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혈육을 위한 거대한 이름 <그랜드 파더>
2016-08-31
글 : 윤혜지
<그랜드 파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돌아온 기광(박근형)은 전쟁 트라우마와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는 가족과의 연마저 다 끊고 외로이 고물 버스를 운전하며 살아가는 하루살이 인생이다. 그런데 무료한 그의 일상에 갑작스런 부고가 날아든다. 아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이다. 기광은 착잡한 마음으로 아들의 장례식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기광은 아들의 가까운 선배였다는 양돈(정진영)과 손녀 보람(고보결)을 처음 만난다. 기댈 곳 하나 없이 위태롭게 버티고 선 보람이 안쓰러운 기광은 보람을 돌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아들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고 느낀 기광은 홀로 자살 원인을 추적하던 중 고통스러운 진실과 마주한다.

한국판 <테이큰>(2002), 또는 <그랜 토리노>(2008)라 불러도 무방할 하드보일드 액션영화다. 고독한 투사로 변신한 박근형은 아무런 낙이 없는 노인의 건조한 삶, 손녀를 만나 하루하루 새로운 행복을 발견해가는 순수한 기쁨, 비정한 사회에 맞서 복수를 감행하는 냉철함 등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이며 시선을 끈다. 그리 많은 대사를 말하지 않고도 기광이란 인물을 깊고 세심하게 표현하는 박근형의 내공이 새삼 놀랍다. 기광이 노인임을 고려해 (어버이연합의 가스통 시위를 비틀어) 폭탄 대신 LPG 가스통을 터뜨리고, 알루미늄 음료수 캔을 무기로 쓰는 등 영리하고 경제적인 액션 연출도 인상적이다.

<그랜드 파더>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따뜻한 멜로드라마이자 고발성 짙은 사회 드라마이기도 하다. 여러 유형의 청소년 범죄, 어버이연합 등 실제 우리 사회를 둘러싼 숱한 사건, 사고와 이슈를 노골적으로 연상케 한다.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려는 노인의 고군분투가 비극으로 끝난다는 점은 꽤 침울하고 슬프지만 영화는 미래에 대한 희망적 태도를 견지하고자 노력한다. 드라마적 과잉이 눈에 띄지만 국내에 드문 노인 액션영화라는 점만으로도 나름의 성취가 있다. <사람을 찾습니다>(2008), <타투>(2014) 등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 온 이서 감독의 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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