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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감독’으로서 ‘배우’ 내털리 포트먼의 연기 디렉팅하기 -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내털리 포트먼
2016-09-01
글 : 이화정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소설가 아모스 오즈의 자전적인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2015)는 이스라엘에 대한 로맨틱한 이상향을 꿈꾸던 여성 파니아(내털리 포트먼)가 굴곡진 역사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 못한 채 자살을 택하기까지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노년이 된 아들 아모스(아미르 테슬러)의 회상을 통해서 관조하는 이야기다. 내털리 포트먼은 연출과 각색에 더해 훗날 이스라엘의 대문호가 되는 아모스 오즈에게 문학적 영감을 준 존재인 여성 파니아의 풍부한 내면을 직접 연기한다. 뉴욕에서 성장했지만, 이스라엘 예루살렘 태생인 내털리 포트먼은 13살 때까지 유대인 학교를 다니며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배웠으며, 집에서는 이민자인 조부모와 부모 세대의 영향을 받고 자란 유대인이다. “유대인 여배우가 된다는 것은 홀로코스트 관련 대본만 400개씩 받는다는 뜻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이스라엘 역사는 그녀에게 떼려야 뗄 수 없었던 밀접한 문제다. 1994년 <레옹>으로 데뷔한 22년차 배우에게 이 작품은 10년 전 원작을 접할 때부터 구상해온 이야기다. 그 시작과 완성에 대해 서면으로 인터뷰를 나눴다.

-영화화를 결심한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 원작에서 특히 표현하고 싶었던 장면이 있다면.

=10여년 전 처음 번역된 원작을 읽었는데 눈앞에서 영화가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그때 바로, ‘이 작품이 나의 첫 연출작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원작에서 가장 잘 표현하고자 한 부분은 아모스가 성인이 된 후에 자신의 엄마 파니아에게 아버지가 되어주는 듯한 부분이다. 아모스는 아이였을 때도 이미 엄마를 돌보는 아들이었는데, 성인이 된 후에는 기억을 통해 자신을 엄마의 아버지처럼 생각한다. 연민과 이해력이 담긴 이런 시선은 영화의 톤을 잡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유대인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이 이 영화를 연출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보고 들어왔던 친숙한 이야기들이 이 책에 있더라. 이민자로 이스라엘에서 살아온 조부모, 내 아버지의 유년 시절,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로브노에 살던 소녀 파니아는 이스라엘에 대한 로맨틱한 이상향을 꿈꾸며 자라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 도착해서는 곧 정치적 변화에 맞닥뜨리며 예술가로서의 꿈을 접어야 하는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아내이자 어머니로 책임을 짊어진 현실은 어둠으로 그녀를 짓눌러오기 시작하고 점점 현실을 도피하고자 환상 속으로 빠져든다. 많은 이민자들이 느꼈을 유사한 심정을 파니아가 겪는 혼돈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처음 친근함에서 시작된 원작에 대한 관심이 좀더 깊게 탐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전해 연출과 각본을 맡아 영화로 제작하게 되었다.

-직접 각색했는데, 원작자인 아모스 오즈와는 작품 전개에 관해 어떤 의견을 나누었는지 궁금하다.

=아모스 오즈가 주문한 것은 영화 속 스토리를 너무 가볍게 만들지 말아달라는 것뿐이었다. 그에게 자신의 어머니에게 벌어진 비극은 아직까지 의문으로 남아 있고, 여전히 그녀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분을 가장 신경 써서 표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원작을 단순히 영화화하기보다는 자신의 작품과 전혀 다른 나만의 느낌으로 각색하길 제안했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이스라엘을 연출할 수 있게 자신의 기억을 되새겨주고, 그 부분에 대해 조언해주었다. 나만의 연출과 각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많은 부분에서 관용을 베풀어준 점에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특히 장소 헌팅 때는 그가 직접 투어 가이드가 되어 실제 1940년 이스라엘의 전경이 어땠는지 상세히 설명해주기도 했다.

-연출자로서 현장에서의 경험은 어땠나.

=내 시선을 통해 나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연출은 내게 좋은 경험이었다. 현장에서는 스탭을 위하는 마음과 감독으로 내가 원하는 장면을 얻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했다. 배우와 스탭들이 내 비전에 따라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자신들과 의견이 다를 수도 있는데 내가 원하는 걸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는 걸 봤다. 지난 20년간 나 역시 배우로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주연 캐릭터인 파니아를 직접 연기했는데, ‘감독’으로서 ‘배우’ 내털리 포트먼의 연기를 디렉팅하는 건 또 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다.

=원래 연출만 맡으려고 했었다. 이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한 시점이 26살이었는데, 파니아는 조금 더 연륜이 있고 어머니의 느낌이 나는 배우가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출연하지 않는다면 영화 제작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제의가 너무 많았다. 내가 파니아 역을 맡기로 결심하고서야 제작이 가능해졌다. 처음엔 긴장도, 걱정도 많았다. 내 연기를 내가 지켜보는 게 쉽지 않더라. 가끔은 내 촬영 장면을 아예 못 보겠다 싶을 때도 있었고,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몇번이고 다시 찍고 싶을 때도 있었다. 타인에게보다 자신에게 더 비판적인 성격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 연기를 감독하는 게 쉬울 때도 있었다. 배우에게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직접 이해하면 되니 배우에게 원하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그만큼 단축됐다.

-아모스의 회상을 바탕으로 한 과거와 현재, 파니아의 몽상이 교차된다. 각각의 톤이 다르되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했다. 촬영감독 슬라보미르 이지아크와의 협업에 관해서 말해달라.

=슬라보미르 이지아크 감독은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촬영감독이다. 그의 작품 중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과 <세 가지 색: 블루>(1993)를 특히 좋아한다. 그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가져준 게 나로서는 정말 행운이었다. 영화가 현실적이면서도 꿈을 꾸는듯하고, 다큐멘터리 같은 시선으로 보여질 수 있길 원했기에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할 때는 초록과 파란색이 많이 보이게 했다. 아모스 오즈 가족의 역사에 대한 장면이 나올 때는 열정적인 색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슬라보미르 이지아크는 마치 화가처럼 빛과 색을 세심하게 사용했고, 그런 선택과 결정은 영화를 극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영어, 히브리어 대사를 사용한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

=처음 영화화를 결심했을 때부터 언어 때문에 이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히브리어로 그들의 역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나는 영화의 실제 배경이 되는 언어가 영화에서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언어는 큰 역할을 차지한다. 파니아의 남편이자, 감성적인 파니아와 달리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작가 아리에(길라드 카하나)는 언어의 전달자로 항상 어원과 단어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가 정원을 가꾸면서 지구(아담마), 남자(아담), 피(담), 빨강(아돔), 침묵(두미야)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장면이 있는데, 언어가 이 영화에서 물리적으로 중요하다는 걸 드러내 준다. 요즘은 외국영화를 많이 접하기 때문에 관객이 자막을 읽으며 영화를 보는 환경에 익숙하다. 나 역시 영화의 실제 배경이 되는 언어를 듣는 걸 선호한다.

-당신의 연출 데뷔를 감독과 배우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안젤리나 졸리와 비교하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거기에는 소수의 여성 연출가를 향한 시선이 함께 존재한다.

=최근에는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여성 감독을 찾도록 각종 매체에서 적극적으로 기사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점들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더 많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여성 감독을 찾고, 여성 감독이 연출하는 작품들에 투자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런 여론이 할리우드 내 여성 차별을 줄이는 데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연기, 그리고 연출 계획은 무엇인가.

=파블로 라라인 감독이 연출한 <재키>에서 재클린 케네디 역을 맡았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와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재클린 케네디라는 인물을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감독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자 한다. 일단은 연출 데뷔작인 만큼 더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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