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의 트립 투 유럽]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단테의 고향, 예술의 성지
2016-02-02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스탕달 신드롬>. 우피치 미술관 복도에서 바라본 풍경. 아래로 베키오 다리가 보인다.

피렌체는 ‘단테의 고향’이다. 조반니 보카치오에 따르면,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피렌체는 축복받은 땅이다. 호메로스에 의해 그리스가, 베르길리우스에 의해 로마가 불멸의 땅이 됐다면, 이탈리아는 바로 단테 덕분에 영원에 이를 것인데, 피렌체는 ‘계관시인’을 낳은 ‘엄마의 땅’이라는 이유에서다. 신화와 사실 사이의 이야기이겠지만, 실제로 시인의 모친은 월계수 아래서 사내아이를 낳는 태몽을 꿨다고 전해진다(<단테의 삶>, 보카치오 지음). 어두운 눈빛, 매부리코, 검은 피부, 깡마른 얼굴, 아래턱이 앞으로 나온 불균형적인 인상은 시인이 세상과 싸운 갈등을 충분히 짐작게 한다. 피렌체는 시인의 고향이긴 하지만, 세상사가 종종 그렇듯, 어느 순간 단테는 정치적인 이유로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한 뒤, 죽기 전까지 단 한번도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단테는 숭고한 소수의 성인들처럼, 고향 사람들에게 버림받았고, 고향에서 매장되지도 못했다. 고향의 영웅을 이역에서 죽게 만든 죄의식 때문일까? 이후 피렌체는 이탈리아의, 아니 세상의 예술을 주도하는 르네상스의 성지가 되면서, 뒤늦게 시인을 위한 진혼의 의례를 치른다. 보카치오의 저서도 수많은 의례 가운데 하나일 터다. 다행히 의례의 모든 과정은 예술의 역사가 됐고, 덕분에 피렌체는 단테의 고향이자, 예술의 도시라는 영예를 안은 것이다.

<강박관념>. 뒤로 산 미니아토 교회가 보인다. 오른쪽은 주연을 맡은 클리프 로버트슨.

다리오 아르젠토, 우피치에 가다

다리오 아르젠토는 소위 ‘잘로’(Giallo, 노란색이란 뜻의 이탈리아어로 스릴러 장르를 지칭)의 장인이다. 특히 그의 작업은 ‘이탈리아식 잘로’라는 하부 장르로 설명된다. 일반적인 스릴러에 피가 튀는 ‘스플래터 필름’(Splatter Film)의 특성을 섞고 있어서다. 말하자면 아르젠토는 자신이 흠모하던 앨프리드 히치콕의 스릴러에 ‘핏빛’을 잔뜩 입힌 셈이다. 이 분야에서 다리오 아르젠토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고, 할리우드에 존 카펜터 같은 추종자들도 낳았다. 호러영화의 팬이라면 <딥 레드>(1975), <서스페리아>(1977) 같은 작품들을 금방 기억할 것이다.

<스탕달 신드롬>(1996)은 아르젠토의 창작 열기가 주춤하던 50대 중반에 발표됐다. 그의 호러들이 애초부터 수많은 대중과 소통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일부 골수팬들의 지지를 받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는 90년대 들어 많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특히 또 다른 스플래터 장인인 루치오 풀치와의 야심찬 협업이 투자 문제로 결렬되고, 그 와중에 풀치가 죽고, 그러자 아르젠토는 약간 힘을 잃은 듯 보였다. <서스페리아>에서 호러와 초현실주의를 뒤섞던 겁 없던 청년이 세월의 힘 앞에 행진을 멈춘 듯 보일 때 <스탕달 신드롬>이 나왔다.

먼저 밝히자면, <스탕달 신드롬>은 대단한 걸작은 아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조너선 드미의 <양들의 침묵>(1991)을 적극 참조한 아류작처럼 비칠 수도 있다. 연쇄살인범과 엘리트 여성 수사관 사이의 기괴한 관계를 다루고 있어서다. 내러티브는 매끈한 논리로 짜여 있기보다는 여전히 꿈속을 헤매듯 불안하고 생략적이다. 그런데도 아르젠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의 예술에 대한 오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어서다. 아르젠토의 ‘잘로’가 다른 스릴러와 다르다면 그건 예술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아르젠토의 영화에는 늘 예술에 대한 아련한 사랑이 녹아 있다(아마도 사진작가였던 모친의 영향이 클 것 같다). 이탈리아 예술계가 그걸 모를 리 없고, 그래서인지 아르젠토는 우피치 미술관에서 촬영을 허가받은 유일한 감독으로 남아 있다. 바로 그 작품이 <스탕달 신드롬>인데, 특히 여기선 르네상스 회화에 대한 사랑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스탕달 신드롬>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시작한다. 로마의 엘리트 수사관 안나(감독의 딸인 아시아 아르젠토 출연)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피렌체로 급파됐다. 그런데 미술을 좋아하는 안나는 피렌체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르네상스 회화의 보고인 우피치 미술관부터 들른다. 범인이 미술관에 출몰한다는 첩보도 있었다. 미술관 입구는 벌써 긴 줄이 이어져 있고, 안나는 시간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빠른 걸음으로 급히 돌아다볼 기세다. 하지만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자 상황이 바뀐다. 안나는 파올로 우첼로의 전쟁화 <산 로마노 전투>(c.1440) 앞에서 얼마나 그림에 빠졌던지 긴 창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 말들이 뛰어오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림인지 현실인지 몽롱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곧이어 우피치 미술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보티첼리의 방’에 들어서니, 그런 어지럼증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안나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c.1485)에서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비너스에게 힘차게 숨을 뿜어내는 장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또 <봄>(c.1482)에서 역시 시커먼 제피로스가 그림 오른쪽의 아름다운 님프를 납치하려는 모습에 혼이 빠져 있다. 결국 안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만다.

<강박관념>의 피렌체 풍경. 저 뒤로 베키오 다리가 있다.

‘스탕달 신드롬’의 발원지는 피렌체

‘스탕달 신드롬’은 프랑스 작가 스탕달의 경험에서 나온 용어이다. 조국 프랑스보다 이탈리아를 더 사랑한 작가로 ‘의심’받는 스탕달은 바로 피렌체에서 그 신드롬을 경험했다. 구체적으로는 ‘산타 크로체 교회’(Basilica di Santa Croce, 성 십자가 교회란 뜻)에서다. 이탈리아 특유의 소박한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전면으로 유명한 교회다. 그리고 교회 안에 위대한 인물들의 조각품 같은 묘, 곧 단테(단테의 원래 묘는 라벤나에 있고, 이 묘는 한참 지난 뒤 지어졌다), 미켈란젤로, 갈릴레이 등의 묘가 있어서 늘 방문객들로 넘친다. 스탕달은 교회 안의 묘들을 보며 어지럼을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조토의 벽화 앞에서 거의 정신을 잃었다고 고백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예술품 앞에서 정신적 혼란을 겪는 이런 현상을 역시 피렌체의 정신과 의사인 그라치엘라 마게리니가 자신의 저서 <스탕달 신드롬>(1989)에서 명명하면서, 이 용어는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스탕달 신드롬은 ‘피렌체 신드롬’이라고도 불린다.

아르젠토의 <스탕달 신드롬>은 예술품 앞에서 넋을 잃은 안나가 그런 정신적 혼란 속에서 수사를 이어가는 내용이다. 그러니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현실과 환상의 공존, 두 공간 사이의 희미해진 경계(안나는 종종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악몽처럼 비논리적인 이야기 구조 등 아르젠토 특유의 미학이 전개된다. 비유하자면, 이탈리아와 사랑에 빠진 스탕달이 몽유의 상태에서 살인사건 테마의 소설을 쓴다면, 그 전개가 어땠을까를 상상하면 될 것 같다. 영화는 시종일관 들뜬 흥분에 휩싸여 있다. 그런 흥분을 자극하는 데 예술의 도시 피렌체의 매력이 한몫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만큼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예술품 같다. 아마 거의 모든 관광객이 피렌체의 두오모, 곧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교회’(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꽃의 성모 교회란 뜻) 앞에서 넋을 잃을 것 같다. 도시 한가운데, 아름답고 견고한 대리석으로 지어진 웅장하고 화려한 교회는 이곳이 한때 패권도시이자 르네상스의 중심임을 한눈에 알게 한다. 피렌체의 유명 유적지들, 곧 산타 크로체 교회,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 산 로렌초 교회, 시뇨리아 광장, 베키오 궁전, 베키오 다리, 우피치 미술관, 아카데미아 갤러리(이 끝없이 이어질 명단들!) 등이 대부분 두오모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따라서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도시의 아름다움에 빠지게 되고, 그러다 현기증도 느낄지 모른다. 만약 인적이 드문 한밤중에 오래된 돌길 위를 걷다보면, 당신도 르네상스의 한가운데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만큼 피렌체는 역사적 시간을 넘나드는 비현실적인 도시다.

<전화의 저편>. 우피치 미술관 복도 장면. 그림들이 약탈당해 벽이 텅 비어 있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피렌체에 대한 오마주

스탕달 신드롬 같은 어지럼증은 브라이언 드 팔마도 느꼈던 것 같다. ‘과학영재’ 출신에, 명문 컬럼비아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영민한 청년 드 팔마와는 맞지 않을 것 같은 테마인데, 그도 피렌체에서 비현실적인 엑스터시를 상상하고 있어서다. <강박관념>(Obsession, 1976)엔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탕달 신드롬’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알려진 대로 브라이언 드 팔마는 히치콕의 찬양자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싸이코>(1960)를 참조한 <드레스드 투 킬>(Dressed to Kill, 1980)일 것이다. 샤워장에서의 살인사건, 살인도구로서의 면도날, 성적 억압의 강박 등 두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강박관념>은 브라이언 드 팔마가 <캐리>(1976)로 세계의 유명 감독이 되기 바로 석달 전에 발표한 작품이다. 지금도 드 팔마의 최고작으로 <캐리>를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것이 <강박관념>에 바로 이어 개봉되는 까닭에 <강박관념>은 상대적으로 잊히고 말았다. <강박관념>에서도 드 팔마는 히치콕을 참조하고 있는데, 바로 히치콕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현기증>이 그 대상이다.

뉴올리언스에 사는 투자회사 간부인 마이클(클리프 로버트슨)은 피렌체에서 만난 아내(주느비에브 부졸드)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결혼기념일에 그만 아내와 딸이 납치되고, 추격전을 벌이던 과정에서 납치범의 차는 사고로 큰 화염에 휩싸여버린다. 졸지에 행복은 비극이 됐다. 마이클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달콤했는지는 안개처럼 찍은 도입부 화면에 잘 드러나있다. 마치 세상은 황홀한 꿈이라는 듯, <강박관념>은 의도적으로 화면을 안개 속처럼 흐릿하게 표현하고, 또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배우들의 동작을 잡는다. <현기증>에서 사랑에 빠진 스코티(제임스 스튜어트)가 매들레인(킴 노박)을 추적할 때의 흐리고 몽롱한 화면과 비슷하다. 그런데 그만 달콤한 꿈이 졸지에 악몽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마이클은 피렌체라는 도시에 반한 남자다. 젊은 시절 그곳에 여행을 가서 아내도 만났다. <강박관념>이 피렌체에서 특히 강조하는 장소는 ‘산 미니아토 교회’(Basilica di San Miniato al Monte, 미니아토는 순교자 이름)이다. 중세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인 반원형 장식이 대단히 매력적인 교회다. 마이클은 뉴올리언스에 있는 아내와 딸의 묘소를 그 교회의 전면처럼 꾸몄다. 사고가 난 지 15년이 지난 뒤, 마이클은 피렌체로 휴가 겸 출장을 간다. <현기증>의 작곡가로 유명한 버나드 허먼의 애절한 테마곡이 천천히 연주되는 가운데, 마이클은 도시를 산책하며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다.

영화의 전환점은 아내를 만났던 산 미니아토 교회에 들어설 때 시작된다. 교회의 벽화 복원작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 15년 전에 죽은 아내와 너무나 닮은 산드라(주느비에브 부졸드의 1인2역)라는 여성이 있는 것이다. 마이클은 환생한 유령을 보듯 그녀에게 혼이 빠진다. <현기증>에서 스코티가 죽은 매들레인과 너무나 닮은 여성(킴 노박의 1인2역)을 본 뒤, 다시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비슷하다. 마이클은 산드라와 함께 피렌체의 밤길을 데이트하며, 점점 균형감각을 잃고, 급기야 산드라는 죽은 아내의 환생이라고 믿기에 이른다. <현기증>에서 매들레인의 정체가 밝혀질 때 영화가 대단원에 이르듯, <강박관념>에서도 산드라의 정체가 밝혀질 때 영화는 결말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관객이 거리 자체가 예술품과 다름없는 피렌체의 도시 풍경에 흠뻑 빠진 뒤다. 마이클의 혼을 뺀 것은 죽은 아내의 유령 같은 산드라이기도 하지만, 그것처럼 신비한 도시, 곧 과거와 현재가 마법처럼 공존하는 피렌체라는 도시도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베스트 오브 유스>. 홍수 복원 작업 시퀀스. 우피치 미술관의 광장, 저 뒤로 시뇨리아 광장이 보인다.

피렌체의 꽃,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가 예술의 도시로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로는 우피치 미술관을 꼽고 싶다. 그곳에 르네상스의 역사와 예술이 모두 종합돼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리더였던 메디치 가문의 예술에 대한 사랑의 총체가 바로 우피치 미술관이다. 예술이, 또 예술가가 사회로부터 이렇게 사랑받고 존중받은 적은 고대 그리스 말고는 없을 것 같다. 그리스와 르네상스는 구국의 영웅과 더불어 시인(예술가)에게 월계관을 씌운 전통을 갖고 있다. 그 정신이 오롯이 남아있는 곳이 우피치이고, 이 점은 세상의 예술가들이 여전히 부러워하는 경이의 대상이다(우리는 언제 예술가에게 월계관을 씌우는 전통을 가질까?). 거의 동시대에 피렌체에서 차례로 작업했던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이탈리아의 전통에 따르면 이들의 성은 굳이 쓰지 않는다. 대문자로 시작하는 Him은 예수만을 지칭하는 것과 같은 영예의 표현이다) 가운데 한명이라도 배출하면 그건 도시의 명예일 것이다. 피렌체가 지금도 예술적 우월감에 약간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미덕은 아니지만 그럴 만한 전통이 있어서이다.

피렌체의 꽃 우피치 미술관에 대한 특별한 사랑은 이탈리아인들 전체가 갖고 있는 것 같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네오리얼리즘 걸작 <전화의 저편>(1946)에는 나치에 점령당한 ‘피렌체 에피소드’가 나온다. 피렌체답게 주요 인물은 ‘화가’이고, 그는 지역 레지스탕스의 리더다. 그의 소식이 궁금해서, 연인인 미국인 간호사는 나치가 점령한 지역을 지나 레지스탕스 지역까지 직접 가볼 참이다. 그 경계에 나치의 손에 들어간 우피치 미술관이 있다. 간호사는 다른 레지스탕스의 도움을 받아 우피치 미술관을 통과한다. 그때 우리는 수많은 그림들이 이미 약탈당해 텅 빈 벽으로 남은 황량한 우피치를 보게 된다. 로셀리니는 그 장면을 상실의 통렬한 아픔처럼 찍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의 이별의 고통이란, 텅 빈 우피치의 벽을 바라보는 심정과 같다는 뜻에서다. 이탈리아에 우피치가 없다면, 그건 국가 정체성의 한 부분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일 테다. 지금도 그 장면이 나올 때면, 적지 않은 이탈리아 관객이 여전히 흥분한다.

1966년에 피렌체에 큰 홍수가 났다. 도시의 거의 모든 지역이 침수됐다. 안타깝게도 우피치도 홍수의 피해를 비켜가지 못했다. 지금도 우피치의 지하에는 전시되지 못하고, 분류되지 못한 유산들이 쌓여 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우피치가 물에 잠겼다는 뉴스가 알려지자, 전국의 청년들이 피렌체로 몰려들었다. 자원봉사자로 일하기 위해서였다. 진흙과 물에 잠긴 건물 속에서, 청년들은 종이 한장도 정성을 다해 건져냈다. 이탈리아 현대사를 다룬 마르코 툴리오 조르다나의 6시간짜리 대작 <베스트 오브 유스>(2003)에는 그 과정이 고스란히 극화돼 있다. 우피치는 피렌체를 넘어 이탈리아의 상징인 것이다.

<전망 좋은 방>. 두오모와 베키오 궁전이 보인다.

피렌체 주변, 토스카나의 빼어난 아름다움

<강박관념>처럼 피렌체에서 사랑이 맺어질 것이란 상상은 지금도 일반적인 로맨스영화에서 반복되는 테마다. 이를테면 <온리 유>(1994), 그것의 리메이크인 <온리 유>(2015), 그리고 <냉정과 열정 사이>(2001) 등 이탈리아 배경의 영화들은 자주 피렌체를 경유한다. 이런 종류의 영화들, 곧 피렌체 배경의 로맨스영화 가운데 고전으로는 여전히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전망 좋은 방>(1985)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피렌체의 자유분방한 사랑과 영국의 형식적인 매너가 대조되는 일종의 풍속 드라마다. 영국에선 매너를 지키려다 바싹 말라 들어가던 청춘들이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는 삶을 전환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전망 좋은 방>에서 주인공들이 거주하는 숙소의 창문을 열면, 두오모와 베키오 궁전, 또 우피치 미술관과 그 옆의 베키오 다리가 보인다. 제목처럼 아름다운 전망이 탁 트여 있다. <전망 좋은 방>에는 산타 크로체 교회를 비롯해 피렌체의 여러 유적지가 대단히 아름답게 찍혀 있다. 그렇지만 아마 관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아 있는 곳은 영국인 남녀가 들판에서 첫 키스를 하던 피렌체 인근의 전원일 것 같다. 말 그대로 풍경화처럼 아름다운 토스카나의 자연이 로맨스의 배경으로 십분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피렌체는 토스카나주(州)의 주도다. 토스카나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자연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알프스 산맥이 있는 북부의 이탈리아와 수위를 다툰다. 토스카나에선 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시에나 주변의 도시들, 이를테면 몬탈치노, 몬테풀치아노 등이 특히 풍경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계곡 지역인 발도르차(Val D’Orcia)가 큰 각광을 받고 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 <글래디에이터>(2000), 그리고 <베스트 오브 유스> 등에서 강조된 곳이다. 다음엔 토스카나로 가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겠다. 토스카나의 풍경을 보다보면, 자연도 문명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문명과 섞여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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