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품속에 들어온 아이를 어찌할 것인가 - 홍형숙 감독, 강석필 프로듀서
2016-04-27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사진 : 김현수
<투윅스>(가제), <라떼와 친구들>(가제) 준비 중인 홍형숙 감독, 강석필 프로듀서
홍형숙 감독과 강석필 프로듀서(왼쪽부터).

공백 아닌 공백을 의식이라도 한 듯, <경계도시>(2002), <경계도시2>(2009)의 홍형숙 감독은 두편의 다큐멘터리를 진행하고 있었다. 요즘은 성미산학교의 통합지원교사와 학생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라떼와 친구들>(가제) 촬영 때문에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해 저녁 늦게 ‘하교’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박원순 현 서울시장의 선거캠프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 정치다큐멘터리 <투윅스>(가제)의 촬영 일부를 마쳤다. <춤추는 숲>(2012), <소년, 달리다>(2015)를 만들며 한동안 ‘강석필 감독-홍형숙 프로듀서’로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은 다시 ‘홍형숙 감독-강석필 프로듀서’로 역할을 바꿨다. 목을 다쳐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홍형숙 감독의 ‘대변인’ 자격으로 강석필 프로듀서도 인터뷰 자리에 동석했다.

씨네21_<경계도시2> 이후 7년이 흘렀다. 차기작 준비 기간이 꽤 길어지고 있는데.

홍형숙_공동작업을 하거나 강석필 감독 작품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 차기작 구상과 촬영을 진행했다. 나름 계속 일은 하고 있는데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서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웃음)

씨네21_선거 관련 다큐멘터리 작업을 진행했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인가.

홍형숙_2014년 지방선거 당시, 박원순 현 서울시장의 선거캠프인 ‘희망캠프’ 내부에 들어가 촬영을 했다. 정치적으로 가장 집약적이고 특별한 시간이자 공간인 선거캠프, 그 선거캠프의 심장인 전략기획본부 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후보 중에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서울시장 후보로 재선에 도전한 박원순 후보를 택한 것은, 2014년 서울시장 선거의 판도가 향후 대한민국 정치지형의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이 집약적으로 이루어지는 기간이 2주이기 때문에 제목을 <투윅스>라 지었다.

강석필_정치 및 선거 관련 다큐멘터리가 기존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기성정치, 현실정치에 관해선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당쪽 촬영도 진행할 계획이고 지속적으로 섭외를 벌이고 있다. 아마도 2017년 차기 대선 때까지 작업을 이어갈 것 같다.

씨네21_실제로 선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면밀히 목격한 셈인데, 선거캠프에서 보낸 2주가 꽤 흥미진진했을 것 같다.

홍형숙_후보, 캠프, 당, 이렇게 세 주체가 모여 선거운동이 진행되는데, 후보가 내세우려는 새로운 가치가 어떻게 현실적으로 적용되는지, 적용되는 과정에선 어떤 갈등과 충돌이 빚어지는지 지켜보는 게 흥미로웠다. 그런 한편 우리가 초점을 맞춘 것은, 정치란 무엇이며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가능성은 존재하는가 하는 거였다. 우리는 정치에 관해서 기대와 혐오라는 양가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면서도, 정치를 더이상 관심을 둘 가치도 없는 대상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과연 가능성은 없는가, 만약 가능성이 있다면 현실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가지고 이 작업을 시작했다.

씨네21_촬영을 마치고선 어렴풋하게나마 현실정치에 대해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나.

홍형숙_몇 걸음 떼지 못한 상황이라 답은 아직. (웃음) 다만 처음에 가졌던 질문을 폐기해야 한다거나 가설을 많이 수정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촬영하면서 인상적인 순간이 두번 있었다. 선거 기간 중 만난 여성 유권자들에게 정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뜬금없고 거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돌아온 대답 중 하나가 인상적이었다. 정치는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아침 식단을 어떻게 꾸릴지, 무엇을 선택해서 장을 볼지, 그 선택과 가치를 내 식탁에서부터 구현하는 것이 정치다, 라는 답변이었다. 또 하나는 선거캠프의 수행팀 막내였던 청년에게 들었던 얘기다. 그는 늘 좋은 정치인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하던 친구였는데, 그에게도 ‘당신에게 정치란 무엇이냐’고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 친구는, 현실정치는 늘 대중의 기대를 배반하고 저열한 수준에 머물러 있고 실망을 안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좋은 정치란 꿈이고 질문이라고 답했다. 촬영 마지막 날 헤어지면서는 나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감독님, 정치는 저에게 질문과 숙제이지만 또한 정치는 저에게 답인 것 같습니다.” 그 말이 중요하게 와닿았다. 그러니까 정치는 질문이지만 또한 누군가에겐 답이기도 한 것이다. 정치에 발 담그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치와 관련한 모든 구성원들이 요청하고 있는 새로움이 무엇인지, ‘좋은’ 정치라고 했을 때 ‘좋은’이라는 수식어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우리가 계속 촉구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석필_어쨌든 이 프로젝트는 여당쪽 취재도 수반되어야 하니 당분간 보류 중이다.

씨네21_최근엔 다큐멘터리 <라떼와 친구들>의 촬영을 시작했다. 자폐 범주성 장애를 지닌 친구 라떼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작품이라고 들었다.

홍형숙_우선, 라떼라는 이름은 영화의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한 친구에게 내가 붙인 애칭이다.

강석필_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성미산학교의 교사 연두 선생님이 집 앞에 버려진 새끼 길냥이를 데려다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살려냈는데, 실은 그 고양이 이름이 라떼다.

홍형숙_새침하고 까다로우며 저 내키는 대로 하다가도 결정적인 타이밍을 알아차려서 지친 순간 사랑스럽게 다가오는 고양이 라떼와 아이가 비슷해서 가져온 애칭이다.

씨네21_이 프로젝트는 라떼에서 시작된 건가.

강석필_성미산마을에는 재밌는 일들이 많다. 사회적으로 주목할 만한 대안적 생활 방식들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성미산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육 역시 그렇다. 생태중심교육, 통합교육 등을 성미산학교에서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개교 11년차인 성미산학교의 통합교육을 돌아보고 그 방향을 재설정해보자는 학교쪽의 필요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생각 중이던 우리의 뜻이 만나면서 시작됐다.

홍형숙_통합교육과 관련해 덧붙이자면, 통합교육이 논의되기 시작한 1970~80년대에는 장애의 유무나 장애의 심각도를 기준으로 장애와 비장애의 통합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후 통합교육이 진전되면서 통합교육은 학생 개개인이 가지는 다양성과 차이를 수용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확장됐다. 성미산학교에서 추구하는 통합교육의 방향은 후자와 궤를 같이한다. 라떼의 어려움이 우리에겐 이 작품을 하게 된 중요한 동기이고 테마이지만 이 작품에서 우리는 보다 확장된 주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라떼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과 숙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그 과정을 들여다보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씨네21_새 학기가 시작된 2월29일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현재 한창 촬영 중인데, 뷰파인더로 들여다본 ‘라떼의 교실’은 어떤가.

홍형숙_촬영 이틀 만에 내가 그랬다. 지금 단지 이틀이 지났을 뿐인가요. 한두달은 된 것 같은데. (웃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신뢰를 보냈던 것 이상으로 통합교사 선생님들의 헌신이 있더라. 화요일의 경우, 수업이 오후 3시에 끝나면 통합교사 회의가 있고 이어서 초등교사 회의가 있고 곧바로 통합교육 관련 스터디 모임이 밤까지 이어진다. 그런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항상 진지하게 아이들을 눈여겨보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놀라웠다. 그리고 뷰파인더로 라떼를 보고 있으면, 빠져든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라떼가 굉장히 잘생겼다. 송중기 저리 가라다. (웃음) 또한 그의 세계를 알고 싶고,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말을 걸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비교적 EQ, 감정의 지수가 낮은 사람인데 한달 동안 아이를 지켜보면서 소통과 이해에 갈증을 많이 느꼈다. 그러니 부모와 연두 선생님은 오죽하겠나. 연두 선생님이 말했듯이, 라떼는 이미 마을의 품으로, 학교의 품으로 들어온 아이다. 엄마의 품으로 아이가 들어온 것처럼. 품속에 들어온 아이를 어찌할 것인가, 어쩌면 이 질문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출발점이었던 것 같다.

씨네21_<경계도시> 때만큼이나 힘든 작업 과정이 될 것 같다.

홍형숙_많은 사람들의 삶을 건드려야 하는 문제라 매우 신중한 작업이다. 특히 아이와 관련한 부분은 거미줄같이 복잡한 사안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하지만 강 프로듀서와 그 다리를 무사히 잘 건너게 된다면, 이 이야기가 한 동네의 이야기거나 한 학교의 이야기만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투윅스> 촬영현장.

<투윅스>

정치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정치는 대중을 배반하는가? 과연 한국에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은 있는가? 있다면 현실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투윅스>는 정치에 대한 근원적이고 도전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본격 정치다큐멘터리다. 홍형숙 감독은 2014년 6월 지방선거에 주목해, 박원순 현 서울시장의 선거캠프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다. 캠프의 심장인 전략기획본부로 돌진해 선거의 원칙과 기조를 수립하고, 대유권자 및 미디어 전략을 세우는 내밀한 과정을 기록했다.

<라떼와 친구들> 촬영현장.

<라떼와 친구들>

서울 성미산학교의 초등부 담임교사를 맡았던 연두(예명) 선생님이 올해부터 통합지원교사로 일하게 되면서, 라떼(예명)를 비롯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맡게 되었다. 라떼는 자폐 범주성 장애라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고, 그 어려움은 주변의 깊은 이해와 지지를 요구한다. 가족이나 교사만이 아니라 주변의 힘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홍형숙 감독은 연두 선생님과 라떼를 중심으로 성미산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통합교육의 과정을 1년간 기록할 예정이다. “라떼가 친구들과 함께 살기 위해 배움과 훈련이 필요한 것처럼, 친구들 역시 라떼와 함께 살기 위해 무수한 질문과 숙제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나 또한 상상해본다. 어느 날 라떼가 우리에게 놀라운 순간을 선물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또한 홍형숙 감독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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