇이 아닌, 되레 강동원을 만나는 순간, 의상이 가진 일정의 역할은 상당한 수준으로 확장된다. 바로 캐릭터가 독특함으로 치환되는 효과다. <검은 사제들>에서 사제복을 입은 보조사제는 충무로에서 낯설었던 소재를 불식시키며 500만 관객에게 어필했으며, <군도: 민란의 시대>(2014)에서 도포 차림의 서자 조윤은 사극의 구도 안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독특한 악당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한국영화의 배우 카테고리에서 강동원은 그렇게 언제나 예측불허의 이질감을 선사하며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온 배우다.
32살, 전과 10범을 기록한 <검사외전> 속 치원이 입은 건 푸른 죄수복이다. 비극으로 맺음될 아픈 사랑에 관객을 눈물바다로 만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의 사형수 윤수의 슬픔이 묻어나는 얌전한 죄수복과 달리 이번엔 아무렇게나 롤업해도 부대끼지 않는 헐렁한 죄수복이다. 큰 키에, 근육보다 뼈가 앞서는 강동원의 몸과 죄수복 사이, 그는 캐릭터 치원이 가진 껄렁함, 뺀질함, 귀염, 쿨함, 자유분방함에 더해 느끼함 한 방울까지, 온갖 속성들을 모두 욱여넣고 자신만만하게 스텝을 밟아 나간다.
<검사외전>의 치원(강동원)은 중학교 수준의 기초영어만 가지고도 반반한 외모와 수려한 입담 하나로 미국에서 자라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를 나온 전도유망한 재미동포 행세를 하며 여자들의 돈을 갈취하는 사기꾼이다. 그의 이런 출중한 능력은 의외의 곳에서 제대로 발휘된다. 그는 비자금 수사를 하다 밉보여 결국 철창에 갇히게 된 검사 변재욱(황정민)의 부탁(사실상 협박)에 못 이겨 이번엔 가짜 검사 노릇에 도전한다. 사기꾼이 곤경에 처한 의로운 검사를 돕고, 대한민국 사회의 정의를 수호할 역할을 한다니, 그야말로 판타스틱 외전이다. 치원은 거의 20분이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스크린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슈트를 갖춰 입고 안경을 쓴 차가운 이미지. 사진을 오려붙여 서류까지 감쪽같이 위조하는 치원의 행각은 곧장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에서 보았던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연상케 한다. “감독님이 안 그래도 영화 들어가기 전에 레퍼런스가 될 만한 영화들을 챙겨주시더라. 지금 와서 이야기지만 그거 한편도 안 봤다. (웃음)” 치원을 온전히 자기가 해석한 페이스대로 표현하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난 그냥 시나리오에 집중하는 편이다. 본다고 달라질까, 내가 생각하는 리듬이 있는데.” 강동원은 “대본 하나하나를 꼼꼼히 분석하고 체크하는” 상대역 황정민과는 정반대의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사실 스타일이 달라서일 뿐 꼼꼼하고 완벽하기로는 강동원도 매한가지라는 게 영화계의 정평이다. “나는 그런데 대본을 많이 안 본다. 처음 보고 느낀 감정대로 따라가는 편이다.”
집권층의 비리를 파헤치는 사회고발성 소재라는 면에서 <검사외전>은 꽤 무거운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 무거움을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각축전으로 풀어내 코믹 풍자극의 성격을 강하게 가져간다. 치원을 두고 “지금까지 내가 맡은 역할 중 가장 웃긴 캐릭터”가 될 것이라는 강동원은 “늘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걸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작품 선택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큰 부담은 아니다. 뭐든 항상 재밌어서 하니까”라고 말한다. 돌아보면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별다른 패턴이 잡히지 않는다. “투자•배급사에서 그런 말을 한다고 들었다. 강동원이란 배우는 도대체 영화 선택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고. 나는 시나리오가 재밌으면 매달린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서 이제 내 결정에 따라 할 수 있는 작품이 많아졌다. 하지만 의무감이나 어떤 의리 때문에 작품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건 지금까지 내가 고수해온 원칙이기도 하다.” <초능력자>(2010)처럼 투자가 힘들어 보였던 독특한 소재의 작품이나 <두근두근 내 인생>(2014)의 중학생 아들을 둔 아빠 역할도, <검은 사제들>처럼 생소한 역할도 예의 그 기준이 적용됐다. 이번 <검사외전>의 치원도 사회고발이라는 거창한 주제에 앞서 도전하는 재미가 더욱 컸던 경우다. “요즘은 연기가 갈수록 더 편해지고 재밌다는 걸 느낀다. <전우치>(2009), <의형제>(2010)를 할 즈음 좀 편해졌다가 군입대로 공백기를 가지면서 좀 불편해지더니, 지금 다시 자유롭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도 느낀다. 한 10년 정도 지나니 이젠 내가 쉬지 않고 일하는 연기자라는 걸 비로소 받아들여주는 것 같다. 그게 참 기쁘다.” 곧 엄태화 감독의 <가려진 시간>에서 미스터리한 사랑에 빠지는 남자로, 조의석 감독의 <마스터>에서 다단계 사기를 추적하는 형사로 또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이어나갈 강동원. 그 의외성과 성실함으로 전진하는 이 배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