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완벽한 작품과 거리가 멀고 헛발질도 만만치 않게 많기에,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하 <배트맨 대 슈퍼맨>)에 대한 호의적인 의견 개진은 적극적인 옹호보다는 방어적인 변명의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우선 일반적인 평판에 대해. <배트맨 대 슈퍼맨>을 비판하는 사람들과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를 평론가들과 일반 관객 사이의 의견 차이로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는 보다 복잡한 양상을 취한다. 분명히 눈에 들어오는 메타크리틱(44), 로튼토마토(29)의 점수 차이는 주류 평론가들이 이 영화에 그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적대적일 생각은 없다는 걸 보여준다. 사실 이 영화에 가장 비판적인 사람들은 영화비평가가 아니라 코믹북 팬들이고, 이들의 비판 방향과 지지 방향은 세부까지 들어가면 그렇게까지 일관적이라고 할 수 없어 하나의 의견으로 묶기 어렵다.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영화에 대한 맹렬한 불평 자체이다. 시사회 직후 쏟아져 나온 극단적인 호평들이 혹평들로 전환되는 과정도 익숙하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 자체가 오락의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이건 지극히 코믹북적 현상이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 가장 맹렬한 비판의 대상이 된 건 영화 속 배트맨이 살상에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척 봐도 이건 팬들의 관심사이다.
잭 스나이더의 선택
이 소동의 중심에는 잭 스나이더가 있다. 지금 그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놀려먹기 쉬운 사람이다. 에고는 산더미 같은데 얄팍하기 짝이 없는 블록버스터 감독이고 최근 몇년 동안 코믹북 팬들이라면 싫어할 만한 일들만 골라서 했다. 이 정도면 거의 과녁을 등에 짊어지고 다닌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하지만 스나이더가 이 영화와 <맨 오브 스틸>을 어느 정도까지 통제하고 있는지, 그에게 책임을 얼마나 물을 수 있는지를 외부에서 정확하게 판단하긴 어렵다. DC 확장 유니버스(DCEU)의 기획은 그가 합류하기 한참 전부터 진행되어왔고 지금까지 나온 두편의 영화는 모두 빙산의 일각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훌륭한 DC 코믹북 영화를 만들어왔던 크리스토퍼 놀란, 에마 토머스, 데이비드 고이어는 모두 이 프로젝트의 일부이며 이 영화에도 그들의 터치가 남아 있다. 왜 이들의 존재가 무시되는 걸까.
빙산의 일각 이야기를 풀어보자. DCEU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모든 캐릭터들을 솔로 영화를 통해 하나씩 소개한 뒤에 이벤트성 <어벤져스>를 터트렸던 MCU와 달리 DCEU는 <슈퍼맨>을 중심으로 세계관의 큰 그림을 먼저 그리는 길을 택한다. 자잘한 쿠키나 단서들을 제외하면 독립된 영화로 볼 수 있었던 MCU 단독 영화들과 달리 <저스티스 리그> 2부작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이들 영화는 영화의 큰 덩어리를 다음 영화의 일부로 남겨놓는다. <맨 오브 스틸>의 클라이맥스 전투 장면이 <배트맨 대 슈퍼맨> 전반에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재등장하는지를 보라. 다시 말해 각 영화의 조각들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보다 큰 그림을 봐야 한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일종의 프리퀄로서 독립성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평가는 어느 정도 유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른 식의 스토리엔 다른 식의 감상이 필수다. 충분한 캐릭터 소개 없이 <저스티스 리그>로 뛰어든다는 불평이 많지만, 만약에 <원더우먼>의 솔로 영화가 먼저 나왔다면 이렇게 인상적인 캐릭터 소개가 가능했을까.
마블의 유니버스보다 역동적일 가능성이
DCEU와 MCU의 비교를 조금만 더 해보기로 하자. 여기서부터는 주관적인 의견이 들어가는데 이해해주기 바란다. 개인적으로 MCU 영화의 팬은 아니다. 이건 마블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의 팬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스파이더맨2>와 <헐크>는 모두 훌륭한 각색물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을 모두 하나로 묶어 어벤져스팀을 만들고 이들이 사는 유니버스를 만든 뒤로 이들 영화들은 다소 따분한 평준화를 거친다. 세상은 이상할 정도로 탄력성이 높아 외계인의 침략과 같은 엄청난 일을 겪어도 당연한 듯 평온함을 회복하고, 뉴욕이나 우주 저변 다른 행상이나 다 비슷비슷 밍밍하며, 슈퍼히어로들은 특별함이 없이 다 고만고만해진다. MCU는 슈퍼히어로 액션 피겨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놀이터 같은 곳이며 내용보다 이벤트용 설정이 더 중요하다. 전체 수준이 그렇게 나쁘지 않고 종종 괜찮은 영화들도 나오지만 특별해질 수 있는 주인공과 세계의 가능성을 이벤트성 설정이 꾸준히 먹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두편의 DCEU 영화와 이후에 나올 영화들의 설정을 보면 MCU 영화들과는 접근법이 좋은 의미로 달라 보인다. 우선 세계의 묘사가 다르다. 외계인의 습격을 받은 메트로폴리스와 도시 밖의 세계는 그 후유증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한다. 세계관은 바뀌었고 공포가 지배한다. 슈퍼맨과 세계는 단순한 보호자와 보호 대상의 관계를 넘어서 서로의 존재에 대한 보다 깊은 질문들을 던진다. 이로써 세계는 더 사실적이 되었다. 그건 마블 유니버스의 뉴욕보다 고담과 메트로폴리스가 더 사실적인 공간이란 말이 아니라, 이 세계가 실제로 슈퍼영웅의 존재를 보았고 외계문명의 습격을 받은 문화권이라면 겪었을 것 같은 그럴싸하고 불가역적인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이들 장르를 SF로 보았을 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같은 유니버스에 속한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슈퍼맨의 등장이 촉발시킨 것 같은 괴물들의 등장을 언급하고, <원더우먼> 영화가 원작과 달리 훨씬 기억하기 어려운 과거인 제1차 세계대전 당시로 밀린 걸 고려해보면, DCEU의 유니버스는 마블의 유니버스보다 훨씬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인 곳이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얼렁뚱땅하는 건 여전하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이야기의 발목을 잡는 건 여기나 저기나 마찬가지다. 암만 봐도 배트맨과 슈퍼맨이 굳이 싸워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마사’ 드립은 왜 엄청난 돈을 받는 그 멀쩡한 작가들이 걸러내지 못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렉스 루터는 아무런 생각이 없나보다. 막판의 액션은 모든 슈퍼히어로팀 이야기가 피할 수 없는 개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논리 같은 건 조용히 날아가버린다. 마블의 작가들, 특히 조스 웨던이 꼼꼼하게 삽입해 설정 틈을 채우는 시멘트로 썼던 유머가 일부러 제거된 DCEU의 세계에서는 이 결함이 더 크게 보인다.
그런데 이게 과연 나쁘기만 할까. 자기방어적 유머의 보호 아래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뻔뻔스러운 난장판은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생산적으로 보인다. 어차피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면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정공법을 취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그러니 <배트맨 대 슈퍼맨>보다는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앞으로 DCEU에 속한 영화를 만들 감독들은 모두 자기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다. 이들 영화가 MCU의 영화들처럼 자연스러운 하나의 흐름 안에 통합될 것이란 생각은 안 든다. 대신 엇맞추어진 큰 덩어리들이 불균질한 구조물처럼 쌓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 중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는지, 얼마나 슈퍼히어로영화의 피로감을 뚫고 살아남을 수 있는지는 모른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배트맨 대 슈퍼맨>이 기반의 일부로서 충분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