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어떤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는 느낌”
2016-02-04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최성열
<동주> 현장에서 만난 이준익 감독 인터뷰

-<동주>를 연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윤동주뿐만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 시대의 다양한 소재와 인물을 반드시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전 제작했던 <아나키스트>(2000)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20년 가까이 해왔다. 그게 윤동주라는 인물로 구체화된 건 3년 정도 됐다. 감독조합워크숍에 참석한 뒤 신연식 감독과 함께 제천에서 서울로 돌아오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신 감독에게 <동주>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한번 써보지 않겠냐고 했다. 윤동주 평전과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이라는 영화의 형식을 참고해서, 후쿠오카 감옥에 있는 윤동주의 현재와 북간도 용정 시절로부터의 과거가 병렬로 진행되는 시나리오로 한번 진행해보자고 얘기를 했다. 신 감독의 장점이, 말한 대로 금방 쓰더라고. (웃음) <사도>보다 시나리오가 먼저 나왔다. 그래서 <사도>를 찍고 내가 다시 각색 작업을 해서 만들게 된 거다.

-식민지 시대의 다양한 사건과 사람들 중 윤동주를 선택한 이유는.

=예전에 <아나키스트>를 제작하며 기획을 맡은 조철현, 당시 연출자 겸 시나리오를 맡은 박찬욱 감독과 함께 상하이도 가고 20, 30년대 당시 식민지 시대의 독립운동자료를 다 검토했었다. 그러면서 안타까웠던 점이, 식민지 시대에 독립운동을 시도했던 인물들의 성공사례가 아주 드물다는 점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은 안중근, 윤봉길 의사 정도이고 그외 수백배, 수천배 많은 인물들이 독립운동에 삶을 투척하다시피 했는데 대부분의 사례가 실패로 남았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 시대를 다룬 영화들도 굉장히 패배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으로 그린 것 같아서 안타까웠는데, 윤동주라는 인물이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어떤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방식이라면.

=아까 창씨개명과 관련된 장면을 촬영했잖나. 창씨를 개명했으면 전부 다 친일파인가. 그렇지 않다는 거다. 당시 전 국민의 80%가 창씨개명을 했으니까. 식민지 시대를 통과하는 인물의 내면과 외면의 디테일한 갈등은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현실이었다. 그때로부터 7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그때에 대한 자세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게 지금의 현실 아닌가. 식민지 시대의 현실, 그리고 그때의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지금의 현실에 대한 질문이 윤동주의 궤적을 좇는 과정에서 좀더 구체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동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윤동주와 송몽규가 맺는 관계일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나.

=송몽규는 과정은 있는데 결과가 없는 인간이다. 반면 윤동주는 과정은 시원찮은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결과물이 있었다. 윤동주와 동시대를 살았던 상대자를 찾는 과정에서, 가장 넓은 면적으로 만났던 사람이 송몽규라고 봤다. 결과가 없고 과정에 충실했던 송몽규라는 인간과 과정이 도드라지지 않았지만 매 순간 시라는 기록으로 켜켜이 쌓은 결과물을 내놓은 윤동주. 어떻게 보면 이 둘의 관계는 같이 태어나고 같이 죽은(송몽규가 세달 먼저 태어났고, 윤동주가 한달 이르게 세상을 떠났다. -편집자 ), 피아가 구분되지 않는 존재인 것 같다.

-강하늘, 박정민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배우 황정민이 캐스팅해줬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다가 송강호, 황정민, 김윤석, 강동원과 맥주를 한잔하게 됐다. 그때 황정민이 갑자기 나보고 “<동주> 하신다면서요? (강)하늘이 어때요?” 하더라. 나도 강하늘을 보면서 ‘몇 년 지나면 물건이 되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기에 좋다고 했다. 그리고 박정민을 추천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박정민이 <신촌좀비만화> 속 류승완 감독의 단편 <유령>에 출연한 그 배우인지는 미처 몰랐었다. 그 영화를 볼 때 마치 빈폴의 자전거가 가슴속에 들어오듯이 박정민으로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았거든. (웃음) 그러니까 <동주>의 캐스팅 디렉터는 황정민이었다.

-흑백영화로 만들겠다는 선택을 하게 된 계기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돈이 없어서. 왜냐하면 이게 제작비 5억원밖에 안 되는 저예산영화라서, 시대물을 저예산으로 찍다보면 컬러였을 때 어설픈 화면이 될까봐. 또 하나는 우리가 윤동주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학사모를 쓴 흑백사진이다. 윤동주에 대한 컬러의 이미지가 없다. 그래서 영화적인 표현으로도 흑백이 유리하겠다고 봤다.

-‘이준익’이라는 브랜드로 더 큰 규모의 투자를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맞다. 하지만 <동주>는 50억원 가지고도 모자라는 이야기다. 윤동주가 북간도 용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경성에 갔다가, 일본 도쿄에서 교토로 가고 후쿠오카 감옥까지 가게 되는데 이 도시들만 보아도 벌써 100억원을 줘도 모자랄 판이다. 돈을 더 들일 수도 있겠지만, 윤동주 시인의 시세계가 가지고 있는 단정함과 소박함이 있고, 그 세계를 다루기 위해서는 화려한 규모로 가는 건 불리하다고 봤다. 의도적으로 제작비를 적게 잡은 건 상업적으로는 불리할 수 있지만, 영화적으로는 유리하다는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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