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드득, 후드득, 쾅쾅. 인터뷰 도중, 한여름의 폭우가 매섭게 쏟아진다. 바로 앞 상대의 말소리도 음소거해버릴 기세의 폭우에 오달수가 천장을 한번 올려다본다. “그러니 무너진 터널에 갇힌 정수(하정우)가 얼마나 두려웠을까.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터널>에서 오달수는 구조대책 본부의 김대경 대장을 연기하며 정수를 구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그래서인지 앞선 오달수의 말이 꼭 김대경 대장의 마음의 소리 같다. “정수를 구하는 과정에서 대경은 정수에게 생존을 위한 이런저런 정보를 전해준다. 그때 대경은 자신은 해보지도 않은 일을 정수에게 권해야 하자 ‘죄송하다’고 말한다. 그것만 봐도 대경이 양심적이며 우직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대경은 재난영화에서 주인공의 분투를 돕는 조력자의 전형이기도 하다. 오달수가 그 전형성에 세세한 결을 만들어갔다는 게 김성훈 감독의 귀띔이다. “누군가가 그러더라. ‘우리는 오달수가 어떻게 연기할지를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매번 그의 연기에 당하고 만다.’ 이 말에 100% 동의한다. 달수 선배의 몸을 거치면 캐릭터가 묘하게 달라진다.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선배 특유의 엉뚱함과 유머가 만들어낸 결과다.” 오달수는 김대경이 조금이라도 달리 보일 수 있었다면 그 한끗 차는 현장의 힘에서 왔다고 말한다. “극 중에서 수많은 기자, 경찰들이 터널 앞에 몰려와 정수의 구조를 방해한다. 현장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직접 맞닥뜨려보면 안다. ‘이들을 빨리 정리하고 구조에 임하자!’ 영화를 찍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실제 그 상황으로 탁 들어가서 저절로 느끼게 되는 거다.”
오달수는 영화 선택의 기준을 ‘감독의 역량, 시나리오의 재미, 자신을 이끌어줄 동료 배우’라고 말한 적이 있다(<씨네21> 1041호, ‘연희단거리패 30주년 대담’). <터널>은 그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진 현장이었다. “시나리오가 독특하고 재밌었다. 하정우, 배두나라는 멋진 배우들도 있고. 처음 함께 작업한 김성훈 감독은 현장에서 큰소리 한번 내지 않더라. 특유의 ‘고급 유머’로 스탭들을 즐겁게 해주니 오히려 <터널> 촬영갈 때마다 ‘재밌는 현장에 간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암살>(2015), <터널>에 이어 현재 <신과 함께>(감독 김용화, 2016)를 함께 촬영 중인 하정우에게는 애정이 한가득이다. “이상하게 끌리는 사람이다. (웃음) 사실 연기에서는 말을 하는 쪽보다 듣는 쪽이 어떻게 받아주는가가 중요하다. 정우씨는 마음으로 상대의 액션을 받아들인다. 그런 리액션이 훨씬 더 세고 강하다. 하는 듯 안 하는듯, 과장됨 없이 큰 욕심 내지 않고. 내가 연기에 크게 욕심이 없는 것과 어쩌면 닮은 것도 같다.”
올해 그는 ‘오달수 주연작’이라는 이름을 내건 <대배우>(2015)로 관객과 만나기도 했다. “<대배우>를 통해서 내가 ‘천만 배우’가 아니라는 게 입증됐다. (웃음) 주연이라는 타이틀로 작업을 해보니까 육체적, 정신적으로 부담이 많이 되더라. 그걸 끝내고 나니 스스로에게 담금질이 됐다. 20년간 무명배우로 살아온 영화 속 장성필이라는 인물을 보면서 과욕 부리지 말고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것의 의미를 또 한번 배웠다.” 하나의 깨달음 뒤에는 또 하나의 번민이 찾아오는 법일까. “<터널> 개봉과 같은 날, 여자 아이스하키팀 감독으로 출연한 <국가대표2>(2016)가 개봉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머리가 좀 복잡하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생활하고 싶은데….” 머리가 복잡할땐 몸을 괴롭히라 했던가. <신과 함께>의 판관 역에 이어 <마스터>(감독 조의석, 2016)에서 검사 출신 엘리트 변호사 역할로 촬영을 이어가고 있다. “원래는 8월에 내가 운영하는 극단 신기루만 화경 후배들과 공연을 올리려 했는데 스케줄이 꼬이는 바람에…. 마음 같지 않다. 그래도 또 계속 연기를 하는 수밖에. 미련한 듯, 바보같이. 달리 뭐가 있겠나.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