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무너진 그곳에서 되찾은 삶의 의지 <데몰리션>
2016-07-13
글 : 이화정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홀)는 잘나가는 투자분석가다. 장인 소유의 회사에서 일하는 성공이 보장된 남자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 이후 모두 물거품이 됐다. 그런데 데이비스가 직면한 혼돈의 정체는 예상 밖이다. 그는 아내가 죽어 힘든 게 아니라 ‘아내가 죽었는데도 슬프지 않은 자신’의 모습 때문에 힘들다. 데이비스의 이상행동을 알게 된 사람들은 급기야 손가락질을 하며 하나둘 그를 등진다. 불안과 고독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구원의 손길이 의외의 곳에서 온다. 아내가 죽은 그날, 데이비스의 화풀이 대상은 고장난 자판기였다. 돈만 날름 삼키고, m&m’s 밀크초콜릿을 내어주지 않은 병원 자판기에 화풀이를 한 데이비스는 고객센터 직원 캐런(나오미 와츠)에게 매일 편지로 상담을 한다. 캐런은 그런 그를 ‘미친놈’ 취급하는 대신, 이야기를 들어주는 쪽을 택한다. <데몰리션>의 스토리가 흥미를 돋우는 지점이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은 항상 무너져내리기 직전의 사람을 다급히 몰아세워, 살아갈 길을 묻는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3)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HIV 바이러스 감염자 론 우드루프(매튜 매커너헤이)가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살기 위해 팔았던 신약 사업 때문이었다. <와일드>(2014)의 셰릴 스트레이드(리즈 위더스푼)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모하비 사막을 횡단했다. 죽은 엄마를 놓아주기 위한 강행군이었다. <데몰리션>의 데이비스가 찾아낸 방법은 ‘해체’(demolition) 작업이다. 가지고 있는 온갖 집기는 물론, 기거할 집까지 부수고 마는 데이비스의 파괴력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나 <와일드>의 주인공들이 보여준 행동만큼이나 절박함을 담고 있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돼”라는 장인의 말처럼, 데이비스는 다 부수어버린 그곳에서 시작한 새로운 인간관계를 통해 삶의 의지를 찾아나간다. ‘나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자신하고 있는 우리들마저도 이 무거운 정에 세게 얻어맞는 느낌이다. 혼돈 속에서 점차 자신을 찾아나가는 데이비스의 심리를 표현해낸 제이크 질렌홀의 연기가 울림을 선사한다. 배우들에게 극한의 상황을 제시하고 그걸 통과하게 만드는 장 마크 발레 감독의 주문이 또 한번 빛을 발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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