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마블 코믹스 속 슈퍼히어로 갈등의 역사
2016-04-29
글 : 시드 (영화감독)

헐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통제불능 상태로 행패를 부리고 있다. 피해 규모: 아이 2명을 포함한 25명의 사망자와 개 1마리. 아이언맨, 미스터 판타스틱, 닥터 스트레인지와 다른 히어로들은 헐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 의논한다. 그들은 헐크를 우주로 보내기로 계획한다. 결국 헐크는 예전의 동료였던 아이언맨과 다른 히어로들에게 속아 우주로 추방당한다. <뉴 어벤져스: 일루미나티>에서의 한 에피소드다.

<뉴 어벤져스: 일루미나티>

히어로들의 싸움에 열광하다

이처럼 마블 코믹스 세계에서는 종종 히어로들 사이의 대결이 펼쳐졌다. 그중에서도 통제될 수 없는 힘과 분노를 가진 헐크는 토르와 판타스틱4의 더 싱 등 수많은 히어로들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었다. 1963년 어벤져스의 첫 이야기에서조차 헐크는 로키에게 영향을 받아 행패를 부리고, 어벤져스는 그런 헐크를 쫓고 진정시켰다. 한편 같은 해에 스파이더맨은 판타스틱4에게 싸움을 걸었다. 1965년부터 어벤져스와 엑스맨은 자주 대결을 펼치곤 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던 1987년의 <엑스맨 대 어벤져스>에서는 엑스맨과 힘을 합친 전(前) 악당 매그니토의 과거를 심판하려는 어벤져스가 그를 체포하려 하고, 엑스맨들은 그런 어벤져스를 막으려 한다.

<엑스맨 대 어벤져스>

히어로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목적은 바로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코믹스를 더 많이 팔기 위함이었다(어느 코믹북 표지의 아이언맨과 헐크가 싸우는 장면을 보고 사서 읽었는데 불행히도 그건 진짜가 아닌 로봇 헐크였던 적도 있었다). 히어로들은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히어로들이 싸운다면? 누가 이길 것인가, 누가 가장 강한가, 누가 가장 영리하고 누가 옳은가? 이런 질문을 제기하고 그 답을 얻는 것을 좋아하는 팬들은 그들의 싸움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캡틴 아메리카 대 아이언맨, 데어데블 대 퍼니셔 같은 히어로들은 이념의 차이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 특히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는 팀 캡틴 아메리카와 팀 아이언맨의 대결을 볼 수 있다. 이전의 마블 영화들에서는 히어로들이 제약 없이 활동하는 바람에 전세계가 2차적 피해를 봤다.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서울도 그 피해를 톡톡히 본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이제 유엔은 슈퍼히어로들을 통제하려 하며, 캡틴 아메리카의 친구인 ‘윈터 솔져’ 버키 반스를 쫓으려 한다. 슈퍼히어로들 사이에는 깊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시빌 워>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2006년의 <시빌 워> 코믹북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원작에서는 헐크의 파괴적인 라스베이거스 사건, 뉴 워리어스와 악당들의 혈전에서 학생 60명을 포함한 6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일련의 참사가 갈등의 불씨가 된다. 영화에서는 ‘소코비아 협정’으로 묘사되지만, 코믹스에서는 미국 정부가 ‘초인등록법안’을 승인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초능력자들의 신원을 밝히고 국가에 등록하여 정부를 위해서 일하게 하는 법이다. 그런 정부의 통제가 세상을 더 안전하게 바꿀 거라고 믿는 아이언맨은 등록법안 연합 지지에 앞장섰다. 한편 정부가 히어로들을 통제하는 것은 히어로들의 인권 침해이며 신원을 밝히는 것은 주변 가족과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고 믿는 캡틴 아메리카는 아이언맨의 반대편에서 반란군을 지휘한다.

<시빌 워>의 중심이 되는 이러한 일련의 풍경들은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의 중요한 고민거리가 된, ‘국가 안보를 위해 개인의 자유는 어디까지 희생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재현한다. 캡틴 아메리카는 과거의 가치관, 개인의 자유, 자유 시장, 정부 통제 반대를 상징하는 반면 아이언맨은 미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 안보와 정부 통제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자유 대 안보, 자유시장경제 대 정부의 개입, 개인의 자유 대 사회적 의무 등 현대 미국 사회에서 첨예하게 대립 중인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 때문인지 학자들 사이에서는 <시빌 워>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항상 있어왔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악당보다 위험하다

<시빌 워>를 읽으면서 필자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건 이 이야기가 권력과 힘에 대한 견제를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원작 코믹스에는 이 문제에 대한 국회와 슈퍼히어로들의 흥미로운 토론이 오가는 멋진 법정 장면이 장전되어 있다. 초인등록법안이 승인되기 전, 상원위원회에 참석한 토니 스타크와 그의 어시스턴트 피터 파커로 동행한 스파이더맨은 상의원들과 견해 차이를 확인한다. 상의원들은 ‘의사들은 의사협회, 파일럿은 미국연방항공국, 택시기사는 차량국에 등록하는데 초인들은 어떤 권리로 자유롭게 행동하는지’ 질문한다. 토니 스타크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 순간 갑자기 피터 파커가 끼어들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말하며 “의사, 파일럿, 택시기사는 그 직업과 삶을 열망했지만 슈퍼히어로들은 그들의 힘을 의도치 않게 갖게 되었고 누구에게도 그 힘을 얻길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피터 파커의 말처럼 슈퍼히어로와 일반인의 차이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이며,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삶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게 된 초인적인 힘을 책임감 있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터 파커는 말하고 있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는 이처럼 법정 또는 국회에서 슈퍼히어로들이 자신의 생각을 직접 밝히는 장면이 없다는 점이 아쉽기도 하다.

사실 코믹스 <시빌 워>에서 진정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정부 관료들이다. 캡틴과 아이언맨이 대결한다는 사실에 혼란에 빠진 학자들은 초인등록법안을 승인한 이들에게 주목하지 못했다. 회사 상사, 경찰, 군, 정치인들, 국가의 지도자들. 이들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 이들을 견제할 자는 누구인가? 정부 관료가 아이언맨과 헐크를 이용해서 부정한 행동을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코믹스 <시빌 워>는 권력과 힘이 견제되지 않은 권력자들은 어쩌면 악당들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권력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것에 맞서 싸울 것인가? 아니면 함께할 것인가? WHOSE SIDE ARE YOU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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