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기 가수 마리안(틸다 스윈튼)은 남자친구 폴(마티아스 쇼에나에츠)과 함께 이탈리아의 어느 섬에서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만의 시간은 깨지고 만다. 오랜 친구인 해리(레이프 파인즈)가 자신의 매력적인 딸 페넬로페(다코타 존슨)와 함께 두 사람을 불쑥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까운 것 같지만 때로는 매우 불편한 사이처럼 보인다. 그리고 네 사람의 사연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숨어 있던 갈등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아이 엠 러브>(2009)를 연출했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 <비거 스플래쉬>는 네 남녀의 서로 다른 욕망과 그로 인한 비극적인 상황을 그린다. 알랭 들롱이 출연했던 <수영장>(La Piscine, 감독 자크 드레이, 1969)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몇몇 장면은 미장센이나 갈등 양상의 측면에서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스트롬볼리>(1950), <이탈리아 여행>(1953) 등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전작 <아이 엠 러브>가 루키노 비스콘티에 대한 존경을 드러냈듯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비거 스플래쉬>에서도 (이탈리아) 영화사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이 <비거 스플래쉬>만의 색깔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서로 다른 성격의 이야기 조각을 통해 큰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소위 ‘핵심 갈등’을 명쾌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앞뒤 맥락을 생략한 사건들, 짧게 등장했다 사라지는 대사들, 의도를 알 수 없는 배우들의 아리송한 표정 등을 통해 형태가 불명확한 갈등의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관객은 인물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으며 전체 이야기를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할 수도 없다. 여기에는 성적 욕망과 열등감, 근친상간, 심지어 아프리카 난민에 이르는 다양한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이런 연출이 질문만 산만하게 던진 채 명쾌한 답은 제시하지 않는 소극적인 자세로 보이기도 하지만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감독의 선택은 결국 흥미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