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정보 <곡성>
사용 카메라 아리 알렉사 XT 4:3(ARRI ALEXA XT 4:3) 사용 렌즈 아리 마스터 프라임, 울트라 프라임, 호크 V 라이트 화면 비율 2.39:1(칸국제영화제 상영 버전은 2.35:1)
촬영정보 <아가씨>
사용 카메라 아리 알렉사 플러스 4:3(ARRI ALEXA PLUS 4:3) 사용 렌즈 애너모픽 호크 74 빈티지, 울트라 프라임 화면 비율 2.39:1(칸국제영화제 상영 버전은 2.35:1)
곽경택 감독의 조감독 시절, 사무실에 종종 놀러오곤 했던 홍경표 촬영감독은 한 마리의 맹수 같았다. 가슴팍엔 호랑이를, 왼팔엔 불새(문신)를 품고 있었고, 캡에서 삐죽 튀어나온 거친 헤어스타일은 누구라도 쉬이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내뿜었다. 홍경표 촬영감독이 불같은 성격을 동력 삼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가며 현장을 끌고 가는 모습은 무척이나 강렬했다.
“영화 어땠어? 촬영은 괜찮아?” 정정훈 촬영감독은 제69회 칸국제영화제 <아가씨> 기자시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물어왔다. 영화 반응이 얼마나 궁금했으면, 캐나다 토론토에서 6월 말 크랭크인하는 신작 촬영 준비하느라 바쁜 그가 문자까지 보냈겠는가. 사소한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장에서도 그는 꽤나 집요하고, 세심하며, 깐깐하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김지운(<반칙왕>(2000)), 장준환(<지구를 지켜라!>(2003)), 강제규(<태극기 휘날리며>(2004)), 이명세(<M>(2007)), 봉준호(<마더>(2009)), <설국열차>(2013)) 등 다양한 감독들을 거쳐가며 매 작품 다른 스타일을 선보여왔다. 반면, 정정훈 촬영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오랜 조력자로서 작업하되(<올드보이>(2003), <컷>(2004), <친절한 금자씨>(2005),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스토커>(2012), <아가씨>(2016)), 류승완(<부당거래>(2010)), 박훈정(<신세계>(2012)) 등 다른 몇명의 감독들과 호흡을 맞췄다. 이 두 사람이 긴 시간 마주 앉아 영화 얘기를 나눴던 자리가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래서 현재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정훈 촬영감독이 <아가씨> 색보정 작업을 하러 잠깐 한국에 들어왔던 지난 5월2일, <씨네21>은 두 남자의 만남을 주선했다.
1부. 홍경표 촬영감독과 정정훈 촬영감독이 말하는 <곡성>과 <아가씨>의 촬영
<씨네21>_두분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난 건 처음 아닌가.
정정훈_홍경표 감독님과 이런 자리에서 만난 건 처음이다. 뵌 것도 몇년 만이다. 계속 소식은 듣고 있었다.
홍경표_그간 만나질 못했다. (웃음) 정훈이 소식만 들었다. 자기 거(<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Me and Earl and the Dying Girl, 감독 알폰소 고메즈 레존, 2015)가 제31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았다.-편집자) 미국에서 촬영해 선댄스 나가서 상 받았다며?
정정훈_몇년 전에.
홍경표_그런 소식을 나중에 들어가지고.
정정훈_그게 국내에서 개봉하려다가 극장을 못 잡아서 개봉을 아예 못했다.
홍경표_또 로빈 윌리엄스가 자기 거 찍고….
정정훈_맞다, 그거 찍고 돌아가셔서. 뭐가… 되는 게 없다. (웃음)
홍경표_유작인가?
정정훈_그렇다. 아직도 그의 자살이 믿기지 않는다.
<씨네21>_최근 어떻게 지내고 있나.
홍경표_요새 쉬고 있다. <국가대표2>(2016)를 끝냈고.
정정훈_<아가씨> 색보정 작업하러 잠깐 한국에 들어왔다.
홍경표_며칠 있을 건가?
정정훈_일주일.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박찬욱 감독님이 색보정 작업 몇회를 먼저 진행하셨다. 보통 우리(촬영감독)가 먼저 작업한 뒤 감독님들이 보시지 않나. 그런데 감독님이 먼저 작업한 뒤 합류하니까 좋다. 꼬투리 잡기도 편하고. (웃음) 형님도 다음에 한번 그렇게 해보시라.
홍경표_나도 이번에 그렇게 했다. 색보정은 감독마다 다르다. 작업실에 아예 안 나오는 감독도 있고. 나홍진 감독도 지난해 6월 색보정을 한다고 해서 미리 봐뒀다. 그런데 갑자기 색보정 작업 일정이 뒤로 넘어갔다. <국가대표2>가 지난해 11월 촬영을 시작하면서 나(홍진) 감독이 ‘자기가 직접 할 테니 체크해 달라’고 부탁한 거다.
정정훈_감독이 직접 색보정 작업을 하면 장점이 좀 많은 것 같다.
홍경표_편하다. <국가대표2>가 끝난 지난 1월 말부터 <곡성> 색보정 작업을 맡은 거다. 나홍진 감독이 워낙 컬러, 콘트라스트하고 그립에 집착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정정훈_<곡성>에서 나홍진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이 만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영화계에선 둘 중 누가 먼저 나가떨어지나 보자고 했다. 둘 다 집착이 강한 사람이니까. 그러고 있었는데 조용히 마무리가 됐다. 너무 싱겁게 끝났다. (웃음)
홍경표_그럴 이유가 없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현장에서 내가 요구를 할 때는 영화가 안 돌아가거나 그림이 안 나와서 그러는 거다. 나 감독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뭐가 안 되면 내가 뭐라 요구하는 것을 (나 감독이) 가만히 밑에서 받아줬다. 내가 형님이니까.
정정훈_나쁜 동생이다. 두분이 비슷하신 것 같다. (웃음)
홍경표_에너지가 비슷하다. 열 받으면 확 올라갔다가 좋으면 생글생글 웃고, 또 나쁘면 확 올라간다. 조울증 환자도 아니고. 이러니 밑의 애들만 고생이다. 나홍진도 그림이 안 나오거나 현장 진행이 제대로 안 될 때 제일 흥분한다.
정정훈_밑의 애들 입장에서도 이걸 단순하게 생각하면 편한 건데, 사람 마음이 편치 않다. 긴장을 하게 되니까. 미국에 있을 때 박 감독님한테 연락이 왔다. <곡성> 시나리오를 봤는데 무섭고, 너무 기대가 된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래서 내가 “시나리오만 봤는데 어떻게 무섭냐”고 물었는데, (박 감독이) “아니, 진짜”라고 하시더라. 그런 이야기를 여러 군데서 들었다. 이번에 나온 거 보니 느낌이 정말 좋더라. <아가씨> 시나리오는 무섭지는 않은데. (웃음)
홍경표_(박 감독이) 워낙 완벽한 시나리오를 쓰시니까. 소문 많이 들었다. 박 감독님이 <스토커>(2013) 찍을 때 미국에서 만족스럽지 않으셨는지 이번 작품은 제대로 쥐어짜면서 가겠다고 했다고. 회차도 그렇고.
정정훈_처음에 70몇회차 잡았는데 68회차 만에 끝났다. 촬영 전 박 감독님이 <씨네21>과 했던 인터뷰(994호 기획 기사 ‘정정훈 촬영감독의 할리우드 도전기’)에서는 프로듀서와 조감독이 계획한 회차에서 1/8을 줄이겠다고 하셨지만, 정확한 회차를 맞힌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와 박 감독님의 중간선에서 촬영이 끝났다.
홍경표_원래 몇 시간짜리 시나리오였나?
정정훈_시나리오만 봤을 때는 3시간 정도 나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구성이 1부, 2부, 3부로 나뉜 시나리오여서 꽤 오래 걸리겠구나 생각했다.
홍경표_그렇게 긴데 어떻게 60몇회 만에 끝냈나.
정정훈_어떻게든 끝내야겠다는 일념으로.
홍경표_<곡성> 시나리오도 굉장히 길다. 시나리오가 170몇신에, 공간이 어마어마하다. 계속 옮겨다니고 한 시퀀스에서 머무는 게 없다. 그러다보니 물리적인 시간이 길어지고 회차도 늘어나더라.
<씨네21>_얼마나?
홍경표_처음에 우리도 85회차 잡았는데, 나 감독이 “이것도 정확하지 않고 러프(rough)한 거다. 날짜, 스케줄, 배우 등 여러 상황에 따라 늘어질 수도 있다”고 얘기했고 나도 그렇게 예상했었다. 짬밥이 있는데도 이 영화가 어렵더라. 특수효과, 특수분장, 비 등 경우의 수가 너무 많으니까 하루에 찍을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다. 100회는 넘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역시 120몇회까지 넘어갔다.
정정훈_<스토커>, <신세계>(감독 박훈정, 2012)를 끝내고 미국으로 넘어갔잖나. 거기서 찍었던 영화는 19회차, 24회차 만에 끝냈다. 하루에 열두 시간씩 찍으면서. 그걸 해보니 50회차만 넘어도 “영화 세편인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을 계속 박 감독님한테 최면으로 걸었다. <설국열차>(2013)를 해서 아시겠지만 예산 오버되면 안 되고,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브레이크를 걸었던 것 같다. <곡성>과 다른 점이라면 반복되는 신이 많고 ‘제발 밖에 좀 나가고 싶다’ 할 정도로 세트 촬영이 많았다.
홍경표_우리는 세트가 없고 올 로케이션이다. 눈 때문에 촬영 접은 게 많다. 목매달아 죽은 시체 나오는 집은 가을 설정인데, 12월에 찍은 탓에 눈이 왔다. 구니무라 준이 한국에 올 때 눈이 오면 안 되니까 스케줄 조절하기가 너무 힘든 거다. 그러면서 (회차가) 많이 늘어났다. 결국 1월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정정훈_박 감독님이 이 대담 보시면 나 감독님을 되게 놀리겠는데? 자기는 60몇회에 끝냈다고. (웃음)
홍경표_나도, 나 감독도 영화 작업 할 때 다른 것들에 얽매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만큼은 ‘무데뽀’로 ‘오버 노동’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이게 내 마지막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찍었다. 시골이고, 새벽 장면이 많다. 스케줄 맞춰서 탁탁 찍을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정정훈_맞다.
홍경표_그래서 촬영부에 양해를 구하고 아침 8시 촬영이면 새벽 4시에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해 뜨는 풍경 인서트가 시나리오에 무지 많아서 그걸 찍으러.
정정훈_그게 또 힘들지.
홍경표_해 뜨는 신이 얼마나 많던지. 인서트가 무척 중요한 영화다. 공간이 넘어가는 분위기를 포함해 여러 가지를 설명하는 인서트이기 때문이다. 따로 찍으려면 시간 빼야 하고 다 돈이다. 새벽에 나간다고 다 얻어지나? 카메라가 올라갔는데 구름 때문에 촬영을 못한 적도 많다. 그러고 내려와서 아침 8시에 다시 촬영 시작했다.
정정훈_홍 감독님 얘기 들어보니 그런 인서트는 조수들만 올려보내기엔 되게 못 미더운, 중요한 인서트다.
홍경표_애들은 못한다. 절대 할 수가 없다.
정정훈_미국도 촬영감독조합(Local 600, International Cinematographers Guild)이 그렇게 발달했는데, 인서트컷 촬영처럼 약속된 업무 외에 그렇게 하는 게 있다.
홍경표_<곡성>은 내가 욕심을 내서 그렇게 찍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봤는데 무속, 판타지, 미술, 환상이 다 뒤섞여 있는 한국 토종영화더라. 보통 상업영화에서 해왔던 시간이나 노동에 대한 생각을 접고 촬영에 임했다. 표준계약을 안 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지킬 것은 다 지켰다.
정정훈_한국판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2015)가 되겠는데? (일동 폭소)
홍경표_요즘 충무로에선 그런 미친 짓을 안 하려고 한다. 쉽게쉽게 가려는 게 있지 않나. 날밤 새는 것도 마냥 옳은 게 아니지만, 감독이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서 밀어붙일 때 (조력자로서) 믿고 기다려주는 여건이 되었으면 좋겠다. 풍경 하나를 얻기 위해 기다리다가 영화에 딱 맞는 장면을 얻고, 그렇게 얻은 장면을 관객에게 보여주었을 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더 좋은 화면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다. 영화를 제대로 보여주려고 고생하고, 돈도, 시간도 더 쓰는 거다. 요즘 그런 것들이 너무 없어지니까 대놓고 고생했다.
정정훈_얘기 들어보니 거의 유작이다 생각하고 찍으신 것 같다.
홍경표_진짜 그렇게 생각했었다.
정정훈_그렇게 고생하고 안 나오면 욕먹는다. 말씀하시는 거 보니 만족스러우신가 보다.
홍경표_일단 감독이 좋아하더라. 감독이 색보정 작업을 마무리한 뒤 너무 좋았다, 고맙다고 할 때 기분이 제일 좋다. 나 감독도 끝나고 나서 그런 얘기를 해줬다.
<씨네21>_나홍진 감독이 이번에 홍경표 촬영감독과 작업하게 된 이유를 얘기해준 적 있나.
홍경표_물어봤다. <해무>(감독 심성보, 2014) 때 함께 작업한 김윤석씨가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이나 성격을 보고 나와 나 감독이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윤석씨가 나 감독에게 “둘이 에너지가 비슷할 것 같다”고 추천했고, 나 감독이 나한테 시나리오를 줬다.
정정훈_<해무>나 다른 영화 촬영할 때 “홍 감독님 뛰어다니시냐, 걸어다니시냐?” 물어봤다. 그랬더니 다들 뛰어다닌다고 하더라. 걸어다니면 문제가 있는 거다. 뭐 때문에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홍경표_모든 감독이 그런 게 있나보다. 나 감독이 <곡성>은 <추격자>(2008), <황해>(2010)와 다르게 찍고 싶다고 하더라. 나를 고른 것도 그래서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 초반에는 부담이 컸다.
정정훈_둘이 만났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밖에선 진짜 이슈였다. 이 현장은 끝까지 못 갈 거고, 둘 중 한명은 곡성에서 돌아올 것이라고. (일동 웃음) <곡성>을 오가는 지인들에게 (아무 일 없냐고) 물어봐도 아무 일 없다고 하더라고. 나는 계속 ‘있을 텐데’ 했지. (웃음)
홍경표_<곡성>에 비하면 <아가씨> 소문은 별로 안 났다. 아, 박 감독이 이번에 제대로 꽂혀서 그동안 못했던 것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정정훈_이상하게도 <아가씨>는 ‘제대로 찍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쉽게 흘러갔다. 대충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전에는 하나하나 집중해서 갔던 기억이 있는데. 손발이 너무 맞아도 힘이 빠지지 않나. <아가씨>는 그런 게 좀 있었다. 그럼에도 박 감독님이 원하시는 건 다 하신 것 같다.
홍경표_애너모픽렌즈 썼다며.
정정훈_나한테 애너모픽 자극을 준 건 외국영화가 아니라 홍 감독님이 촬영하신 <마더>(2009)였다. 한번은 세트장에서 홍 감독님을 만났는데, 뭘 보고 계시기에 “뭐예요?”라고 물었더니 렌즈 특성을 얘기 안 해주고 “케이스 하나에, 렌즈 하나야”라고 하셨다. (웃음) 그게 애너모픽렌즈였다. <마더>를 본 뒤 언젠가 써보고 싶었는데, 우리나라엔 그런 렌즈가 없었다. 미국에서 촬영하면서 장비상들과 친해져서 직접 연락을 주고받았다. 옛날 홍 감독님 쓰셨던 호크로. 호크 중에서도 시대물이니 74 빈티지 렌즈로 선택했다. 고생 많이 했다. 렌즈가 일본 촬영 가기 직전에 도착해 부랴부랴 테스트부터 했는데, 화면 위아래의 샤프니스가 되게 안 좋아서 당황했다. “큰일났다. 영화 말아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홍경표_나도 <곡성> 컨셉 회의 때 산 같은 공간에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어서 호크 세알을 섞어 썼다. <곡성> 풍경은 호크렌즈를 장착한 애너모픽으로 찍었다. 그래야 우리가 눈으로 볼 때와 비슷하게 먼 산이나 해가 잘 들어오니까. 같은 mm의 렌즈를 쓰면 해가 보이지도 않는다. 촬영 초반에 렌즈 세알을 가져왔는데, 너무 비싸다보니 테스트를 잘 못했다. 그냥 <마더> 때 썼던 것을 생각한 거다. <마더> 때 썼던 렌즈는 지금은 단종된 클래식 렌즈였다. 샤프니스나 퀄리티가 좋지만 어둡게 찍히는 렌즈였다. 이번에 가져온 건 별로였다. 풍경만 찍을 생각이었는데 초반에 인물에 욕심이 살짝 생겼다. 눈으로 볼 때 느낌이 너무 좋아서 한컷 찍었는데, 정정훈 말대로 포커스 위아래가 뭔가 이상했다.
정정훈_렌즈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나고야에 넘어가기 전까지 충분한 테스트를 못했다. 그래서 나고야에 넘어가서 촬영 직전까지 계속 테스트를 했는데, 촬영부에서 누가 찍어도 포커스가 안 맞더라. 네거티브 앵글은 인물이 다 몰려 있고. ‘렌즈를 다시 돌려보내야 하나’ 생각했는데, 영화사에서 애너모픽에 대해 밖에 떠든 게 많고. (웃음) 그날부터 잠이 안 왔다. 애너모픽 28mm 렌즈는 일반 렌즈 14mm와 비슷한 까닭에 포커스가 안 맞아 결국 돌려보냈다(보통 애너모픽의 1/2이 일반 렌즈와 비슷한 룩이 나온다.-편집자). 28mm는 어떻게 해도 안 맞았다. 호크 74 빈티지 렌즈와 울트라 프라임 렌즈 풀세트 두개를 섞어 썼다.
홍경표_나도 영화사가 돈이 없다고 했다. 애너모픽은 와이드 계열 2개만 쓰자고. 결국 마스터 프라임 렌즈와 울트라 프라임 렌즈를 썼다.
정정훈_우리는 렌즈 풀세트를 갖고 와서 빼도 박도 못했다. 돌려보내자니 한달 가까이 기다리게 해놓은 게 망신이 될 것 같고. 어떻게 해서든지 렌즈에 맞춰 찍었다. 되게 힘들었다. 단렌즈와 섞어 쓰면 샤프니스가 안 좋은 게 더욱 티가 난다. 그래서 단렌즈에 필터를 써서 샤프니스를 다운시킨 뒤 맞췄다.
홍경표_단렌즈를 카메라에 바로 붙이면 표시가 난다. 단렌즈에 필터를 장착하면 괜찮다.
정정훈_애너모픽은 최소 초점거리(각 렌즈는 피사체와 일정한 거리 이상을 두고 촬영해야 하는데 이것을 최소 초점거리라고 한다. 이 거리보다 피사체에 가까이 접근하면 초점을 적절하게 맞출 수 없다.-편집자)가 안 좋지 않나. 한계가 있다. 제일 미칠 때가 인물이 카메라 멀리 있다가 카메라쪽으로 가까이 뛰어올 때다. 감독님은 그런 거 좋아하시는데, 속으로 ‘애너모픽은 잘 안 되는데’ 그러고. (웃음) 배우가 기계가 아니니 최소 초점거리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배우가 최소 초점거리 안으로 들어올 때가 많아 초점이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는 운 좋게 잘 맞았던 것 같다.
홍경표_좋던데.
정정훈_큰 화면으로 보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홍경표_촬영감독인 우리만 미세하게 느끼는 거고, 웬만한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정정훈_홍 감독님은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 거다. 처음 호크 테스트가 끝난 뒤 호크 렌즈를 썼던 촬영감독을 찾아 이메일을 보내 연결이 됐다. 그 촬영감독도 “호크만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 우리만 고민했던 문제가 아니었다. <아가씨>를 보고 카메라가 많이 떨리는 게 아니냐고 얘기해준 감독님들도 많다. 박 감독님과 내가 세트장 바닥에 레일을 깔지 않고, 합판과 아크릴, 플라스틱을 깔아 바닥을 매끈하게 만드는 댄스 플로어(Dance Floor)를 도입한 것은 배우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호크 렌즈가 빈티지 모델이라 옛날영화 느낌도 났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박 감독님이 <아가씨>를 호크로 찍은 걸 마음에 들어 하셨다. 아이러니한 게 영화가 디지털로 바뀌면서 감독님들마다 시네마틱하게 찍어달라고 한다. 디지털카메라는 갈수록 샤프니스가 강해지는데, 화면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는 옛날 느낌을 내는 빈티지 렌즈를 많이 쓸 수밖에 없다.
홍경표_<마더> 때는 운이 좋았다. 렌즈 특성을 잘 알아야 하지 않나. <마더> 샤프니스가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정정훈_초점이 맞아야 하는 데는 다 맞아서 그렇다. <마더>를 보면서 나도 놀랐다. <아가씨> 촬영 전, 처음 호크 테스트를 한 뒤 형한테 전화해서 욕하고 싶었다. <마더> 때 좋아서 쓴 건데 테스트해보니 너무 안 좋은 거다. 형이 호크를 만든 것도 아닌데 원망을 많이 했다.
홍경표_<곡성> 때 새 렌즈는 조리개를 2.0에, 옛날 렌즈는 2.8에 맞춰 찍었다. 그렇게 찍으려면 빛이 엄청 좋아야 한다. 샤프니스가 생각보다 차이가 크게 나고, 컬러도 느낌이 달랐다. 너무 이상해서 되도록 인물이 아닌 공간만 찍으려고 했다.
정정훈_그동안 조리개를 2.8을 넘긴 적이 없었다. 이번에 쓴 호크 74 빈티지 렌즈는 조리개를 4로 조여야 진가를 발휘하더라.
홍경표_포커스 아웃이 너무 뭉개지면 재미가 없다(애너모픽렌즈는 보통 렌즈보다 심도가 얕기 때문이다.-편집자).
정정훈_조리개 수치가 최소한 2.8과 3/4 이상은 돼야 렌즈가 성능을 발휘한다. 그만큼 광량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애를 쓰는 건데, 한국에서는 여러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광량을 그렇게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세트 촬영에서 광량을 많이 확보하려면 조명을 세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정해진 회차를 정확하게 맞춰 진행하다보면 조명 세팅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편집자). 그런 사실을 감안하면 <곡성>은 더 힘들었을 거다. 이야기 성격상 전부 밖에서 돌아다니고 다 눅눅하고, 밤이지만 축축하고 하늘도 어느 정도 보여야 되더라. “어휴, 고생 많이 했겠다” 싶더라. 그게 시간적인 한계가 있다. <곡성>의 룩은 절대 조명으로 구현할 수 없는 거다.
홍경표_해가 쨍쨍해서 촬영을 시작해도 중간에 구름이 끼면 안 찍을 수가 없는데 톤이 바뀐다. 그래서 일단 찍고 해 나오면 다시 찍고, 그런 식으로 계속 찍는다. 흐린 날에 걸리면 흐린 날에 찍은 걸로 톤 맞추려고. 가을 날씨는 흐린 날보다 맑은 날이 많다. 약간만 흐리면 비 신 찍고, 비오는 날도 비 신 찍었다. 일하는 데 무지 힘들다. 비오는 날 비 신 찍는 게.
정정훈_현장에서 비와서 촬영을 못하면 감독님들이 ‘지금 비 신 찍자’고 하시는데 그게 톤 맞추는 것 때문에 매우 힘들다.
홍경표_비 질질 오는데 세팅, 렌즈 바꾸고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리는 곡성 근천에 위치한 펜션에 묵으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부터 체크했다. 날 흐리면 비 신 준비해서 찍다가 날씨 개면 다른 거 찍으려고.
정정훈_제목대로 간다고. ‘곡성’이니까. (웃음) 우리는 이번에 ‘아가씨’니까 감독님이 소녀처럼 너무 디테일해지셨다. (웃음)
홍경표_비 신 찍으면서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화면은 좋더라. 실제로 안개까지 끼고 비오는 날 그대로 찍으니까.
정정훈_<아가씨>에도 호수 장면이 하나 있다. 하정우가 김민희와 김태리를 나룻배에 태운 뒤 료칸으로 가는 신인데 안개가 필요했다. 호수에서 찍는데 “언제 정도면 안개를 찍을 수 있냐”고 묻기에 안개가 어설프게 있으면 못 찍으니 안개 걷히면 찍자고, 감독님은 10시쯤 나오시라고 전했다. 6시쯤 “지금 호수에 안개가 죽인다. 곧 사라진다”는 연락을 받았다. 7시에 나갔는데 안개가 10시까지 안사라지더라. “지금 나오라 하면 늦을 텐데. 감독님 없이는 안 되고, 배우들은 분장하고 있고. 이걸 어떡하지” 싶더라. 결국 특수효과팀이 안개를 만들어내고 바람이 없어서 찍긴 했는데 촬영하는 입장에서는 예쁜 안개를 지켜보는 게 아주 죽을 노릇이었다.
홍경표_로케이션 촬영은 항상 운이다. 날씨가 도와줘야 한다.
정정훈_혼자 기다릴 수 없고 스탭 전부 끌고 올라가야 하니까. 제 날씨에 맞게 찍는 게 진행상으로는 비효율적일지는 몰라도 결과물은 좋다.
홍경표_우리도 구니무라 준이 도로에서 사고로 죽는 장면이 있었는데, 무조건 비가 와야 했다. 해가 있을 때도 오후에는 무조건 비 뿌려서 찍으려고 작정했다. 해 떨어지는 장면을 찍기 제일 좋을 때가 오후 4시부터 오후 6시 사이다. 찍다보니 해는 떨어지고 있었고, 감독이 산 밑에 위치한 모니터 앞에서 움직일 수 없으니 내가 산꼭대기를 왔다 갔다 하면서 해 떨어지는 장면을 찍었다. 해가 금방 넘어가고, 자연이 순간순간 변하니까.
정정훈_같은 시기에만 개봉 안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웃음) 홍 감독님 때문에 손해를 많이 봤다. 영화제에서 상 한번 타려고 하면 그 시기에 홍 감독님 작품이 꼭 개봉을 했다. 그해 촬영상이랑 촬영상은 전부 홍 감독님이 싹쓸이해갔다. (일동 웃음)
홍경표_<아가씨>는 정 감독의 전작에 비해 카메라 이동이 많고, 정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정훈_옛날에는 촬영감독으로서 색깔을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를 이동시켰다면, 요즘에는 배우들의 연기 흐름을 안 끊으려고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찍다보면 숙소에 들어와서 ‘뭘 빼먹은 게 아닐까? 내가 맞게 찍고 있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박 감독님이나 나나 스타일이 달라졌다기보다 옛날보다 차분해졌고, 훨씬 더 디테일해졌다. 서로 말수도 줄었다.
홍경표_역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영화가 탄생한 이유가 있다. 웰메이드영화의 기준. (웃음)
정정훈_박 감독님이 저보고 “자기와 나는 이번에 미술, 의상, 조명에 업혀가는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다들 밸런스를 잘 지켜주니까. 걱정스러운 게 없어서 더 불안했다.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아 한국에서 더이상 일이 안 들어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됐다. (웃음)
홍경표_‘한국에서 두번 다시 이렇게 무데뽀로 찍지 못할 거야’라는 마음으로 찍었다.
정정훈_또 한번 그렇게 하실 것 같은데.
홍경표_이런 시나리오가 잘 안 들어온다. 촬영감독이 욕심 생기는 시나리오.
정정훈_왜 영화 보고 나면 시나리오가 궁금한 영화가 있지 않나. <곡성>이 그럴 것 같다. 영화를 본 뒤 ‘도대체 처음 받은 시나리오는 뭐였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홍경표_영화 들어가면 불안 증세가 생기는데, 나홍진 감독도 비슷하더라.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까. 드라마만 찍을 땐 감이 안오는 거다. 인서트를 찍으면 안심이 된다. “어떻게 하면 홍진이가 ‘이거 <곡성> 맞습니다’라고 말을 할까” 하는 생각만 했다. 풍경이라고 해서 풍경 좋은, 어디 멀리 가서 찍는 게 아니라 항상 곡성에서 찍어야 했다.
정정훈_또 하는 얘기지만, 그래서 제목이 거짓말을 못한다.
홍경표_외지인 집을 찍을 때도 전체 집합 시간보다 일찍 가서 먼저 찍고 기다려서 본 촬영 들어가고. <해무> <곡성> 연달아 힘들게 작업했다. <곡성> 마지막 장면 찍을 때 PD가 와서 여자 아이스하키 내용의 <국가대표2> 이야기를 했고, 고민 없이 하겠다고 한 것도 전작이 너무 힘들어서다. (웃음)
정정훈_어떤 사람들은 홍 감독님이 <곡성> 다음 작품으로 <국가대표2>를 선택한 것을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0% 이해된다. 정신적인 압박감 때문에 그다음 작품은 휴가처럼 즐기든, 밝든 뭐든 일단은 다른 느낌의 영화로 가는 거다.
홍경표_물론 <국가대표2>는 그 자체로 집중했지만, 특수효과, 특수분장, 비 신 이런 외부 요소가 별로 없고 현장 분위기도 밝았다.
정정훈_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극은 처음이다. 그만큼 기대하는 것도 많았다.
홍경표_귀족, 백작이 나오는 한국영화가 거의 없지 않나. <곡성>이나 <아가씨>나 둘 다 훌륭한 작품이니까 잘됐으면 좋겠고 이번 계기로 좋은 작가, 좋은 영화에 투자가 더 잘되었으면 좋겠다. 기획영화, 독립영화, 웰메이드영화 등 다양한 영화가 산업에 많이 나와야 한다.
2부. 홍경표와 정정훈 촬영감독의 오랜 인연
<씨네21>_두분이 처음 만난 건 언제인가.
홍경표_LA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처음 만났다. 정훈이가 촬영감독으로 입봉한 <유리>(감독 양윤호, 1996)의 원작 소설인 <죽음의 한 연구>(작가 박상륭)를 되게 좋아해서 미국 갈 때 챙겨갔다. 불교적인 내용인 데다가 대사가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인 이 어려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는 사람이 있어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하고 궁금해했다. 확인해보니 양윤호 감독이 연출하고, 정정훈이 촬영을 했더라.
정정훈_코닥 워크숍이란 게 있었는데 그때 만나서 맨날 놀았다.
홍경표_당시 <쎄븐>(감독 데이비드 핀처, 1995)을 보고 충격받아 현장에서 뭔가 새로운 걸 해보려고 뛰어다닐 때다. 완전 초창기다.
정정훈_<유리>를 끝낸 뒤 형님한테 말 안 하고 군대 갔다. 논산훈련소에서 어머니한테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의 첫마디가 “홍경표가 누구야? 집에 너 있냐고 연락 와서 ‘군대 갔다’고 했더니 ‘걔 군대가면 안 된다’”고 했다는 거다. (웃음) 둘이 죽이 아주 잘 맞았다. 그러고 군대 제대하고 못 보다가….
홍경표_너 제대하고 나서 <찍히면 죽는다>(2000) 찍었잖아.
정정훈_그사이에 기억 못하는 거 있다. 항의하고 싶다. 홍 감독님이 당시에 단편영화를 찍다가 <하우등>(감독 김시언, 1998)이라는 영화를 찍게 돼 나한테 단편영화를 대신 마무리해달라고 한 거다.
홍경표_기억이 안 난다.
정정훈_“다 해놨으니 너만 가면 돼”라고 해서 갔더니 촬영부가 없고 촬영감독인 나 혼자뿐이었다.
홍경표_나도 그때 혼자 찍었다.
정정훈_그 얘기를 안 해주셨다. 다 있다고, 그냥 가면 된다고 해서 갔는데, 아무것도 없더라. (형이) 50만원 정도 받고 찍어주라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강촌에 간 거다. 스탭들을 처음 만난 날, 식사하라고 해서 식당에 갔는데 일인분만 있더라. 자기들은 먹었다고 했다. 그날 비가 왔는데 보니까 식당 앞에서 빵이랑 우유를 먹고 있었다. 혼자 촬영을 하는데 말도 못한다. 차 신 찍을 때 스탭들이 프라이드 위에 있던 나를 청테이프로 묶었다. 거의 폭행당한 기분으로 일주일 있다가 왔다.
홍경표_그때 나도 묶어놓고 찍었다.
정정훈_또 한번은 강원도 마을에서 카메라 놓고 있었더니 사람들이 와서 “개발 결정됐냐”고 하더라. 그래서 “영화 찍는데 왜 그러세요?” 했더니 측량 나온 줄 알고 우리한테 개발 여부를 알려달라고 해서 황당했다(당시 카메라를 지탱하는 삼각대가 나무로 제작된 까닭에 측량 삼각대와 모양이 비슷했다고 한다.-편집자). (웃음)
홍경표_완전히 까먹었다.
정정훈_그 이후로 경표 형은 연락을 못할 정도로 점점 톱이 됐다.
홍경표_<올드보이>(2003)에서 오랜만에 만났지. 박찬욱 감독의 그 작품 촬영이 정정훈이더라.
정정훈_아니 <찍히면 죽는다> 현상소에서 저한테 한마디 하셨잖나. 그 얘기부터 하자.
홍경표_나는 <유리>가 좋았는데.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정정훈_경표 형이 “<유리>를 찍고 다음 작품으로 <찍히면 죽는다>를 찍냐”고 하시더라. 남의 속도 모르고, 난 돈이 필요했던 건데. 변명할 기회도 안 주고 현상소 2층에서 본인 할 말만 하고 가버리셨다. 그때 작품이 안 들어왔다. <유리>를 찍고 도제 시스템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보이콧을 심하게 당해서 장비도 못 빌렸다. <유리> 이후에 5년 동안 쉬는데,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당시 연수입이 70만원밖에 안 됐을 정도로 돈을 못 벌었다. 영화가 하고 싶으니까 들어오는 건 다 했는데, 형이 한 얘기가 생각나더라. ‘무조건 많이 찍고 욕먹지 말고, 작품을 기다리자’고 생각한 것도 그래서다. 그러다 만난 게 <올드보이>다.
홍경표_웬만하면 다른 영화 뒤풀이는 안 가는데 <올드보이>는 갔다. 진짜 인상적이었거든.
정정훈_형님을 되게 띄엄띄엄 봤다. 군대 가지 말라고 한 형, 너 그런 작업 하지 말라고 한 형, 그리고 <올드보이> 잘 찍었다고 한 형. (일동 폭소) 아직도 기억난다. 메가박스에서 다른 사람들도 다 있는데 큰소리로 나를 부르며 “고생했다”고 해주더라. 뿌듯했다.
홍경표_나도 기분 좋았다. 한국에 이런 영화가 있다니. 촬영 스타일이 너무 좋았다. 뭐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극찬을 했다.
정정훈_촬영감독들이 아무리 친해도 큰소리로 칭찬하지는 않는다. 그냥 ‘잘 봤어요’ 하는데,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칭찬하고 안아줘서 고마웠다. 그때 형은 친했던 형에서 유명한 형님이 돼 있었다. 작품도 잘 고르시고, 그때 이미 톱이 되어 있으셨으니.
<씨네21>_두분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작업 스타일이 여러모로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홍 감독님은 다양한 감독과 작업하며 기술적인 시도를 많이 하고, 정 감독님은 박 감독님 작품 중심으로 하되 다른 감독의 작품을 간간이 해왔다. 혹시 서로의 작업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게 있나.
정정훈_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경표 형이 촬영한 <유령>(1999). 한국에서 시도할 수 없었던 테크닉이 많았다. 홍 감독님이 하신 건 빠짐없이 봤다. 그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반칙왕>(2000)이다. 자극을 많이 받았다.
홍경표_정훈은 <올드보이> 이후로 스타일이 잡혀가더라. 김우형도, 정정훈도 친했던 애들이 잘되니까 기분이 좋다.
정정훈_내 촬영을 보고 제일 먼저 와서 평가해준 사람이 바로 형이다. <유리> 때는 도제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촬영감독으로 입봉해 협회 소속 선배 촬영감독님들에게 “네가 왜 이걸 찍었는데” 소리를 들어 한창 주눅 들기도 했다(당시 도제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촬영감독으로 입봉하면 협회로부터 보이콧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편집자).
<씨네21>_정정훈 촬영감독은 홍경표 촬영감독처럼 다양한 감독과 작업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정정훈_내가 못하는 면이다. 부러운 거다.
홍경표_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릴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열 작품 촬영할 때까지는 기회가 되면, 다양한 장르, 다양한 감독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한 감독과 두번 이상은 안 하겠다고. 그게 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살아남으려고 그랬을 거다. 촬영감독이 다양하게 찍어나가야지, 한 스타일로는 오래 못 버틴다. 촬영감독의 기본 룩이라는 게 있지 않나, 예를 들면 로버트 리처드슨. 자신이 가진 기본 룩에 다른 감독의 스타일을 합치는 식,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작품마다 다르게 찍고 내 톤을 없애자. 그런 욕망이 있었다.
정정훈_나는 오히려 반대다. <올드보이>가 잘되고 나서 많은 감독들에게 연락이 왔다. <올드보이> 이전에는 촬영감독으로서 존중도 받았지만, 무시도 많이 당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를 믿어준 감독이 박찬욱 감독이었다. 유일하게 내 말을 잘 알아듣는 사람을 만났는데, 다시 못 알아듣는 사람한테 가게 될까봐 두려웠다. 또 다른 데서 같이 하자는 연락이 오면 꼭 그때 박 감독님도 신작 함께하자는 연락이 왔다. 스케줄이 빌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또 연락이 안 오고. 자연스럽게 박찬욱 감독님 영화를 하게 된 거다. 여러 감독들과 하고 싶었는데, 그게 그렇게 안 됐다.
홍경표_지금은 또 안 그렇지.
정정훈_촬영만 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걸 신경 써야 할 때도 있었다. 나한테도 결과도 안 좋고, 엎어지기도 한 작품도 있었다. 그렇게 되니 ‘돈이야 많이 벌겠지만 이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으면서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씨네21>_박찬욱 감독과 작업하다가 이준익(<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평양성>(2011)), 류승완(<부당거래>(2010)), 박훈정(<신세계>) 감독과 작업해보니 어땠나.
정정훈_‘감독은 바뀌었는데 촬영은 그대로다, 박 감독 작품 같다’는 얘기를 듣기 싫으니까 때로는 이 앵글이 정답이다 싶은데 박 감독 영화 같다는 얘기 안 듣기 위해서 피해가기도 했다. 되돌아보면 굳이 그렇게 의식하지 않아도 됐는데, 그때는 이상하게도 그런 콤플렉스 같은 게 생기더라.
<씨네21>_홍경표 촬영감독은 합류했다가 도중에 엎어진 <파이어베이>(감독 랜들 프라이드, 2010)를 포함해 <설국열차> 같은 글로벌 프로젝트를 했고, 정정훈 촬영감독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글로벌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대화를 나눈 적은 없나.
홍경표_<설국열차>를 끝낸 뒤 곧바로 <해무>와 <곡성>을 진행하는 일정이었다. 작업이 연달아 계속돼 해외 프로젝트를 맡을 시기를 놓친 것도 있다. 나이 들어서 외국감독이랑 작업한다는 게 쉽지가 않다. 영화를 ‘자신 있게, 재미있게’ 하고 싶은데 스트레스만 받을 것 같았다. 막상 해외에 가면 그렇지 않겠지만 좋은 점이 많은 데도 안 좋은 생각만 하게 된다. ‘내가 과연 혼자 할 수 있을까, 외국생활 하는 게 힘들다’라는 생각만 했다.
정정훈_홍 감독님은 외국 진출을 오래전부터 준비하셨다. 아까 얘기한 현상소에서 만났을 때 “해외 프로듀서가 한국에 찾아왔다”며 “먼저 나가게 됐다”고 하더라. 준비하다가 결국 잘 안 됐지만, 제일 처음 글로벌 프로젝트를 하실 분이었다.
홍경표_<M>(감독 이명세, 2007) 끝나고 외국에서 바로 프로듀서가 찾아왔다. 피그만 사태(1961년 4월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미국이 훈련시킨 쿠바 망명자 1400명이 미군의 도움으로 쿠바 남부를 침입하다가 실패한 사건.-편집자)와 관련된 정치적인 영화였고 괜찮다 싶었는데, 배우가 엎어졌다. 그게 <파이어베이>였다.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던 까닭에 엎어졌을 때 충격을 많이 받았다. 그때 찍은 도미니카 해변 사진이 <M> 마지막 시퀀스에 합성됐다. 그때는 ‘나라도 어떻게 해서 후배들이 미국 진출 잘할 수 있게’ 하려고 했는데.
정정훈_형이 할리우드영화 계약서에 사인하는 날 만났었다. 내게 “좋은 조건에 간다. 잘 있어라”라고 말해주셨다. 그게 안 돼서 안타깝다. 내가 미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만 해도 현지 감독들은 나를 마지막 순위에 올려놓았다. 나중에 그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언어가 잘 통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걱정됐단다. 한국에선 항상 우선순위였는데, 미국에 갔더니 마지막 순위가 되니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나. 지금은 잘 버티고 있지만 처음에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돌아올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런데 한국에는 젊고 실력 좋은 촬영감독들이 많다. 이 일을 오랫동안 하고 싶은데 요즘은 “이제 당신 나이면 앞으로 해봐야 5년이야. 바짝 해야 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다음날 미국 가면 ‘넌 아직 어려’라는 얘기를 듣고. 그런 면에서 미국이 한국보다 나 같은 나이 많은 촬영감독에게 기회가 더 많이 열려 있다.
홍경표_정훈이는 할리우드에서 유일하게 자리잡은 촬영감독이다.
정정훈_너무 떠들고 갔다. 몇번이나 돌아오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한국에서 연락 와서 ‘미국에서 잘하고 있어 다행이야’라는 소리를 들으니까 어쩔 수 없다. (웃음) 나보다 나이 많은 촬영감독들도 많다. 20, 30대 초반의 감독들이 “야, 너, 뭐” 하면서 컴플레인 걸 때, 속으로 ‘이 자식 내가 너보다…’ 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좋다. 동료로서 대하니까. 거기선 아버지 나이의 포커스 풀로(촬영팀의 1조수, 영화의 포커스와 노출을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이다.-편집자)도 많다. 나 역시 그들을 동료로 대한다.
홍경표_미국에서는 나이가 아무 문제 안 된다.
<씨네21>_평소 두 사람은 종종 연락은 하는 편인가.
정정훈_우리쪽에 일하던 친구가 <국가대표2>에 들어가서 항상 홍 감독님 뭐하시는지 물어본다. 그 친구도 홍 감독님이 나 뭐하냐고 물어보신다더라. (웃음)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것 같다. 어렵게 지낼 때 경표 형이 세트장의 방에 오라고 해서 이것저것 조언해주신 게 기억난다. 우리가 못 만난 지 이렇게 오래된 줄 몰랐다.
홍경표_정훈이는 제일 친한 감독 중 하나다. 미국 갔다는 소리 듣고, <아가씨>도 나오고 하니까 보고 싶었다. 9월에 미국 대학교에서 강의해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스케줄이 애매하다. 가고 싶다. 아직 결정을 못했다.
정정훈_LA가 딱 하나 좋은 건 날이 건조해서 관절이 안 아프다는 것. 뼈가 마르면서 통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병원 갔는데 오십견이라고 하더라. 운동해야 한다.
홍경표_나도 저려서 한의원에서 침 맞아야 한다.
정정훈_미국에도 한의원이 있는데 그곳은 남의 통증을 전혀 신경 안 쓴다. 침을 맞다가 저려서 움직였는데 심한 통증이 왔다. 움직이면 또 그게 느껴질까봐 40분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식은땀을 흘린 뒤로는 안 간다. 촬영하는 사람들이 다 이렇다. 목디스크는 물론이고, 돋보기를 3개나 갖고 다닌다. 필름카메라 할 때는 눈 나빠지는 걸 못 느꼈는데, 디지털로 바뀌면서 눈이 급격히 나빠졌다.
홍경표_나도 <마더> 끝나면서 노안이 왔다.
정정훈_문자에 답을 못한다. 안 보여서. 그래서 전화를 한다.
홍경표_포커스가 확인이 안 된다. 안 들어온다.
정정훈_문자가 오면 캡처해서 확대해서 본다. 촬영하는 사람들은 근시, 원시, 난시가 다 있다. 처음에 알렉사 광학파인더 쓰다가 포기했다. 눈이 더 피곤해지고 안 보인다. 요즘은 미국에서 필름으로 많이 찍는다. 필름이 왜 없어지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얼마 전 16mm로 뮤직비디오를 찍었는데 잘 안 나올까봐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너무 편했다. 대충 해도 느낌이 살아 있고, 하이라이트가 날아가는 것도 없다. 이걸 왜 없앴지? 알렉사로 찍으면서 필름처럼 찍어달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면 필름으로 찍든가. 비용차이가 크게 나지만 말이다. <곡성>이나 <아가씨>는 필름으로 찍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
홍경표_<곡성>은 필름으로 찍을 생각이었다.
정정훈_<곡성>이나 <아가씨>는 필름으로 찍으면 되게 좋았을 영화다. <스토커>를 필름으로 찍을 때까지만 해도 잘 안 나올까봐 잠을 못 잤다. 나만 그런가 했는데 모두 그렇더라. 해외 유명한 촬영감독들의 조수했던 사람들을 만났는데, 필름으로 찍을 때 디지털 카메라에 집착하더라. 왜 그러냐고 했더니, 안 나올까봐 디지털로 최대한 비슷하게 맞춰놓고 찍는다는 거다. 필름으로 작업할 때는 그런 긴장감이 있다.
홍경표_<설국열차> 때 잠을 못 잤다. 현상소에서 ‘네거티브나 뭐가 괜찮다. 잘 나왔다’ 연락이 새벽에 이메일로 왔다. 그걸 확인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정정훈_국내 지방 촬영할 때, 매일 필름을 확인했다. 겉으론 다음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찍고 나서 속으론 ‘아, 안 나오면 어떡하지’ 걱정했다. 다른 촬영감독 만나서 이런 얘기를 해본 적이 없는데, 내가 걱정하는 걸 형님도 걱정을 하고 있다. 짠하다.
홍경표_요새 기술 스탭에 대한 인터뷰가 거의 없어졌다. 십년 전만 해도 되게 많았다.
정정훈_요즘 사진은 찍나.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홍 감독님이 직접 찍은 사진이 <마더> 메인 포스터가 되기도 했다.
홍경표_캐논 쓰다가, 새로운 세팅을 하고 싶어서 다 처분하고 뭘 살까 고민 중이다.
정정훈_나도 다 팔고, 주미룩스 렌즈가 장착된 라이카 Q를 샀다. 그걸 쓰는 촬영감독들이 꽤 있더라. 가벼운 카메라가 좋다. 렌즈를 바꾸는 게 또 스트레스더라. 아예 붙박이 렌즈로 샀다.
홍경표_헌팅 갔을 때도 와이드렌즈부터 중렌즈까지 다 가지고 있었다. 사진 작업을 꽤 많이 했었는데, 카메라가 지겨워졌다.
정정훈_어깨가 아프고 목디스크가 오는 것 같았다. 현장에서도 하는데 이렇게 해야 하나. 그래서 카메라가 작아지게 되더라. 라이카 Q ‘강추’한다.
홍경표_한번 보겠다.
<씨네21>_마지막으로 홍경표 촬영감독은 <국가대표2> 촬영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 정정훈 촬영감독은 미국에서 드라마를 찍었고, 새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얘기해줬다.
홍경표_작품이 안 들어온 게 처음이다. (웃음) 하나가 엎어졌다. “이제 ‘노땅’돼서 안 들어오나?” (웃음) 정말 오랜만에 쉬고 있고, 가끔 미팅한다.
정정훈_저건 일이 없어서 불안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내가 만난 형 얼굴 중에 제일 좋다. 나는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를 함께 작업했던 알폰소 고메즈 레존 감독이 연출하고, 파라마운트가 제작하는 미국 드라마 <시티즌> 파일럿 촬영을 최근 끝냈다. 현재 공포영화 <마마>(2012)를 연출했던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과 <잇>(IT)을 촬영하기로 했다. 6월27일부터 9월 초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올 로케이션 촬영한다. 나중에 촬영감독들 뒷담화 편도 하자. ‘뭐 그런 촬영감독이 있었어?’ 이런 걸로. (웃음)
홍경표_그래, 김우형, 이모개 같은 애들 다 불러보자. (웃음)
한달 전, 두 사람을 섭외하기 전에 기대보다는 걱정이 많았다. 상종도 안 하는 사이면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머릿속이 복잡했다. 걱정은 기우였다. 두 사람은 오히려 “독자들이 우리 만남을 별로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3시간을 훌쩍 넘긴 대담은 오랜만에 만난 사이인 만큼 많은 말들이 오갔다. 모두 지면에 옮기지 못한 게 아쉽다. 한달 만에 두 사람에게 대담이 실리게 됐다는 소식을 알리자 역시나 두 사람다운 반응이 돌아왔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실리게 되어 안심이 된 건지, 아니면 늦게 실려 화가 났는지 모를) 무반응(물론 카메라, 렌즈 정보는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정정훈 촬영감독은 국제전화를 걸어와 오랜만에 1시간 가까이 수다를 떨었고, 어려운 촬영 정보가 많아 바쁜 와중에도 기사 감수를 해주었다. 9월, 좋은 소식을 미리 축하한다.
홍경표 촬영감독이 꼽은 정정훈 촬영감독의 촬영 베스트4
1. <올드보이> 감독 박찬욱 / 2003
“정정훈 스타일의 출발점이자 매우 정교한 촬영이 인상적이었다.”
2. <스토커> 감독 박찬욱 / 2012
“이미지 하나만 봐도 박찬욱 감독과 정정훈 촬영감독의 호흡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 <부당거래> 감독 류승완 / 2010 <신세계> 감독 박훈정 / 2012
“촬영은 시나리오에 이질감을 느끼게 하면 안 된다. 테크닉이 없고, 촬영이 거칠어도 관객이 영화에 집중하면 그게 최고다. <부당거래>와 <신세계>는 누가 찍었는지 모를 정도로 좋더라. 누가 했는지 엔딩크레딧을 보니 정정훈이었다.”
홍경표 촬영감독이 최근 인상적으로 본 촬영 베스트3
1.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 촬영감독 에마누엘 루베스키 / 2015
2.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감독 드니 빌뇌브 /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 / 2015
3. <유스>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 / 촬영감독 루카 비가지 / 2015
정정훈 촬영감독이 꼽은 홍경표 촬영감독의 촬영 베스트4
1. <반칙왕> 감독 김지운 / 2000
“촬영감독으로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영화는 꽝인데 촬영은 잘했다’다. <반칙왕>은 드라마 안에굉장히 다양한 촬영 테크닉이 등장한다. 홍 감독님이 찍은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 2004) 이상으로 많은 테크닉이 있어 정말 좋았다.”
2. <설국열차> 감독 봉준호 / 2013
“이 영화를 보고 형한테 한 얘기가 ‘왜 미국에 안 계세요?’였다. 열차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인물이 많은 이야기를 촬영하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닌데, 그 안에서 홍경표 스타일로 풀고 나가더라. 당시 HD 촬영이 대세였는데, 필름으로 찍으셨다. 미래 이야기지만, 감성은 아날로그였으니 필름으로 찍는 게 맞다.”
3. <유령> 감독 민병천 / 1999
“앞에서 촬영이 드라마와 잘 어울려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이 영화는 예외적으로 촬영밖에 안 보이더라. (웃음) 한국영화의 촬영에서 기술적으로 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잠수함 영화를 찍어도 이 영화처럼 못 찍는다.”
4. <마더> 감독 봉준호 / 2009
“담백하다. 이전의 홍경표의 촬영과 스타일이 다르다. 현란한 핸드헬드가 없어 평온해 보이지만 애너모픽렌즈 하나로 긴장감을 조성했다. 영화의 마지막, 버스 시퀀스를 보면 소름이 끼쳤고, 모두가 좋아하는 갈대밭 신은 ‘이렇게 이야기를 풀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좋았다.”
정정훈 촬영감독이 최근 인상적으로 본 촬영 베스트3
1.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감독 드니 빌뇌브 /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 / 2015
2. <더 랍스터>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 촬영감독 티미오스 바카타키스 / 2015
3. <언더 더 스킨> 감독 조너선 글레이저 / 촬영감독 대니얼 랜딘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