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쏘우> <인시디어스> <컨저링> 시리즈 제임스 완 감독 마스터클래스
2016-06-09
글 : 송경원
정리 : 김수빈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5월27일 CGV압구정에서 열린 한국영화아카데미 마스터클래스. 한국영화아카데미 유영식 원장, <씨네21> 송경원 기자, 제임스 완 감독(오른쪽부터).

제임스 완의 <쏘우> 시리즈는 존 카펜터의 <할로윈>(1978)이나 댄 미릭, 에두아르도 산체스의 <블레어 윗치>(1999)에 비견될 만한 2000년대를 대표하는 공포영화 브랜드다. 2004년 각본가이자 배우인 리와넬과 의기투합해 탄생한 <쏘우> 1편은 제작비 대비 50배의 수익을 올리며 전설로 남았고, 아직까지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다. 제임스 완은 이후 <인시디어스> 시리즈와 <컨저링>을 연이어 선보이며 그 이름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젊은 호러 거장은 최근 장르의 한계를 넘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도 러브콜을 받는 중이다. 2015년 <분노의 질주: 더 세븐>으로 안정적인 흥행은 물론 평단의 호평까지 이끌어냈고, 현재 DC의 블록버스터 <아쿠아맨>과 <모탈 컴뱃> <맥가이버> 등 리부트영화의 연출도 확정지었다.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대세 제임스 완 감독이 <컨저링2>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5월27일 오후 7시 CGV압구정에서 한국영화아카데미 주최로 열린 마스터클래스에서 제임스 완 감독은 그의 영화세계에 매료된 영화학도들에게 아낌없이 자신만의 비결을 공개했다. 숨 막히는 공포영화를 만든 장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시종일관 밝고 쾌활한 에너지를 내뿜는 제임스 완의 모습에 참석자들의 분위기도 금방 달아올랐다. 장르에 대한 토론과 공포의 실체, 탄탄한 드라마에 대한 조언이 오간 소중한 시간이었다. 제임스 완이 직접 밝힌 공포영화 잘 만드는 법, 정확히 말하자면 즐겁게 영화 만드는 법을 여기 전한다.

<쏘우>(2004)

1. <쏘우>의 탄생

17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호주 멜버른에 자리한 로열 멜버른 인스티튜트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공했고 거기서 리 와넬을 만났다. 동기들이 다 나이가 많았고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 둘이 공부하는 꼴이 되어 자연스레 친해졌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인디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주목받을까 고민했다. 언젠가 샘 레이미가 호러 장르를 통해 진출하는 게 수월할 거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원래 둘 다 호러 팬이기도 했기에 호러영화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적은 예산으로 남들과 다른 독창적 시선을 드러내는 게 관건이었다. 영화의 출발점은, 두명이 한 좁은 방에 갇혀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했다. “같은 방에 두명이 갇혀 있고, 바닥엔 시체가 있으며, 중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도 모르지만 영화가 끝날 때는 시체가 두발로 걸어나간다.” 이 얘기를 듣고 리가 당황하더니 “그럼 나보고 중간을 다 만들어내라는 거냐”고 얘기하더라. (웃음) 시나리오 쓰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 훌륭한 영화와 경쟁하려면 각본이 탄탄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특히 예산이 없었으니까. 이후 1년 동안 호주에서 투자를 받기 위해 노력했는데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상당히 우울한 시기였다. 당시 TV 일을 하다 계약이 끝나서 6개월 정도 실직 상태였고 월세 내기가 버거워지는 상황에서 LA의 TV 에이전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회의적이었지만 리가 일생일대의 기회라며 나를 설득했다. 그리고 기왕 에이전트를 만나러 갈 거면 전체 시나리오에서 가장 독창적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을 골라서 단편을 하나 찍어서 가자고 했다. 리가 마련해온 5천달러를 가지고 이틀 동안 찍고 3일 동안 편집해서 가져갔다. 알다시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일주일 동안 LA에 있었는데 첫날 첫 미팅에서 제작자 그렉 호프먼(2005년 세상을 떠났다)이 “단편 너무 잘 봤고 각본도 좋다”며 내가 감독을 맡고 리가 주연을 하는 파격적인 조건의 제의를 했다. 심지어 출연료를 받지 않고 나중에 수익 분배로 받고 싶다는 요청에도 응해줬다. 이후 드림웍스, 이십세기폭스 등 유명한 스튜디오와도 미팅을 했지만 망설임 없이 첫 미팅을 했던 이들과 작업을 했다. 그렇게 <쏘우>(2004)가 장편영화로 만들어졌고 지금 나를 이 자리에 서게 했다.

<컨저링>(2013)

2. 공포란 무엇인가

사람들마다 두려워하는 대상이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쟁이 벌어지는 나라에서 어떤 사람의 공포란 집 문 앞에 날아드는 총알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겐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일상적인 공간이 비일상적으로 변했을 때 공포심은 배가된다. 그래서 집이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집처럼 일상적이고 일반적이어서 지루하기까지 한 장소도 없다. 아무도 나를 침해할 수 없는 안전한 장소라 생각한 공간이 침범당하면 굉장한 공포를 느낄 거다. 그곳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고 해도 무서운데, 내 집을 점령한 그 무엇인가가 실체가 없는 영혼이나 악령이라고 하면 무서움이 배가될 것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상대가 내 공간을 온전히 차지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공포와 유머는 닮은 면이 있다. 매우 즉각적이고 개인적이며 현지의 문화적 체험이 반영된 감정들이다. 그래서 반대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테마나 미장센에 심혈을 기울인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무서워할 수 있는 상황들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고 있는데 문이 삑 하고 열리면 누구나 깜짝 놀라 일어나지 않을까. 보편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킬 요소를 잘 찾아서 영화에서 효과적으로 설계해 전세계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또 하나, 공포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해 연구하는 게 좋은 공포영화를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한다. 좋은 공포영화는 관객의 심리를 활용할 줄 안다.

<데스 센텐스>(2007)

3. 속편 성공의 법칙

<쏘우2>(감독 대런 린 보스먼, 2005)의 연출 제의도 들어왔지만 당시엔 감독으로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속편은 어쩔 수 없이 첫 영화의 내용을 반복해야 하는 면이 있다. 개인적으론 반복적인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제작자로 참여했다. 결과적으로 <쏘우>는 공포영화의 브랜드가 됐지만, 기본적으로는 시리즈보다는 다양한 영화들을 좋아한다. 세 번째로 만든 <데스 센텐스>(2007)는 고전적인 스릴러물이었다. 감독 혹은 작가로서 한 가지만 잘한다고 알려지는 것은 썩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 모든 경험과 시도가 성공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분노의 질주: 더 세븐>(2015) 같은 블록버스터 시리즈도 그중 하나다. 요는 익숙한 가운데 새로운 접근이 있어야 한다. 내가 항상 기억하려고 애쓰는 건 영화 장르와 상관없이 캐릭터를 개발하는 일이다. 관객이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캐릭터를 개발해야 관객의 몰입도도 높아진다. 예컨대 <컨저링>(2013)은 공포이지만 드라마가 강조된 영화다. 단지 캐릭터들이 초자연적 현상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영화를 위해 만든 캐릭터가 다른 상황이 주어졌을 때는 어떻게 행동할지, 다른 영화에 들어가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늘 고민한다.

<인시디어스>(2010)

4. 도전을 멈추지 말라

<쏘우>를 만들 때 명확한 두개의 목표가 있었다. 남들의 이목을 끄는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자는 것. 두 번째는 적은 예산으로 그걸 달성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부족한 예산을 핑계로 아이디어를 미뤄선 안된다. 거꾸로, 주어진 예산 안에서 효과적으로 아이디어로 승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SF나 액션에 비해 호러영화는 작은 소품이나 요소로도 공포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 점에서도 코미디와 호러는 유사한 부분이 많다. 코미디도 훌륭한 배우와 위트 있는 각본으로 할 수 있는 게 많다. 둘 다 사람의 본능을 자극하는 장르이고, 웃음이 터진다거나 비명을 지르는 등 반응도 즉각적이다. 그만큼 호흡과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거의 모든 영화가 그렇다. 나 역시 어려웠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굉장히 우울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열세살 때부터 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20대를 지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감독에 가까워진 것 같지 않았다. 분명히 열정,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지금은 젊고 재능 있는 감독들이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제작을 맡은 <라이트 아웃>(2016) 연출가도 집에서 아내와 찍은 단편영화로 시작했다. 최고의 단편영화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묵묵하게 꿈을 좇아간다면 언젠가 기회가 올 거고 그 기회가 왔을 때 굉장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제임스 완의 말말말

“나도 처음에 만들고 싶었던 영화는 전쟁 서사극이었는데 완성하고 보니 공포영화였다.”

⇢ 친구들과 함께 공포영화를 찍고 싶었는데 시나리오를 쓰고 보니 코미디, 고어물, 슬픈 역사물 3편이 나왔다며 어떻게 하면 공포영화를 잘 만들 수 있는지 묻는 관객에게.

“영화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봤을 때 즐거움이 배가되는 측면이 있다. 공포영화를 볼 때 누구 한명이 소리를 지르면 두려움이 관객 사이에서 전염된다. 이런 체험은 오직 극장에서만 허락된다.”

⇢ 극장 개봉과 동시에 온라인 스크리닝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숀 파커의 ‘스크리닝 룸’을 비롯해 일련의 영화산업 변화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 묻자.

“그 반대다. 예산이 많아지면 장비라든가 필요한 도구를 좋은 걸로 쓸 수 있지만 감독으로서의 자유는 상대적으로 제한된다. 중요한 건 규모에 상관없이 항상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영화 제작은 잘 기획된 어지러움, 비유하자면 ‘이동하는 서커스’와 같다.”

⇢ 블록버스터영화를 연출할 때 저예산 공포영화에서는 시도하지 못했던 표현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관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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