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 등교한 두 소녀가 함께 하루를 보내는 이야기 <사루비아의 맛>(2009), 아빠의 내연녀 집에 들이닥쳐 내연녀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소녀의 이야기 <손님>(2011), 엄마를 대신해 콩나물 사러 집을 나선 7살 소녀의 이야기 <콩나물>(2013). 윤가은 감독의 단편은 모두 아이들의 감정,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그린 영화였다. <손님>으로 클레르몽페랑국제단편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고, <콩나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수정곰상을 수상한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 역시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열한살 외톨이 선과 전학생 지아의 관계를 따라가는 <우리들>은 복잡미묘한 소녀들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올해의 빛나는 데뷔작 <우리들>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그 시절엔 친구들과 하루걸러 편지를 주고받았다. 어제 봤고 내일도 볼 텐데, 수업도 같이 듣고 도시락도 함께 먹을 텐데, 등교도 같이 하고 하교도 같이 할 텐데, 우리는 무슨 할 말이 그렇게나 많았을까. 지금은 관계에 애착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그 시절 내게도 꼭 붙어 지낸 단짝 친구가 있었다. 친구가 무슨 옷을 입고 올지 궁금했고, 다른 친구의 팔짱을 끼고 웃는 모습을 보면 질투가 났고, 나보다 발표를 잘하면 기분이 상했다. 학기가 끝날 때쯤엔 ‘우리 우정 변치 말자’고 낯간지럽게 손가락도 걸었지만 우리는 곧 각자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우정에 전전긍긍하던 시간은 곧 학업에 전전긍긍하는 시간으로 대체되었고, 어쩌다보니 지금은 연락 닿는 초등학교 친구가 한명도 없다(왠지 슬픈 결말).
<우리들>을 보고 있자니 나의 유년기가 재생되는 것 같았다. 따돌림에 대한 기억을 직접적으로 공유하지 않더라도, 오해와 질투와 거짓과 배신으로 물든 초등학교 4학년 소녀들의 여름 한때는 저마다의 유년기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모두 일렁이는 마음으로 그 시절을 통과했다. 4학년 3반의 외톨이 선(최수인)과 전학생 지아(설혜인)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첫날 친구가 된다.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보라(이서연)의 생일파티에 거짓으로 초대받아 우울한 선 앞에 지아는 구세주처럼 나타난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큰 지아와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선은 서로의 결핍을 보완해가며 우정을 나눈다. 하지만 두 친구의 행복한 시절은 지아가 영어학원에서 만난 보라와 친해지며 금이 간다. 2학기가 시작되면, 보라와 어울리게 된 지아가 선을 외면하고 지아에게 1등 자리를 빼앗긴 보라가 지아를 따돌리는 일이 벌어진다. 자기방어를 위한 거짓말과 비밀 폭로전은 선과 지아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몬다.
사랑과 비슷한 모습의 우정
<우리들>은 윤가은 감독이 “유년기에 경험한 격렬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우리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타인을 좋아하게 됐을 때, 그 관계가 틀어지면서 오는 감정의 상흔을 묘사하려는 시도”가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친구들이 선에게 가하는 언어폭력과 따돌림은 심각한 학교폭력이지만, <우리들>이 유심히 고찰하려는 것은 상처주고 상처받는 관계를 경험한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용기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여기서 아이들이란 여자아이들이다. 소녀들은 소년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다. 소녀들의 세계는 신비롭다. 신비로움이 꼭 아름답다는 뜻은 아니다.
“소녀들의 공격은 은밀하고 관계적이며, 때로는 상실이나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그 원인이 된다.” 윤가은 감독이 <우리들>을 작업하면서 다시금 펼쳐봤다는 레이첼 시먼스의 저서 <소녀들의 심리학>에 나오는 말이다. 10대 초반의 여자아이들을 대상으로 따돌림 문제를 연구한 레이첼 시먼스는 <소녀들의 심리학>에서 소녀들의 은밀한 공격 문화를 이렇게 분석한다. “소녀들의 공격은 흔히 친구들로 구성된 긴밀한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소녀들의 공격은 알아내기 어렵고, 희생자가 입는 상처도 훨씬 깊다. 우정은 무기가 되고, 화를 내는 것은 침묵하는 것에 비하면 그 고통이 훨씬 약하다. 등을 돌리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몸짓은 없다.”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말들로 가득한 이 책을 조금 더 인용해보자. “소녀들의 공격을 분석하려면 이들이 형성하는 관계의 강렬함을 알아야 한다. 소녀들은 남자를 사랑하기 전에 서로를 사랑하고, 그것도 엄청난 열정으로 사랑한다.”
유년기의 우정은 사랑과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 선과 지아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선을 위해 자발적으로 색연필을 훔치는 지아, 상심한 지아를 위해 손톱에 봉숭아꽃물을 들여주는 선, 지아가 좋아하는 오이김밥을 싸달라고 엄마에게 조르는 선의 행동은 희생하고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 절로 우러난 결과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뭘까. 자신을 외면하는 지아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그리워하는 선의 마음이 사랑의 시련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윤가은 감독 역시 “내가 멜로를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소녀들이 유년 시절 맺는 친구 관계는 일종의 유사 연인 관계라 할 수 있다. 그 관계를 통해 그 사람을 깊이 받아들였다가 떠나보내는 감정 연습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사람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가, 다시 미워했다가, 시련의 감정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내가 쓰고 있더라.”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마음
강렬했던 관계가 깨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아직 어린 소녀들은 고립에 대한 두려움으로,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친구를 따돌리기도 한다. 관계에 대한 애착이 빚은 결과다. 선과 지아의 사회적, 경제적 계급 차이도 둘의 관계를 어긋나게 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너도 핸드폰 좀 사면 안 돼? 솔직히 요새 핸드폰 없는 애들이 어딨냐.” 지아가 꼭 선을 무시하려고 뱉은 말은 아니었을지라도, 둘 사이엔 어쩔 수 없는 계급차가 존재한다. “단둘이 관계 맺을 땐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지만 집단 안에 들어갔을 땐 각자의 백그라운드 차이가 극명해진다. 그런 데서 오는 (선과 지아의) 멀어짐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윤가은 감독의 설명이다.
“우리끼리 노는데 왜 자꾸 끼어들려 그래?” “지아한테서 빌려간 색연필 좀 돌려줄래?” “니가 필요한 건 니가 사,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렇지.” “근데 쟤한테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 선을 향한 아이들의 말은 날카롭고 더없이 직설적이다. 여자아이들은 친구들을 따돌릴 때 곧잘 말로써 생채기를 낸다. 보이지 않는 말, 실체 없는 말, 손에 잡히지 않는 말로써 공격한다. 그로 인한 상처는 직접적 폭력보다 더 오랜 아픔을 남기기도 한다. 소녀들의 세계는 액션보다 말이 중심인 세계이고, 영화는 그 세계를 담기 위해 화면 밖 사운드를 통해 아이들의 말을 끊임없이 실어 나른다. 영화의 첫 장면, 피구 시합 편짜기 가위바위보 장면에서 선의 표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말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윤가은 감독의 전작들, 단편 <사루비아의 맛> <손님> <콩나물> 역시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야기였다. 그때도 지금도, 동심의 세계를 그리는 윤가은 감독의 시선은 정확하고 따뜻하다. 윤가은 감독은 어른의 관점으로 아이들의 세계를 함부로 상상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놀라운 점도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 따돌림의 가해자가 누구이고 피해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지목해서 상황을 단순화하거나, 극적 사건을 통해 아이들의 세계를 자극적으로 재구성하지 않는다. 아름다웠고 또 아팠던 우리의 유년기를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우리들>은 큰 울림을 안겨준다. “동심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영화 마지막 피구 장면에서 선이가 나름 용기내서 ‘지아가 금 밟지 않았다’고 얘기해주지 않나. 그런 것이 동심이라면 동심 아닐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순결하고 아름다운 동심이 아니라,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마음. 순연의 마음. 내가 다시 사랑하고 싶은 천연의 마음. 나도 그런 동심을 그리고 싶다.” <우리들>에 윤가은 감독의 그 바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