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정의 다른 나라에서]
[이화정의 다른 나라에서] 탐미의 기억
2016-07-21
글·사진 : 이화정

비에른 안드레센을 다시 ‘만난 건’, 그러니까 그의 생사를 확인한 건 올 초 열린 스웨덴 예테보리국제영화제에서였다. ‘호텔 페티시’임을 자처하는 크리스티안 페트리 감독은 다큐멘터리 <더 호텔>(2016)을 통해 무려 10년간 전세계의 오래된 호텔을 다니며 호텔이 가진 의미를 되짚어보는 투어를 한다. 몇 백년 된 일본의 온천장이나 <전망 좋은 방>(1985)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 피렌체의 호텔 같은 곳이 등장하니 참으로 고상한 투어가 아닐 수 없다.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에서 쇠약해진 작곡가 구스타브 아센바흐(더크 보가드)의 심장을 뛰게 만든 타지오를 연기한 비에른 안드레센은 페트리 감독이 10년간 만난 다큐멘터리의 인물 중 한명이었다. 캄캄한 극장 안에서 나는 타지오를 향해 ‘사랑한다’, ‘누구한테도 그렇게 미소를 짓지 말라’고 절규하던 구스타브 교수마냥 탄식을 보냈다.

차기작 소식보다 비행기 사고, 약물중독으로 이미 유명을 달리했다는 루머가 더 많이 들렸던 시간이 있었다. 그런 그가 엄연히 건재하고 있음을 알리며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간 축적해온 그를 향한 애정이 한순간에 스쳐지나갔다. 안드레센이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오스칼의 실존이라고 하는 말들은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내겐 한치 의심 없는 진실이었다. 나는 베니스에서 그의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 베인스 호텔 레스토랑에서의 첫만남 때 아래위 화이트 세일러복을 입고 다리를 비스듬하게 한 미소년의 차고 건방진 미소를, 삐쩍 말라 큰 키를 구부린 채 뒷짐 진 그의 걸음걸이를, 리도섬 해변에서 수영복을 입고 뛰어다니던 모습을, 아, 갇힌 엘리베이터에서 구스타브를 곧 죽음으로 몰고 갈 만큼 아름다웠던 그 스트라이프 셔츠에 모자 차림도 떠오른다. 어느 한순간, 어느 한 장면을 놓칠 수 있을까. 구스타브가 죽음을 맞은 게 당시 베니스에 창궐한 콜레라 때문이었을까. 소크라테스가 사랑한 남부 유럽의 미소년 알키비아데스의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모래사장을 거니는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커다란 타월을 걸치고 있는 미소년 안드레센에게 대입시키는 버릇이 있었다. 그가 북구의 금발과 긴 다리를 가진 다른 형태의 미남이었는데도 말이다.

<더 호텔>

<더 호텔>에서 완벽한 미의 전형으로 ‘박제’되었던 그는 성인이 된 그 기간을 뭉텅 건너뛰어 노인이 되어 다가왔다. 이제는 영업을 하지 않는, 쓸쓸한 베인스 호텔로 들어가,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과 함께했던 작업을 회상하는 안드레센은 더이상 그때의 미소년이 아니었다(정신 차리자. 그는 <가위손>의 에드워드가 아니라고!). 그런데 1955년생의 그는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멋졌다. 큰 키에 마른 몸, 등을 덮은 백발의 긴 머리, 브라운톤의 선글라스와 낡은 가죽 재킷을 함께 레이어드한 멋스러운 차림새. 아마도 ‘타지오의 차림이 아닐 때는 모터사이클과 전자기타에 관심이 많고 비틀스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고 현장의 그를 설명하는 더크 보가드의 기억대로, 배우 대신 음악을 하고 싶어 작품을 많이 남기지 않으며 그렇게 멋지게 쭉 스톡홀름에서 자유로운 뮤지션으로 살아왔던 것 같았다. 그럼에도 다큐멘터리의 중간쯤, 느닷없이 맞닥뜨린 이제는 50대 후반의 안드레센과 타지오와의 괴리를 쉽게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베니스에서의 죽음> 속 역무원이 ‘관광객으로 먹고사는 베니스’ ‘관광객 없는 베니스를 상상할 수가 없어서’ 관광객에게 바이러스의 창궐을 쉬쉬했다고 할 정도의 거대한 여행의 도시. 유럽의 상류층 사람들이 여름 한철을 나기 위해 커다란 가죽 트렁크를 곤돌라에 싣고 몰려들었던 그 화려했던 베니스에 대한 설명이 무색할 만큼, 지금은 퇴락한 베인스 호텔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안드레센에게서 과거의 찬란한 영광을 찾는 건 요원해 보였다.

<베니스에서의 죽음>

페트리 감독은 호텔이 때로 투숙객에게 ‘일시적인 집’이 된다면서, “잠깐 며칠 동안이라도 다른 사람이 되는 그 기분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안드레센이 호텔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찾아낸 기억은 ‘그 잠깐의 기억’이었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대규모 오디션으로도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마치 유리구두에 꼭 맞는 신데렐라를 찾듯이 당시 유럽 전역의 소년들을 오디션 봤다는 비스콘티 감독은 당시 15살의 미소년 안드레센을 찾아낸다. 그가 이탈리아 소년이 아닌 스웨덴 출신이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큰 키(당시 안드레센은 180cm였고, 이후 188cm까지 자랐다고 한다)라서 문제였지만, 안드레센은 그 모든 기우를 불식시킬 만큼 타지오의 오차 없는 현현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게 지금의 안드레센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처럼 보인다. 단숨에 그를 전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린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촬영장은 어린 그에게는 끔찍이도 싫은 기억이었다. 그는 “작은 방 안, 감독님이 수영복만 입고 포즈를 취하라는데 그게 너무 싫고 당혹스러웠다”고 말한다. 오디션 당시의 어색함, 베니스뿐만 아니라 이후 일본 투어에서 그를 향해 몰려든 인파 앞에서 곤혹스러워하던 소년 안드레센의 모습을 담은 다큐 화면이 노인이 된 그의 육성과 오버랩된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타지오에게는 대사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완벽하게 구스타브의 예술에 대한 가치를 재고하는 그 철학적 질문의 답변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 ‘황금비율의 마스크’라는 수식어 뒤에서 그가 감내해야 할 것은 적지 않았다. 안드레센은 그때의 촬영 후 처음으로 베인스 호텔을 찾는다고 했다. 사망설뿐 아니라 배우 살 미네오와 염문설에 시달려야 했으며,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연루되어 고통받았던 이후의 기억들을 지나 이제 그는, 그 기억을 스스로의 목소리로 발화하고 되새길 수 있을 만큼 다행스럽게, 나이를 먹었다.

*베니스를 찾은 건 두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리도섬과 곤돌라, 산 마르코 광장의 공격적인 비둘기들 모두가 베니스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점차 가라앉는 도시, 치솟는 물가, 현지인은 살지 않는 도시. 비스콘티가 그렸던 그 옛날 푸념처럼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가장 유명한 명소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시즌 밤늦게 구스타브 교수처럼 거리를 거닐었다. 타지오 같은 황금비율의 미소년을 만나는 대신 고양이만 한 쥐를 몇 마리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 숙소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타지오 같은 미소년을 찾자면, 느끼한 이탈리아 남자들이 있는 베니스가 아닌 역시 안드레센의 고장인 스웨덴으로 가야 한다. 괜히 비스콘티 감독이 스웨덴 소년을 발탁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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