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잭 에프런] 클래식한 매력남
2016-03-15
글 : 김지미 (영화평론가)
<오 마이 그랜파> 잭 에프런
<위아 유어 프렌즈>

영화 2017 <베이워치> 2016 <나쁜 이웃들2> 2016 <오 마이 그랜파> 2015 <위아 유어 프렌즈> 2014 <댓 어쿼드 모먼트: 그 어색한 순간> 2013 <파크랜드> 2012 <앳 애니 프라이스> 2012 <페이퍼보이: 사형수의 편지> 2011 <뉴욕의 연인들> 2008 <하이스쿨 뮤지컬: 졸업반> 2007 <헤어스프레이> 2005 <더비 스탈리온>

TV 2014 <로봇 치킨 DC 코믹스 특집 II: 빌런스 인 파라다이스>(Robot Chicken DC Comics Special II: Villains in Paradise) 2010 <로봇 치킨: 스타워즈 에피소드 III> 2009 <앙투라지> 2009 <로봇 치킨> 2007 <하이스쿨 뮤지컬2> 2006 <잭과 코디, 우리집은 호텔 스위트 룸> 2006 <하이스쿨 뮤지컬> 2004~5 <썸머랜드> 2003 <ER 시즌10> 2002 <파이어플라이>

구글창에 ‘잭’ 혹은 ‘ZAC’까지만 입력해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잭 에프런이다. ‘할리우드 스타’라는 단어에 딱 들어맞는 외모뿐 아니라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 게 없는 그는 배우계의 ‘사기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연기 경력 역시 이런 외형적 조건에 충실한 배역들로 시작되었다. 몇몇 TV시리즈에 단역으로 얼굴을 비추던 그는 TV드라마 <썸머랜드>에 간간이 등장하는 인물로 출연하다가 다음 시즌에 고정 출연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를 일약 십대 소녀들의 우상으로 부각시켜준 작품은 그가 ‘큰 기대 없이’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는 <디즈니 채널>의 오리지널영화 <하이스쿨 뮤지컬>(2006)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스쿨 뮤지컬>에서 잭 에프런이 연기한 트로이 볼튼은 사실 ‘디즈니’와 ‘TV영화’가 아니었다면 요즘 같은 시대에 주인공이 되기는 힘든 타입의 소년이었다. 금발에 파란눈, 조각 같은 외모의 농구부 주장인 인기남이라니. 할리우드의 하이틴물이었다면, 개성 넘치지만 좀 삐딱한 남자주인공을 괴롭히는 멍청한 조연에나 딱 적합한 외형과 조건이니 말이다. 하지만 매우 보수적이며 교육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디즈니 영화에서 그는 자신의 사내다움 뒤에 억눌린 예술적 감수성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소년으로 분해 ‘건전한 이성교제’를 통해 재능과 사랑을 동시에 성취하는 올바른 청소년상을 보여준다. 다소 지루해 보이는 이 테마가 나름의 진정성을 인정받고 십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 3편까지 제작된 데는 사실 잭 에프런과 히로인 바네사 허진스의 매력 그리고 둘의 실제 연애가 불러일으킨 ‘케미’가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배우와 ‘오버더빙’ (둘의 목소리를 믹스하여 녹음)했다는 사실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평범함을 상회하는 노래 실력과 빼어난 춤 실력 덕분에 그의 필모그래피는 ‘음악’과 관련된 작품들로 상당 부분 채워져 있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준 <하이스쿨 뮤지컬> 3부작과 그사이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헤어스프레이>가 정통 뮤지컬에 속한다면 최근작인 <위아 유어 프렌즈>는 익히 알려진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아우라’로 활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DJ가 되기를 꿈꾸며 일렉트로닉 뮤직에 심취한 신참 DJ 콜은 그가 여태 연기해온 ‘동화 속 왕자님’의 다소 현실적인 버전이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소위 잘나가는 학내 슈퍼스타와 그 패거리들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별볼일 없는 ‘애송이들’이 되어버린 좌절감과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멘토가 되어줄 부모는 없고, 마약 거래나 사기 등 범죄와 방황 사이를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패거리와 경쟁자이자 스승인 DJ의 애인을 탐하면서 콜은 갈등한다. 결국 친구의 죽음으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원래 자리로 꿈을 찾아가는 주인공을 연기하는 잭 에프런의 모습에서 <이유 없는 반항> 속 제임스 딘의 초상이 엿보이기도 한다.

잭 에프런에게 제임스 딘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외형적 유사성뿐 아니라 그가 연기한 배역들이 대체로 고전적인 미덕을 갖춘 인물이라는 데도 기인한다. 공교롭게도 그가 선택한 대부분의 역할들은 ‘지금, 여기’로부터 상당한 거리를 둔 시간 속 인물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헤어스프레이>는 흑백 갈등이 심각했던 1960년대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페이퍼보이: 사형수의 편지> 역시 비슷한 시기 플로리다에서 일어난 참극을 다루고 있다. <파크 랜드>에서 그는 암살당한 케네디에게 마지막 응급치료를 했던 신참 의사를 연기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나와 오슨 웰스>에서는 오슨 웰스가 활약했던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7 어게인>에서 그는 1980년대의 십대 소년이 되었다.

<하이스쿨 뮤지컬>에서 트로이 볼튼의 선택이 전학 온 괴짜 천재 소녀가 될 뻔한 가블리엘라 몬테즈를 일약 주목받는 퀸카로 등극시켜준 것처럼,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는 약자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선뜻 내주는 선한 매력남으로 등장한다. <헤어스프레이>에서 그는 성공이 보장된 책임 프로듀서의 딸을 거절하고 뚱뚱한 트레이시가 무대 위 스타가 되도록, 더 나아가 같은 학교 흑인 친구의 여동생이 새로운 퀸으로 등극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페이퍼보이…>에서 그는 흑인 가정부를 엄마처럼 따르며 인종적 편견으로 가득 찬 아버지의 견해를 무시하고 그녀를 가족으로 인정해준다. 게다가 그는 사형수에게 광적으로 애정을 퍼부어대는 중년의 샬롯에게 순수한 애정을 고백하며 그녀를 구하기 위해 척박한 밀림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17 어게인>에서 그는 17살에 만난 첫사랑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의 커리어를 주저 없이 포기하는 순정남이 되고, <위아 유어 프렌즈>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으며 번 전 재산을 여자친구가 대학등록금으로 쓸 수 있도록 익명으로 투척한다.

이런 캐릭터들은 잭 에프런이 실제 인터뷰를 통해 구축해온 모범적인 이미지들과 자연스럽게 조우한다. 인터뷰어들은 그에게 ‘요즘 청년 같지 않은’ 혹은 ‘그 세대의 다른 아이돌 스타와는 전혀 다른’ 등과 같은 수식어를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같은 외모의 청년들은 캘리포니아에 가면 당장에라도 500명은 찾을 수 있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이면서 현재 자신의 인기에 대해 ‘자신이 특별해서라고 생각하는 순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도 잃지 않는다. 그는 현재 스타와 배우 사이에 서 있다. 하이틴 스타로 남기엔 서른이 코앞이지만 여전히 미소년 같은 외모는 현실적인 삶의 무게나 어두운 사회의 단면과 그를 쉽게 조우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 뛰어난 운동신경과 식스팩으로 다져진 몸매 덕분에 ‘액션 스타’로서 그의 장래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급선회보다는 조심스러운 전환을 택한 듯하다.

잭 에프런의 배우로서의 갈등은 크게 두 가지 계열로 구분되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하이스쿨 뮤지컬>의 뒤를 잇는 로맨스를 기반으로 한 코미디영화들이고 다른 하나는 <페이퍼보이…> 계열의 진지한 드라마들이다. 로버트 드니로와 호흡을 맞춘 <오 마이 그랜파>는 첫 번째 계열체에 속하는 작품이다. 잭 에프런이 연기한 손자 제이슨은 트로이 볼튼의 성인 버전이다.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자신의 커리어를 잘 관리해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어 아버지의 사업 파트너의 딸과 결혼해 안정적인 미래를 꾸려나가려 한다. 그때 아들에 이어 손자마저 답답하고 지루한 삶을 살게 될 것이 안타까웠던 할아버지 닉이 손자를 무늬만 효도관광인 여행에 운전기사로 끌어들이면서 로드 무비가 시작된다. 제이슨은 음탕하고 다재다능한 할아버지를 보면서 자기가 갇혀 있던 삶의 허울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영화 속 제이슨의 시선에는 배우 잭 에프런이 대선배이자 멘토인 로버트 드니로를 바라보는 존경과 깨달음이 함께 묻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이제 제대로 껍질을 깨고 나올 때가 되었다.

<17 어게인>

쿠거 판타지의 결정체

17살에 만난 첫사랑 아내와 20년의 결혼생활 끝에 파탄에 이르게 된 마이크 오도넬은 ‘영적 지도자’를 만나 다시 17살로 회귀한다. 잭 에프런은 당연히 17살의 마이크를 맡았는데 37살의 정신이 스며든 17살의 소년이라는 설정만으로도 나이든 누나들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30대 후반의 아줌마(실은 자신의 아내)에게 도발적으로 다가서면서 질투하는 이 소년에게는 동년배만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 감수성과 책임감이 탑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아들딸에 대한 부성애까지 가득하다. 10대의 육체가 가진 장점과 중년의 노련미가 적절하게 배합된 마이크를 연기하는 잭 에프런의 뜨거운 눈빛을 바라보면 ‘범죄’인 줄 알면서도 마음이 동하는 걸 막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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