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시사회 반응이 아주 좋더라. 긴 시간 매만져온 작품이라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시사회장으로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기자분들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정말 알 수가 없더라. 객석을 보는데 다들 무표정하셔서, ‘아… 재미없게 보셨나보다’ 했지. (웃음) 끝나고 좋은 말씀을 많이 들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이 <곡성>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어떤 불행을 겪은 사람, 혹은 피해자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그동안 <추격자>와 <황해>를 만들며 가해자에 대해 굉장히 많은 조사를 했다. 오랜 시간 취재를 하고 전문가들의 연구 자료를 보며 그들의 심리 상태와 범죄를 저지르는 요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거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왜 그런 불행을 겪어야 하는가? 물론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이유도 있을 수 있다.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던 지역에 갔다거나,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고 그들을 해쳤다든가. 하지만 이유가 단지 그것뿐이었을까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씩 준비를 해나가는데 내가 아는 게 너무 없으니 글이 안 써지더라. 그래서 그 뒤부터는 종교인들을 본격적으로 찾아다니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엔딩, 7개월 기다려 30분 만에 썼다
-그래서 <황해> 이후 공백이 길었던 건가.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데에만 3년이 걸렸다고.
=맞다. 이 영화는 가톨릭과 한국의 토속신앙, 그리고 네팔의 토속신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세 종교와 관련된 분들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도대체 각 종교들이 하는 얘기가 무엇이고 어떤 교리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알아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예를 들어 한국의 토속신앙을 연구하기 위해 어느 산속 암자에 갔다. 거기에 한두달 가까이 틀어박혀서 무속인들과 함께 지냈다. 그곳에 머물면서 그들이 느끼는 것들이 내게도 오길 바랐다. 그렇게 종교에 대해 알아가고 질문의 범위를 좁히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그리고 엔딩 신을 쓰는 게 가장 힘들었다. 7개월이나 걸렸으니까. 마지막 30여분의 이야기를 고민하는데, 어떤 글을 써도 마음에 안 들었다. 7개월 중 4, 5개월은 그냥 기다리기만 했다. 뭘 고치고 억지로 쓰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더라. 그냥 수개월을 기다리며 결말 이야기가 내게 오길 기다렸다. 2, 3년 동안 취재하며 보고 들은 게 있으니 언젠가는 내게 뭔가 올 거란 생각이 든 거다.
-그렇게 기다리니 결국 오던가.
=그게 어떻게 왔냐면 어느 날 갑자기 새벽 네다섯시 즈음에 오더라. 원래 피곤할 때 글을 잘 안 쓰고, 새벽에도 잘 안 쓰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자기 직전에 ‘퀭’한 상태에서 갑자기 지금 바로 써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에서 구체화된 무언가가 없는 채 그대로 쓰기 시작했다. 다음날 보면 아니겠지 싶었는데 다음날 봐도 이거다 싶더라. 엔딩 신은 그렇게 완성했다. 7개월 기다렸는데 30분 만에 썼다.
-혹시 실제로 믿는 종교가 뭔지 물어봐도 되나.
=기독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 텐데. 지금은 <곡성>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모든 신을 믿는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는 신을 믿지 않으면 준비할 수 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를 다 경험하고, 알고자 했더니 내가 처음 접해보는 신들에 대해서도 믿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수많은 종교인을 만나 질문하고 답변을 들으며 내린 나름의 결론이 궁금하다.
=그들을 만나고 취재하며 느꼈던 건 어느 종교든 피해자가 왜 그렇게 희생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교리에 입각한 이유를 만들어주더라는 거다. 굉장히 완벽한 논리인데 가슴으로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희생당하는 데 그렇게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결국 <곡성>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불행에 대한 위로라고 봤다. 불행을 미리 알면 막을 수 있었을까? 그건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비가 내리면 옷이 젖게 되듯 누군가의 불행도 그냥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불행에 대해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지만 피해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위로하기 위해,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곡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곡성이라는 장소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이 있나.
=좋은 기억들만 가득했다. 오랜만에 가보니 사람은 이런 곳에서 살아야 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공간이더라. 만약 초월적 존재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자연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밀집된 마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장소를 찾았고 곡성이야말로 인간과 신의 공존을 얘기하기에 가장 유리한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곡성의 풍경을 자주 풀숏으로 보여주는 건 그래서다.
캐릭터 설정과 캐스팅에 관하여
-류승완 감독은 <곡성> 현장의 기운이 남달랐다고 하더라. 실제 무당들을 동원해 굿하는 장면을 찍기도 했고, 영화에 오컬트적인 요소도 상당하다보니 굉장히 기가 센 현장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이 영화에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로케이션을 정하는 과정에서 장소의 기운을 감지하는 건 정말로 중요했다. 예를 들면 어떤 지역에서 찍기로 결정하기 전에 늘 현지의 무속인을 찾아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내가 말하기보다는, 주로 장소에 대한 그분들의 말을 경청하는 과정이었다. “그 국도가 새로 난 길이잖아. 거기는 동네 사람들도 안 다녀. 거기에 길이 없을 때에도 사람이 다니던 곳이 아니야. 나도 새벽에 기도 드리러 지나가다가 도망쳐 왔던 데야.” 이런 식으로 내가 느낀 기운을 그 지역 무속인들도 동일하게 느끼는지를 항상 체크하고 장소를 정했다.
-동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일본인에 대한 의심과 소문이 이 영화의 무드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떠도는 말’이라는 소재를 통해 스릴러의 긴장감과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나간다.
=누군가에게 불행이 찾아오는 과정을 표현할 때 비주얼로 그냥 보여주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설득력 있고 영화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시각적으로도 보여주긴 한다. 빨간 눈의 일본인이 저 멀리서 점처럼 보이다가 서서히 화면 쪽으로 다가오고 결국 관객의 눈앞까지 오게 되는 설정 말이다. 편집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압축하다보니 짧은 시간 안에 불행이 찾아오는 과정을 표현하려면 소문이라는 방식이 효과적이겠더라.
-비가 세차게 내리고 천둥 치는 장면들이 꽤 있는데, 이 순간들 역시 <곡성>의 영화적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 영화에서 비가 내리는 장면은 일본인을 클로즈업으로 조명하는 순간이나 일본인을 떠올리게 되는 장면과 늘 함께 온다. 외지인과 자연이라는 두 존재가 연달아 보여졌을 때 어떻게 충돌하는지 보고 싶어서다.
-시골 마을에 온 타지인은 대개 경계심과 두려움을 자아내는 존재지만, 왜 하필 일본인이라는 설정이었는지 궁금하다.
=우리와 흡사하지만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국인들은 이미 한국에 많이 살고 있으니 일본인이 적합하겠다고 생각했다.
-구니무라 준을 일본인 역에 캐스팅한 이유는.
=우선 연세가 꽤 있는 일본 배우였으면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머릿속에서 네분 정도로 후보가 좁혀지더라. 내가 기타노 다케시를 정말 좋아하는데, 기타노 영화에서 너무나 인상 깊은 연기를 해주신 구니무라 준 선생님도 좋았다. 특히 이분을 생각했던 이유가 뭐냐면 구니무라 준 선생님은 한컷 안에서 인물의 정서를 계속 변화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배우다. 평소에 기타노 다케시 영화를 보며 그런 모습이 굉장히 탐이 났었다. 선생님이 무척 바쁘신데도 어렵게 시간을 내주셔서 촬영할 수 있었다.
-종구(곽도원)의 상상 속 일본인의 이미지가 무척 섬뜩하다. 어떻게 구상했나.
=원래 시나리오상에서는 피부가 하얗고, 눈은 빨갛고, 네발로 걸어다닌다는 설정이었다. 이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일본의 귀신, 요괴 등 수많은 자료들을 봤다. 그런데 프리 프로덕션을 진행하면서 조금 더 인간적인 면이 살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꾸게 됐다. 그리고 구니무라 준 선생님이 신경통을 앓고 계셔서 쭈그려 앉는 동작 자체가 굉장히 힘든 분이었다. 그래서 두발로 서서 직립보행한다는 설정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은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을 찍는다. 사진기와 사진을 중요한 소품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 왜 그런 미신도 있잖나. 사진을 찍으면 사람의 혼이 거기에 담긴다는.
=사진에 관해 방금 얘기한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건 내가 영화를 하게 된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사진에 대한 질문이 마음속에 있었다. 한장의 인물사진일 뿐인데, 내가 사진을 통해 보고 있는 이 인물에는 왜 삶이 느껴지며, 어떠한 부연설명이 없음에도 사진을 찍은 사람이 무엇을 느끼려고 하는지를 왜 나는 느낄까. 그게 신기했다. 어떤 화학작용을 통해 피사체가 필름에 담기는 것이지만,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 속에서는 단순한 화학작용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에 그걸 알고 싶어 하던 시기가 있었다. 사진을 찍어도 보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물어보던 시기가 있었는데, 얘기한 것과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황해>를 함께 촬영하며 배우 곽도원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종구 역으로 곽도원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나.
=그건 말로 표현하기가 좀 그런데…. ‘감’이라는 게 있잖나. 종구라는 인물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등장해서 끝없이 추락하는 인물이다. 이 갭을 어떻게 보여줄까 했을 때, 곽도원 선배의 얼굴이 떠오르더라.
-아역배우 김환희의 연기도 굉장했다. 이렇게 어린 배우와 함께 오랫동안 촬영한 건 처음이었을 거다. 아역배우가 감당하기 힘든 장면도 많았는데 연출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환희가 등장하는 장면이 연출하기 가장 수월했다. 현장에서 환희가 그러더라. “관객이 저를 볼 때 어떤 생각을 하면서 보시길 원해요?” 그래서 “네 생각을 아무도 읽지 못했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그러면 가서 그 연기를 한다. 대화를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고 워낙 센스가 좋은 배우였다. 무엇보다 본인이 연기에 대한 욕심이 어마어마했다. 6개월 동안 안무 선생님과 몸을 쓰는 연습을 했는데, 몸을 뒤틀며 고통스러워하는 연기를 하다가도 ‘컷’을 하면 씩 웃더라, 얘가. (웃음)
-무시무시한 배우다. (웃음)
=한번은 엄청나게 비명을 지르는 장면이 있었는데, 자기가 태어나서 한번도 내본 적이 없는 소리를 내서 그런지 아이가 스스로 깜짝 놀랐다. 그래서 토닥이며 달래줬던 기억이 난다. 그건 성인배우가 할 수 있는 영역인데 환희가 그걸 해낸 거다. 본인이 그걸 해냈다는 걸 알고 난 뒤부터 태도가 아예 달라지더라. 내가 볼 때 환희는 천재다. (웃음)
공포와 웃음의 긴장과 리듬
-<곡성>이 다루는 종교가 한국과 네팔의 토속신앙, 그리고 가톨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수많은 종교를 좇으며 답을 구하던 중 왜 하필 이 세 종교에 주목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네팔과 한국의 토속신앙은 유사한 점이 많다. 원래 샤머니즘이라는 종교가 대개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긴 하다. 제물을 바친다든지, 그 행위를 할 때 타악기를 쓴다든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이 종구의 딸을 살리기 위해 무당이 굿을 준비하고, 일본인이 혼자서 자기만의 의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교차 편집되는 순간인데, 한국의 굿과 함께 보여졌을 경우 네팔의 토속신앙이 가장 이상적으로 궁합이 맞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굿에는 빠른 패턴의 음성과 마당에서 펼쳐지는 무당의 화려한 액션, 악사들의 연주가 있다. 반면 네팔의 굿은 개인이 방 안에서 아주 큰 음성을 내고 소박한 타악기를 사용한다. 이러한 행위들이 대비되며 교차편집되었을 때 가장 이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봤다. 물론 일본인이라는 설정 때문에 그 장면에는 네팔의 굿뿐만 아니라 일본의 토속신앙도 가미되어 있다.
-종구의 딸을 위한 굿판에서 황정민이 연기하는 무당의 에너지가 굉장히 강렬하다.
=나도 이 역할을 황정민 선배가 한다면 어마어마하겠다는 생각에 캐스팅을 했다. 선배님도 그 장면을 앞두고 걱정이 되셨겠지만 나 역시 걱정을 많이 했다. 무엇보다 남에게 살을 날리는 굿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런 굿이 실제로 있더라도 증거가 있겠나. 그래서 무속인들의 다양한 자문을 받아 굉장히 오랫동안 준비했다. 촬영하면서 황정민 선배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 15분, 20분간의 모습을 온전히 다 영화에 담고 싶더라. 그 장면을 다 살리지 못한 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을 정도다.
-가톨릭적인 테마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한다.
=성경을 보면서 귀신의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천사가 있고 악마가 있다는데, 사람이 죽으면 천당이 아니면 지옥을 간다는데, 그럼 스피릿은 뭐고, 고스트는 뭐냐는 거다. 우리는 사람이 죽었을 때 남아 있는 영혼을 귀신이라고 부르지만, 그렇다면 그 많은 할리우드영화에 등장하는, 사람의 몸을 지닌 귀신은 무슨 존재인가. 예수님도 부활한 뒤 인간의 모습으로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나. 그런데 우리는 왜 예수님을 ‘영’이라고 부를까. 그런 여러 고민과 혼란이 있어서 그에 대한 분명한 구분과 정리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오컬트라는 장르적인 채택을 했기 때문에, 이 장르를 비틀기 위해서는 가장 클리셰적인 종교가 필요했다.
-오컬트 장르 속에 좀비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곡성>은 더더욱 흥미로워진다.
=시나리오를 읽은 사람들이 다들 좀비는 빼라고 했는데(웃음), 내가 고집을 부려서 넣었다. 마을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 누군가는 그들을 구원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관객이 좀비의 등장을 통해 좀 웃을 수 있었으면 했다.
-좀비가 등장하는 장면이 굉장히 묘하다. 정말 무서운데 또 한편으로는 이게 뭔가 싶어 웃게 된다. 특히 좀비들의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그냥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마치 각기춤을 추는 것처럼 리듬을 타며 움직이더라. (웃음)
=안무 지도를 맡은 현대무용가 박재인 선생님과 정말로 고민을 많이 했다. 전형적인 건 싫었다. 죽다 살아난 인간이, 혹은 죽었다가 살아난 인간이라면 좀 리얼해야 하지 않을까 싶더라. 그래서 몇 개월에 걸쳐서 움직임을 연구했다. 배우들도 정말 오랫동안 준비했다. 그런데 막상 촬영하려고 보니 우리가 디자인한 안무에 몸을 꺾을 수 있는 배우의 신체적 한계가 맞물리며(웃음) 희한한 케미가 생기더라. 머리에 쟁기 꽂은 좀비를 연기한 길창규 선배님의 활약이 대단했다. 그 장면을 며칠에 걸쳐서 찍었는데, 다 찍고 나서 모든 스탭과 배우들이 선배님에게 박수를 치는데 영화 크랭크업하는 줄 알았다. (좌중 폭소)
-그렇게 <곡성>에는 무섭고 심각한 장면인데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인이 의식을 준비하며 닭을 사러 간 장터에서 아주머니와 보디랭귀지로 흥정을 한다든지. (웃음)
=그 장면에서는 시장 상인을 연기한 황석정 선배가 정말 잘했다. 자기는 닭을 못 만진다면서도 잘하시더라. (웃음) 그 장면은 카메라가 이야기와 무관하게 일본인을 비추기 시작한 최초의 장면이다. 그 이전까지는 마을의 소문 속, 오해 속 일본인을 보여줬다면 ‘여러분, 그럼 지금부터 정말로 이 사람이 어떤지를 보여드릴게요’라고 소개하는 장면인 거다. 그 짧은 순간에 가장 인간적인 일본인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일본 사람이 낯선 곳에서, 돈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데 흥정을 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곡성>은 전혀 다른 지점으로 흘러가는 영화다. 7개월 동안 고심했던 결말은 현장에서 촬영할 때에도 연출하기 쉽지만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웠다. 우선 일반적인 상업영화 클라이맥스의 형태가 아니라는 점.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형태를 가지고 클라이맥스로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다. 그래서 찍으면서도 나나 배우들이나 그 부분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배우들은 클라이맥스인 걸 아니 더 나아가려고 했고, 나는 계속 누르려고 했고. 그러다보니 어떤 적정선을 찾은 게 아닌가 싶다.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자문하며
-언론 시사회에서 “영화를 만들고 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끔 내가 가는 방향성이 옳게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의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특정한 시기가 있었나.
=매 순간 그런 생각을 한다. 미쳤을 때는 못 느낀다. 영화를 시작하기 전, 이 영화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할 때에는 오직 그것만 생각하니까. 방향성에 대한 생각이란 이런 거다. 그동안 <추격자>와 <황해> 그리고 <곡성>을 만들었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나라는 사람에게 굉장히 힘든 일이더라.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이다. 내가 나를 지켜가기가 쉽지 않다. 나는 항상 이런 얘기를 하면 슬퍼지는데, 지랄맞은 직업병을 앓고 있는 거다. 그런데 나는 그렇다 치고 요즘 한국 영화산업의 흐름을 보면 내가 영화를 시작하고 하고 싶었던 그 시기의 상황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감독으로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산업적인 측면에서 도태되지 않으면서 나를 잃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산업적으로 불리한 장르의 영화들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나. 주변에서 정말로 많은 유혹이 들어온다.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제안해주시는데, 그럴 때마다 갈등한다. 그렇지만 결국 나는 그쪽이 아니라 <곡성>이라는 영화를 선택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해 매 순간 질문을 하고 있는 거다.
-그 선택에 대해 후회는 없나.
=모르지 뭐. 또 개봉하고 나서 ‘아휴, 괜히 했나’ 그럴 수도 있지. (웃음)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관객이니까. 너무 어렵다. 어려워.
나홍진 감독과의 대화는 상당 부분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지 감춰야 할 사연과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영화 <곡성>은 인간의 불행에 대한 탐구로 시작해 인간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는 점이다. <곡성>이 개봉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지금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고 나홍진 감독은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때가 되면, 더이상 궁금해하지 않을까요?” 그럴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