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도덕성과 우연성,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찰 <이레셔널 맨>
2016-07-20
글 : 장영엽 (편집장)
<이레셔널 맨>

<이레셔널 맨> Irrational Man

감독·각본 우디 앨런 / 촬영 다리우스 콘지 / 편집 알리사 렙셀터 / 미술 칼 스프라그 / 의상 수지 벤징어 / 출연 호아킨 피닉스, 에마 스톤, 조 스태플턴, 파커 포시 외 / 수입·배급 프레인글로벌 / 제작연도 2015년 / 상영시간 95분 /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개봉 7월21일

에이브(호아킨 피닉스)는 이라크에서 친구를 잃은 충격에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철학 교수다. 그가 로드아일랜드 근처의 한 대학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끔찍한 결혼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은 동료 교수 리타(파커 포시)가 에이브 앞에 나타나지만, 그의 관심을 끈 건 철학과 학생 질(에마 스톤)이다. 자신만만하고 활력 넘치는 그녀는 자신만이 이 음울한 남자를 구원해줄 수 있다는 판타지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한편 점점 가까워지던 에이브와 리타는 어느 날 한 식당에서 도덕적이지 못한 한 판사에 대한 이야기를 엿듣게 된다. 질은 무심코 에이브에게 이 판사가 심장마비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얼마 뒤 그 판사가 조깅을 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의 행방이 오리무중인 가운데, 어쩐지 무기력하기만 하던 에이브는 다시 활력을 되찾게 된다.

<이레셔널 맨>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카페 소사이어티> 이전에 놓이는, 우디 앨런의 46번째 연출작이다. 계획적인 살인,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려는 주인공, 그 죽음이 야기하는 무작위적인 연쇄반응까지, 이 작품은 우디 앨런의 전작 <범죄와 비행>과 <매치 포인트>의 형제 영화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특히 우디 앨런이 주목하는 건 도덕성과 우연성,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찰이다.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울 때, 우리는 그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혹은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을 처단하는 살인마에게 우리는 어떤 도덕의 기준을 세울 것인가. 주인공이 철학 교수인 만큼 칸트와 키르케고르 등의 인용구가 흘러넘친다. 살인사건이 중심에 놓여 있고, 무겁고 깊은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이레셔널 맨>은 이러한 인간적 번뇌의 순간들을 다소 가볍고 시니컬한 톤으로 다루고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부담없이 키득거리며 볼 수 있는 블랙코미디 소품에 가까운 영화라고 할까. 우디 앨런과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호아킨 피닉스는 우디 앨런 특유의 속사포 같은 대사를 소화하면서도 끝내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 나른하고 무기력하면서도 음험한 남자의 초상은 호아킨 피닉스가 가장 잘 소화해낼 수 있는 종류의 인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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