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커버스타] 만인의 첫사랑 - <나의 소녀시대> 왕대륙 인터뷰
2016-06-14
글 : 이화정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누구는 에릭이, 또 누구는 양조위가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구는 이병헌을, 또 누구는 마쓰모토 준을 말했다. 유덕화나 주성치를 봤다고 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언급한 모든 사람이 서로 닮지 않았는데, 희한하게도 91년생인 ‘요즘’ 배우 왕대륙은 그보다 앞선 90년대 청춘 스타들 모두의 요소를 장착한 것처럼 보인다. 이른바 ‘괴물’의 탄생이라고 불러도 될까. 짙은 눈썹, 치열이 드러나도록 환하게 웃는 미소를 중심으로, 왕대륙의 마스크를 둘러싼 해석은 팽창되고 확산되어갔다. 어느 쪽으로 보아도 다 정답에 가깝거나, 정답에서 벗어나는 설명이다. 싸움은 전교 1등, <천장지구>(1990)의 류덕화마냥 폼 잡고 오토바이를 타고 여자 앞에 딱 멈춰서는, 거들먹거리는 스타일이 몸에 밴 소년 쉬타이위(왕대륙). 다른 남자를 좋아하는 린전신(송운화)을 두고, 속마음을 말하지 못해 괴롭힘으로 대신하는, 사랑에는 유독 서툰 남자. 물풍선을 던져놓고 백날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만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속으로 말해봤자, 일껏 꾸미고 나온 여자 앞에서는 “이모 같다”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숙맥 같은 남자가 그다. 그럼에도 달려오는 차를 맨몸으로 막아주는 터프함에서, 린전신의 집 앞 창문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던 애틋한 모습에서, 교복 속에 늘 입던 까만 민소매 셔츠 차림으로 린전신을 바라보던 강렬한 모습에서 이미 그가 가진 보석 같은 순정은 조준되고, 발사됐다. <꽃보다 남자>의 따오밍스의 막무가내 오버와 <러브레터>의 후지이 이츠키의 여린 감성을 동시에 가진, 첫사랑 순정남의 ‘신대륙’. 우리가 알고 있는, 각자 기억하고 있는 첫사랑의 만 가지 형상을 하고, 마음속 지진을 일으키며 나타난 남자, 스물다섯살의 청년 왕대륙을 만났다. 왕대륙의 미소와 눈빛, 화법에 속아 잠깐, 린전신이 된 기분이 들었다.

-어제 극장에서 무대인사를 진행했는데, 경호원이나 스탭들이 힘들어한 건 알았을 거다. (웃음) 객석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관객을 직접 대면했다. 안전상 위험도 불사한 게 아닌가.

=나는 사람이 많으면 더 흥분하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그냥 무대 위에 가만히 서서 이야기하면 따분하고 재미없을 것 같아서 그런 행동을 했다. 어떻게 하면 팬들이 더 좋아할지 아는데 왜 그걸 하지 않겠나. 이번에 많은 한국 팬들을 만나게 돼서 너무 기쁘고 앞으로도 <나의 소녀시대>를 더 많이 사랑해줘서 흥행이 더 잘됐으면 좋겠다.

-동영상 인터뷰에서 신라면을 좋아한다고 언급해서, 왕대륙 내한 소식과 함께 신라면이 화제가 됐다. 신라면 제작사쪽에서 연락이 올 만한 이슈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웃음) 내 이야기를 듣고 관객이 신라면 선물을 가져다줘서 너무 기쁘다. 혹시 신라면 광고모델이 있나? 신라면 너무 맛있다.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테고 잘 알려져 있으니 굳이 광고모델을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내게 시켜준다면…. (웃음)

-<나의 소녀시대>는 한국에서 개봉한 대만영화 중 최고 스코어를 기록했다. 대만영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큰 역할을 해낸 기록적인 작품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는데, 그때 이미 한국 관객의 열기가 뜨겁다는 걸 느꼈다.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개봉해서 관객과 만남을 가졌지만 이 정도 반응은 아니었다. 싱가포르에서는 그냥 웃고 좋아한 정도였는데 한국에선 정말 감동받아서 눈물 흘리는 분도 있고, 반응이 좀 달랐다. 한국 관객이 대만에서 제작되는 첫사랑 멜로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얘기한 대만 청춘물이 한국에서 꾸준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정서를 어떻게 보나. 특히 지난 시절의 사랑을 그리는 복고적인 향수가 가득하다. 지금의 청춘을 살아가는 청년의 입장에서 볼 때, 과거 대만이 가진 매력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금 대만의 젊은이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 있다. 나는 그렇게까지 스마트폰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다. (웃음) 모두가 스마트폰만 보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만 좇다보니 정작 현실의 청춘이 누릴 재미는 잃어버리는 것 같다. 모두 사진 찍기에 급급해 정작 눈으로 직접 바라보지는 못한다. <나의 소녀시대>에서 내가 연기한 1990년대를 보면,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다. 그러다보니 직접 체험하고 느끼는 게 많았고 지금은 잃어버린 어떤 가치를 지닌 시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90년대 청춘 스타로 각광받았던 유덕화가 이 영화의 제작자로 참여했다. 거의 아버지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런 정서를 연기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맞다. 그런데도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두 번째 봤을 때 모두 다 울었다. 디테일한 요소들은 과거의 일이지만 사랑은 시대가 달라진다고 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그런 첫사랑을 경험했었다. 보편적인 정서라 연기하는 데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다.

-오디션 당시, 린전신을 놀리는 장면이 너무 능숙해서 캐스팅됐다고 들었다. 바로 그 오디션이 왕대륙이라는 배우를 발견하게 해준 기회가 됐다.

=사실 처음에는 쉬타이위 역할이 아니라 린전신이 좋아하는 오우양(이옥새) 역할이 주어졌다. 그런데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감독님이 내 코믹한 성격을 보고 쉬타이위 역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하시더라. 그렇게 주연이 되었다.

-지금 팬들이 열광하는 쉬타이위의 매력적인 모습이 그것 아닌가. 자신만만하고 장난기 많고 코믹한 남자. 그만큼 왕대륙 본인의 모습과 닮았다는 이야기다.

=대단히 멋있는 남자는 아니다. 나도 평범한 사람이다. 맨날 공차러 다니고 연애도 많이 하고. (웃음) 워낙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다. 쉬타이위는 린전신을 못살게 굴지만 처음부터 린전신을 좋아했다. 처음엔 본인도 자기 마음을 몰라 잘해주지 않다가 나중에 진심으로 대하는 진지한 남자가 되어간다. 매 장면 70%는 나 자신의 모습에 가깝고, 나머지는 캐릭터를 어떻게 할지 다 같이 고민해 만들어갔다.

-엉뚱하고 코믹스러운 모습은 주성치 영화의 캐릭터가 연상되더라. 멜로영화의 남자 캐릭터가 보여주는 ‘엉뚱함’의 정도로 볼 때, 수위가 가장 세다. (웃음)

=린전신 아버지 역할을 하신 허걸휘 배우님이 우리 영화의 연기지도를 맡아주셨다. 내겐 그분이 연기 사부님이시다. 그분의 도움이 캐릭터를 잡고 연기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 프랭키 챈 감독님은 멜로 연출을 워낙 잘하는 분이라 영화의 감성은 감독님이 하셨고, 영화의 코믹한 부분은 사부님이 모두 도맡아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믹한 부분에선 사부와 내가 막 주거니 받거니 하며 아이디어를 내고 연기를 하면서 만들어갔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만들어서, 감독님이 그중 선택할 수 있게끔 했다. 모든 장면을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

-린전신에게 결혼하고 싶다고 꿈꿀 정도로 좋아했던 유덕화가 있듯이, 당신에게도 그런 대상이 있었을 것 같다.

=나는 원빈이 참 좋다. (웃음) <아저씨>(2010)를 보고 완전히 반했다. (원빈이 드라마 <꼭지>에서 아주 절절한 첫사랑 연기를 했는데, 쉬타이위와도 비슷했다고 하자) 정말인가! 원빈을 실제로 보니까 어떻던가. (원빈만큼 당시도 멋있다고 했더니 그건 믿지 못하겠다는 듯 특유의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 보인다) 만약 <아저씨>를 만든 감독이나 그 팀이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일이 있어서 나에게도 같이 하자고 한다면 개런티 없이 꼭 참여하고 싶다. 영화에 출연한 유덕화도 물론 좋아하는 배우다. 엄청나게 멋지지 않나. 그런데 영화에서 유덕화 배우가 모티브가 돼서 그렇지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주성치다. 나의 롤모델이고 그렇게 되고 싶다. 촬영할 때 유덕화가 온다고 해서 매우 기뻤는데, 만약 주성치가 온다고 했다면 좋아서 미쳐 막 뛰어다녔을 것 같다. 그 차이다. (웃음)

-소위 말해 ‘길거리 캐스팅’으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공부를 하도 안 해 아버지가 미국의 사관학교로 유학 보냈고, 2008년 유학 중에 잠깐 대만에 들어왔다가 광고모델로 캐스팅이 되고 그길로 활동을 하게 됐다.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광고 한편 찍어보지 않겠냐, 우리 사무실이 저 위에 있는데 가서 콜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그 말만 듣고 바보스럽게 넙죽 따라갔다. 생각해보면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렇지 지금 괜히 내 이야기를 듣고 많은 소녀들이 무작정 따라가서 위험한 콜라를 마시는 건 아닐까 싶어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그냥 그땐 너무 어렸고 남자다보니 무서운 게 없었던 것 같다.

-CF 모델로 데뷔해 드라마에 몇 작품 출연했지만 이렇다 할 흥행 작품은 없었다. 근 8년을 무명으로 지냈다. 초등학생 때부터 동갑내기 친구인 가진동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등에 출연하며 대만의 톱스타 반열에 오르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나름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항상 노력을 해야 하고 꿈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나 역시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무명 시절을 보냈다. 이 일은 70%는 노력으로 이루어지고 30%는 운이 따라서 하는 일 같다. 나도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8년을 꾸준히 활동했다. 그때나 알려진 지금이나 마음가짐은 똑같다. 하루아침에 작품 하나로 대스타가 됐다라는 시각도 있지만, 그렇게 매일매일의 노력들이 쌓여서 사랑받고 있는 거라고 믿고 있다.

-갑작스런 인기만큼이나 질타도 적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뒤풀이에서 감독 프랭키 챈과 키스한 것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관심의 대상이 되니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후에는 어디를 가나 주목을 받는다. 그렇게 너무 잘되다보니 그걸 시기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영화를 겨냥해서 부정적인 뉴스도 나오고 그렇다. 그냥 열심히 하는 것이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매일 해야 할 촬영이 있고 앞으로도 쭉 연기에 매진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시선이나 구설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주목받는 게 나는 괜찮다. (웃음) 클럽에 가서 놀고, 이런 것도 다한다. 아무렇지도 않다.

-왕대륙이라는 이름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토록 특이한 이름이 배우 생활에서 얻은 가명이 아니라 본인 이름이라 더 놀랍다. 사업차 중국을 왕래하던 아버지가, 대륙의 기운을 받으라고 왕대륙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들었다. 이름 때문에 겪은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결국 이렇게 대륙을 넘고 국경을 넘는 스타가 됐으니 선견지명적인 이름이긴 하다.

=이름 때문에 특별히 나빴던 적은 없었다. 내가 워낙 잘 웃어서 다들 첫인상이 좋다고 하는 데다 잘생겼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주는 편이다. (웃음) 그런데 이름이 특이하고 외우기 쉽다보니 한번 만난 사람도 이름을 많이 기억해준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상대방은 나를 기억하는데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난감한 적이 많았다. 이름 때문에 낭패를 본 거라면 그런 정도다.

-대만 내에서도 <나의 소녀시대>의 인기가 상당했다. 대만영화의 흥행 역사를 새로 쓴 작품인데, 이 작품 이후 배우로서의 입지도 달라졌을 것 같다. 뭣보다 작품 선택에서 영향력이 생겼을 텐데.

=예전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감독님이 뭘 하라고 하면 그냥 해야 하는 거고 내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었다. 지금은 말 그대로 ‘떴으니까’ 하고 싶은 걸 많이 할 수 있다. 현재 성룡과 함께하는 <철도비호>(1940년대 초반 중국 철도노동자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민중을 돕는 코믹 액션물)에 참여하고, 장이머우 감독이 감제로 참여한 <28세 미성년>(장이머우 감독의 딸 장말이 인기 웹소설을 각색해 연출하는 작품. 혼란한 삶을 살고 있는 28살 여성이 마법 초콜릿을 먹고 17살의 기억을 갖게 되는 판타지물)에 특별출연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출연 분량이 적어서 거의 카메오다. 아직 나는 젊으니까, 앞으로 더 많은 감독님들과 함께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워낙 다양한 영화를 좋아해 특별히 꼭 이 장르의 영화를 해야겠다 하는 작품들은 없다. 애니메이션도 좋아하고, 한국영화는 특히 좋아한다.

-지금은 중국에서 제작하는 영화 <교주전>을 촬영 중이기도 하다.

=촬영 중에 올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해준 스탭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교주전>은 당칠 공자의 웹소설 <화서인>을 각색한 무협 판타지물인데, 극중에서 소매치기 역으로 나온다. 엄청나게 영리한 사기꾼이자 하루 종일 여자만 꼬시는 남자기도 하다. 상대역은 장천애다. 나라를 위해 죽은 공주가 구출되어 다른 이름으로 모험을 하는 이야기로, 괴물도 등장하고 하늘도 날아다니고 동굴에도 들어가는 SF 장르다. 아직 촬영이 한달쯤 남아 있어서, 한국 일정이 끝나면 곧바로 촬영장으로 가야 한다.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 그때는 팬들과 더 많은 시간을 여유롭게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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