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커버스타] 연기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히다 - <비밀은 없다> 손예진
2016-06-07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배우의 시간은 작품으로 기억된다. 20대의 손예진은 청순, 발랄, 도발을 넘나들며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를 섭렵했다. 30대에 접어든 손예진은 작품 속에서 사랑스런 반달 눈웃음을 짓는 일이 적어졌다. <타워>(2012), <공범>(2012),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 <나쁜놈은 죽는다>(2015) 같은 장르영화 안에서 강인한 여성, 행동하는 여성으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청순가련의 멜로퀸은 액션영화의 여전사가 되었고, 모든 장르가 가능한 배우로 진화했다. 변하지 않은 건 용감하게 작품 속으로 뛰어드는 태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배우의 마음이니까. 똑같은 대사도 다르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 무조건 새로웠으면 하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지점에서 <비밀은 없다>는 마음껏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라 좋았다.”

<비밀은 없다>는 딸의 실종 이후 연홍과 종찬 부부가 아프게 자신들의 치부를 대면하는 이야기다. 딸 민진의 실종 전까지 연홍은 정치인의 아내로, 중학생 딸을 둔 엄마로 살았다. 그것이 연홍의 정체성이었다. 하지만 딸의 실종 이후 홀로 딸의 비밀과 마주하고, 홀로 딸의 생사에 매달린다. 영화는 연홍의 감정으로 사건을 따라가지만 연홍의 모성은 짐작하기 힘든 형태로 표현된다. “이 영화가 단지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단지 아이를 찾는 엄마의 절절함만을 표현한 영화였다면 내가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꼈을지 모르겠다.”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전형적이지 않게 표현하는 것은 난제였다. 연홍은 감정과 표현 사이에 간극이 큰 캐릭터다. ‘저 여자 뭐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캐릭터. “의외의 감정 표현이 많았다. 전형적인 영화의 경우 ‘이렇게 분노하고 이렇게 오열할 것’이라는, 어느 정도 정해진 표현법이 있는데 연홍은 그렇지 않았다. 감정과 표현을 다르게 한다는 건 꽤 어려운 지점이었다.”

계산기를 두드려 답을 얻을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었기에 공학적 연기가 아니라 문학적 연기가 필요했다. 1+1은 2가 아니라 0일 수도 있고 3일 수도 있는 연기를 해야 했다.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안 해본 연기에 대한 재미는 확실히 있었다. 모니터를 보는데 나도 내 얼굴이 낯선 순간이 있더라.” 결국엔 편안하고 익숙한 표현법을 버리는 과정이었다. “내가 편한 대로 연기하면 똑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워낙 신인감독님들과 작품을 많이 해서인지 내가 생각한 대로, 내가 맞다고 생각한 대로 연기를 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경미 감독님은 자꾸 다른 생각을 하게끔 해줬다. 연기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혀줬다.” <비밀은 없다> 이후엔 제주도에서 중국영화 <나쁜놈은 죽는다>를 찍었고, <외출> 이후 10년 만에 허진호 감독과 재회해 <덕혜옹주> 촬영을 마쳤다. 연홍과 덕혜옹주 사이의 간극도 상당한데, 손예진은 그 간극의 줄타기를 즐기는 것 같았다.

안주하기란 참 쉽다. 몸과 마음이 편해지면 ‘이만하면 됐어’ 하고 안주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손예진은 15년간 그 유혹을 이겨냈다. 자신을 규정하는 틀을 깨트리면서 매번 새로운 모습을 선사했다. “연기를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을 연료 삼아 “스스로를 채찍질”한 결과다. “20대 때는 빨리 30대가 되고 싶었다. 고 장진영 선배라든지 심은하, 전도연 선배님이 하는 연기를 나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덧 내가 20대 때 동경했던 선배들의 나이가 되어 있더라. 시간이 나를 배신한 느낌도 드는데(웃음), 아무튼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다.” 그 여유가 손예진의 연기를 풍요롭게 만들고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것은 아닐까.

스타일리스트 안미경·헤어 제니하우스 구미정·메이크업 제니하우스 무진·의상협찬 필립플레인, 블루마린, 스튜어트와이츠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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