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한국영상자료원, 특별기획전 ‘잡지로 보는 한국영화의 풍경, <녹성>에서 <씨네21>까지’ 열다
2016-07-27
글 : 김수빈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1919년 10월27일, 조선 최초의 활동사진 연쇄극 <의리적 구토>가 세상에 나왔다. 연쇄극은 실연과 영화를 섞어 상연하는 극으로, <의리적 구토>는 말하자면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다. 그로부터 채 열흘이 되지 않은 시점에 최초의 영화잡지 <녹성>이 발간됐다. 이후 영화잡지는 영화문화와 당대의 시대상을 담아내며 한국영화 100년사를 함께해왔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6월16일부터 9월4일까지 ‘잡지로 보는 한국영화의 풍경, <녹성>에서 <씨네21>까지’라는 특별기획전을 연다. 영화잡지가 기록한 한국영화의 중요한 순간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잡지 전시답게 풍부한 읽을거리는 물론, 부록과 광고 모음, 전·현직 편집장들의 인터뷰 영상, 잡지 표지모델 체험존 등 다채로운 볼거리로 알차게 꾸려져 있다. 무엇보다 한 세기를 걸치며 인쇄 매체에 입혀진 아우라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전시다.

최초의 영화잡지 <녹성> 발간 이후, 현재까지 80여종의 영화잡지가 명멸했다. 이번 특별전에는 그중 60여종, 200여부의 영화잡지가 전시된다. 기획전시실에 배치된 영화잡지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매체는 <씨네21>이 유일하다. 그 많던 영화잡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전시를 기획한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사연구소 조준형 소장은 말한다. “흔히들 지금을 영화잡지 종말의 시대라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지는 의문이다. 매체마다 적절한 글의 길이와 종류는 따로 있다. 종이에 줄을 쳐서 보고 곱씹어보고 종이를 만져보는 건 또 다른 인터페이스다. 새로운 종이잡지의 시대 혹은 종이잡지로 대표되는 영화비평과 담론의 부활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된 전시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영화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자료에도 위계가 있다. 필름이 단연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시나리오, 포스터, 스틸 사진, 잡지를 포함한 참고자료들이 뒤를 잇는다. “잡지류는 그동안 적극적으로 수집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해 연말부터 수집부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주요 잡지들을 컬렉터에게서 구입했다. 그 수만 해도 100권이 넘는다.그런데 전시를 기획하면서 일제시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일제시대 영화잡지 보유분이 턱없이 부족했다.” 영화잡지 100년사를 공백 없이 담아내는 데에는 고서적 전문서점 아단문고의 공이 컸다. “아단문고 박천홍 실장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다. 해방 전, 특히 일제시대 잡지들을 어렵지 않게 대여할 수 있었다.”

조준형 소장은 자신을 “<키노> 세대”라 소개한다. 잡지 이름이 한 세대를 설명하는 시절이 있었다. “<씨네21>과 <키노>는 1990년대 중반, 즉 영화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를 대변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나를 비롯해 당시 청년기를 보낸 영화 팬들은 그 시기의 세례를 많이 받았다.”전시장에도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주요 영화잡지들의 인기 코너, 광고, 부록, 만화 같은 자료들만 따로 모은 섹션이 있다. 풍부한 사료들이 영화잡지의 전성기를 담고 있다. 종이잡지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2000년대 중·후반이다. “온라인과 모바일로 독서 습관이 넘어가고 여가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종이잡지의 기능, 수명, 역할이 빠른 시간 내에 가치를 상실한 것 같다.” 그렇지만 이번 전시는 영화잡지의 흥망성쇠를 훑어보는 데서 나아가 영화잡지의 역할 자체를 다각도에서 고민할 수 있는 자리다. “종이잡지만의 물성과 가치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가 관건이다.” 조준형 소장은 한국 영화잡지의 다음 100년을 위해 대체 불가능한 종이잡지만의 고유성을 강조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봤으면 좋겠다는, 희망 섞인 전시다. 전시장 마지막 코너에서 상영되는 다큐멘터리에서도 정성일 전 <키노> 편 집장이 이렇게 말하지 않나. ‘다시 영화잡지를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 돌아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조준형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사연구소 소장.

전·현직 영화잡지 편집장·필자가 함께하는 관람객과의 대화

영화잡지를 말하다

기획 전시와 연계해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한국 영화잡지의 춘추시대를 이끌었던 전·현직 편집장과 필자가 관람객과 함께 한국영화와 잡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다. 행사는 한국영화박물관 기획 전시실 내에서 총 2번에 걸쳐 진행된다. 7월28일 목요일에는 정성일과 김홍준이 참석해 영화‘전문’ 잡지의 탄생에 대해 말한다. 월간 <로드쇼>에서 편집장과 필자로 만난 두 평론가는 1980년대부터 촉발된 한국 영화잡지의 부흥기를 이끈 인물들이다. 8월10일 수요일에 예정된 두 번째 대담엔 <씨네21> 주성철 편집장과 김형석 평론가가 참석해 영화를 기록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키노> <필름2.0> 기자 출신 주성철 <씨네21> 편집장과 <스크린> 편집장을 역임한 김형석 평론가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영화잡지계의 중심에서 활약해왔다. 이번 프로그램은 참석자들이 편안하게 의견을 교류할 수 있는 라운드 테이블 형식으로 진행된다. 한국영상자료원 및 한국영화박물관 홈페이지 공고에서 신청서를 다운로드 받아 작성 후 이메일 접수(hyjeong@koreafilm.or.kr)를 받으며 선착순 20명에 한한다. 영화잡지의 시대적 역할과 중요성을 되새기고 한국영화에 대한 담론을 교류하는 장이 될 것이다.

연대별로 한국영화잡지를 소개하는 코너로,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영화잡지 대부분이 단권에 그쳤지만 창간의 열기로 뜨거웠던 1920년대, 영화계 흐름에 따라 잡지에도 조선 영화 기업화에 관한 논의가 자주 실리던 1930년대, 대중문화의 확산과 함께 잡지 수가 증가한 1960년대, <스크린>과 <로드쇼>로 대표되는 1980년대, <씨네21>과 <키노>가 등장하고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1990년대, 영화잡지의 춘추전국시대라 할 수 있는 2000년대 초반, 재정 문제로 대다수 잡지가 폐간 절차를 밟던 2000년대 중·후반 이후까지, 영화잡지의 한 세기 역사가 이 섹션에 담겨 있다. 해당 시기마다 당대의 중요한 영화사적 사건들이 사진 위에 병기되어 관람객의 풍부한 이해를 돕는다. 찰리 채플린이나 소피 마르소 등 시대를 풍미한 배우들의 영화 클립도 중간중간 배치돼 관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1919년 <녹성>부터 2002년 <DVD21>까지, 영화잡지의 표지만을 모아 모자이크로 채운 섹션이다. 벽면을 메운 건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외국 여배우들의 얼굴이다. “1950~60년대 영화잡지의 대부분의 표지는 외국 여배우들이 차지했다. 잡지 표지를 보면 어떤 배우가 인기 있었는지, 독자들이 어떤 정보나 이야기를 원했는지 알 수 있다.” 브리지트 바르도, 킴 노박 등 표지모델은 면면이 화려하지만 표지 컨셉에서 큰 개성이 묻어나진 않는다. 조준형 소장은 당시 팬문화를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덧붙였다. “당시 독자 코너를 보면 해외 스타들의 집주소를 묻는 경우가 정말 많다. 집으로 팬레터를 보내기 위한 목적이었고 대부분 답변을 해줬다고 한다.”

전시장 벽을 두른 영화잡지들은 대부분 스캔본이다. “원본의 아우라”를 느끼기 위해선 중앙에 위치한 진열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단문고로부터 대여받은 일제시대 영화잡지 원본을 한곳에 모아둔 일종의 ‘아단문고 컬렉션’이다. 잡지의 내지까지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독자들을 위해 진열장 옆에는 잡지 실물을 그대로 재현한 복사본도 구비돼 있다. <녹성>부터 <씨네21>까지 한자리에서 읽을 수 있는 코너다. <녹성>은 e북으로도 준비돼 있다.

‘세계 제일의 희극배우 잡후린 선생의 결혼.’ 일제시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찰리 채플린이 ‘잡후린’으로 표기된 1919년 <녹성> 창간호 기사다. 찰리 채플린의 사생활에 관한 기사라든지 나운규 감독이 직접 쓴 <아리랑> 제작기, 1962년 개봉예정 영화 일람표 등 영화잡지 초창기의 흥미로운 영화 기사들을 소개하는 코너다. 영화잡지별 인기 코너를 모아놓은 코너도 있다. <로드쇼>에 김홍준 교수가 구회영이라는 필명으로 썼던 ‘도시에, 영화에 관하여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이 있었다면, <스크린>에는 박찬욱의 ‘비디오드롬’이 있었다. 정성일은 왕성한 필력과 독창적인 시각으로 주목받던 스타 방송인(MBC 라디오 <정은임의 영화음악>)이자 필자였다.

당대 대중의 기호가 반영된 대표적 매체, 광고는 영화잡지에도 꾸준히 실렸다. “광고를 보면 잡지가 어떤 독자들을 겨냥하고 있는지 잘 나타난다.” 조준형 소장의 말처럼 여성용품과 화장품에 대한 광고는 일제시대부터 1950~6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잡지에 등장했다. “결국 젊은 여성들이 시대를 불문하고 영화잡지의 핵심 고객층이었다는 의미다.” 바캉스 문화가 확산된 1970년대부터는 관광호텔이, 1990년대에는 삐삐 광고, 2000년대에는 DVD 광고가 실리며 시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전시실에는 특별한 다큐멘터리 한편이 상영 중이다. 역대 영화잡지 편집장과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이다. <영화잡지>의 김종원, <씨네21>의 조선희, <로드쇼>와 <키노>의 정성일, <씨네21>과 <필름2.0>의 김영진처럼 편집장 혹은 기자 출신 영화인들을 비롯해 현재 <씨네21>을 이끄는 주성철 편집장까지 잡지를 만들어온 이들이 영화잡지의 역사를 회고한다. 14분30초가량의 이 영상은 1980년대 이후 춘추시대에서 쇠퇴기로 이어지는 영화잡지의 흐름을 중점적으로 그린다. 조준형 소장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구성으로 단연 이 인터뷰 영상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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