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망각과 싸우라 - 세월호 이후 한국의 재난영화를 본다는 것은
2016-08-29
글 : 송형국 (영화평론가)
<터널>

안산 단원고 기억교실이 옮겨지기 시작한 8월20일. 폭염에 달궈진 학교 운동장은 오전부터 이글거렸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주인과 다시 만났을 책걸상과 학용품, 추모 편지 같은 물건들이 베이지색 상자에 포장돼 있다. 상자 속 물품들은 2년여 후에나 완공될 영구 기억교실로 가기 앞서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된 임시 공간에 머물게 된다. 이제는 학교를 일상으로 되돌리고 학업에 전념하게 해달라는 재학생 학부모들과 적잖은 갈등 끝에 나온 합의였다. 주류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합의였지만 실상은 내몰린 쪽에 가깝다. 한 어머니는 유품 상자를 안은 채 “나는 내 아이가 창고로 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며 울었다. 책걸상을 옮기는 데는 6대의 대형 탑차가 동원됐는데, ‘잊지 않겠습니다’라든가 ‘기억교실 이전 차량’이라고 새겨져 있어야 할 자리에 ‘이사업 연합회’, ‘○○24mall.com’ 따위의 이삿짐 업체 광고 문구를 종이로 대충 가려놓은 게 보였다. 유족들은 “우리 애들이 이삿짐이냐”며 또 울었다. 우리 사회가 세월호 유족을 배려하는 수준이 이 정도다. 유품함들이 교실에서 나오기 직전 취재진이 몰리자 한 어머니가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죄송하지만 아이와 함께할 시간을 달라”면서 기자들을 교실 밖으로 물렸다. 누가 누구한테 죄송한지 모를 일이지만 그분은 친절을 잃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 안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과 욕설, 울음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예의를 유지하던, 아까 그 어머니였다. 858일이 지났으니 유족들도 어느 정도 평정을 찾았을 거란 짐작은 틀렸다. 유족들의 시간은 그날 이후 멈춘 채 조금도 흐르지 않고 있었다. 이날도 단원고에서는 통곡과 다툼이 계속됐다. 2014년 4월16일 이후 모든 한국인은 바뀌었다. 1998년 IMF 사태가 한국 사람들의 물적 토대를 송두리째 틀어놓았다면 세월호는 우리의 마음을 바꿨다. 어떤 이는 이 사회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잃었고, 어떤 사람은 더이상 타인을 비난할 수 없게 됐으며, 누군가는 더 뻔뻔해졌다. 많은 이들이 이런 여러 가지 변화들이 뒤섞인 어떤 상태를 끌어안은 채 꾸역꾸역 살고 있다. 갖은 의혹들이 해소되기는커녕 커져만 가고 정당한 요구는 정치공세로 왜곡되고 있다. 세월호라는 거대한 사태는 이렇게 고립돼가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곳에서, 이 시점에서, 재난영화가 만들어지고 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은 어떤 뜻을 지니는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 재난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 현상과 의도를 포함하는가.

<주토피아>

9•11 이후 미국과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가 재난 상황을 다룬 서사와 만날 때 세월호를 떠올리는, 아니 세월호가 떠오르는 일은 자연스럽다. 심지어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볼 때도 한국 관객은 어떤 장면에서 세월호의 한 국면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특수성을 갖게 됐다. 고등학교 복도에서 학생들이 까르르 웃고 지나가는 장면만 보고도 누군가는 세월호를 떠올릴지 모른다. 하나의 작품이 창작자의 손을 떠나 관객의 감상 단계에 이르러 비로소 작품으로서 생명을 갖게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 특수성은 간과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전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남북 대립과 관련된 문학이 무수히 등장하고 제국주의 침략과 전쟁을 경험한 민족국가 성격이 짙은 이 사회에서 연관 장르가 성장해왔듯, 세월호 이후 우리에겐 창작-수용 양면에서 개별성이 추가됐다는 뜻이다. 하나의 문화권을 이루는 공동체만의 개별성 속에서 작품은 달라진다. 예컨대 <주토피아>(감독 바이론 하워드•리치 무어, 2016)를 보자. 인종 문제에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는 다민족•다인종 사회이거나, 잠재한 테러 위협에 대한 불안이 만연한 감시 사회에서 이 영화는 그곳의 특수성과 병치되어 읽힐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인이 보는 <주토피아>와 한국인이 보는 <주토피아>는 같은 영화가 아닌 것이다. 4•16 이후 재난영화가 만들어지고 그 관객이 된다는 것 역시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 질문에 참고하기 위해 9•11 이후 숱하게 쏟아진 테러 소재 영화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인터넷영화데이터베이스(IMDb.com)에서 ‘테러리즘’(terrorism)으로 키워드 검색을 하면 8월20일 현재 1636개 작품이 나온다. 이 가운데 9•11 테러가 발생한 2001년을 중심으로 이전 5년, 이후 10년의 작품 수를 헤아려봤다. TV시리즈는 한개 시즌을 작품 한편으로 간주했고 비디오게임은 제외했다. TV다큐, TV영화, 비디오 출시작 포함. 한국영화 등 미국 시장에서 수입한 외국 작품도 수용자 요구를 반영하는 수치라는 측면에서 포함하기로 했다. 이렇게 솎은 815편을 연도별로 집계하면 아래와 같다.

9·11 전후 키워드 ‘테러리즘’을 포함하는 작품 편수(미국 개봉·방영 기준)

9•11 발생 이듬해부터 변화는 뚜렷하다. 2001년까지 6년간 연평균 작품 편수는 34편. 이듬해부터는 한해 61편꼴로 2배에 가깝다. ‘그날의 아픔을 상업 영상으로 내놓는 게 쉽겠느냐’는 걱정이 많았는데 작품 제작은 꾸준했다. 2002년 수치가 급증한 것은 보도 형식의 TV다큐가 많았기 때문이고, 증가세는 3~4년 뒤 본격화한다. 2006년에는 <플라이트 93>(감독 폴 그린그래스)과 <월드 트레이드 센터>(감독 올리버스톤) 등 9•11을 직접 다룬 영화들이 개봉했고 <관타나모로 가는 길>(감독 마이클 윈터보텀)을 필두로 본격적인 ‘포스트 9•11’의 경향이 물결을 타기에 이른다. <허트 로커>(감독 캐스린 비글로)가 나온 2008년 ‘테러리즘’을 키워드로 하는 작품은 74편으로 정점을 찍는다.

일개 키워드로 검색했을 뿐인 이 수치에는 9•11과는 아무 상관없는 작품도 있고 9•11을 노골적으로 언급했지만 빠진 것도 적지 않다. 모든 작품을 일일이 들여다보고 전체 가운데 해당 작품의 비중을 따져야 좀 더 정확한 분석이 되겠지만, 9•11 이후 맥락을 짐작하는 데 그래프(69쪽 참조)는 충분히 참고가 될 것이다. 그날 이후 다수 미국인은 배트맨을 보든 아이언맨을 보든 특정 장면에서 그 일을 떠올리게 됐고 작가와 감독은 이에 응했다. 특히 TV시리즈에서는 <24>(2001~10)를 비롯해 <오버데어>(2005), <슬리퍼 셀>(2005), 최근 <홈랜드>(2011~)에 이르기까지 자국 내 테러나 중동 전쟁을 주제 삼은 작품 제작이 끊이지 않았거니와 하나의 장르가 형성됐다.

스펙터클을 좇는 영화•드라마 입장에서 테러와 전쟁은 더없이 구미가 당기는 소재이므로, 이를 세월호 참사와 견주는 일은 여러모로 위험하다. 그럼에도 전 국가적 트라우마를 안긴 비극이 그날 이후 다수 국민의 마음을 바꿔놓았다는 공통점에서 이후 흐름을 내다보는 데 도움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중의 요구를 가장 발 빠르게 비추는 분야는 TV드라마다. “걘 믿은 거야. 지켜줄 어른이 있을 거라고!”(tvN 드라마 <시그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게 국가야.…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하라고 국가가 준 임무는 없으니까.”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자꾸만 아무런 맥락 없이 사고가 일어나.… 물속에 잠기면서 시간도 멈춘 거야.”(MBC 드라마 <W>) 이런 대사를 들으면서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그널>을 쓴 김은희 작가의 경우 인터뷰 때마다 세월호에 대한 언급을 주저하지 않았다. SBS 드라마 <원티드>의 한지완 작가는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이 사회에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SNS에 글을 올리거나 후원하는 것 말고 고통받는 분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 밝혔다(<한겨레> 8월23일자 인터뷰).

명백한 상대가 있고 이를 다루는 자국의 대응방식에 성찰의 필요가 분명한 점 등의 이유로 미국에서 9•11은 직접적인 영화•드라마의 소재가 됐다. 이에 비해 세월호는 앞으로 보다 간접적인 방식으로 더욱 자주 언급될 것으로 보인다. 범죄 드라마의 대사 속에서, 재난영화의 한 설정 뒤편에서 세월호는 수시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때때로 이 현상은 작가•감독의 의도와는 별개로 객석에서 나타날 것이다. 기자들은 앞으로도 ‘세월호를 염두에 둔 구상이었나’라는 질문을 종종 하게 될 것이고, 감독들은 대개 ‘특정 사건만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아픔, 시스템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는 취지의 공식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감독은 자신의 작품에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게 마련이고 하나의 사안만을 은유한 것이라고 밝히는 순간 작품의 폭이 좁아지는 것은 물론 곡해의 소지가 커지므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두루뭉술한 대답을 내놓는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터널>

한국 사회가 재난을 대하는 법

김성훈 감독의 말(<씨네21> 1067호 인터뷰)대로 <터널>이 10여년 전쯤 개봉했다면 누구나 삼풍백화점을 떠올렸을 것이다. 느닷없이 콘크리트 더미 속에 깔린 주인공이 물 한 방울을 얻기 위해 애쓰는 가운데 바깥에선 부실공사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장면들이 집중적으로 회자됐을 것이다. 지금 포털 사이트에 ‘터널’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세월호’가 뜬다. 영화는 현실과 나란히 감상된다. <터널>에는 크게 3개의 축이 있다. 구조돼야 하는 정수(하정우), 구조해야 하는 당국과 구조대장(오달수), 밖에 살아 있는 아내 세현(배두나). 관객이 이 영화에서 현실을 느꼈다면 이들 3개 축이 효과적으로 맞물린 덕이 크다. 이 가운데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 주목할 인물은 세현이다.

정수와 구조대장이 우리가 못 이룬 희망을 투영하고 있다면 세현은 우리 다수가 느끼고 있는,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을 드러내는 존재다. 공깃밥 앞에서 고개를 떨구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구조작업 노동자들에게 계란 부쳐주기에 나선 세현은 시일이 지날수록 궁지에 몰린다. 살아 있다는 확증이 죽었을 거라는 심증으로 변해가면서 세현은 여론에 밀린다. 모두가 한마음인 재난과의 싸움보다, 돈으로 환산한 피해액이나 여론조사 결과와 같은 숫자와의 싸움에서 세현은 떠밀리기 시작한다. 정부 당국의 졸속을 꼬집는 어떤 장면보다 세현이 겪는 일들에서 눈물이 났다면, 당신은 지금껏 끝나지 않은 구조작업을 지켜만 보다가 그곳에 갇힌 이들을 속절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자신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

대중영화로서 <터널>이 모색한 세현의 출구는, 세월호 이후를 버겁게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어떤 태도를 말하는 것 같다. 구조작업 중단을 뜻하는 동의서에 서명한 세현은 남편에게 말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라디오 방송국을 찾는다. 남편이 듣고 있을지도 모를 방송에서 그가 한 말은 살아남아달라거나 희망을 잃지 말아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구조작업은 더이상 없을 것이다, 그러니 기다리지 말아라. 이 말은 구조될 테니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의 반대말이며, 섣부른 위로 대신 상황을 똑바로 알고 있으라는 촉구다. 살아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방송했지만 그렇다면 구조작업을 중단해서는 안 되는 이 기막힌 상황에서 영화는 신파로 향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여느 재난영화들과 <터널> 사이에 선이 그어지는 지점이다. 정수가 살 수 있었던 건 이 방송을 듣고 사력을 다해 자동차 경적을 울린 덕이었다. 정리해보자. 정수의 유머와 구조대장의 진심은 이 영화의 희망사항이었다. 더욱이 나는 이 영화를 포함한 많은 한국영화들에서 한심한 정부 당국을 비아냥대는 여러 대목들이, 지금 시점에서, 시장을 형성하는 것 외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에 비해 세현의 사투는 관객을 포함한 이 사회가 어떤 태도로 재난을 대할지에 대한 주문으로 보인다. 있지도 않은 희망 따위를 들먹이지 말 것. 내가 처한 객관적 조건을 정확히 알고 있을 것. 내 자리에서 할 일을 할 것.

세현의 방송이 일종의 주문이라면, 터널에서 구출된 남편에게 내뱉은 첫마디는 다수 한국 성인들이 품고 있는 감정이다. “미안해.”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감독 이성강)에서 카이가 끝내 건네야 했던 말. 팽목항과 단원고, 안산과 광화문 거리 곳곳에 수없이 써 있는 그 말. 정작해야 할 사람이 끝내 안 하고 있는 말. 그날 이후를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마다 터져나오는 말. 우리는 앞으로도 영화의 관객이 될 때 마음에 품고 있던 어떤 말이 목에 걸릴 수 있다는 준비를 하고 극장에 들어서야 할지 모른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존재의 이유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가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물질세계의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는 현상을 기록하고 포착하고 증명함으로써 그것이 일상사 가운데 잊히고 사라지고 무심히 침묵당하지 않도록 구해내는 것이 영화의 능력이다.” 운동하는 이미지로서 영화 매체의 특성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지금 이 말은 세현이 등장한 많은 장면들에 붙여도 적절해질 코멘터리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거나 “예술은 예술일 뿐”이라는 생각도 우리 주변엔 적지 않다. 작품을 현실세계에 무리하게 대입할 경우 작품을 그 안에 가둘 수 있는 만큼 경계해야 함은 마땅하다. 그런데도 우리가 영화에서 현실을 떠올리는 이유를 크라카우어가 말해준 것 같다. 세월호 이후 재난영화를 보는 관객이 된다는 것은 때로, 무언가를 지나치거나 지나쳐버리길 원하는 자들에 맞서는 일이 될 수 있다. 또는 ‘예술은 해서 무엇에 쓰느냐’거나 ‘쓸모가 없으니까 예술’이라는 양극단에 대해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렇게 잊을 뻔한 기억을 꺼내게 해준다면 영화의 쓸모는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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