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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끝까지 같은 성격으로 가는 캐릭터가 없다 - <사냥> 이우철 감독
2016-06-30
글 : 이화정
사진 : 백종헌

“심의 문제로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우철 감독을 만난 날은, 마침 <사냥>이 ‘육체폭력, 살상•상해 장면 등에서 자극적이며 거칠다’는 이유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후 재심의를 넣은 상태였다. ‘직접적 살해 장면만 살짝 덜어냈다’는 그는, 부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상징과 비판이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김한민 감독이 제작, 각색에 참여한 <사냥>은 우연히 발견된 금맥을 독차지하기 위해 산에 오른 채굴꾼 일당과 이를 목격한 사냥꾼 기성(안성기)의 16시간의 목숨을 건 추격전이다. 산에 온 마을 소녀 양순(한예리)을 지키려는 기성의 행동을 시발로, 수년 전 탄광 붕괴 사고 후 인적이 거의 끊긴 산속은 탐욕의 총성으로 가득 찬다. 산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극대화되는 인간의 이기심은, 관객을 산이 아닌 이곳을 거대한 사회로 치환하게 만들어준다. 영화를 연출한 이우철 감독에게 <사냥>의 총성이 뜻하는 의미에 대해 물었다.

-평범한 산에서 금맥이 발견된 게 비극의 출발이다. 독특한 소재와 설정이다.

=실제로 금맥이 산에서 그런 형태로 발견되는 일이 종종 있다. 영화 속 이미지도 실제 상황을 고증해서 만들었는데, 발견된 금맥을 보면 나무뿌리 밑에 금칠을 한 것처럼 보이더라. 그 밑에 어머어마한 양의 금이 숨어 있는 것이다. 산 임자, 즉 땅의 임자가 있게 마련이고, 그 임자가 개발하기가 힘들면 다른 사람이 채굴권을 사기도 한다. 그런 실제의 과정을 반영했다.

-우두머리인 동근(조진웅)을 비롯해 일확천금을 꿈꾸는 엽사 무리의 욕망은 원래 땅을 소유한 사람 혹은 땅에 대한 존중이 있는 사람들을 강제로 내몰기에 이른다. 지금의 재개발 이슈와도 겹치는 지점이다.

=산 아래 상황이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마을이 개발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편집된 장면 중에 무진관광 카지노 조감도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 힘없는 사람들을 재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쫓아내고 투기꾼들이 이익을 가져가는 그런 형국을, 금맥 채굴권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산이 영화의 러닝타임을 거의 지배하는 절대적 배경이 된다. 빠져나갈 수 없는 산, 그 구속력이 인물들의 ‘광기’를 키우는 촉매제 역할도 한다.

=이게 만약 도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인물들이 지금 내가 잘못하고 있구나라는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산속에서 한번 생각을 잘못하기 시작하면 잘못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엽사들의 자금을 담당하고 있는 자본가의 수하인 맹 비서(권율)가 변화하는 지점을 점검해봤다. 산속이라면 가능할 것 같더라. 산은 상당히 열려 있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갇혀 있는 공간이다. 서정적이지만 사람을 압박하는 공포스런 기운이 존재한다. 게다가 16시간 안에 벌어지는 일이라면 판단하는 데 성급해질 수밖에 없다.

-애초 악인을 상정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닥쳤을 때 악의가 드러나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그린다.

=이 영화에서는 작은 배역 하나도 온전히 끝까지 같은 성격으로 가는 캐릭터가 없다. 크게 악의가 있거나 살인자를 그리고자 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가진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보더라도 부패한 사람들이 많지 않나. 사람을 죽이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는 아닌데, 어떤 사건에 휘말리면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동근도 처음에는 단순히 채굴을 목적으로 갔지만, 기성을 만나고 그가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서부터는 ‘이 영감을 처치해야겠다’는 식으로 점점 살의를 내뿜는다.

-악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을 조진웅 1인이 연기하는 쌍둥이로 그린 지점이 흥미롭다. 동근과 명근이라는 ‘같은 비주얼’의 인물이 나쁜 놈, 더 나쁜 놈의 구도로 등장한다.

=그냥 나쁜 놈, 나쁜 놈 중에 덜 나쁜 놈이다. 악함의 ‘결’을 한 캐릭터에 다 표현하기는 힘들다. 다중인격으로 포장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시나리오가 지금보다 더 복잡해져야 한다. 둘을 다른 인격체로 가져가되 같은 형제라고 본다면 더 흥미로워질 수 있다고 본다. 기성의 입장에서 마을에서 경찰로 일하는 명근은 아는 사람이지만, 동근과는 (사실은) 모르는 사이라는 것도 극의 재미를 더해준다. 조진웅이라는 한 배우를 두 사람으로 한 화면에 담는다는 것도 영화적으로 표현할 때 매력적인 지점이었다. 목소리 톤이나, 헤어스타일, 눈썹 같은 디테일들로 그 차이를 설정했다.

-산속에서 벌어지는 16시간의 추격전이다. 빠르고 집중도 있는 각본이 요구된다.

=그게 이 시나리오의 매력이자 부담되는 지점이었다. 최대한 함축적으로 가되 스피드를 잃지 않고 가려고 했다. 꼭 필요한 드라마가 있지만 그걸 다 가져가면 이야기가 너무 방대해지고 지루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고민을 많이 했다. 의도적으로 짧게 줄이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시나리오 장당 1분이 소요되는 식으로 구성을 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마지막 각색고가 딱 94페이지가 나오더라.

-동근 일당을 압박하는 기성 역의 안성기의 활약이 상당하다. 과거 탄광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인데, 심리적인 고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액션에도 능통한 인물로 설정된다.

=안성기 선배님의 영화사에서 이런 비주얼은 처음이다. 처음엔 긴 머리로 설정해서 가발도 만들어봤는데 이상하더라. 그러다가 제작자인 김한민 감독의 묶은 머리를 보는데, 이거다 싶더라. (웃음) 액션 장면에서는 람보처럼 변하신다. 놀랐던 게 평소 운동을 많이 해서 몸이 정말 좋더라. 산에 오르기 전 초반 장면에서 일부러 민소매 옷을 입어 그 근육을 보여줬다. 그래야 뒤 장면의 액션이 수긍이 갈 거라고 생각했다. 오르막 촬영 때는 정말 우리가 생각한 속도의 3배 이상으로 뛰셨다.

-산속 액션 장면은 어떻게 설계하고 촬영했나.

=배우들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담기 위해 굉장히 다양한 방법을 구상해봤다. 카메라를 얹을 가마도 만들고 지게 같은 걸 만들어서 활용도 했다. 산의 경사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려고 렌즈를 과감하게 써보기도 했지만 핸드헬드라 너무 흔들려서 결국 단렌즈밖에는 쓸 수가 없더라. 파주 고령산이 메인 촬영지였는데, 9월 말에 크랭크인해서 11월 말까지 찍는 동안 해가 짧아진 것도 큰 제약이었다. 처음 오후 4시30분에 지던 해가 차츰 짧아지더니 촬영 말미에는 오후 3시30분만 돼도 완전히 어두워졌다. 매일매일 추위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데뷔작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2003) 이후 두 번째 작품이 꽤 늦었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키드였다. 90년대 초반에는 광고쪽의 테크닉이 워낙 발달되어 있어서, 먼저 광고부터 시작해보자 하고 덤볐다. 광고에서 특수촬영, 크로마, 매트페인팅 등을 익혔다. 그 특기로 민병천 감독님이 연출한 SBS 드라마 <고스트> 특수촬영에 참여했다. 이후 <내츄럴시티>(2003)와 촬영이 중단된 <데우스마키나> 연출부 등을 거쳤는데, 이렇게 SF 장르의 작품을 계속하면 CG쪽으로 커리어가 굳어질까봐 걱정이 되더라.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2003) 연출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데뷔를 했다. 이후 <7광구>(2011) 각색 작업에도 참여했다. 성과가 많지 않지만 꾸준히 하려고 한다. 원래 김한민 감독과는 북한과 중국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의 비극을 그린 누아르영화 <국경의 밤>을 준비 중이었는데 계속 진행했으면 한다. 다음 작품도 산에서 찍자고 하면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너무 힘들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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