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 시인이었던 암흑의 역사를 감추고 사는 소설가가 있다. 시인이란 언어를 깎고 깎아 모든 껍데기를 버리고 그 정수만 남을 때까지 고뇌하는 운명이 아니던가 싶은데, 그는 침소봉대의 달인, 껍데기를 버리기는커녕 누가 쓰다 버린 껍데기까지 갖다 붙이는 허풍의 명수로, 서울 근교로 출판사 사장 심부름 갔던 이야기를 한비야가 7년간 세계를 헤매고 다닌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스케일로 부풀리는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찌하여 시인이기를 포기하고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였던가. 시만 쓰면서 살기엔 말이 너무 많아서? 아니, 뭐, 그런 것도 없진 않겠지만 일단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이 시인 대접을 해주지 않아서. 다시 한번 그렇다면, 그는 어찌하여 시인 대접을 받지 못했을까. 그거야 말이 많아서(이게 무슨 순환논법)… 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그 반대였다, 말주변이 없어서. 그래, 그도 한때는 말수 적고 수줍은 문학청년이었던 것이다.
시인으로 등단은 했지만 여전히 먹고살 길은 막막했던 나 시인은 당시 문인들이 흔히 취하던 호구지책을 택했다, 출판사에 들어간 것이다. 출판사란 월급도 주는(쥐꼬리도 꼬리는 꼬리니까) 좋은 곳이지만 무엇보다도 여초(女超)의 정점, 거기서 남자를 찾느니 우리 동네 신장개업한 육개장집 육개장에서 고기를 건지겠다.
남중과 남고를 나와 과를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대학에서까지 남자들로 점철된 이십 몇년을 살았던 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시인, 문학을 사랑하는 꽃다운 처자들이 나를 지나치게 연모하면 어쩌나, 미리 연애편지 답장용으로 시라도 몇편 써둘까, 아이 참. 하지만 그것은 기우, 차라리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할 것을 그랬지.
그 출판사는 여자가 매우 많기는 했지만 그녀들이 연모한 건 오직 한 사람, 나 시인이 보기엔 입만 산 웬 시인 지망생이었다. “여자들이 시간만 났다 하면 그 자식 옆에 모여 눈을 반짝거리면서 말도 안 되는 구라를 듣고 있는 거예요. 나도 말 좀 하려고 하면 안 시인씨 시 쓰는 데 방해된다고 조용히 하라 그러고.” 20년 전 일이 어찌나 억울했던지 그의 목소리가 바이브레이션을 타며 꺾였다. “그 자식은 시인 지망생이지만 난 시인인데! 등단도 했는데!”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수다쟁이가 되었다, 아니 소설가가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시 쓰는 남자가 여자에게 인기가 많을까, 아니면 말 잘하는 남자가 인기가 많을까? 제목은 <동주>지만 극중 인기 지수로 보면 제목이 ‘몽규’여야 마땅할(근데 그러면 영화 제목 같지 않음. 왠지 악몽에 관한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소설 정도 될 것 같아) 듯한 영화 <동주>를 보면서 나는 내내 그것이 궁금했다. 동주(강하늘)가 시를 쓰고 있는데 어찌하여 여진이는 몽규(박정민)가 좋다는 걸까, 마이너 취향인가.
남자는 역시 유머와 달변, 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려는 찰나였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실제 사진이 나왔다. 아하. 나는 무엇을 찾고자 두 시간을 고뇌했던가, 남자는 역시 얼굴. 하지만 때로는 시가 얼굴을 이긴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보고 나서 보면 몹시 혼란스러운 동시에, 방탕하게 살면 천하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저렇게 된다는 교훈을 주는 영화 <토탈 이클립스>는 1871년에 시작 되는 영화다. 1871년, 폴 베를렌 26살, 아르튀르 랭보 16살. 난 예고편만 보고 성(性)과 나이를 뛰어넘어 사랑하는 영화인 줄 알았어, 음, 한 스무살쯤? 아무튼, 그렇게 겉늙은 대머리 알코올중독자에 손찌검까지 일삼는 인간이 부잣집 금지옥엽 아가씨와 결혼한 것도 모자라 그 아가씨가 매달리다니, 이것이 진정한 시의 힘인가.
언어가 삶을 지배하는 시의 힘은 <일 포스티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 영화에서 미인을 얻는 두 남자,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시인의 우편배달부 마리오의 매력은 뭐랄까… 시 쓰는 거? 그 시를 여자한테 라이브로 들려주는 뻔뻔함? 애초에 마리오가 시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가 네루다를 보니까 시인은 여자한테 인기가 많아서였지. 그러고 보니 네루다 자서전을 읽는데 함께 사는 여자 이름이 설명도 없이 자꾸 바뀌어서 처음엔 파본인 줄 알았어, 페이지가 빠졌나 하고. 어쨌든 대한민국 농촌 총각의 신부 찾기 프로젝트 <나의 결혼원정기>에 나와도 손색없을 마리오가 고향 섬이 아니라 뭍에 나가도 최고 미녀 소리를 들을 베아트리체를 사로잡은 문장들은 이렇다. 당신의 미소는 나비의 날갯짓, 땅에서 움트는 새싹, 부서지는 은빛 파도. 이런 말을 듣고 넘어가다니 한국 섬에만 남자가 부족한 게 아니구나. 근데 <동주>를 보고 혹시나 싶어 “시인들은 전부 뚱뚱하지”라는 네루다의 대사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진을 찾아봤더니… 영화 스틸인 줄 알았어, 그냥 필립 누아레하고 똑같이 생긴 영감님. 그러고 보면 한국 문단은 물이 좋기도 하지, 백석도 있고 임화도 있고.
그런데 여자들이 정말 시에 약하긴 한 걸까. <포제션>에 나오는 영문학 박사들은 침대에서 예이츠와 프로이트를 들려주던데, 그걸 보고 아픈 추억이 떠올랐다, 시대와 국적이 변하여 나는 이성복과 라캉. 자다 말고 필기할 뻔했다, 학생 때도 안 하던 걸.
대학 4학년, 학점을 채우기 위해 내년이 정년 퇴임이라 A를 마구 흩뿌릴 가능성이 높다는 교수의 한시(漢詩) 수업을 들었다. 우리 과 애들은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필기를 했지만 대학 5년을 노트 한권으로 버틴 게으름뱅이에다 과 내 왕따였던 나는 홀로 뒷자리에서 놀고 있었는데, 교수가 갑자기 나에게 주목했다. “거기 다른 과 학생들, 필기 그만하고 저기 아무것도 안 하는 여학생처럼 시를 느껴봐, 시는 느끼는 거야.” 제가 독보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긴 합니다만(그 후로 10년 훨씬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것도 안 하지요) 그렇게 대놓고 칭찬하실 것까지야. 아, 칭찬 아닌가.
네루다도 그렇게 말한다.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경험하는 거야.” 세월호가 침몰하고 숱한 시가 쏟아졌다. 함민복은 이렇게 썼다. “아, 이 공기. 숨 쉬기도 미안한 사월.” 4월에만 숨 쉬기가 미안할까. 이런 시는 이해할 수가 없는 편이 훨씬 낫겠다, 누구도 그런 감정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도록.
사람은 역시 기술이 있어야
시인으로 살아남기 힘든 이 시대, 장착하면 좋을 두세 가지 옵션
다른 글을 쓴다
역시 유명 소설가지만 소싯적 시인이었던 수다쟁이 모씨는(역시 말 많은 자, 시인으로 살아가기 힘든 건가) 시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걸 깨닫고는 다시 소설가로 등단했다. 이건 뭐, 고시 삼관왕도 아니고. “소설은 일단 시집보다 비싸고, 영화나 드라마 판권이 팔릴 수도 있고 말이야.” 시인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도 있습니다만, 그리고 작가님 소설 판권 한개도 안 팔렸잖아요. 때로 글 쓰는 기술은 사지(死地)에서 살아남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비포 나잇 폴스>의 쿠바 시인 레이날도 아레나스(하비에르 바르뎀)는 감옥에서 연애편지를 대필하며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고, 조조 아들 조비는 똑똑한 이복동생 조식의 시를 듣고는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게 해준다. 그가 읊은 시는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는다”는 것으로, 형제가 형제를 죽이려 하는 비정함을 슬퍼하는 내용이었다.
다른 길을 간다
한달 원고료가 5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는 시인에게 원고를 청탁했다가 거절당했다. “제가 한달에 한번 쓰는 연재 칼럼이 있어서 너무 바빠요.” 응? 연재 소설이 아니고? 그는, 원고료는 한달에 50만원이 되지 않았지만 다른 수입이 매우 많은 성공한 자영업자였던 것이다. 이 자영업자의 지옥에서, 시집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보다 놀라운 기적이로군요. 아니면 <금홍아 금홍아>의 이상처럼 일단 시를 쓰고, 그걸로 호구인 여자를 잡아 호구지책을 삼은 다음, 다시 시를 쓰는 방법도 있겠다.
다른 기술을 연마한다
지인이 출판사 경력직 공채 시험을 봤다. 시인이 대장이어서 뭔가 문학적 소양을 묻는 느슨한 면접을 치를 줄 알았지만 혼자 앉아 맞춤법 필기시험을 봤다고 했다. 뭐? 맞춤법은 인터넷 사전이나 맞춤법 검사기가 대신 검토해주는 거 아니었어? “근데 완전히 인간 사전이더라고.” 역시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한다. <넘버.3>의 사이비 시인 랭보(박광정)도 매우 뛰어난 기술 하나가 있어 원고료 외의 부수입을 매우 많이 올리는데 그 기술이란… 이하 19금.