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논쟁적인 다큐멘터리가 나와야 한다” - 김동원 감독, 경순 감독
2016-04-27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김동원 감독, 경순 감독

*인터뷰이들이 사용한 용어 그대로 지면에 옮겼음을 밝힌다.

김동원 감독과 경순 감독(왼쪽부터).

인디다큐페스티발2016 폐막식 다음날 김동원, 경순 감독을 만났다. 김동원 감독은 영화제 집행위원이고, 경순 감독은 영화제에서 신작 <레드마리아2>(2015)를 상영하고 관객과 만났다. 폐막 뒤풀이 뒤라 혹 두 감독이 피곤한 상태가 아닐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두 감독은 인터뷰 장소인 카페 근처에서 각자의 취향대로 점심까지 뚝딱 해치우고 돌아왔다. 경순 감독은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직접 초록 빛깔로 머리 염색까지 했다면서 화통하게 웃는다. 한국 독립다큐멘터리계의 앞 세대 감독들이자 오랜 선후배 사이인 두 감독은 서로의 작업을 묵묵히 지지해주다가도 다른 입장의 사안에는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해갔다. 여전히 뜨거운 김동원, 경순 감독의 대화를 옮겼다.

씨네21_인디다큐페스티발2016에 참석했다. 올해의 영화제 분위기와 최근 다큐멘터리계의 흐름에 대한 각자의 생각부터 듣고 싶다.

김동원_한국 신작들은 다 봤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2015), <매듭>(2015)과 같은 문제작들도 보인다. 지난해보다 전체 관객수는 늘었다고 하나 매진된 영화는 <416 프로젝트 망각과 기억> 한편뿐이다. 홍보에 신경을 더 써야 한다.

경순_영화제쪽에 선배감독들을 적극적으로 부리라 했다. (김)동원이 형도 뺑뺑이 돌리고. (웃음) 중견감독들이 해야 할 일 아니겠나. 언제부터인가 언론도 개봉영화 위주로만 취재한다. 다큐멘터리는 개봉 자체가 어려운데 기자들은 “개봉하면 연락달라”고 한다.

김동원_내가 영화를 시작한 1980, 90년대와 비교하면 제작 지원 규모는 상당히 커졌다. 신진감독들을 영화계로 끌어들이는 동력이다. 하지만 배급망은 취약해졌다. 이 얼마나 불균형적인 지원책인가. 최근 몇년간의 정권하에서라면 찍어야 할 다큐멘터리가 정말 많다. 다큐의 전성기가 돼야 하나 제작 시스템은 약화된 거다. 상황이 이런데 <레드마리아2>, <나쁜 나라>(2015)와 같은 영화의 포스터가 지하철에 붙을 수나 있겠나. 소위 ‘말랑말랑한’ 소재의 다큐들만 가능하겠지.

경순 감독.

경순_그렇다 해도 독립다큐멘터리의 포스터가 지하철에 붙느냐 마느냐는 큰 차이다. 이런 영화가 있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말랑말랑한’ 소재의 작품이 내 지향은 아니나 그런 유를 원하는 관객이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 문제는 다른 성격의 영화들도 상영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김동원_그간 독립다큐멘터리가 발전했다면 제작 지원과 함께 다큐멘터리 피칭에 의존한 바가 크다. 상업적인 소재만을 기대하는 바이어들 앞이 아니라면, 감독에게 과도한 쇼맨십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면 피칭은 어느 정도 필요해 보인다.

경순_문제는 심사위원을 어떻게 선정하느냐인데. 어떤 작품이 뽑힐 거라는 게 예상되는 경우가 있다. <레드마리아2>는 내용조차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분들 앞에서 피칭을 해야 했다. 어떻게 성노동자와 위안부 문제를 같은 선상에 놓고 논의할 수 있느냐며 황당해하더라. 얼굴에 철판 깔고 끝까지 했다. 제작 지원금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내가 잘 못하면 후배들이 <레드마리아2>와 같은 영화는 앞으로 피칭에 나오면 안 되나보다 생각하지 않겠나.

김동원_<워낭소리>(2008),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등 흥행한 다큐는 서사 구조는 단순하고 감정적으로 강한 끌림을 이끌어내는 멜로다큐다. 관객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다큐가 하나의 추세가 됐다. 다큐멘터리의 최소한의 저항성, 불온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아쉽다.

경순_기획다큐멘터리라고 본다. 독립다큐멘터리와는 다른 건데 이런 차이를 대립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 서로의 차이를 우선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다큐멘터리 작업자들에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서로 지지해주는 게 더 필요하다.

씨네21_이번 영화제에서 ‘역사를 기록하고 서술하는 주체로서의 다큐멘터리’라는 주제로 경순 감독의 <레드마리아2>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가 상영됐다. 김동원 감독도 참석해 영화 안팎의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김동원_논쟁적인 다큐멘터리가 나와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경순은 독보적이다. 나는 논쟁적이지는 않지. 사람이 워낙 부드럽잖아. (일동 웃음) <애국자 게임>(2001)도 있지만 경순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독재정권하에서 발생한 의문사의 진상을 밝히려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1기 활동을 좇는다)를 특히 좋아한다. 이 사회의 모순과 문제가 다 있다. 1980년대는 담론을 만들고 이념을 빠르게 퍼뜨리는 게 다큐의 역할이었지만 그때도 나는 사람과 현장에 대한 관심에서 다큐를 만들었다. 경순도 마찬가지다. 물론 <쇼킹 패밀리>(2006), <레드마리아2>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했거나 경순과 다른 평가를 내릴 만한 부분도 있다.

경순_<레드마리아2>에서 나는 성노동자와 위안부 문제를 같은 선상에 두고 다룬다. 두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매춘에 대한 혐오는 어디서부터 시작됐나’ 그 역사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역사에서) 배제된 위안부(영화는 조선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일본 내, 동아시아 전반의 위안부들까지도 함께 조명한다)가 있음을 알게 됐다. ‘성녀냐, 악녀냐’라는 이분법적 접근으로는 안 된다. 3월31일 헌법재판소가 성매매특별법을 합헌이라 결정했다. 가족주의적 시선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성노동자들도 자신의 노동을 잘해내려고,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고 공부한다. 하지만 우리의 상상력은 이런 이들의 존재를 생각지 못한다. 그저 경찰에 쫓기는 신세로만 이해할 뿐.

김동원_룸살롱에 가면서 매춘은 나쁘다고 말하는 이중성뿐 아니라 매춘 여성들을 등쳐먹는 공권력 역시 이중적이다. 경찰 권력 등은 성산업에서 챙길 것은 다 챙기면서 매춘 여성들을 암적인 존재로 취급한다. 파렴치하다. 공권력과 성산업과의 결탁 구조를 좀더 파헤쳤다면 어땠을까. 매춘 여성들의 문제를 논쟁화하기 위해 위안부 사안을 끌어들인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위안부 이야기가 영화 중반부터 등장하기도 하고.

경순_한때 국가는 기지촌의 수많은 여성들을 외화 벌이로 앞세워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고 말했다. 이젠 보상은커녕 악의 축으로 만들어버렸다. 국가가 사람에게, 여성에게 할 짓인가. 과거에는 성노동자들이 거의 인신매매 수준이었다. 6~7살 때부터 유곽에서 착취당했고 이후 이들은 우선적으로 위안부로 모집돼 위안소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이들을 성노동자와 위안부로 이분화하는 건 기만적이다. 일본 대 한국이라는 민족적인 문제로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일본의 사과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분명 한계가 있다. 성노동자들의 최소한의 노동 조건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오히려 법적으로 성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지 않겠나. 성노동자는 성노동을 하다 강간을 당하거나 위험에 빠지면 신고할 수 있고, 임금이 체불되면 법에 따라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김동원 감독.

김동원_결국 국가주의의 문제가 아닌가. 세월호 참사만 봐도 국가가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권력자들은 자신이 은폐하고 싶은 것들을 위해 전쟁을 벌인다. 그래서 위안부나 군인들을 동원하고. 성매매 여성과 위안부 문제를 같이 놓고 파악할 때 자칫 국가주의의 폐해라는 중요한 논지가 흐트러질 수 있다.

경순_두 문제의 뿌리가 같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근대 이후, 민족 개념이 생겼고 국가 이데올로기가 강화됐다. <레드마리아2>에서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데는 당연히 근대 이후의 국가가 전제돼 있다. 국가의 존재를 보여주며 비판해야 한다는 접근은 지엽적이다. 위안부 운동이 민족적 프레임이 아니라 피해 입은 여성들간의 연대 문제에서 시작됐다면 현재 운동의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씨네21_김동원 감독의 작품 이야기를 요즘 통 들을 수 없었다. 2005년 2차 비전향장기수 송환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송환2>를 준비해온 걸로 안다. 그 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도 제작 상황을 짧게나마 전해왔는데 완성까지 꽤 길어지고 있다.

김동원_<송환2>는 요즘 작업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면서 송환의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졌다. 이제는 못 가는구나 싶다. 2차 송환 신청자가 33명이었는데 돌아가신 분들을 제외하면 16명 남았다. 막상 송환이 돼도 가실 분들은 10명 미만일 거다. 이분들이 북의 가족들에게 전하는 영상 편지를 만들어 북으로 가자고 계획을 세웠다. 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북에 가는 게 쉽지 않잖나. 외국에 있는 프로덕션을 찾아서 북에 가는 방법을 물색 중이다. 아니면 북에 가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남아 있는 할아버지들의 얘기로 소품처럼 <송환2>를 끝낼까도 생각 중이다. 근데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꼭 ‘좀더 기다려보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허허. 지금은 지지난해 돌아가신 정일우 신부님에 대한 헌정다큐멘터리를 작업 중이다. 나랑 (<상계동 올림픽>(1988)을 찍던 당시) 상계동에서 같이 생활한 분이다. 올 6월에 마치는 게 목표인데 잘될는지.

경순_영화를 처음 시작한 1998년부터 동원 형을 알고 지내왔다. 형 입장에서 늘 내 영화가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텐데도 언제나 내 영화를 지지해줬다.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는 걸 말하고 싶다.

김동원_내가 후배감독들의 걸림돌이 아닐까 싶다. 후배들이 좀더 주목받아야 하는데.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새사람으로 옛사람을 교체한다는 뜻이다)이라는 말처럼 난 앞 물결로도 한참 앞이다. 경순도 앞 물결이지? (웃음) 이제 뒤에 오는 물결을 기다려야지. 많은 사람들이 독립다큐멘터리를 접하지 못해 그렇지 보기만 하면 분명 관심 갖게 돼 있다. 관객이 다큐멘터리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길 바라는 수밖에.

<레드마리아2>

여성의 몸, 정체성, 노동

여성의 몸, 정체성, 노동의 상관관계. 경순 감독의 관심사다. 그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레드마리아2>는 성노동자와 위안부 여성들에 집중한다. 영화는 한국과 일본의 ‘성노동자’들과의 연대의 과정을 따라가고, ‘성노동’을 하게 된 위안부가 위안부 운동사에서 배제됐다고 보는 일본 학자 야마시타 영애도 만난다. <제국의 위안부>의 박유하 교수가 한국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고소를 당한 일과 일본의 르포작가 가와다 후미코가 오키나와에서 위안부로 있던 배봉기 할머니를 만난 이야기도 담았다. 경순 감독은 스스로 노동자라는 의식을 갖고 일하는 ‘성노동’ 여성들과 위안부 문제를 함께 살피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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