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키아로스타미와 치미노, 그리고 <비밀은 없다>
2016-07-08
글 : 주성철 |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키아로스타미와 치미노, 그리고 <비밀은 없다>

“1959년에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가 있었다면 2002년에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텐>이 있었다, 고 먼 훗날 얘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2007년 제1회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CINDI)를 시작하며 <텐>을 초청했던 당시 정성일 집행위원장이 한 말이다. 그는 2002년 칸국제영화제에서 <텐>을 보고난 뒤 “이전 영화들을 모두 잊게 만들 만큼 키아로스타미의 최고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여기서 정말 다시 시작하는구나, 하고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키아로스타미가 세상을 뜬 그날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RIP_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문득 우리 곁을 떠났다. 아아, 지금 막 영화에서 하나의 세계가 사라졌다. 1940~2016.”



2005년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때는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부산을 찾아, ‘마이 라이프 마이 시네마’라는 제목으로 <키아로스타미의 길>(2005) 상영 후 마스터클래스를 갖기도 했다. 그가 수십년간 찍어온 ‘길’에 관한 사진들을 모아 32분으로 구성한 흑백 디지털영화였다. 그날 ‘어떻게 하면 당신 같은 거장 감독이 될 수 있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나는 거장이 아니다. 영화감독은 죽을 때까지 배우는 학생이지 ‘마스터’가 될 수 없다. 제발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말라. 내가 언제까지나 젊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내버려두라”며 웃었다. 그렇게 그는 영원히 ‘학생’으로 남고 싶어 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에 대한 더 긴 특집은 다음 1064호를 기다려주시라.



키아로스타미에 앞서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별세 소식도 큰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한동안 그를 완전히 잊고 있다가 이제야 기사들을 검색해보니, 언제부턴가 너무 홀쭉한 모습의 사진들밖에 없었다. 예전의 당당했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디어 헌터>(1978)가 개봉하고 <천국의 문>(1980)을 계약하던 즈음, 그러니까 원래 1977년 4월 개봉예정이었던 <지옥의 묵시록>(1979)이 편집과 재편집을 거듭하는 사이 <디어 헌터>가 먼저 개봉했던 그때, 피터 비스킨드가 쓴 <헐리웃 문화혁명>은 그의 외양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치미노는 키가 작고 뚱뚱했다. 극적인 검은 머리칼이 둘러싼 그의 커다란 머리가 멜론처럼 어깨 위에 얹혀 있었다.” 그랬던 그가 진짜 천국의 문으로 향한 것이다. 그 또한 명복을 빈다.



끝으로,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모처럼 <씨네21> 기자들이 만장일치로 지지한 영화였다. 시사회 직후, 이런저런 영화에 좀체 현혹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씨네21>의 돌부처 송경원 기자가 가장 먼저 침 튀기며 흥분한 영화였다. 그런데 <씨네21>이 왜 이 영화에 대해 더 다루지 않느냐는 지적들이 꽤 있었다. 변명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로서도 충격적이었다. 이용철 평론가가 쓴 것처럼 불과 한두주 만에 <비밀은 없다>를 보기 위해 도시를 건너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알다시피 보다 심도 있는 비평을 위해서는 스포일러에 개의치 않고 써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가 준비했던 ‘스포일러를 포함한 본격 비평’의 타이밍이 뜻하지 않게 너무 늦어버린 것이었다. 손희정 평론가가 트위터에 쓴 것처럼 “‘이런 시절’이니까 이 영화가 될지도 몰라! 했던 건 역시 나의 착각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사이 이경미 감독도 이런 분위기 탓인지 트위터에 “지금 내 마음을 과일로 표현하자면 한참 변색된 무른 바나나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아무튼 또 그사이 멀티플렉스들은 영화를 다양하게 상영하는 게 아니라 가격표를 다양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게 바로 여름방학을 앞둔 극장가의 풍경이다. 그래도 <비밀은 없다>는 이렇게 끝나버릴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얘기가 오고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