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를 구상할 당시 <걸어도 걸어도>풍의 가족극이 될 거라고 예고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과연 아버지는 스스로가 납득할 만한 인생을 사셨을까’라는 질문을 해보게 됐다. 그 생각을 이어가다가 이 이야기가 시작됐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린 시절 꿈꾸던 미래의 자신의 모습대로 어른이 되지 못했다. 그런 그들이 어른이 된 현재의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주하고 있는지를 얘기해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모두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료타는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을 뒤늦게 깨닫는다. 동시에 자신이 아버지와 했던 일들을 아들 싱고와 함께해보며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가기도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15년이 됐다. 그사이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살아 계실 땐 오히려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에 대해 이토록 많은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아버지에게 많은 것들을 물려받았다. 그것들 중 어떤 부분들을 내가 나의 자식에게 물려주는 과정 중에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뭔가를 건네주고 받는 게 아니겠는가. 성격이나 습관일 수도 있고 영화에서처럼 료타가 싱고에게 사주는 스파이크화나 료타의 아버지가 쓰던 벼루와 같은 것일 수 있다.
-실제로 당신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특징에는 어떤 게 있을지 궁금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종종 오목을 두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 생각이 나 바둑판과 바둑알을 챙겨두려고 어머니가 계신 집에 간 적이 있다. 아버지의 유품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말 같고 그저 챙겨두면 언젠가 내 아들과 함께 오목을 두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없더라. 아버지 장례식 바로 다음날,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관련된 모든 물건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버리셨다. (일동 웃음) 또 다른 기억이 하나 있다. 아버지께서 다리가 불편하셔서 (영화에서와 같은) 연립주택 단지에 사실 때 물리치료숍에 다니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느 날 그곳을 찾아가봤더니 내가 나온 신문 기사가 벽에 걸려 있는 게 아닌가. 가게 주인 말로는 아버지께서 신문을 들고와 자랑하셨다고 하더라. 살아생전에는 ‘내 영화를 봤다, 어떻다’는 말씀을 한번도 하지 않으셨던 분이다. 그제야 아버지가 기뻐하셨다는 걸 알게 됐다. 아, 체력이 좋은 것도 눈썹이 흐린 것도 다 아버지를 닮았다.
-눈썹은 꽤 짙어 보이는데….
=좀전에 방송 출연을 하느라 메이크업을 받아서 그렇다. (웃음) 이건 할아버지도 똑같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촬영차 가고시마를 찾았을 때다. 현지 분이 내 눈썹을 보더니 대뜸 ‘당신 고향이 가고시마 아니냐, 당신의 눈썹은 가고시마의 눈썹이다’라고 하더라. 이 일화만 봐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아버지의 존재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영화 속 료타와 그의 어머니가 각각 아버지와 남편과 겪은 일화들이 당신의 현실과 상당히 닮았다. 자전적이라고 봐도 되나.
=이걸 자전적이라고 단언해버리면 누나가 날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다. (영화에서 누나는 료타에게 꽤 쌀쌀맞고 냉정하다.-편집자) ‘이건 픽션’이라고 계속 주장할 생각이다. (일동 웃음) 물론 내 경험이 영화 곳곳에 많이 반영됐다. 료타가 싱고와 함께 복권을 사고, 부인에게 혼이 나는 장면은 실제 아버지와 나의 일화다. 하지만 태풍이 몰아치던 날 밤 친구들과 미끄럼틀 밑에 들어가 과자를 먹으며 흥분했던 기억은 있지만 영화에서처럼 아버지와 함께 그렇게 해본 적은 없다.
-<걸어도 걸어도>의 료타, <고잉 마이 홈>의 료타 역을 맡았던 아베 히로시가 다시 한번 료타로 등장한다.
=료타는 내 친구의 이름이다. <걸어도 걸어도> 때 처음 그 이름을 썼다. 개인적인 감회나 생각이 짙게 묻어나는 이야기, 그걸 쏟아부은 캐릭터의 경우에 료타라는 이름을 붙여왔다. 아버지가 된 내가 자식에게 느끼는 감정이 반영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때도 료타가 나온다. 당분간은 이 이름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홈드라마는 한동안 ‘봉인’하려 한다.
-아역배우들과의 작업을 여러 번 성공적으로 해왔다. 싱고 역으로 처음 연기를 하게 된 요시자와 다이요와는 어떠했나.
=특별한 방법이랄 건 없었다. 일단 오디션을 보면서 대화를 많이 한다. 그때 내가 ‘이 아이와 찍고 싶다’고 느끼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그런 인상을 받았다면 그 아이에게 맞춰 시나리오를 다시 써간다. ‘이렇게 찍고 싶다’는 게 명확해서 아이를 거기에 맞추기보다는 내 마음을 움직인 그 아이를 기본으로 삼아 인물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원작이 있을 경우 아이와의 작업이 더 어렵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의 히로세 스즈는 10대인데도 첫 만남에서 ‘스즈가 홀로 강인하게 서 있구나’라는 인상을 줬다. 반면, 요시자와 다이요는 오디션 때 목소리가 굉장히 작았고 어른들을 쿨하게 관찰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어린 시절의 나와 통하는 듯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났을 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사회가 떠안고 있는 미해결의 문제들, 예컨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이야기로 사회성 짙은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일본 전후 역사에 대해서 다시 짚어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시간이 좀더 걸릴 것 같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 감독으로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내게 큰 영향을 줬다. 어떤 형태가 됐든 내 작품에 그 사건은 반영될 것이고 작품에 변화를 이끌 수밖에 없다. 단순히 후쿠시마를 배경으로 하거나 사고를 소재로 쓴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지금의 일본은 관용을 잃었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이 상황이 더 안 좋은 쪽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 사회 내면의 심각한 문제다.
-당신의 극영화 데뷔작 <환상의 빛>(1995)이 한국에서는 올해에서야 개봉(7월 7일)했다.
=죽은 남편과 남겨진 부인에 관한 내용의 영화다. 20여년 전에 만들었는 데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는 점에서는 지금까지 내 영화에서 계속되고 있는 모티브와 이어진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이 작품을 봐주시는 것 같아 더욱 감사하다. 과거의 작품을 다시 들춰보지는 않지만 만약 다시 본다면 20년 전 앨범을 펼쳐보는 느낌이겠다. ‘왜 이런 무늬의 스웨터, 어쩌자고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있지?’ 같은 질문이 들면서 부끄러워지겠지. 당시에는 할 수 있는 역량을 다 쏟아부어 만들었기에 후회는 없지만 지금 보면 쑥스럽다. 어떤 작품이든 다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